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魏咎) — 사기·한서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생년 불명사망 -208년기록 연도 2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출생 연도 기록 없음. 옛 위나라 영릉군. 진이 위를 멸하자 평민(家人)으로 강등됨.

사망 -208년 — 이세 2년(기원전 208) 임제에서 백성을 위해 항복을 약속한 뒤 불을 질러 자살 — 「約定咎自燒殺」(월 불명)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9년진(陳)위왕(진승이 세움)기록
-208년임제위왕(진승이 세움)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9~-208년위위왕(진승이 세움)기록

나온 사건·전투

-209년 · 위왕(진승이 세움) · 위왕 즉위

진승 밑에 있다가 주시가 위 땅을 평정하고 왕 자리를 사양하자, 진승이 보내 위왕으로 세워진다.

정사 위표팽월열전: 위구가 진승에게 갔고, 주시가 위 땅을 평정해 왕으로 받들려 했으나 사양하며 구를 진에서 맞아 오려 했다. 다섯 번을 청한 끝에 진왕이 구를 보내 위왕으로 세웠다.

출전: 史記 卷090 「咎往從之」 / 史記 卷090 「五反陳王乃遣立咎為魏王」

-208년 · 위왕(진승이 세움) · 자살

장한이 임제에서 위왕을 치자 주시를 제·초에 보내 구원을 청했으나 주시가 전사해 임제가 포위되고, 백성을 위해 항복을 약속한 뒤 스스로 불에 타 죽는다.

정사 위표팽월열전: 장한이 임제에서 위왕을 쳤고 주시가 제·초에 구원을 청했으나 주시 등의 군이 깨져 임제가 포위되었다. 위구는 백성을 위해 항복을 약속한 뒤 스스로 불에 타 죽었다.

출전: 史記 卷090 「章邯已破陳王乃進兵擊魏王於臨濟」 / 史記 卷090 「咎為其民約降約定咎自燒殺」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평가 불가군을 이끈 기록이 없고 주시에게 맡겼다(위표팽월열전).
무력평가 불가싸운 기록이 없다(위표팽월열전).
지력50장한이 임제를 치자 제·초에 구원을 청하게 했다(위표팽월열전).
정치50왕에 오른 시기가 짧아 정치 기록이 없고 백성을 위해 항복 약정을 맺고 죽었다(위표팽월열전).
매력50주시가 위왕 자리를 사양하고 구를 다섯 번 청해 맞아 왔다(위표팽월열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위구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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