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57년 — 출생 기록 없음 — 사후 통설
사망 214년 — 건안 19년(214) — 손권 정벌 도중 병사. 전문은 「從征孫權道薨」으로 연도 미명기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8년 | 완 | 군사 | 추정 |
| 200년 | 백마 | 군사 | 기록 |
| 202년 | 여양 | 군사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88년 | 후한 조정 | (광릉태수 손자·소년기) | 불명 |
| 189~190년 | 후한 조정 | 황문시랑 | 불명 |
| 191~195년 | 후한 조정 | (동탁 모살 모의로 수감 후 사직) | 불명 |
| 196년 | 위 | 형주 체류→여남태수 | 불명 |
| 197년 | 위 | 군사 | 불명 |
| 198년 | 위 | 군사 | 추정 |
| 199년 | 위 | 군사 | 불명 |
| 200년 | 위 | 군사 | 기록 |
| 201년 | 위 | 군사 | 불명 |
| 202년 | 위 | 군사 | 기록 |
| 203~207년 | 위 | 군사 | 불명 |
| 208~211년 | 위 | 중군사 | 불명 |
| 212~214년 | 위 | 상서령 | 불명 |
장수 정벌에서 "급히 몰아붙이면 유표가 구한다"고 했으나 따르지 않아 패한 뒤 기병으로 장수군을 깬다.
정사 순유전: 건안 3년 순유가 "장수와 유표는 서로 의지해 강하나 천천히 몰아 유인해야 한다"고 했으나 조조가 급히 진격해 패했고, 이후 기병을 써서 장수군을 대파했다.
연의: 연의 18회
출전: 三國志 卷10 「不如緩軍以待之可誘而致也」 / 三國志 卷10 「乃設奇兵復戰大破之」
하비에서 여포 공격이 길어지자 곽가와 사수·기수를 터 성을 수몰시키자고 건의한다.
정사 순유전: 하비에서 여포를 공격하다 사졸이 지치자 순유와 곽가가 여포는 용맹하나 무모하다며 급히 쳐야 한다고 권했고, 기수·사수를 끌어 성에 물을 대 여포를 생포했다.
연의: 연의 19회
관련: 하비 전투
출전: 三國志 卷10 「乃引沂泗灌城城潰生禽布」
백마에서 안량을 베는 계책을 내고, 이어 보급 수레를 미끼로 문추를 베게 한다.
정사 순유전: 백마를 구하러 갈 때 순유가 계책을 세워 안량을 베었고, 조조가 치중을 하수 따라 서쪽으로 보내자 원소가 쫓아왔을 때 순유가 "적을 잡을 때"라며 치중으로 미끼를 놓아 진이 어지러워진 틈에 기병으로 문추를 벴다.
연의: 연의 26회
관련: 백마 전투
출전: 三國志 卷10 「遂以輜重餌賊賊競奔之陣亂」 / 三國志 卷10 「斬其騎將文醜」
허유가 항복해 오소를 알리자 가후와 함께 조조에게 급습을 권하고, 항복해 온 장합을 받아들이도록 조홍을 설득한다.
정사 순유전: 허유가 "순우경이 군량을 맞이해 교만하고 나태하니 칠 수 있다"고 했으나 모두 의심했고 순유와 가후만 권했다. 조조는 순유와 조홍에게 영채를 맡기고 오소를 쳐 순우경 등을 모두 베었고, 장합이 항복하자 조홍이 의심했으나 순유가 설득해 받아들였다.
연의: 연의 30회
출전: 三國志 卷10 「唯攸與賈詡勸太祖」 / 三國志 卷10 「郃計不用怒而來君何疑」
원담이 구원을 청했을 때 형제가 싸우는 틈을 노려 원씨를 먼저 치자고 건의한다.
정사 순유전: 원담이 신비를 보내 항복하고 구원을 청하자 여러 사람이 유표가 먼저라 했으나 순유가 "원씨가 4주를 차지해 형제가 화목하면 어렵다. 그 어지러운 틈을 타 취해야 한다"고 말했고 조조가 따랐다.
연의: 연의 32회
출전: 三國志 卷10 「及其亂而取之天下定矣」 / 三國志 卷10 「乃許譚和親遂還撃破尚」
정사 무제기·원소전: 200년 2월부터 10월까지 이어졌다. 원소는 정병 10만과 기병 1만으로 허도를 치려 했고, 조조는 관도에 군을 모으고 병력이 1만에 못 미쳐 사상자가 열에 두셋이었다. 원소는 높은 망루와 토산에서 영채에 화살을 쏘았고 조조는 발석거(벽력거)로 이를 부수었다. 원소가 땅굴을 파자 조조는 안에 긴 참호를 팠다. 군량이 모자라던 때 허유가 항복해 순우경의 오소 군량 수송을 알리자 조조는 보기 5천으로 밤에 오소를 급습해 순우경 등을 베었고, 장합·고람이 항복하자 원소군이 무너졌다.
연의: 연의 30~31회
정사 무제기: 업이 함락된 뒤 원담이 감릉·안평·발해·하간을 빼앗자, 조조가 절교 편지를 보내고 진군했다. 원담이 평원을 버리고 남피로 달아났다. 12월 조조가 평원에 들어가 주변 현을 평정했고, 205년 정월 남피를 쳐서 원담을 베고 그 처자를 죽였다. 연의 33회는 한겨울 하천이 얼어 군량선이 움직이지 못하자 백성에게 얼음을 깨게 하는 이야기를 더한다.
연의: 연의 33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5 | 조조의 군사로 관도·백마·여양·남피 등 주요 전역에서 책략을 세웠다(순유전). |
| 무력 | 평가 불가 | 무용 기록은 없다. |
| 지력 | 95 | 백마에서 안량을 베는 계책을 냈고 보급 수레를 미끼로 문추를 베어 원소군을 무너뜨렸다(순유전). |
| 정치 | 74 | "공달은 겉으로는 어리석고 속으로는 지혜롭다"라는 조조의 평이 있다(순유전). |
| 매력 | 74 | 조조가 "순공달은 사람의 사표"라며 태자에게 예를 갖추게 했다(순유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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