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증(范增) — 사기·한서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초출생 -277년사망 -204년기록 연도 4해

생몰

출생 -277년 — 「年七十」(항량을 찾아간 기원전 208년 전후)에서 환산한 추정

사망 -204년 — 한 3년(-204) — 형양 포위 중 항우의 의심을 받아 사직을 청하고 팽성으로 돌아가다 등창으로 사망. 전문 「行未至彭城疽發背而死」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9년거소재야(70세 전후, 거소 거주)추정
-208년설항량 모사→회왕 군 말장 편입기록
-207년안양말장(末將)·아부(亞父)기록
-206년홍문아부(亞父)기록
-204년형양역양후→사직 후 사망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9년기타재야(70세 전후, 거소 거주)추정
-208년초항량 모사→회왕 군 말장 편입기록
-207년초말장(末將)·아부(亞父)기록
-206년초아부(亞父)기록
-205년초아부·역양후불명
-204년초역양후→사직 후 사망기록

나온 사건·전투

-208년 · 항량 모사→회왕 군 말장 편입 · 중요

설에서 항량에게 초 왕실의 후손을 세우라고 권해 회왕 옹립을 이끈다.

정사 항우본기: 거소 사람 범증이 나이 일흔에 항량을 찾아가 진승이 스스로 왕이 되어 세력이 길지 않다고 말하고, 초 왕의 후손을 세우라고 권했다. 항량이 이를 받아들여 민간에서 회왕의 손자 심을 찾아 초 회왕으로 세웠다.

출전: 史記 卷007 「居鄛人范增年七十素居家好奇計往說項梁曰」 / 史記 卷007 「乃求楚懷王孫心民間」

-207년 · 말장(末將)·아부(亞父) · 중요

송의가 상장군이 되자 항우를 차장, 범증을 말장으로 삼아 조나라를 구하러 북상한다.

정사 항우본기: 회왕이 송의를 상장군, 항우를 노공·차장, 범증을 말장으로 삼아 조나라를 구하게 했고, 군은 안양에서 46일 머물렀다.

출전: 史記 卷007 「為次將范增為末將救趙」

-206년 · 아부(亞父)

홍문 연회 전에 항우에게 패공을 급히 치라고 권한다.

정사 항우본기: 범증이 항우에게 패공은 산동에 있을 때 재물과 미녀를 탐했는데 관중에 들어와서는 취하지 않았으니 뜻이 작지 않다며 "천자의 기운"이라고 하고, 급히 쳐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했다.

관련: 홍문 연회

출전: 史記 卷007 「沛公居山東時貪於財貨好美姬」 / 史記 卷007 「此天子氣也急擊勿失」

-206년 · 아부(亞父) · 실패

홍문 연회에서 옥결을 세 번 들어 신호하고 항장을 시켜 칼춤으로 패공을 치게 하나 실패한다.

정사 항우본기: 범증이 항왕에게 패옥 옥결을 들어 세 번 보였으나 항왕이 응하지 않았다. 범증이 나가 항장에게 "군왕은 모질지 못하니 들어가 축수한 뒤 칼춤으로 패공을 앉은 자리에서 치라"고 시켰다.

관련: 홍문 연회

출전: 史記 卷007 「范增數目項王舉所佩玉珪以示之者三」 / 史記 卷007 「君王為人不忍若入前為壽」

-206년 · 아부(亞父) · 중요

항우와 함께 패공을 한왕으로 봉해 파·촉·한중에 가두는 계책을 낸다.

정사 항우본기: 항왕과 범증이 패공이 천하를 차지할까 의심했으나 이미 강화했고 약속을 어기는 것도 꺼려, 은밀히 파·촉도 관중 땅이라 하고 패공을 한왕으로 세워 파·촉·한중을 다스리게 했다.

관련: 홍문 연회

출전: 史記 卷007 「項王范增疑沛公之有天下」 / 史記 卷007 「故立沛公為漢王王巴蜀漢中」

-204년 · 역양후→사직 후 사망 · 중요

한왕이 화의를 청하자 항우에게 받지 말고 형양을 급히 치라고 권한다.

정사 항우본기: 한왕이 형양 서쪽을 떼어 주겠다며 화의를 청하자 항왕이 들어주려 했으나, 역양후 범증이 "한은 상대하기 쉬운데 지금 놓으면 반드시 후회한다"고 했다. 항왕은 범증과 함께 형양을 급히 포위했다.

관련: 형양·성고 공방

출전: 史記 卷007 「歷陽侯范增曰漢易與耳今釋弗取後必悔之」 / 史記 卷007 「項王乃與范增急圍滎陽」

-204년 · 역양후→사직 후 사망 · 중요

진평의 반간계로 의심을 받아 권한을 잃고 떠나다 팽성에 이르기 전 등창으로 죽는다.

정사 항우본기: 한왕이 진평의 계책으로 항왕을 이간하자 항왕이 범증이 한과 사사로이 통한다고 의심해 권한을 조금씩 빼앗았다. 범증이 크게 화가 나 "천하의 일이 크게 정해졌으니 군왕이 스스로 하시라"며 사직을 청했고, 팽성에 이르기 전 등에 종기가 터져 죽었다.

관련: 형양·성고 공방

출전: 史記 卷007 「項王乃疑范增與漢有私稍奪之權」 / 史記 卷007 「天下事大定矣君王自為之願賜骸骨歸卒伍」 / 史記 卷007 「行未至彭城疽發背而死」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206년 · 함곡관 입관

정사 항우본기·고조본기: 항우는 장한을 항복받은 뒤 신안에서 진 항졸 20여만을 묻고 약속을 어긴 유방이 먼저 관중에 들었다는 말에 함곡관에 이르렀으나 관에 병사가 지켜 들어가지 못했다. 고조본기는 유방이 「관을 막고 제후를 들이지 말라」는 말을 따라 관을 지키게 했다고 적고, 항우가 11월 중 크게 노해 당양군(경포) 등으로 관을 깼으며 12월 중 희에 이르렀다고 적는다. 병력은 월표가 40여만(제후군), 한서가 30여만이라 적어 다르다. 항우는 이어 희수 서쪽에 진을 쳤고 곧 홍문 연회로 이어진다. 연도는 한 원년(11월)에 따라 -206으로 두었다(대기열 표의 -207과 다름).

-203년 · 광무 대치

정사 항우본기: 한 4년 한왕은 한신의 군을 얻어 되돌아와 성고를 되찾고 광무에 진을 쳐 오창의 곡식으로 먹었다. 항우는 동해를 평정하고 돌아와 서쪽으로 광무에서 한과 마주 보고 군을 치고 몇 달을 서로 지켰다. 이때 팽월이 양 땅에서 초의 군량을 끊어 항우가 근심했고, 항우는 높은 도마를 세워 태공을 올려놓고 「지금 서둘러 항복하지 않으면 태공을 삶겠다」고 했다. 한왕이 「나의 아버지는 곧 너의 아버지이니 삶으려거든 국물 한 잔 나눠 달라」고 하자 항우가 노했으나 항백이 말려 중지했다. 항우는 한왕에게 일대일 결투를 청했으나 한왕은 「나는 힘이 아니라 지혜로 싸우겠다」며 거절했다. 한의 기사 누번이 초의 도전자를 세 번 쏴 죽이자 항우가 직접 갑옷을 입고 나서자 누번이 눈도 못 뜨고 도망쳤다. 광무 사이에서 한왕이 항우의 죄 열 가지를 헤아리자 항우가 숨겨 둔 쇠뇌로 쏘아 한왕이 가슴을 다쳐 성고로 달아났다.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평가 불가말장으로 조나라 구원군에 편입되었으나 병력을 직접 지휘한 기록은 없다(항우본기).
무력50무력 기록은 없다. 항장에게 칼춤을 시킨 모사 역할뿐이다(항우본기).
지력96초 왕실 옹립과 홍문의 시기 판단, 한 봉쇄 계책, 형양 공세를 제안했다(항우본기).
정치70항량에게 명분을 세워 주었으나 항우의 신임을 잃어 권한을 빼앗겼다(항우본기).
매력58항량·항우가 받들어 아부라 불렀으나 끝내 의심으로 갈라섰다(항우본기).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범증의 이동 경로

초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