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치(雍齒) — 사기·한서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생년 불명사망 몰년 불명기록 연도 2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출생 기록 없음(패 사람, 고조와는 옛 원한이 있었다는 서술)

사망 몰년 불명 — 사망 연도 기록 없음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8년풍읍풍 수비(위에 붙음)기록
-201년낙양십방후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9년한패공 휘하불명
-208년위풍 수비(위에 붙음)기록
-207년위풍 수비(위에 붙음)불명
-206~-202년기타(기록 없음)불명
-201년한십방후기록
-200~-195년한십방후불명

나온 사건·전투

-208년 · 풍 수비(위에 붙음)

패공이 풍을 맡긴 뒤 위의 주시가 회유하자 풍을 들어 위에 붙고, 패공은 풍을 치다 이기지 못한다.

정사 고조본기: 패공이 설로 가며 옹치에게 풍을 지키게 했다. 위의 주시가 사람을 보내 「풍은 옛 양의 땅」이라 하며 회유하자 옹치는 원래 패공에게 속하고 싶지 않아 위를 위해 풍을 지켰다. 패공이 풍을 쳤으나 이기지 못했고 병이 나 패로 돌아왔다.

출전: 史記 卷008 「雍齒雅不欲屬沛公」 / 史記 卷008 「沛公引兵攻豐不能取」

-201년 · 십방후

공신 봉작에서 신하들이 불안해하자 장량의 말에 따라 옹치를 가장 먼저 십방후로 봉한다.

정사 유후세가: 고조가 공신들이 모반을 꾀한다는 말에 근심하자 장량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을 먼저 봉해야 한다고 했다. 고조가 옹치가 자신을 자주 욕보였다고 하자 장량은 옹치를 먼저 봉해 신하들을 안심시키라 했고, 고조가 술자리를 열어 옹치를 십방후로 봉했다. 신하들은 「옹치도 후가 되었다」며 기뻐했다.

출전: 史記 卷055 「上曰雍齒與我故數嘗窘辱我」 / 史記 卷055 「封雍齒為什方侯」 / 史記 卷008 「命雍齒守豐」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53풍을 지키다 위에 붙어 패공을 몇 번 곤경에 빠뜨렸고, 후에 고조가 공신들을 안심시키려 가장 먼저 봉해 준 사람이 되었다(고조본기·유후세가).
무력평가 불가무력 기록은 없고 패공이 풍을 되찾으러 해도 되찾지 못했다(고조본기).
지력50위의 주시 말을 따르는 판단은 패공에 대한 오랜 불만 때문이었다는 서술이 있다(고조본기).
정치평가 불가정치 기록 없음.
매력50고조가 「數嘗窘辱我」라 말한 사람이다(유후세가).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옹치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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