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3년의 세계 — 그해 일어난 일
이 해에 사료가 적은 사건 20건을 지역별로 모았습니다.
그해 일어난 일
중국 (4)
- 李如松이 王京을 공격하다 碧蹄館에서 패배 (명사(明史) 본기 明史 卷20 萬曆二十一年)
- 고니시 측 일본군 3개 부대(본진 1만, 나머지 각 3,000)가 명·조선 연합군과 서울 근교에서 교전. 일본 측 기록으로 연합군 1만 명 전사. (그리피스 「은자의 나라 조선」 p.116-117)
- 고니시와 진익기가 강화 조건 합의. 일본이 삼남 3도를 보유하고, 조선이 조공을 재개하며, 히데요시를 조선 왕으로 인정하는 항목 포함. 명 측 승인 없음. (그리피스 「은자의 나라 조선」 p.118-119)
- 척후 보고: 이여송 군이 벽제역에 이름(10여만 기). 이어 아군이 6대로 나눠 맞서 명군 대패(같은 절) (라이 산요 「일본외사」 卷之十二 · part_05.txt L154)
한반도 (14)
- 경략 접반사 윤근수가 경략이 병부에 올린 게첩을 보고하다 (조선왕조실록 宣祖實錄 二十六年 · 宣祖實錄 21책 39권 44장 B면 · 기사 wna_12606029_009)
- 경략 등에게 심유경과 동행한 왜적의 통과를 허락하지 말라고 이자하다 (조선왕조실록 宣祖實錄 二十六年 · 宣祖實錄 22책 40권 6장 B면 · 기사 wna_12607005_009)
- 李如松이 平壤에서 왜군을 공격하여 함락 (명사(明史) 본기 明史 卷20 萬曆二十一年)
- 고니시 측이 명 측 사절 진익기를 만나러 보낸 호위 20명이 명군의 연회 뒤 기습당해 대부분 살해(두세 명만 생존). (그리피스 「은자의 나라 조선」 p.111-112)
- 명·조선 연합군이 평양 성 전 방면 총공격. 둘째 날 저녁 일본군 외곽 진지 상실, 일본군 약 2,000명 전사. (그리피스 「은자의 나라 조선」 p.112)
- 고니시 군이 한밤중 평양 성을 비우고 얼어붙은 강을 건너 퇴각. 연합군은 빈 성에 들어갔고 명군 지휘관이 추격을 금지. (그리피스 「은자의 나라 조선」 p.113)
- 서울 대부분을 방화. 집·성문·다리·관청이 소실되고, 주민을 창끝으로 몰아냄. 쓸모 있는 장정만 남김. (그리피스 「은자의 나라 조선」 p.116)
- 일본군이 서울에서 철수하고 같은 날 명군 선발대가 입성. 일본군은 부산·동래 등 해안으로 퇴각. (그리피스 「은자의 나라 조선」 p.120-121)
- 가토 군이 진주성(Chin-chiu)을 포위해 함락. 거북 수레로 성벽 아래를 파고 돌입, 뒤이어 성 안 학살. (그리피스 「은자의 나라 조선」 p.125-126)
- 정월 명나라 이여송 대군이 평양을 함락, 고니시 유키나가 패주 (라이 산요 「일본외사」 卷之十二 · part_05.txt L154)
그 밖의 사건은 지도에서 (+4)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2)
- 파샤 무함마드가 그들을 모두 체포해 둘로 나눠 카스바로 압송 (타리크 알수단 Houdas 1900 불역 장 XXIV (houdas1900_fr_djvu.txt 줄 11744))
- 물라이 아흐메드가 법학자 체포 직후 카이드 부이크티야르를 팀북투로 보냄 (타리크 알수단 Houdas 1900 불역 장 XXIV (houdas1900_fr_djvu.txt 줄 11883))
이 해가 든 같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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