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일본 · 좌표: 39.720, 140.103 · 사건 11건
| 해 | 사료 | 내용 |
|---|---|---|
| 746년 | 속일본기 | 발해인과 철리 1,100여 인이 귀화하러 내조해 데와국에 안치한 뒤 의량을 주어 돌려보낸다. |
| 775년 | 속일본기 | 데와국이 에미시 여신이 평정되지 않아 3년간 진병 996인과 국부 이전을 청하고, 병사를 보낸다. |
| 786년 | 속일본기 | 데와국이 발해사 이원태 등 65인이 배 1척으로 표착하고 에미시에게 12인이 약탈되었다고 보고한다. |
| 875년 | 일본삼대실록 | 출우국 보고: 도도(渡嶋) 황적이 반란해 수군 80척으로 추전·포해 두 군 백성 21명을 죽이고 약탈. 칙으로 목재(牧宰)가 토평하게 함 |
| 878년 | 일본삼대실록 | 3월 29일 출우수 후지와라 오키요가 역마로 보고: 이부(夷俘)가 반란해 3월 15일 추전성과 군원 및 주변 민가를 불태움(元慶의 난). 칙으로 군을 가려 요충을 막고, 부족하면 육오국에 구원을 요청하게 함 |
| 878년 | 일본삼대실록 | 출우수 보고: 도적이 더욱 치성해 600명을 내어 야대 애구를 지키게 했으나 소산(焼山)에서 적 천여 명과 마주쳐 5백여 명이 달아나고 성하 촌락이 불탐. 칙으로 상야·하야 각 1천 병을 내고 육오국도 구원하게 함 |
| 878년 | 일본삼대실록 | 5월 5일 육오수 미나모토 야스시가 보고: 출우국에 2,000명을 파견했고 다시 500명을 청받아 보냄. 자국 이(夷)의 동요에 대비해 원병 2,000명을 요청하나 칙으로 양식 낭비를 우려해 방편으로 노역을 줄이라 함 |
| 878년 | 일본삼대실록 | 7월 10일 출우권수 우중변 후지와라 야스노리가 입국해 군사 계책을 세움. 상야 병 600여 명을 추전천 남쪽에 주둔시켜 북쪽의 적을 막고, 적지 12촌과 귀순 3촌을 구분해 보고 |
| 878년 | 일본삼대실록 | 10월 12일 출우국 보고: 8월 29일 역적 300여 명이 성 아래에 와 항복을 청함. 육오권개 사카노우에 요시카게가 2천 병으로 도착, 진수장군 오노 하루카제 등 470명이 추전영 북쪽에 도착 |
| 879년 | 일본삼대실록 | 3월 2일 보칙이 상주: 정월 13일 칙부대로 토벌하려 했으나 병 1,800여 명(상야·하야 각 800, 육오 200)을 두고 진퇴가 어려움. 적이 원한을 호소하는 10여 조의 글을 올려 이치가 있어 법금을 풀고 달램 |
| 884년 | 일본삼대실록 | 9월 29일 출우국 보고: 6월 26일 추전성에 뇌우로 어두워지며 돌 화살촉 23개가 내렸고 7월 2일 포해군 해변에도 내림. 음양료가 '병적·역병의 우려'라 점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