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dney

지역: 오세아니아 · 좌표: -33.868, 151.207 · 사건 37건

사건 목록

해사료내용
1788년제1선단 기록(텐치)포트잭슨 항구를 조사해 카누 67척과 사람 147명을 셌으나, 이 숫자로는 쓸 만한 인구 추정이 안 된다고 덧붙임
1788년제1선단 기록(텐치)마지막 수송선 둘이 11월 19일 케이프혼 경유로 영국을 향해 떠남 — 남은 배는 서플라이호뿐이라 고립감이 커짐
1788년제1선단 기록(텐치)붙잡힌 원주민이 시드니에 도착 — 약 서른 살, 키는 크지 않으나 단단한 체격이고 몹시 동요함(뒤에 이름이 아라바누로 밝혀짐)
1789년제1선단 기록(텐치)서플라이호가 노퍽섬으로 다시 떠남 — 총독이 항구 아래까지 함께 타고 가고 아라바누도 불신과 마지못함으로 승선
1789년제1선단 기록(텐치)군법정이 장교들로만 구성된 재판으로 해병 6명을 관급 창고의 밀가루·고기·술·담배 절도로 교수형에 처함
1789년제1선단 기록(텐치)항구 곳곳에서 원주민 시신이 발견됨 — 몸에 천연두 비슷한 농포가 빽빽했고 원주민에게 없던 병이 왜 퍼졌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고 기록
1789년제1선단 기록(텐치)시리우스호(헌터 선장)가 희망봉에서 돌아와 5월 2일 일몰에 입항 선포 — 싣고 온 밀가루·소금 식량으로 기근의 날을 늦춤
1789년제1선단 기록(텐치)아라바누가 천연두를 엿새 앓다 5월 18일 사망 — 약·간호를 다했으나 소용없었음
1789년제1선단 기록(텐치)10월 주간 배급이 밀가루 8파운드→5파운드 5온스, 돼지고기 5파운드→3파운드 5온스, 완두 3파인트→2파인트로 줄어듦
1789년제1선단 기록(텐치)브래들리 중위가 보트로 원주민 청년 둘을 저항 없이 납치해 시드니에 내려놓음 — 이어 서술에서 배넬롱과 콜비로 불림
1790년제1선단 기록(텐치)항구로 내려가던 총독 일행이 서플라이호 보트의 볼 대위에게서 시리우스호가 노퍽섬에서 난파했다는 소식을 들음 — 헌터 선장 등 전원 구조
1790년제1선단 기록(텐치)서플라이호(볼 대위)가 4월 17일 바타비아로 식량을 구하러 출항
1790년제1선단 기록(텐치)배넬롱이 5월 3일 밤 병을 핑계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뒤뜰 울타리를 넘어 탈출
1790년제1선단 기록(텐치)6월 3일 레이디 줄리아나호 입항 — 여성 죄수 225명을 태우고 1789년 7월 플리머스 기항 포함 거의 11개월 항해; 승선한 일행은 편지·소식에 압도됨
1790년제1선단 기록(텐치)저스티니언호(메이틀랜드 선장)가 식량만 싣고 입항 — 팔머스를 1월 20일 떠나 5개월에 주파했고 곧바로 전량 배급이 복원됨
1790년제1선단 기록(텐치)그달 안에 수송선 셋이 뉴사우스웨일스 군단 2개 중대와 죄수를 싣고 입항 — 승선 1038명 중 항해 중 273명 사망, 병든 채 상륙 486명(표 합계)
1790년제1선단 기록(텐치)항구 북안에 불이 보여 일행이 가보니 배넬롱 등이 있었고 오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 — 비무장 상륙해 도끼와 물고기를 선물
1790년제1선단 기록(텐치)10월 8일 원주민이 약속대로 신호 불을 피워 여러 일행이 물건을 들고 만나러 감 — 배넬롱·바랑가루 등이 모여 있었음
1790년제1선단 기록(텐치)원주민 네 명을 병원 맞은편에 내려 총독 관저로 감 — 구경꾼이 몰렸으나 겁 없이 걸었고 배넬롱은 총독 상처가 나았다며 기뻐함
1790년제1선단 기록(텐치)서플라이호가 바타비아에서 돌아와 10월 19일 입항 — 눈물로 보냈던 배를 환호로 맞음
1790년제1선단 기록(텐치)원주민이 평소보다 많이 모여 소란한 날 배넬롱이 총독에게 와서 보터니만에서 데려온 여자를 곧 죽이겠다고 알림
1790년제1선단 기록(텐치)네덜란드 스노가 바타비아에서 12주 항해 끝에 12월 17일 입항 — 승무원 16명을 잃었고 서플라이호에 남은 병자들도 바타비아에서 죽음
1790년제1선단 기록(텐치)스노가 가져온 바타비아 샤반다르의 네덜란드어 편지로 영국·스페인 전쟁 발발을 알게 됨
1791년제1선단 기록(텐치)스노 짐을 내린 뒤 서플라이호를 노퍽섬으로 보내 헌터 선장과 시리우스 승무원을 데려오게 함
1791년제1선단 기록(텐치)2월 26일 헌터와 승무원이 시드니에 합류 — 3월 28일 스노가 그들을 싣고 티모르·바타비아를 거쳐 북쪽 항로로 영국을 향해 출항
1791년제1선단 기록(텐치)스노 출발 엿새 전 서플라이호가 힐 대위와 뉴사우스웨일스 군단 분견대를 싣고 노퍽섬으로 다시 출항 — 원주민 고아 소년 본델이 자청해 동행
1791년제1선단 기록(텐치)스노 출발 직후 죄수 11명(여자 1·아이 2 포함)이 총독의 커터를 빼앗아 어구·총·사분의·식량을 싣고 바다로 달아남
1791년제1선단 기록(텐치)4월 2일 배급이 다시 줄어 주간 쌀 3·밀가루 3·돼지고기 3파운드가 됨
1791년제1선단 기록(텐치)7월 9일 메리앤호가 2월 25일 다운스 출항 4개월 12일 만에 입항 — 여성 죄수 144명 중 사망 3명뿐
1791년제1선단 기록(텐치)고르곤호가 9월 21일 도착 — 해병 대대의 귀국 날이 다가옴
1791년제1선단 기록(텐치)서플라이호가 11월 26일 영국으로 떠남 — 자신들의 출발이 가까움을 알림
1791년제1선단 기록(텐치)12월 13일 해병 대대가 고르곤호에 승선, 18일 영국으로 출항
1791년제1선단 기록(텐치)브리타니아호(멜빌 선장)가 10월 14일 입항 — 반디멘스랜드와 포트잭슨 사이에서 대형 향유고래 떼를 봤다고 보고
1791년제1선단 기록(텐치)멜빌이 14일 출어 끝에 11월 10일 귀항 — 향유고래 수천 마리를 봤고 일곱 마리를 잡았으나 거친 파도로 배에 올리지 못함
1791년제1선단 기록(텐치)11월 11일 메리앤호가 16일 출어 끝에 귀항 — 남위 41도까지 내려갔으나 고래를 못 봤고 폭풍에 끓이는 솥이 떠내려갈 뻔함
1791년제1선단 기록(텐치)11월 22일 윌리엄앤앤호가 3주 넘게 나가 브로큰만에 기항했다 귀항 — 멜빌이 몫을 나눈 고래를 잡은 배, 날씨만 좋았으면 기름 50톤을 얻었으리라 주장
1791년제1선단 기록(텐치)12월 5일 두 배가 다시 출어했다가 16·17일 모든 포경선이 성과 없이 귀항 — 나쁜 날씨 때문이며 한 번 더 시도 후 북쪽 바다로 갈 생각
지도에서 보기 — 제1선단 기록(텐치) 사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