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원문에 없음. 한 양왕의 후손으로 횡양군에 봉해졌던 공자(「韓諸公子橫陽君成」)
사망 -206년 — 한 원년(-206) — 항우가 봉지로 보내지 않고 후로 낮춘 뒤 팽성에서 죽였다(「項王竟不肯遣韓王乃以爲侯又殺之彭城」, 유후세가). 월은 원문에 없음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7년 | 양적 | 한왕 | 기록 |
| -206년 | 팽성 | 한왕→열후→피살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9년 | 기타 | (해당 연도 역할 불명) | 불명 |
| -208~-207년 | 한(韓) | 한왕 | 기록 |
| -206년 | 한(韓) | 한왕→열후→피살 | 기록 |
항량이 초 회왕을 세운 뒤 장량의 건의로 횡양군 성을 한왕으로 세운다. 장량이 한 사도가 되어 천여 명으로 한 땅을 노략하나 얻은 성을 진이 번번이 되찾는다.
정사 유후세가: 장량이 항량에게 한의 공자 횡양군 성을 왕으로 세워 당을 늘리자 권했고, 항량이 장량을 시켜 한성을 찾아 한왕으로 세웠다. 장량이 한의 신도가 되어 한왕과 천여 명으로 서쪽 한 땅을 노략했으나 진이 얻은 성을 번번이 되찾아 영천에서 유병으로 오갔다. 연대는 항량이 회왕을 세운 때로 환산한 추정.
출전: 史記 卷055 「項梁使良求韓成立以為韓王」 / 史記 卷055 「往來為游兵潁川」 / 史記 卷093 「故立韓諸公子橫陽君成為韓王欲以撫定韓故地」
패공이 낙양에서 남으로 환원을 넘을 때 한의 10여 성을 내리고 양적에 한왕 성을 남겨 지키게 한 뒤 장량과 함께 남쪽 완을 친다.
정사 유후세가: 패공이 낙양에서 남쪽 환원으로 나오자 장량이 군을 이끌고 따라 한의 10여 성을 내렸다. 패공은 한왕 성을 양적에 남겨 지키게 하고 장량과 함께 남쪽으로 완을 치고 서쪽 무관으로 들어갔다. 연대는 패공의 무관 입관(-207)으로 환산.
출전: 史記 卷055 「良引兵從沛公下韓十餘城擊破楊熊軍」 / 史記 卷055 「沛公乃令韓王成留守陽翟與良俱南」
항우가 제후를 봉할 때 한왕 성이 장량이 한왕(유방)을 따른 탓에 봉국에 보내지지 못하고 항우를 따라 동으로 가다 후로 강등되고 팽성에서 살해된다.
정사 유후세가: 장량이 한왕을 따랐다는 이유로 항우가 한왕 성을 봉국에 보내지 않고 함께 동쪽으로 데려갔다. 항우는 끝내 한왕으로 보내지 않고 후로 낮췄다가 팽성에서 죽였다. 한왕신열전은 한왕 성이 「不從無功」이라 봉국에 보내지 못했고 열후로 삼았다고 적는다.
출전: 史記 卷055 「良至韓韓王成以良從漢王故項王不遣成之國從與俱東」 / 史記 卷055 「項王竟不肯遣韓王乃以為侯又殺之彭城」 / 史記 卷093 「韓王成以不從無功不遣就國更以為列侯」
정사 흉노열전·고조본기·유경열전: 한 7년 겨울 한왕 신이 마읍에서 흉노에 항복하고 흉노가 구주를 넘어 태원을 쳐 진양에 이르자 고조가 직접 군을 이끌고 갔다. 큰 추위로 병사의 열에 두셋이 손가락을 잃었고, 묵특이 약한 모습을 보여 유인하자 한은 보병 위주의 군을 이끌고 북으로 쫓았다. 고조가 먼저 평성에 이르러 보병이 다 오기 전에 묵특이 정병을 풀어 백등에서 고조를 7일 에워싸 안팎이 서로 구하지도 군량을 대지도 못했다. 고조가 몰래 사자를 보내 연지(알씨)에게 후하게 선물하자 연지가 묵특을 설득했고, 묵특은 왕황·조리의 군이 오지 않자 한과 내통하는 것으로 의심해 포위 한 모퉁이를 풀었다. 고조는 병사에게 활을 당긴 채 밖을 향해 그 모퉁이로 곧장 나가 대군과 합류하게 했다. 한서는 이를 「진평의 비밀 계책」으로 적는다. 이후 유경이 화친 약정을 맺었고, 유경은 먼저 흉노가 쓸 만한 군이 아니라고 말했다가 광무에 갇혔다가 풀렸다. 병력 수는 흉노열전의 원문 숫자이며 사료 비판은 하지 않았다.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0 | 천여 명을 이끌고 장량과 함께 한 땅을 노략했으나 얻은 성을 진이 곧 되찾았다(유후세가). |
| 무력 | 평가 불가 | 무용 기록은 없다. |
| 지력 | 평가 불가 | 독자적인 책략 기록은 없고 장량의 계책을 따랐다(유후세가). |
| 정치 | 50 | 한 땅을 어루만지려 세워진 왕이었으나 봉국에 가지 못한 채 후로 강등되었다(한왕신열전 · 유후세가). |
| 매력 | 50 | 장량이 끝까지 곁을 지키려 했고 항우의 봉국 소식에도 함께 동으로 따라갔다(유후세가).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한왕 성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