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서유럽(프랑스·브리튼·저지대·독일) · 좌표: 50.176, 3.235 · 사건 11건
| 해 | 사료 | 내용 |
|---|---|---|
| 510년 | 투르의 그레고리우스 「프랑크족의 역사」 | 캉브레 왕 라그나카르와 형제들 제거 |
| 584년 | 투르의 그레고리우스 「프랑크족의 역사」 | 킬페리크가 보물을 챙겨 캉브레로 감 |
| 1337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영국왕 측 제후·플랑드르군이 캉브레를 포위, 여러 차례 공격했으나 함락 못 함 (약 다섯 주) |
| 1338년 | 조반니 빌라니 「신연대기」 | 잉글랜드와 연합군이 캉브레를 포위, 프랑스 수비대(콘스타블)가 지키며 약 9일간 대치 |
| 1339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캉브레 포위가 이어지던 중 에노 백작 기욤이 토요일에 자기 나라 병사들과 도착한다 |
| 1339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에드워드가 캄브레를 사방으로 포위, 병력이 계속 불어남 |
| 1339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캄브레 포위 중 잦은 공격·소규모 교전, 기사들이 캄브레지를 돌며 땅을 불사르고 요새를 공격 |
| 1339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영국 왕이 Cambrai 성시를 사방에서 포위함 — 날마다 병력이 늘었고, 하이노 백작이 큰 군대로 도착했다 |
| 1340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노르망디 공이 큰 군을 흩어 보내고 릴·두에·투르네에 수비대를 배치, 자신은 캉브레로 물러남. 영국 왕이 투르네를 포위하러 온다는 소문 |
| 1359년 | 프루아사르 연대기 | 영국 사신이 캉브레 주교에게 가서 말을 전했으나 성과 없이 돌아옴. 주교는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라'고 답함 |
| 1464년 | 코민 「회상록」 | 샤롤루아 백작이 캉브레 주교궁 회의에서 크로이 가문을 적으로 선언해 쫓아냄 — 군 모집의 명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