출생 생년 불명 — 생년 원문에 없음. 상채 사람, 포의 출신(「斯上蔡布衣」, 이사열전)
사망 -208년 — 2세 2년(-208) 7월 — 함양 시장에서 요참, 삼족이 멸해짐(「二世二年七月具斯五刑論腰斬咸陽市」, 이사열전)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9년 | 갈석 | 좌승상 | 기록 |
| -208년 | 함양 | 좌승상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9~-208년 | 진 | 좌승상 | 기록 |
봄, 2세의 동쪽 순행을 따라 갈석에서 회계까지 가며, 시황 각석에 조서를 덧새기자고 청한다.
정사 진시황본기: 2세가 동쪽 군현을 순행하자 이사가 따랐다. 승상 이사·거질, 어사대부 덕이 시황의 각석에 조서를 새겨 뜻을 밝히자고 청해 2세가 허락했다.
출전: 史記 卷006 「春二世東行郡縣李斯從到碣石并海南至會稽而盡刻始皇所立刻石」 / 史記 卷006 「丞相臣斯臣去疾御史大夫臣德昧死言臣請具刻詔書刻石」
간언을 허락받지 못하다가 2세의 책망과 아들 이유의 책임 추궁에 두려워 「督責之術」을 올려 2세의 환심을 산다. 2세는 가혹한 독책을 더욱 강화한다.
정사 이사열전: 이사는 여러 번 틈을 청해 간하려 했으나 2세가 허락하지 않았다. 아들 이유가 삼천수로서 도적을 막지 못한다고 사자가 질책하자 두려워 아부하는 글로 독책의 술을 올렸다. 2세는 기뻐했고 독책이 더욱 심해졌다.
출전: 史記 卷087 「李斯數欲請間諫二世不許」 / 史記 卷087 「乃阿二世意欲求容以書對曰」 / 史記 卷087 「書奏二世悅」 / 史記 卷087 「於是行督責益嚴」
조고의 말을 막으려 2세에게 조고의 단점을 상소하나 오히려 2세가 이사를 조고에게 넘겨 하옥되고, 고문 끝에 거짓 자백을 한다. 아들 이유는 삼천에서 항량에게 먼저 죽임당한다.
정사 이사열전: 이사는 상소에서 조고를 송 상 자한·제 전상에 빗대 경고했으나 2세는 오히려 조고를 믿고 이사를 낭중령에게 맡겼다. 조고에게 천여 대 고문을 받고 자백했고, 이유의 일을 조사하러 가던 사자가 도착했을 때 이유는 이미 항량에게 죽었다.
출전: 史記 卷087 「李斯不得見因上書言趙高之短曰」 / 史記 卷087 「其以李斯屬郎中令」 / 史記 卷087 「榜掠千餘不勝痛自誣服」 / 史記 卷087 「及二世所使案三川之守至則項梁已擊殺之」
7월, 오형을 갖춘 뒤 함양 시장에서 요참되고 삼족이 멸해진다. 형장에서 아들에게 「누런 개를 끌고 상채 동문을 나가 토끼를 쫓고 싶다」고 말한다.
정사 이사열전: 2세 2년 7월 이사는 오형을 갖추어 함양 시장에서 요참을 당했다. 형장으로 나가며 둘째 아들에게 상채 동문에서 사냥하던 일을 말했고 부자가 서로 울며 삼족이 멸해졌다. 진시황본기는 이 일을 3년 겨울에 적는다.
출전: 史記 卷087 「二世二年七月具斯五刑論腰斬咸陽市」 / 史記 卷087 「遂父子相哭而夷三族」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43 | 병권을 쥔 기록은 없다. 맏아들 이유가 삼천수로 도적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을 졌다(이사열전). |
| 무력 | 50 | 무용 기록 없음. 문신이다. |
| 지력 | 91 | 독책의 술을 올려 2세를 기쁘게 했고, 조고의 책략에 막혀 상소가 묵살됐다(이사열전). |
| 정치 | 92 | 시황을 도와 법도와 문자·도량형을 통일했고 승상으로 30여 년 일했다고 옥중 상서에서 스스로 말한다(이사열전). |
| 매력 | 48 | 2세에게 「督責」으로 아첨했고 조고의 설득에 굴복해 사구의 위조 조서에 가담했다(이사열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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