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출생 기록 없음(전영의 아들)
사망 몰년 불명 — 사망 연도 불명 — 고밀에서 한신에게 사로잡혔다(田儋列傳: 「虜齊王廣」)고도, 팽월에게 달아났다(高祖本紀: 「齊王廣奔彭越」)고도 적혀 기록이 갈린다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5년 | 임치 | 제왕(상 전횡) | 기록 |
| -203년 | 역하 | 제왕(상 전횡)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9~-206년 | 기타 | (기록 없음) | 불명 |
| -205년 | 제 | 제왕(상 전횡) | 기록 |
| -204년 | 제 | 제왕(상 전횡) | 불명 |
| -203년 | 제 | 제왕(상 전횡) | 기록 |
| -202~-195년 | 기타 | (기록 없음) | 불명 |
전횡이 제 성읍을 되찾자 전영의 아들 광을 제왕으로 세우고 자신이 상이 되어 국정을 맡는다.
정사 전담열전: 항우가 한군을 막으러 제를 풀어 주자 전횡이 제의 성읍을 되찾고 전영의 아들 광을 제왕으로 세웠다. 전횡이 상이 되어 일의 크고 작음을 모두 전횡이 결정했다.
출전: 史記 卷094 「立田榮子廣為齊王而橫相之專國政」
한 사신 역이기의 설득으로 한과 화평하며 역하 군을 풀었으나 한신의 기습을 받자 역이기를 삶는다.
정사 전담열전: 전횡이 역이기의 말을 따라 역하 군을 풀고 한과 화평을 청했다. 한신이 괴통의 계로 평원을 건너 역하군을 습격하고 임치에 들어가자, 제왕 광과 상 횡은 역이기가 자신들을 팔았다고 보고 삶아 죽였다. 광은 고밀로 달아났다.
관련: 역하 전투
출전: 史記 卷094 「橫以為然解其歷下軍」 / 史記 卷094 「因入臨淄齊王廣相橫怒以酈生賣己而亨酈生」
고밀에서 초의 구원군 용저와 합류했으나 한신·조참에게 용저가 죽고 광은 사로잡힌다.
정사 전담열전: 제왕은 고밀에서 초의 용저와 군을 합쳤다. 한신이 조참과 함께 용저를 죽이고 제왕 광을 사로잡았다. 고조본기는 이를 「齊王廣奔彭越」이라 달리 적는다.
출전: 史記 卷094 「楚使龍且救齊齊王與合軍高密」 / 史記 卷094 「漢將韓信與曹參破殺龍且虜齊王廣」 / 史記 卷008 「齊王廣奔彭越」
정사 회음후열전: 한신이 역하를 습격하고 임치를 함락하자 제왕 전광은 고밀로 달아나 초에 구원을 청했다. 한신은 고밀 서쪽까지 추격했고 초는 용저에게 20만이라 일컫는 군을 주어 구원했다. 제왕 광과 용저는 군을 합쳐 유수를 사이에 두고 진을 쳤다. 용저의 부하가 깊이 진을 쌓고 제의 잃은 성이 돌아서기를 기다리자 했으나 용저는 한신을 얕보고 싸웠다. 한신은 밤에 모래를 채운 만여 개의 주머니로 상류를 막고 군을 반쯤 건너 용저를 치다 거짓으로 패해 달아났다. 용저가 추격해 강을 건너는 순간 한신이 사람을 시켜 주머니를 터뜨려 물이 한꺼번에 쏟아졌고, 용저의 군 대부분이 건너지 못한 채 용저가 죽었다. 한신은 성양까지 추격해 초군을 모두 사로잡았다. 고조본기는 기장 관영이 초군을 크게 쳐서 용저를 죽였다고 적는다.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0 | 전횡이 정사를 맡아 실권이 없었고 한신의 습격으로 제가 무너졌다(전담열전). |
| 무력 | 평가 불가 | 무력 기록 없음. |
| 지력 | 50 | 역이기를 믿고 방비를 풀었다가 한신에게 기습당했다(전담열전). |
| 정치 | 50 | 상 전횡이 정사를 모두 결정했다(전담열전: 「政無巨細皆斷於相」). |
| 매력 | 50 | 역이기를 삶아 죽이는 선택을 했다(전담열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전광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