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한반도 · 좌표: 37.972, 126.553 · 사건 55건
| 해 | 사료 | 내용 |
|---|---|---|
| 877년 | 삼국사기 | 고려 태조가 송악군에서 태어남 |
| 897년 | 삼국유사 | 궁예가 송악군으로 천도함 |
| 898년 | 삼국사기 | 궁예가 패서도와 한산주 관내 30여 성을 취하고 송악군에 도읍함 |
| 918년 | 고려사 | 마군장군 환선길이 모반하다 발각되어 처형됨 (즉위 직후 궁중 반란) |
| 919년 | 고려사절요 | 송악 남쪽에 도읍을 정하고 송악군을 개주로 올려 시장·방리·오부·육위를 둠 |
| 919년 | 삼국사기 | 태조가 송악군으로 도읍을 옮김 |
| 919년 | 삼국유사 | 태조가 송악군으로 도읍을 옮김 (이 해 법왕사·자운사 등 열 절 창건) |
| 935년 | 고려사절요 | 신라왕 김부가 백관을 이끌고 개경에 들어옴. 왕건이 교외에서 맞아 유화궁에 머물게 하고 맏딸 낙랑공주를 시집보냄 |
| 935년 | 삼국사기 | 경순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왕도를 떠나 태조에게 귀순, 정승공에 봉해짐 |
| 942년 | 고려사 | 거란이 발해와 연합하다 배신해 멸했다 하여 거란과 절교, 사신 30명을 섬에 유배하고 낙타를 만부교 아래 매어 굶겨 죽임 |
| 947년 | 고려사절요 | 거란이 침공하려 한다는 최광윤의 편지를 받고 군사 30만을 뽑아 광군이라 하고 광군사를 둠 |
| 958년 | 고려사절요 | 광종이 한림학사 쌍기에게 과거를 맡겨 시부송·시무책으로 진사를 뽑고 위봉루에서 방을 붙임. 처음 과거를 둠 |
| 997년 | 고려사 | 성종이 병이 위독해지자 개령군 송을 불러 직접 서약을 내려 왕위를 전하고 내천왕사로 옮김 |
| 1009년 | 고려사 | 강조가 왕을 폐해 양국공으로 삼고 군사를 보내 김치양 부자 등 7명을 죽임 |
| 1010년 | 요사(遼史) 본기 | 개경 공격 — 왕순이 성을 버리고 도주, 요군이 개경을 불태우고 청강까지 갔다 돌아옴 |
| 1011년 | 고려사 | 거란주가 개경에 들어와 태묘·궁궐·민가를 모두 불태움 |
| 1011년 | 고려사 | 송악성을 증수하고 서경 황성을 쌓음 |
| 1086년 | 고려사절요 | 송에서 돌아온 의천이 예성강에 이르자 왕이 태후를 모시고 마중. 불경 1천 권을 바치고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두어 요·송·일본에서 책 4천 권을 구해 간행 |
| 1107년 | 고려사절요 | 예종이 여진 정벌에 앞서 순천관 남문에 나가 군사를 사열하고 은·포·술·음식을 내림 |
| 1109년 | 고려사절요 | 1109년 예종이 군신을 모아 여진에게 9성을 돌려줄지 의논. 처음 들은 것과 달리 길이 모두 통하고 성이 서로 멀어 지키기 어렵다는 논의 |
| 1117년 | 고려사절요 | 1117년 금 황제 아골타가 사신 아지 등 5명을 보내 「형 금국 황제가 아우 고려 국왕에게」라며 화친·형제 결맹을 청하고 말 1필을 보냄. 대신들은 화친 불가를 극언 |
| 1126년 | 고려사 | 이자겸 제거를 꾀한 김찬 등이 실패하자 이자겸·척준경이 군사를 일으켜 궁궐을 범함 |
| 1170년 | 고려사 | 이고 등이 임종식·이복기·한뢰를 죽이고 호종 문관·환관을 모두 살해 (무신정변) |
| 1179년 | 고려사절요 | 1179년 9월 장군 경대승이 허승과 모의해 정중부와 사위 송유인을 죽임 |
| 1196년 | 고려사절요 | 1196년 4월 장군 최충헌이 동생 충수와 함께 이의민을 죽임. 왕이 보제사에 행차한 때 |
| 1211년 | 고려사 | 내시 왕준명 등이 최충헌 주살을 꾀했으나 실패 |
| 1231년 | 원사(元史) 본기 | 고려가 사신을 죽였다 하여 살리타를 보내 40여 성을 취하자 고려왕이 아우를 보내 항복을 청함 |
| 1232년 | 고려사 | 4품 이상 회의에서 모두 성을 지키자 했으나 재추 정무·태집성 등만 도읍을 옮겨 난을 피하자고 함 |
| 1252년 | 원사(元史) 본기 | 제왕 야고에게 고려 정벌을 명함 |
| 1260년 | 고려사 | 왕이 속리대와 함께 개경에 들어가 영건 현장을 둘러보고 승천부 북쪽 교외에 머묾 |
| 1269년 | 원사(元史) 본기 | 고려 세자가 아뢰기를 신료가 국왕 왕전을 멋대로 폐하고 아우 안경공 온을 세웠다 함 |
| 1269년 | 고려사 | 임연이 환관 김경 등을 죽이고 장계렬·기온을 섬으로 유배 (원종 폐위 직전) |
| 1303년 | 고려사 | 홍자번·원충갑이 삼군을 이끌고 왕궁을 포위해 오기를 붙잡아 원으로 압송 |
| 1332년 | 고려사 | 조적 등이 밤에 왕궁을 습격했으나 위사가 쏘아 죽이고 시체를 순군 남교 아래 버림 |
| 1335년 | 고려사 | 원 단사관 교화가려사가가 와서 어향사 탑사불화를 베어 시장에 효수 |
| 1339년 | 고려사절요 | 1339년 전왕이 방을 붙여 조적 등이 활과 칼을 차고 사람을 모아 반란을 꾀했다고 알리고 귀순하는 관원은 용서한다 함. 조적 일파는 궁문 밖에 수레를 연이어 막음 |
| 1352년 | 고려사 | 조일신이 무리를 모아 기원을 죽이고 시어궁을 포위해 숙위 판밀직사 최덕림 등 수 명을 죽임 |
| 1352년 | 고려사절요 | 1352년 조일신이 난을 일으켜 안팎에 호령. 왕이 이인복과 의논해 행성에서 김첨수로 일신을 붙잡아 베게 함 |
| 1356년 | 고려사 | 태사도 기철·태감 권겸·경양부원대군 노책이 반역으로 처형됨 (공민왕 반원 개혁) |
| 1361년 | 고려사절요 | 1361년 홍건적이 절령 책을 깨 안우 등이 무너지자 왕이 공주·태후를 모시고 남쪽으로 피난하려 함. 개경 부녀·노약자부터 내보냄 |
| 1362년 | 고려사 | 여러 장수가 사면으로 공격하는 가운데 이성계가 친병 2천으로 선봉에 서 적괴 사유·관선생 등을 베고 크게 격파 (개경 수복) |
| 1362년 | 고려사절요 | 1362년 안우·이방실·최영 등 20만이 동교 천수사 앞에 진을 치고 정세운이 독려. 태조가 휘하 2천으로 선봉에서 대파해 적 괴수 사유·관선생을 베고 10여만을 참수, 원 황제 옥새를 얻어 경성 수복 |
| 1363년 | 고려사 | 김용이 무리 50여 명을 보내 행궁을 범하고 환관 안도치 등과 우정승 홍언박을 죽임 (흥왕사의 난) |
| 1363년 | 고려사절요 | 1363년 윤3월 김수·조련 등 50여 명이 행궁 흥왕사를 급습, 환관을 죽이고 왕은 대비전 밀실에 숨음. 환관 안도적이 왕인 척 누워 죽고 홍언박 등 살해 |
| 1365년 | 고려사 | 왜가 창릉에 들어가 세조(태조 아버지) 어진을 가져감 |
| 1388년 | 고려사절요 | 1388년 6월 이성계가 황룡기를 세우고 선죽교를 지나 남산에 오르자 최영 휘하 안소가 먼저 점거했으나 깃발을 보고 무너짐. 최영은 화원으로 달아나 쫓김 |
| 1389년 | 고려사 | 우·창을 서인으로 강등하고 이림 부자 등을 먼 곳에 유배 |
| 1389년 | 고려사절요 | 1389년 공양왕이 효사관에 가서 우·창을 처형한 일을 태조에게 고함 |
| 1391년 | 고려사 | 이성계를 삼군도총제사, 배극렴을 중군총제사, 조준을 좌군, 정도전을 우군 총제사로 삼음 |
| 1391년 | 고려사 | 경기·교주·서해도 민정과 승도를 징발해 경도 내성을 쌓게 하고 배극렴이 감독 |
| 1392년 | 명사(明史) 본기 | 李成桂가 高麗王 瑤를 가두고 자립, 국호를 朝鮮으로 고치게 함 |
| 1392년 | 고려사 | 시중 배극렴 등이 왕대비에게 지금 왕이 혼암해 군도를 잃었으니 폐해야 한다고 청함 |
| 1392년 | 고려사 | 단양군 우성범과 진원군 강회계를 회빈문 밖에서 베자 태조가 듣고 크게 노해 말렸으나 미치지 못함 |
| 1392년 | 고려사절요 | 1392년 정몽주가 이성계 병중에 조준·정도전·남은 등을 탄핵하게 하자 이방원이 조영규 등을 보내 길에서 몽주를 쳐 죽임 |
| 1392년 | 고려사절요 | 1392년 백관이 국새를 왕대비 안씨 전에 받들어 두고 섭정하게 함(절요의 마지막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