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홍(楊洪)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촉한출생 170년경(추정)사망 228년기록 연도 5해

생몰

출생 170년경(추정) — 생년 불명(170년경 추정).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28년 — 건흥 6년(228) 재직 중 졸(양홍전)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14년성도이엄의 공조 → 촉부 종사추정
215년성도이엄의 공조 → 촉부 종사추정
216년성도이엄의 공조 → 촉부 종사추정
217년성도이엄의 공조 → 촉부 종사추정
218년성도촉부 종사 → 촉군태수 대행(발병 건의)기록
219년성도촉군태수 → 익주치중종사추정
220년성도촉군태수 → 익주치중종사추정
221년성도촉군태수 → 익주치중종사추정
222년성도촉군태수 → 익주치중종사추정
223년성도촉군태수·충절장군 → 월기교위기록
224년성도촉군태수·충절장군 → 월기교위기록
225년성도월기교위 영 촉군추정
226년성도월기교위 영 촉군추정
227년성도월기교위 영 촉군기록
228년성도월기교위 영 촉군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0~213년유장·익주제군 부사 순력불명
214~217년촉한이엄의 공조 → 촉부 종사추정
218년촉한촉부 종사 → 촉군태수 대행(발병 건의)기록
219~222년촉한촉군태수 → 익주치중종사추정
223~224년촉한촉군태수·충절장군 → 월기교위기록
225~226년촉한월기교위 영 촉군추정
227~228년촉한월기교위 영 촉군기록

나온 사건·전투

218년 · 촉부 종사 → 촉군태수 대행(발병 건의) · 결단

선주가 한중을 다투며 급히 군을 징발하라는 서신을 보내자 제갈량이 묻고, 양홍이 '한중은 익주의 목구멍이라 이를 잃으면 촉이 없다, 남자는 싸우고 여자는 나르면 되니 발병을 망설이지 말라'고 답한다. 법정이 선주를 따라 북상하자 촉군태수를 맡는다.

정사 양홍전: 선주가 한중을 다툴 때 급히 편지를 보내 발병하라 했다. 군사장군 제갈량이 양홍에게 물으니 '한중은 익주의 목구멍으로 존망의 기회이다. 한중이 없으면 촉이 없으니 집안의 화이다. 지금 남자는 싸워야 하고 여자는 날라야 하니 발병을 무엇을 망설이는가' 하고 답했다. 촉군태수 법정이 선주를 따라 북행하자 제갈량이 양홍을 촉군태수로 표해 모든 일이 처리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1 본 「漢中則益州咽喉存亡之機會若無漢中則無蜀矣此家門之禍也方今之事男子當戰女子當運發兵何疑」

223년 · 촉군태수·충절장군 → 월기교위 · 진압

선주가 영안에서 병드는 사이 한가태수 황원이 군을 들어 반란하고 임공성을 불태우자 태자에게 아뢰어 진홀·정작을 보내 남안협구에서 황원을 산 채로 잡게 한다.

정사 양홍전: 선주가 병들자 한가태수 황원이 후환이 두려워 군을 들어 반란하고 임공성을 불태웠다. 이때 제갈량은 동쪽으로 병문안을 가 성도가 비어 있었다. 양홍이 태자에게 아뢰어 친병으로 장군 진홀·정작에게 황원을 치게 하고 '황원은 물길로 동하할 뿐이니 남안협구에서 막으면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진홀·정작이 그 말대로 황원을 산 채로 잡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1 본 「洪即啟太子遣其親兵使將軍陳曶鄭綽討元」

227년 · 월기교위 영 촉군 · 인선

제갈량이 한중에 주둔하며 장예를 유부장사로 쓰려 하자 '재주는 충분하나 성품이 공평치 않다, 향랑이 낫다'고 의견을 낸다.

정사 양홍전: 5년 제갈량이 북으로 한중에 주둔하며 장예를 유부장사로 쓰려고 양홍에게 묻자 '장예는 천성이 밝게 살피고 바쁜 일에 능하나 성품이 공평치 않아 전적으로 맡기기 어려우니 향랑을 남기는 것이 낫다'고 대답했다. 예전부터 사이 좋던 장예는 이를 한스러워했으나 제갈량이 장예에게 보낸 편지로 양홍에게 사심이 없음이 밝혀졌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1 본 「裔天姿明察長於治劇才誠堪之然性不公平恐不可專任不如留向朗」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56황원의 반란 때 태자에게 건의해 진홀·정작을 보내 남안협구에서 황원을 사로잡았다(양홍전).
무력평가 불가무용 기록 없음.
지력76한중 다툼에서 '한중은 익주의 목구멍, 남자는 싸우고 여자는 나르라'며 발병을 결단했다(양홍전).
정치81촉군태수·익주치중종사로서 '모든 일이 처리됐다'(양홍전).
매력64'충성스럽고 맑으며 공을 집안처럼 근심했다'(양홍전). 계모를 지극히 섬겼다.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양홍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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