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기록 없음(18세 때 부친 구출)
사망 222년 — 졸년 전문에 명기 없음 — 명제 즉위 후 졸. 이 파일은 마지막 기록 연도(222)까지만 칸을 둠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8년 | 하비 | 낭야상 | 기록 |
| 205년 | 남피 | 낭야상 | 기록 |
| 209년 | 환성 | 위로장군 | 추정 |
| 213년 | 유수구 | 서주자사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93년 | 기타·재야 | (도겸 휘하·개양 둔병) | 불명 |
| 194~197년 | 기타·재야 | 기도위→부수(손관·오돈·윤례 등과 병력 집결) | 불명 |
| 198년 | 위 | 낭야상 | 기록 |
| 199~204년 | 위 | 낭야상 | 불명 |
| 205년 | 위 | 낭야상 | 기록 |
| 206년 | 위 | 낭야상 | 불명 |
| 207~208년 | 위 | 위로장군 | 불명 |
| 209년 | 위 | 위로장군 | 추정 |
| 210년 | 위 | 위로장군 | 불명 |
| 211~212년 | 위 | 서주자사 | 불명 |
| 213년 | 위 | 서주자사 | 기록 |
| 214년 | 위 | 서주자사 | 불명 |
| 215~219년 | 위 | 양위장군(가절·거소 주둔) | 불명 |
| 220~221년 | 위 | 진동장군·도독청주 | 불명 |
| 222년 | 위 | 집금오 | 불명 |
하비에서 여포가 사로잡히자 몸을 숨겼다가 조조에게 불려 가 낭야상이 되고 청·서 두 주의 일을 맡는다.
정사 장패전: 조조가 여포를 칠 때 장패 등이 여포를 도왔으나 여포가 사로잡히자 장패는 숨었고, 조조가 찾아내 오돈·윤례·손관 등을 불러 항복시키고 장패를 낭야상으로 삼아 청·서 두 주를 맡겼다.
연의: 연의 19회
관련: 하비 전투, 여포의 최후 · 하비 전투
출전: 三國志 卷18 「太祖以霸為琅邪相」 / 三國志 卷18 「割青徐二州委之於霸」
남피에서 원담이 깨지자 축하하며 가족을 업으로 보내겠다 청하나 조조가 사양한다.
정사 장패전: 조조가 남피에서 원담을 깨자 장패 등이 축하하며 자제와 가족을 업으로 보내겠다고 청했는데, 조조는 "그대들의 충효가 어찌 이에 달려 있겠는가" 하고 받지 않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관련: 남피 전투
출전: 三國志 卷18 「諸君忠孝豈復在是」
장료의 진란 토벌 때 환에서 한당을 막아 손권이 구원하지 못하게 한다.
정사 장패전: 장료가 진란을 칠 때 장패는 따로 환에 이르러 오장 한당을 쳤고 봉룡·협석에서 연달아 격파한 뒤 서에 주둔했으며, 손권이 서구로 보낸 구원군도 장패가 야간 추격으로 물리쳤다.
연의: 연의 48회
출전: 三國志 卷18 「霸別遣至皖討吳將韓當使權不得救蘭」 / 三國志 卷18 「邀賊前後擊之」
유수구 전투에서 장료와 선봉이 되어 장맛비에 물이 불자 장료의 철수를 말린다.
정사 장패전: 손권을 유수구에서 칠 때 장패는 장료와 선봉이 되었는데 장맛비에 물이 불고 오 배가 다가와 장병이 불안해하자 장료가 물러가려 했으나 장패가 "공은 이해를 아시니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 막았고, 다음 날 조조의 철수 명령이 아닌 진격 명령이 내려졌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8 「公明於利鈍寧肯捐吾等邪」 / 三國志 卷18 「明日果有令」
문제 때 조휴와 동포에서 여범을 깨뜨리고 집금오로 불려 들어간다.
정사 장패전: 문제 즉위 후 진동장군·도독청주제군사가 되었고 즉위 뒤 개양후에 봉해졌으며, 조휴와 함께 오를 쳐 동포에서 여범을 깨고 집금오로 소환되어 특진이 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8 「與曹休討吳賊破呂範於洞浦徵為執金吾位特進」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78 | 청주·서주 해대 지역을 오래 맡았고 합비·소호 방면 전역에서 선봉을 맡았다(장패전). |
| 무력 | 82 | 손권과의 전역에서 선등으로 소호에 두 차례 들어가 거소를 깨뜨렸다(장패전). |
| 지력 | 67 | 장료가 진란을 칠 때 환에서 한당을 막아 손권이 진란을 구하지 못하게 했다(장패전). |
| 정치 | 64 | "왕패의 임금에게는 의리로 말해야 한다"며 서흡·모휘를 베지 않은 일이 조조에게 인정받았다(장패전). |
| 매력 | 72 | 여러 장수의 신뢰를 받아 해대를 평정하고 청·서주를 맡았다(장패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장패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