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劉琮)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유표출생 생년 불명사망 208년기록 연도 1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기록 없음(유표의 막내아들)

사망 208년 — 졸년 전문에 명기 없음 — 이 파일은 마지막 기록 연도(208)까지만 칸을 둠(항복 후 청주자사·열후)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8년양양(유표의 막내아들·후계)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207년기타·재야(미출사)불명
208년유표(유표의 막내아들·후계)기록

나온 사건·전투

208년 · (유표의 막내아들·후계) · 항복

유표 사후 채모·장윤의 지지로 후계가 되고, 부손 등의 권유로 조조군이 양양에 이르자 형주를 들어 항복한다.

정사 유표전: 유표와 처가 막내 종을 후계로 삼으려 했고 채모·장윤이 지지해 장자 기를 강하태수로 내보냈다. 괴월·한숭·부손이 조조 귀의를 설득하자 처음엔 거절했으나 부손이 "유비로는 조조를 막을 수 없다"고 하자 조조군이 양양에 이르러 유종이 형주를 들어 항복했고 유비는 하구로 달아났다. 조조는 유종을 청주자사·열후로 삼았다.

연의: 연의 40회

출전: 三國志 卷06 「琮舉州降備走奔夏口」 / 三國志 卷06 「太祖以琮爲青州刺史封列侯」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208년 · 장판 전투

정사 선주전: 유표가 죽고 유종이 항복했으나 유비는 형주 백성을 이끌고 남으로 내려갔다. 당양에 이르렀을 때 무리가 10여만, 치중이 수천 량이었고 하루 십여 리를 갔다. 조조가 양양에서 유비가 지나간 것을 알고 정기 5천으로 하루 밤낮에 300여 리를 달려 당양 장판에서 따라잡았다. 유비는 처자를 버리고 제갈량·장비·조운 등 수십 기와 달아났다. 장비는 20기로 후미를 맡아 물가 다리를 끊고 맞섰고, 조운은 어린 아들(후주)을 안고 감부인을 지켜 낸다.

연의: 연의 41~42회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평가 불가군사 활동 기록은 없다(유표전).
무력평가 불가무용 기록은 없다.
지력50조조군이 오자 괴월·부손의 건의에 따라 형주를 들어 항복했다(유표전).
정치50유표 사후 채모·장윤의 지지로 후계가 되었고 형 유기를 강하태수로 내보냈다(유표전).
매력50조조에게 항복한 뒤 청주자사·열후가 되었다(유표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유종의 이동 경로

유표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