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일본 · 좌표: 38.862, 141.166 · 사건 21건
| 해 | 사료 | 내용 |
|---|---|---|
| 689년 | 일본서기 | 3년(689) 정월 무쓰국 우키타무군 성양 에미시 지리코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기를 청하자 허락함 |
| 792년 | 일본후기 | 陸奥국이 보고함 — 斯波村 蝦夷 胆沢公阿奴志가 사신을 보내 귀순을 청하나 伊治村 포로들이 길을 막는다고 호소함. 조정은 이후 夷 사신에게 관례의 하사품을 주지 말라고 지시 |
| 792년 | 일본후기 | 조정이 夷爾散南公 阿破蘇의 입조 의사를 가상히 여겨 경유 국에서 장건한 군사 300기를 뽑아 국경에서 맞이하며 위세를 보이라고 명함 |
| 794년 | 일본후기 | 副将軍 坂上田村麻呂 이하가 蝦夷를 침 |
| 794년 | 일본후기 | 征夷将軍 大伴弟麻呂가 보고함 — 참수 457급, 포로 150명, 말 85필, 불태운 마을 75곳 |
| 796년 | 일본후기 | 相模·武蔵 등 8국의 백성 9000인을 陸奥国 伊治城에 옮겨 둠 |
| 797년 | 일본후기 | 従四位下 坂上田村麻呂를 征夷大将軍으로 삼음(副将軍 등 딸림) |
| 800년 | 일본후기 | 征夷大将軍 坂上田村麻呂를 보내 諸国의 夷俘를 점검하게 함(検校) |
| 801년 | 일본후기 | 征夷大将軍 坂上田村麻呂 등이 보고함 — 夷賊을 토벌해 복속시킴(원문 「云々」로 생략) |
| 801년 | 일본후기 | 詔 — 陸奥 蝦夷가 대대로 변경을 침범해 백성을 해쳐, 田村麻呂 등을 보내 평정함. 田村麻呂를 従三位로 올림 |
| 804년 | 일본후기 | 武蔵·上総·下総·常陸·上野·下野·陸奥에서 糒 14315斛, 米 9685斛을 陸奥国 小田郡 中山柵으로 운송 — 蝦夷 정벌을 위함 |
| 804년 | 일본후기 | 坂上田村麻呂를 다시 征夷大将軍으로 삼고 百済王教雲·佐伯社屋·道嶋御楯을 副로 삼음. 軍監 8·軍曹 24 |
| 811년 | 일본후기 | 文室綿麻呂를 征夷将軍, 大伴今人·佐伯耳麻呂·坂上鷹養을 副로 삼음 |
| 811년 | 일본후기 | 将軍 보고에 응한 勅 — 참획이 적지 않고 귀항자가 많으니 蝦夷는 中国에 이주시키고 俘囚는 현지에 안치하라 함. 새로 잡은 夷도 상경시키되 강장자는 걷게 하고 약자는 말을 줌 |
| 811년 | 일본후기 | 征夷将軍 文室綿麻呂 보고 — 官軍이 일거에 적을 남김없이 평정하였으니 鎭兵을 줄이고, 志波城은 강가에 있어 수해가 잦아 옮겨야 한다고 청함. 寶亀5년 이래 38년의 변경 분쟁을 말함 |
| 817년 | 일본후기 | 陸奥국 보고 — 반란한 俘 吉弥侯部於夜志閇 등 61인을 모두 붙잡음. 처자를 불러 모으기 위해 몸은 성 아래 머무르게 해 달라는 청을 허락함 |
| 824년 | 일본후기 | 新羅人 辛良·金貴·賀良·水白 등 54인을 陸奥国에 안치하고 法에 따라 부역을 면하며 乗田으로 口分을 줌 |
| 854년 | 일본문덕천황실록 | 4월 壬午, 무쓰국이 흉년·병사 도망·호랑이 같은 무리의 강도로 변란 조짐이 있다며 원병 1천 명을 청함, 허락 |
| 854년 | 일본문덕천황실록 | 5월 戊戌, 무쓰국에 곡식 1만 석을 내 부이(俘夷)를 진휼하게 함 |
| 855년 | 일본문덕천황실록 | 1월, 무쓰국이 오지 부수(俘囚)끼리 칼을 맞대 살상하니 원병 2천 명을 보내자고 주청, 허락(뒤 戊申 추가 2천 청원에는 근성 병사 1천만 뽑으라 칙) |
| 873년 | 일본삼대실록 | 육오국 보고: 부이(俘夷)가 국내에 가득해 걸핏하면 반란을 일으켜 관리·백성이 공포에 떪. 무장국 예에 따라 오대보살상을 국분사에 안치하게 허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