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92년 — 건안 19년(214) 조조가 「너도 스물셋」이라 한 기록에서 역산
사망 232년 — 태화 6년 41세로 병사(232)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14년 | 업 | 임치후 | 기록 |
| 217년 | 업 | 임치후 | 기록 |
| 219년 | 업 | 남중랑장·행정로장군 | 기록 |
| 223년 | 낙양 | 옹구왕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92~210년 | 기타·재야 | (조조의 아들, 열 살 남짓에 시·논어·사부 수십만 자를 외움) | 불명 |
| 211~213년 | 위 | 평원후 | 불명 |
| 214년 | 위 | 임치후 | 기록 |
| 215~216년 | 위 | 임치후 | 불명 |
| 217년 | 위 | 임치후 | 기록 |
| 218년 | 위 | 임치후 | 불명 |
| 219년 | 위 | 남중랑장·행정로장군 | 기록 |
| 220년 | 위 | 남중랑장·행정로장군 | 불명 |
| 221~222년 | 위 | 안향후 | 불명 |
| 223년 | 위 | 옹구왕 | 기록 |
| 224~228년 | 위 | 옹구왕 | 불명 |
| 229~231년 | 위 | 동아왕→진왕 | 불명 |
| 232년 | 위 | 진왕 | 불명 |
건안 16년 평원후에 봉해진다. 동작대 완성 때 조조가 모든 아들에게 부를 짓게 하자 붓을 들자마자 지어 기이하게 여겨진다.
정사 조식전: 10세 남짓에 시와 논어와 사부 수십만 자를 외웠고 글을 잘 지었다. 조조가 글을 보고 남에게 부탁했느냐 묻자 「말이 입에서 나오면 논이 되니 눈앞에서 시험해 보시라」고 했다. 업의 동작대가 완성되자 조조가 아들들을 데리고 올라 부를 짓게 했는데 조식이 붓을 잡자 곧바로 완성했다. 건안 16년 평원후.
연의: 연의 44회 — 연의 44회에 같은 인물·사건이 나온다.
출전: 三國志 卷19 「封平原侯」
조조가 손권 정벌에 나서며 업을 지키게 하며 「나는 23세에 돈구령이었다」고 당부한다.
정사 조식전: 건안 19년 임치후로 옮겼다. 조조가 손권을 칠 때 조식에게 업을 지키게 하며 「나는 23세에 돈구령이었고 지금의 행적이 후회스럽지 않다. 너도 23세이니 힘쓰라」고 했다. 정의·정이·양수 등이 조식의 날개가 되어 조조가 후계로 삼으려 여러 번 망설였으나 조식이 제멋대로 행하고 술을 절제하지 못했다. 문제는 술수로 대하며 꾸미니 결국 후계가 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9 「太祖征孫權,使植留守鄴」
치도에서 수레를 몰고 사마문을 열고 나가 조조가 크게 노해 공거령이 죽고 총애가 쇠한다.
정사 조식전: 건안 22년 식읍 5천을 더했다. 조식이 수레로 치도를 달려 사마문을 열고 나가자 조조가 크게 노해 공거령이 사형에 처해졌고 이로써 제후의 법금이 무거워지고 조식의 총애가 날로 쇠했다. 조조는 양수를 죄로 죽였고 조식은 더욱 불안해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9 「開司馬門出」
조인이 관우에게 포위되자 조조가 조식을 구원군으로 보내려 불렀으나 술에 취해 명을 받지 못해 취소된다.
정사 조식전: 건안 24년 조인이 관우에게 포위되자 조조가 조식을 남중랑장·행정로장군으로 삼아 구원하게 하려 불러 당부하려 했으나 조식이 취해 명을 받지 못해 조조가 후회하며 그만두었다. 문제가 왕위에 올라 정의·정이와 그 남자 식구를 죽였고 조식은 제후와 함께 봉국으로 갔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9 「植醉不能受命」
황초 2년 감국알자 관균이 「취해 방자하고 사자를 위협했다」고 아뢰어 안향후로 강등되고 곧 견성후로 옮겨진다.
정사 조식전: 황초 2년 감국알자 관균이 뜻을 헤아려 조식이 술에 취해 방자하고 사자를 겁박했다고 아뢰자 유사가 죄를 다스리자고 청했으나 문제가 태후를 위해 안향후로만 강등했고 그해 견성후로 옮겼다. 이듬해 견성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9 「貶爵安鄉侯」
황초 4년 옹구왕이 되어 경도에 조회하며 상소와 시 두 편을 올린다.
정사 조식전: 황초 4년 옹구왕으로 옮겼고 그해 경도에 조회했다. 상소에서 죄를 짓고 번국에 돌아간 뒤 살이 깎이는 듯 후회한다 하고 시 두 편을 올렸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9 「朝京都」
태화 연간 거듭 상소해 자신을 시험해 달라고 구하고 친척 문안을 청하나 끝내 쓰이지 못한다.
정사 조식전: 늘 스스로 분하고 원망하며 날카로운 칼을 품고도 쓸 곳이 없다 하여 상소로 스스로 시험해 줄 것을 구했다. 3년 동아로 옮겼고 5년 다시 상소해 친척을 존문하게 해 달라 했으며, 심거의 뜻을 상소했으나 문제는 문장으로만 답했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명제 태화 연간으로 둠.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9 「抱利器而無所施」
태화 6년 11년 사이 세 번 도읍을 옮기며 근심하다 41세로 병사한다.
정사 조식전: 태화 6년 진 4현으로 진왕이 되었다. 시정을 논해 쓰이기를 바랐으나 끝내 쓰이지 못했고, 11년 동안 세 번 도읍을 옮기며 늘 즐겁지 않다가 병이 나 41세로 죽었다. 박장하게 하고 막내 아들 조지를 후사로 삼으려 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9 「遂發疾薨」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무력 | 평가 불가 | 무력 기록은 없다(수레로 치도 마문을 열고 나간 일이 있다). |
| 지력 | 85 | 조조에게 「말이 입에서 나오면 논이 되고 붓을 대면 문장이 된다」며 직접 시험을 청했고, 동작대 부(賦)를 붓을 들자마자 지어 조조가 기이하게 여겼다(진사왕 조식전). |
| 정치 | 38 | 조조가 번국에 대해 엄한 법을 세운 계기가 되어 총애가 쇠했고 동생 대우가 박했음에도 상소로 시국을 논하려 했으나 쓰이지 못했다(조식전). |
| 매력 | 81 | 성격이 소탈해 위의를 닦지 않고 수레와 말·옷이 화려하지 않았으며 질문에 즉각 응했다(조식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조식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