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서아시아 · 좌표: 36.223, 36.183 · 사건 49건
| 해 | 사료 | 내용 |
|---|---|---|
| 기원전 217년 | 폴리비오스 역사 | 안티오코스가 안티오키아로 돌아가 1년 휴전을 교섭 |
| 기원전 162년 |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 | 데메트리오스가 왕이 되어 바키데스를 유대로 보냄 |
| 기원전 150년 |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 | 알렉산드로스가 전투에서 데메트리오스를 쳐 죽이고 시리아 왕이 됨 |
| 기원전 145년 |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 | 프톨레마이오스가 사위 알렉산드로스를 버리고 데메트리오스와 손잡아 안티오키아 쪽 싸움에서 알렉산드로스를 꺾음 |
| 기원전 144년 |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 | 트리폰이 어린 안티오코스를 왕으로 세우고 데메트리오스와 싸움 |
| 기원전 49년 |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 | 폼페이우스의 명으로 스키피오가 안티오키아에서 아리스토불로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를 참수 |
| 기원전 41년 |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 | 다프네(안티오키아 곁)에서 유대 대표 백 명이 안토니우스에게 호소 — 안토니우스는 헤롯과 파사엘을 지지해 사분령주로 세움 |
| 19년 |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 티베리우스의 계략과 피소의 손을 빌려 제거됐다는 견해가 널리 퍼졌고, 피소는 로마에서 사형 선고를 받음 |
| 19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게르마니쿠스가 귀환해 자신의 지시가 모두 뒤집힌 것을 발견, 피소와의 충돌 |
| 19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병세가 악화된 게르마니쿠스가 곁의 친구들에게 마지막 말을 남김 |
| 19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게르마니쿠스의 장례, 찬사와 덕행 기림 |
| 19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아그리피나가 게르마니쿠스의 유골과 자녀들을 데리고 배에 오름 |
| 67년 |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 | 네로가 세스티우스 패전 소식에 놀라 베스파시아누스를 동방 사령관으로 보냄 |
| 67년 |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 | 베스파시아누스가 군대를 이끌고 시리아의 수도 안티오키아를 떠나 프톨레마이스로 향함 |
| 69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안티오키아 등지에서 병력 모집과 무기 제작 |
| 71년 |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 | 안티오키아 사람들이 티투스를 맞으며 유대인을 쫓아 달라 청했으나 거절당함 |
| 117년 | 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 시리아 총독이던 하드리아누스가 트라야누스의 입양 소식을 들음 |
| 117년 | 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 안티오키아를 떠나 트라야누스의 유해를 맞아 배로 로마로 보낸 뒤 안티오키아로 돌아와 카틸리우스 세베루스를 시리아 총독에 임명, 일리리쿰을 거쳐 로마로 향함 |
| 175년 | 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 카시우스를 편든 안티오키아 시민을 용서하고, 시리아행 때 안티오키아·키르루스 방문을 거부했다가 나중에 안티오키아를 방문함 |
| 193년 | 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 | 시리아 총독 니게르가 안티오크에서 시민의 요청으로 제위를 받아들이고 자주색 옷과 불을 앞세워 신전을 도는 즉위 의식을 치름 |
| 193년 | 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 시리아에서 군대가 페스켄니우스 니게르를 임페라토르로 환호함(율리아누스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는 설) |
| 194년 |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 안티오키아가 함락되고 니게르는 유프라테스로 달아나다 추격자에게 목이 잘림 — 머리는 비잔티움에 보내 장대에 걺 |
| 194년 | 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 | 안티오크 방면으로 달아난 니게르가 추격에 붙잡혀 죽음 |
| 214년 | 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 | 소아시아·비티니아를 거쳐 안티오크에 이르러 성대한 환영을 받고 한동안 머묾 |
| 215년 |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 안토니누스가 안티오키아에서 호사를 누리며 원로원이 무기력하다고 꾸짖는 편지 — 「내게는 무기와 병사가 있다」 |
| 217년 |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 안티오키아에 있던 율리아 도무나가 아들의 죽음 소식에 가슴을 쳐 유방암이 도지고 단식으로 죽음 |
| 217년 |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 안티오키아에서 아버지를 만나러 병사들 사이를 지나던 디아두메니아누스가 병사에 의해 카이사르로 선포, 안토니누스 이름도 받음 |
| 217년 | 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 | 군이 마크리누스를 황제로 올림(처음에 연장자를 추대했으나 사양) |
| 218년 |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 6월 8일 안티오키아인 마을(도시에서 24마일)에서 마크리누스가 패배 — 근위대는 우세했으나 마에사·소아이미아스가 달아나는 병사를 되돌려 세워 역전 |
| 218년 |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 패배한 마크리누스가 머리와 턱수염을 밀고 밤에 말을 타고 안티오키아에서 달아나 아이가이·카파도키아·갈라티아·비티니아를 거침 |
| 218년 |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 아비투스(가짜 안토니누스)가 승리 이튿날 안티오키아에 입성 — 약탈을 막는 대가로 병사에게 2천 세스테르티우스씩 약속, 원로원에 마크리누스를 헐뜯는 서한 |
| 218년 | 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 | 패한 마크리누스가 수염을 깎고 나그네 차림으로 안티오크를 빠져나가 낮밤으로 달림 |
| 218년 | 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 | 동방 군 전체가 안토니누스(엘라가발루스)에게 넘어가 그를 황제로 선포. 할머니의 후견 아래 동방을 정리하고 로마 원정을 채비함 |
| 218년 | 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 안티오키아로 가 향락에 빠져 군대에 자신을 죽일 빌미를 줌 |
| 231년 | 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 | 알렉산데르가 편지로 「제 땅에 머물라」고 달래 보았으나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400명의 호화 사절을 보내 강요하는 투로 답함 |
| 252년 | 조시모스 새 역사 | 스키타이가 사방을 휩쓸고 역병이 번지는 사이 페르시아가 메소포타미아를 차지하고 안티오키아까지 들어와 도시를 파괴하고 주민을 포로로 끌고 갔다 |
| 260년 | 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 사푸르와 손잡은 키리아데스가 페르시아군을 로마령에 끌어들여 안티오키아와 카이사레아를 점령함 |
| 272년 | 에우트로피우스 로마사 개요 | 아우렐리아누스가 오다이나투스 사후 동방을 쥐고 있던 제노비아를 안티오키아 가까이에서 큰 싸움 없이 사로잡았다 |
| 272년 | 조시모스 새 역사 | 아우렐리아누스가 안티오키아 앞에서 제노비아의 중무장 기병을 거짓 후퇴로 지치게 한 뒤 되돌려 쳐 전멸시키고, 패잔병이 도시로 달아났다 |
| 540년 | 프로코피우스 | 호스로에스가 전군을 이끌고 안티오키아로 진군 — 시민 일부 도주, 레바논 수비대장들이 도착 |
| 540년 | 프로코피우스 | 호스로에스가 로마 사절에게 '신은 좋은 것에 나쁜 것을 섞어 준다'는 연설을 함 전승 |
| 638년 | 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 | 아랍군이 안티오키아를 점령 |
| 821년 | 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 | 토마스가 아랍과 평화를 맺고 안티오크에서 황제로 선언됨(주교가 추대) |
| 964년 | 레온 부제 「역사」 | 니케포로스의 시리아 원정: 안티오키아 공략 실패, 에데사 쪽으로 감 |
| 965년 | 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 | 안티오크 성벽 탑 두 개를 차지해 도시를 점령(니케포로스 명령과 달리 독자 행동) |
| 968년 | 레온 부제 「역사」 | 니케포로스 황제가 안티오키아로 강행군해 성 앞에 진을 침. 성을 바로 공격하지 않고 언덕 위에 요새를 쌓아 매일 출격하게 함(IV.11에서 완성, 기병 500과 보병 1,000 주둔). |
| 969년 | 레온 부제 「역사」 | 안티오키아 함락: 미카엘 부르차 등이 밤에 사다리로 성벽에 올라 사라센 파수병을 죽이고 성문을 열어 주민이 항복, 도시는 불타고 약탈됨. |
| 1030년 | 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 | 로마누스 3세가 시리아 원정을 접고 안티오케이아로 철수하던 중 야영지를 나선 군대가 아랍군의 공격으로 대패. 황제는 간신히 도착 |
| 1098년 | 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 | 라틴군이 도성 안에 갇혀 성채 수비대와 밖의 적에게 양쪽에서 압박당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