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서유럽(프랑스·브리튼·저지대·독일) · 좌표: 52.500, 7.500 · 사건 24건
| 해 | 사료 | 내용 |
|---|---|---|
| 9년 |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 독일에서 부장 롤리우스와 바루스 휘하로 두 번 패했고, 바루스 때는 3개 군단이 지휘관·부장·보조병과 함께 전멸 |
| 9년 |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 바루스가 독일에서 3개 군단과 함께 몰살당함 — 일리리쿰 전쟁이 먼저 끝나 판노니아인과 게르만의 합세를 막았다고 평가 |
| 11년 |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 이듬해 다시 독일로 가 바루스의 패인이 지휘관의 경솔함이라 보고 모든 일을 참모 조언에 따라 처리 |
| 14년 |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 게르마니쿠스가 독일 주둔군을 바로잡아 반란을 가라앉히고 적을 격파 |
| 14년 |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 군영에서 병사 차림으로 자라 「칼리굴라」라는 별명을 얻었고, 아우구스투스 사후 반란 때 그를 보기만 해도 병사들의 분노가 가라앉음 |
| 14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게르마니쿠스가 강행군으로 숲을 뚫고 적지로 진군 |
| 14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군을 네 갈래로 나눠 50마일에 걸쳐 불과 칼로 초토화 |
| 15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게르마니쿠스가 카이키나에게 4개 군단을 맡기고 자신도 같은 규모로 진군 |
| 15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세게스테스의 사절이 동족 포위에 맞서 도움을 청함 |
| 15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연설이 케루스키뿐 아니라 이웃 부족과 인구이오메루스까지 끌어들임 |
| 15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게르마니쿠스가 길 없는 곳으로 물러나는 아르미니우스를 추격 |
| 15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야만인들이 전초를 뚫고 공병대를 괴롭히며 공격 |
| 16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게르만인들이 거주지를 떠나 엘베 건너로 물러나려다 앙그리바리 방벽에서 재차 싸움 |
| 16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승리한 군대를 칭찬하고 무기 더미 전승비에 티베리우스 이름 비문을 새김 |
| 17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세모네스·랑고바르디족이 마로보두스 왕국에서 이탈해 케루스키 쪽에 붙음 |
| 47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케루스키가 내전으로 귀족을 잃고 로마에 왕을 청해 이탈리쿠스가 선택됨 |
| 50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드루수스가 세운 수에비 왕 반니우스가 왕국에서 쫓겨남 |
| 57년 |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 군사 호민관으로 게르마니아와 브리타니아에서 활동하며 많은 동상과 명예 비문을 받음 |
| 58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암프시바리이가 그 땅을 차지 |
| 58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소금이 많이 나는 강을 두고 헤르문두리와 카티가 대전투 |
| 69년 |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 독일 주둔군이 비텔리우스를 황제로 서약 — 전쟁이 불가피해지고 근위대가 원로원 의원들을 거의 해칠 뻔함 |
| 69년 |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 병영에 도착해 청을 모두 들어주고 처벌받은 자를 사면해 환심을 사고, 상게르마니아 군대의 추대를 받아들임 |
| 83년 |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 여러 원정 가운데 하나는 독일 방면 — 필요와 선택에서 나온 원정들(6장) |
| 235년 | 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 | 막시미누스가 라인을 건너 숲과 늪에 숨은 게르만을 쫓음. 호수에 말을 몰아 들어가 싸우고 늪이 시체로 메워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