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중국 · 좌표: 32.580, 116.780 · 사건 49건
| 해 | 사료 | 내용 |
|---|---|---|
| 기원전 203년 | 한서(漢書) 제기 | 유가가 초 땅에 들어가 수춘을 포위, 초 대사마 주은이 배반해 경포를 맞이하며 성보를 도륙 |
| 기원전 123년 | 한서(漢書) 제기 | 회남왕 안·형산왕 사의 모반이 드러나 처형, 연루자 수만 명 사망 |
| 144년 | 후한서(後漢書) 본기 | 구강 도적 서봉·마면 등이 무상장군을 칭하며 성읍을 공격해 태움 |
| 197년 | 자치통감 | 원술이 수춘에서 황제를 칭하고 중가(仲家)라 부르며 공경백관을 두고 천지에 교사를 지냄 — 패상 진규가 서신으로 만류 |
| 224년 | 삼국지(三國志) 정사 | 曹丕가 수군을 이끌고 蔡水·潁水를 따라 淮水로 나가 壽春에 행차 |
| 234년 | 삼국지(三國志) 정사 | 明帝가 壽春에 행차해 장수들의 공을 기록하고 상을 줌 |
| 255년 | 자치통감 | 봄 정월 毌丘儉·文欽이 태후의 詔를 사칭해 壽春에서 기병, 주군에 격문을 돌려 司馬師를 토벌하려 함 |
| 257년 | 삼국지(三國志) 정사 | 諸葛誕이 徵召에 불응해 군을 일으켜 揚州刺史 樂綝을 죽이고 반란 |
| 257년 | 삼국지(三國志) 정사 | 魏 諸葛誕이 壽春에서 반란해 吳에 칭신, 吳가 文欽·唐咨·全端 등 3만을 보내 구원 |
| 257년 | 자치통감 | 6월 司馬昭가 제군 26만을 거느려 丘頭에 진출해 주둔하고, 王基·陳騫 등이 壽春을 포위 |
| 257년 | 자치통감 | 가을 7월 吳 大將軍 孫綝이 크게 병사를 일으켜 鑊裡에 주둔하고, 朱異·丁奉 등을 보내 壽春의 포위를 풀려 함 |
| 258년 | 삼국지(三國志) 정사 | 司馬昭가 壽春城을 함락시키고 諸葛誕을 벰 |
| 258년 | 삼국지(三國志) 정사 | 司馬昭가 壽春을 함락시켜 諸葛誕이 전사하고 장수·관리 이하가 모두 항복 |
| 271년 | 진서(晉書) 제기 | 孫皓가 무리를 이끌고 壽陽으로 향하자 大司馬 司馬望이 淮北에 주둔해 막음 |
| 371년 | 진서(晉書) 제기 | 桓溫이 壽陽을 함락하고 袁瑾을 참수 |
| 383년 | 진서(晉書) 제기 | 苻堅의 아우 融이 壽春을 함락 |
| 383년 | 진서(晉書) 제기 | 晉 諸將이 肥水에서 苻堅을 대파(淝水之戰), 수만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음 |
| 450년 | 송서(宋書) 본기 | 좌군장군 유강조가 수양 위무수에서 북위와 싸우다 패해 전사 |
| 454년 | 자치통감 | 노상이 수양에서 건평 원년을 자칭하며 반란 |
| 466년 | 송서(宋書) 본기 | 유면이 수양을 이겨 예주가 평정됨 |
| 480년 | 남제서(南齊書) 본기 | 虜가 壽陽을 침입, 豫州刺史 垣崇祖가 쳐서 물리침 |
| 480년 | 남사(南史) 본기 | 북위군이 壽陽을 공격하자 豫州刺史 垣崇祖가 격퇴 |
| 495년 | 남제서(南齊書) 본기 | 虜가 壽春에서 물러가고 계엄을 풂 |
| 495년 | 남사(南史) 본기 | 북위군이 壽春에서 물러남 |
| 498년 | 남제서(南齊書) 본기 | 豫州刺史 裴叔業이 淮北에서 虜를 격파 |
| 500년 | 북사(北史) 본기 | 南齊 豫州刺史 裴叔業이 壽春을 들어 북위에 귀부 |
| 500년 | 남제서(南齊書) 본기 | 裴叔業이 병사하고 조카 裴植이 壽春을 들어 北魏에 항복 |
| 500년 | 남사(南史) 본기 | 豫州刺史 裴叔業가 병사하자 조카 裴植이 壽春을 북위에 바침 |
| 500년 | 위서(魏書) 제기 | 제 豫州刺史 裴叔業가 수춘(壽春)을 들어 위에 내속, 彭城王 勰이 10만으로 출동 |
| 500년 | 자치통감 | 배숙업이 위에 투항하려 하자 최혜경 등이 수양을 치러 출정 |
| 506년 | 양서(梁書) 본기 | 진백지가 위의 수양에서 무리를 이끌고 양에 귀항 |
| 506년 | 자치통감 | 진백지가 양성에서 8천을 이끌고 양에 귀순, 위가 아들 호아를 죽임 |
| 515년 | 자치통감 | 북위 최량이 서협석에서 조조열을 패퇴시키고 성을 포위 |
| 516년 | 자치통감 | 북위 이평이 협석 외성을 깨고 조조열이 항복해 참수 |
| 524년 | 양서(梁書) 본기 | 선의장군 배수가 수양을 기습, 외성에 들어갔으나 함락 못 함 |
| 526년 | 양서(梁書) 본기 | 하후단 등 제군이 수양성을 함락 (이후 수양에 예주를 둠) |
| 526년 | 자치통감 | 북위 양주자사 이헌이 수양을 바치자 진경지가 입성, 항복 성 52 |
| 548년 | 양서(梁書) 본기 | 후경이 반란, 마두·목책·형산 등 수자리를 공격 |
| 548년 | 자치통감 | 후경이 수양에서 주이 등을 죽이자는 명분으로 반란(8월) |
| 573년 | 북사(北史) 본기 | 陳 吳明徹이 壽陽을 함락 |
| 573년 | 남사(南史) 본기 | 吳明徹가 壽陽城을 함락하고 王琳을 베어 머리를 建鄴으로 보냄 |
| 579년 | 북사(北史) 본기 | 韋孝寬이 壽陽, 宇文亮이 黃城, 梁士彥이 廣陵을 함락해 江北이 평정됨 |
| 579년 | 남사(南史) 본기 | 周將 梁士彥이 壽陽을 포위·함락 (이후 淮南 땅이 모두 周에 넘어감) |
| 956년 | 구오대사(舊五代史) 본기 | 앞서 李穀이 壽春 성 아래에 주둔해 공격하다 淮南 원군이 대거 오자 將佐와 퇴군 논의 |
| 956년 | 구오대사(舊五代史) 본기 | 丁亥 壽州 성 안 左神衛軍使 徐象 등 18인이 도망 와 귀순 |
| 957년 | 구오대사(舊五代史) 본기 | 戊申 帝가 壽州 성 북쪽에 행차, 劉仁贍이 장좌·병사 만여 명과 함께 나와 항복하자 오래 위로하고 상을 차등 하사 |
| 1161년 | 금사(金史) 본기 | 海陵이 32총관병을 거느리고 南京을 출발, 壽春으로 진격해 宋을 침 |
| 1206년 | 금사(金史) 본기 | 宋人이 壽春을 포위 |
| 1244년 | 송사(宋史) 본기 | 대원군이 수춘성을 포위했으나 성을 지켜 무너지지 않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