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서유럽(프랑스·브리튼·저지대·독일) · 좌표: 50.952, 1.856 · 사건 29건
| 해 | 사료 | 내용 |
|---|---|---|
| 1339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프랑스 쪽 해군이 칼레·불로뉴·크로투아·디에프 등 해안을 돌며 노략 — 영국이 두려워함 |
| 1346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장 드 비엔이 칼레에 들어가 잉글랜드군이 포위한 모습을 봄 |
| 1346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사절이 칼레 포위지를 떠나 임무를 맡으러 감 |
| 1346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칼레 성안 사람들에게 여섯 차례 공격이 연달아 닥침 |
| 1346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잉글랜드 왕이 칼레 포위를 풀고 본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함 |
| 1346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에드워드 3세가 칼레를 포위 — 1346년 8월 무렵(본문: 성 요한 참수일 무렵) |
| 1346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크레시 뒤 영국 왕이 칼레 포위를 시작. 칼레를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도시 가운데 하나'라 부르고, 왕은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 |
| 1346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영국 왕이 칼레를 포위(1346) |
| 1346년 | 하클루이트 항해기 | 에드워드 3세의 칼레 앞 대함대 — 칼레 앞 집결 대목(원문 칼레 앞 집결 언급 문장 기준) |
| 1346년 | 조반니 빌라니 「신연대기」 | 에드워드 3세, 칼레(Galese) 포위 시작 — 육지·바다 봉쇄. 1347년 여름까지 계속 |
| 1347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칼레 함락 — 1347년. 두 판본이 8월·9월로 달라 월 칸은 비움 |
| 1347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칼레 수비군이 출격해 프랑스군을 밀어냄 — 에드워드 3세가 위스타슈 드 리보몽을 사로잡음 |
| 1347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칼레 수비대장 장 드 비엔이 시민에게 영국 왕에게 청할 은혜(항복 조건)를 알림 — 시민들이 울며 슬퍼함 |
| 1347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칼레 함락 — 1347년 8월, 영국 왕 편이 점령 |
| 1347년 | 조반니 빌라니 「신연대기」 | 칼레 항복: 4일 합의(외국인은 속옷 차림·맨발·목줄), 5일 에드워드 3세 입성. 식량 고갈, 짐승까지 먹음 |
| 1359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영국 왕이 겨울 오기 전에 프랑스로 쳐들어가겠다고 선언하고 대군을 준비. 병사들은 칼레 쪽으로 모인다 |
| 1359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영국 왕이 칼레를 떠나 대군을 출발. 수레 행렬이 2리외 넘게 이어짐 |
| 1360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영국군이 프랑스 왕 장과 아들 필리프를 칼레에 남기고 귀국 — 몸값(인질 금액) 준비가 늦어져 기사 넷이 두 사람을 지킴 |
| 1360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흑태자·랭커스터 공 일행이 세례 요한 축일 무렵 칼레에 도착해 머묾 — 프랑스 쪽 몸값 돈이 올 때까지 기다림 |
| 1370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로베르 캐널스가 칼레를 떠남(1370년경) |
| 1383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칼레 수비대장 장 데위뤼가 노리치 주교와 동행들을 맞아들임 |
| 1396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글로스터 공이 칼레 성 안 침상에서 죽었다는 소문이 이틀 뒤 퍼짐. |
| 1396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리처드 2세가 칼레에서 헌장을 내 프랑스 사절(샤토모랑 등)을 동맹국에 추천 |
| 1397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리처드 2세가 글로스터 공을 칼레 성에서 죽게 한 일 등으로 귀족 대다수가 왕을 미워함. |
| 1399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프랑스 사절이 샤를 6세의 딸 Isabelle을 「토쟁절 전에 돌려 달라」고 요구 — 칼레와 불로뉴 사이 중간 지점에서 |
| 1470년 | 코민 「회상록」 | 워릭 백작이 칼레에 들어오려 하자 부총독 웬록 경이 맞이하지 않고 대포를 쏨 |
| 1470년 | 코민 「회상록」 | 칼레에서 부르고뉴와 영국의 동맹을 유지하기로 합의 — 에드워드 대신 헨리를 넣음 |
| 1475년 | 코민 「회상록」 | 에드워드 4세가 도버에서 배를 타 칼레에 상륙, 병력 승선·상륙에 3주 걸림 |
| 1475년 | 코민 「회상록」 | 영국 왕 에드워드가 칼레에 상륙, 부르고뉴 공이 칼레로 가서 맞이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