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ior)

지역: 한반도 · 좌표: 37.570, 126.980 · 사건 10건

사건 목록

해사료내용
1654년하멜 「표류기」큰 강(한강, 각주 243)을 건너 성곽 큰 도시 「Sior」(서울, 각주 244)에 도착. 왕의 거처. 해남에서 약 70~75마일, 대체로 북쪽(약간 서쪽)으로 이동. 도착 뒤 2~3일 한 집에 있다가 서울에 사는 중국인들 사이에 흩어 배치됨.
1654년하멜 「표류기」왕(효종) 앞에 불려가 벨테브레 통역으로 사정을 아뢰고 일본으로 보내 달라 청했으나, 외국인을 내보내는 것은 이 나라의 법이 아니니 여기서 평생 살라는 답. 춤과 노래를 시켜 보고 무명 두 필씩을 내림.
1654년하멜 「표류기」이튿날 훈련대장(veltoverste)이 왕이 일행을 호위병(lijffschutten)으로 삼았다고 통보. 한 사람당 쌀 월 70캐티, 이름·나이를 새긴 나무 신표와 총·화약·탄환을 받고, 초하루·보름에 왕 앞에 문안. 중국인 한 명과 벨테브레가 감독으로 붙음.
1654년하멜 「표류기」11월 말 강이 얼어 말 2~300마리가 줄지어 건넘. 12월 훈련대장의 건의로 배의 가죽을 받아 팔고, 서너 명이 모아 8~9냥 하는 작은 집을 사서 겨울을 남.
1655년하멜 「표류기」3월 청 사신이 돌아가는 날, 수석 항해사 헨드릭 얀서(암스테르담 출신)와 총포수 헨드릭 얀서 보스(하를럼 출신)가 숲에서 사신 행렬을 가로막고 말머리를 잡음. 네덜란드 옷차림으로 사신에게 호소하려 한 것.
1655년하멜 「표류기」왕과 대신들이 사신에게 돈을 주어 무마했으나, 두 사람은 감옥에 갇혔다가 얼마 뒤 죽음(병사인지 처형인지 일행은 끝내 알지 못함).
1656년하멜 「표류기」1656년 초 대신들이 일행을 없애자고 사흘 회의. 훈련대장은 몰래 죽이느니 우리 한 명을 저들 둘과 같은 무기로 죽을 때까지 싸우게 하자고 했다고 은밀히 전해짐. 왕·왕의 형제·훈련대장 등은 처형에 반대했고, 왕과 왕의 형제가 여러 사람의 소란을 막아 목숨을 건짐.
1656년하멜 「표류기」대신들의 성화로 일행은 전라도(Thiellado)로 유배, 왕이 자기 수입에서 월 쌀 50파운드를 대 줌.
1656년하멜 「표류기」3월 초 말을 타고 서울을 떠남. 벨테브레는 강가에서 배웅하고 돌아갔으며 그 뒤 소식을 듣지 못함. 지나온 읍에서 먹을 것과 말을 대어 줌.
1659년하멜 「표류기」왕(효종)이 죽고 청의 승인으로 아들(현종)이 왕위에 오름. 일행은 이어 절을 돌며 구걸. 하멜은 달을 4월이라 썼으나 조선 쪽 기록(효종 10년 5월 4일=1659-06-23)과 달이 다름.

그곳이 든 같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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