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민 「회상록」: 정사 사료. 다루는 해 1464년 ~ 1477년, 사건 124건을 해 순서로 정리했습니다. 원문 라이선스와 출처 포함.
| 등급 | 정사 |
|---|---|
| 시점 | 내부 시점 |
| 다루는 해 | 1464년 ~ 1477년 |
| 사건 수 | 사건 124건 · 지도에 놓은 118건 |
| 저자 | Philippe de Commynes |
| 원제 | Mémoires de Philippe de Commynes |
지역 분포: 서유럽(프랑스·브리튼·저지대·독일) 123 · 남유럽(이탈리아·그리스·이베리아·발칸) 1
| 해 | 장소 | 사건 | 원문 위치 |
|---|---|---|---|
| 1464년 | Lille | 프랑스 사절 모르비에가 릴 궁정 공개 접견에서 샤롤루아 백작을 질책 — 도발 전 외교 충돌 | Book I, ch. I |
| 1464년 | Nantes | 브르타뉴 공 프랑수아와 샤롤루아 백작이 낭트에서 상호 원조 동맹을 맺음 | Book I, ch. I (조약 전문) |
| 1464년 | Lille | 부르봉 공 장이 릴에 와서 부르고뉴 공에게 영지 안 군 모집을 청함 — 「공익(Public Good)」 전쟁의 발단 | Book I, ch. II |
| 1464년 | Cambrai | 샤롤루아 백작이 캉브레 주교궁 회의에서 크로이 가문을 적으로 선언해 쫓아냄 — 군 모집의 명분 | Book I, ch. II |
| 1465년 | Nesle | 샤롤루아 군이 노용 쪽으로 진군해 작은 성 넬을 포위, 며칠 만에 함락 | Book I, ch. II |
| 1465년 | Paris | 샤롤루아 군이 파리 성문 앞에서 시민과 소접전 — 파리 쪽이 불리, 이어 공략 불가로 생드니로 물러남 | Book I, ch. II |
| 1465년 | Moulins | 왕이 부르봉 공 영지를 쳐 여러 곳을 차지하나, 부르고뉴 원군에 막혀 전 지역 정복은 못 함 | Book I, ch. II |
| 1465년 | Paris | 왕이 부르봉에서 강행군으로 파리에 들어가 샤롤루아·베리·브르타뉴 군의 합류를 막으려 함 — 본문은 싸울 뜻은 없었다고 함 | Book I, ch. II |
| 1465년 | Montlhéry | 몽레리 전투: 왕의 선봉이 샤롤루아 군과 맞붙음 — 본문은 양쪽 합쳐 2,000명 이상 전사로 적음 | Book I, ch. III |
| 1465년 | Montlhéry | 샤롤루아 백작이 추격 중 포위돼 목에 칼상처를 입음 — 기수 필리프 드 우니 전사 | Book I, ch. IV |
| 1465년 | Montlhéry | 포위된 샤롤루아 백작을 존 카데가 말 타고 끼어들어 떼어 냄 — 적은 물러남 | Book I, ch. IV |
| 1465년 | Corbeil-Essonnes | 밤이 되자 왕은 코르베유로 물러남 — 본문은 진영에 불이 난 것을 야영으로 착각했다고 함 | Book I, ch. III |
| 1465년 | London | 샤를 백작이 에드워드 4세의 누이 마가렛과의 혼인을 교섭하려고 프로토노타리 윌리엄 클뤼니를 런던에 보냄 — 혼인은 실제로는 몇 해 뒤에야 성사됨 | 1.V |
| 1465년 | Étampes | 샤를 백작과 브르타뉴 공 프랑수아가 에스탕프에서 동맹을 갱신하고 서로 「무장 형제」로 삼음 | 1.V |
| 1465년 | Moret-sur-Loing | 샤를 군이 세안강에 배다리를 놓고 섬을 거쳐 강을 건너 파리 쪽으로 진군 (프랑스 쪽 기병 방어선을 밀어냄) | 1.VI |
| 1465년 | Charenton-le-Pont | 샤를 군이 샤랑통 다리로 진군해 다리를 지키던 프랑 궁수(민병 궁수) 부대를 격파하고, 파리 동쪽 콩플랑 일대에 진을 침 | 1.VI |
| 1465년 | Paris | 샤를 군이 파리를 포위: 진영 전체가 11주 동안 머묾 (베리 공과 브르타뉴 군은 생모르, 나머지는 생드니 쪽). 파리 남쪽·동쪽에 넓게 진을 침 | 1.VI |
| 1465년 | Saint-Maur-des-Fossés | 교섭: 파리 시민 대표(주교 기욤 샤르티에 등)가 생모르에서 왕족 대표단과 만나 파리 입성을 요청했으나 합의되지 않음 | 1.VIII |
| 1465년 | Paris | 루이 11세가 2000명 이상의 기병을 이끌고 파리에 들어가 시민 설득 계획을 무산시킴 | 1.VIII |
| 1465년 | Charenton-le-Pont | 샤를 군과 루이 11세 군이 센강 건너 대포전: 프랑스 쪽 방어 참호 포격으로 샤를 쪽 본진이 흔들림. 샤를 쪽 두 번째 배다리 준비 중 휴전 종료 | 1.IX |
| 1465년 | Charenton-le-Pont | 루이 11세가 배로 건너와 샤를과 강가에서 직접 만나 교섭 — 샤를에게 솜강 도시와 생폴 백작을 프랑스 대원수로 세우겠다는 제안 | 1.XII |
| 1465년 | Paris | 루이 11세와 샤를 백작 사이에 콩플랑 평화조약: 솜강 연안 도시(아미앵·생캉탱 등)와 페론 등을 샤를에게 넘기는 조건(200,000크라운에 재매입 가능) | 1.XIII |
| 1465년 | Rouen | 노르망디를 베리 공에게 넘긴다는 흥정 속에 루앙 성이 부르봉 공 장에게 넘어가고 도시가 따름 | 1.XIII |
| 1465년 | Amiens | 샤를이 조약 뒤 아미앵으로 가 솜강 연안 모든 도시에서 충성 서약(homage)을 받음 (조약 직후) | 1.XIV |
| 1465년 | Saint-Maur-des-Fossés | 생모르 조약: 루이 11세와 노르망디 공(베리)·브르타뉴·칼라브리아·샤를 등 제후 연합이 평화에 합의, 36인 개혁위원회 설치 | 1.XIV |
| 1465년 | Rouen | 루이 11세가 노르망디의 여러 곳을 되찾음(퐁드라르슈 등). 노르망디 공(베리)은 플랑드르로 달아나려다 뒤에 브르타뉴로 돌아감 | 1.XV |
| 1466년 | Dinant | 부르고뉴 공 필리프(선량공)가 아들 샤를에게 지휘를 맡긴 리에주 영역 도시 디낭 공성·함락: 강습으로 점령해 불태움, 포로 약 800명 익사 | 2.I |
| 1466년 | Liège | 리에주 쪽이 평화를 재확인하고 돈을 물며 인질 300명을 내겠다고 약속 — 샤를은 교전 없이 철수 | 2.I |
| 1467년 | Bruges | 부르고뉴 공 필리프 사망(1467년 6월, 본문 괄호). 샤를이 브뤼허에서 장례를 성대히 치르고 프랑스 왕에게 부고를 알림 | 2.I |
| 1467년 | Huy | 리에주 사람들이 휴이(Huy)를 차지하고 공작 수비대를 쫓아냄, 약탈까지 함 — 전쟁 재개 | 2.II |
| 1467년 | Sint-Truiden | 부르고뉴 공 샤를이 생트롱(Saint-Tron)을 포위하자 리에주군 약 3만이 구원 와서 전투, 리에주군 대패 (본문 약 6000 전사) | 2.II |
| 1467년 | Sint-Truiden | 패배 뒤 생트롱 수비대가 항복, 무장을 풀고 떠남. 샤를은 인질 중 10명을 골라 참수 (6명은 석방됐던 인질) | 2.II |
| 1467년 | Tongeren | 샤를이 퉁헤런(Tongres)을 항복시킴 — 같은 조건으로 항복하며 10명을 넘김, 모두 처형됨 | 2.II |
| 1467년 | Liège | 리에주 내부 분열 속에 움베르쿠르 영주가 시문 4곳을 차지해 부르고뉴 기를 올림 — 도시가 샤를 쪽으로 넘어감 | 2.III |
| 1467년 | Liege | 부르고뉴 공 샤를이 리에주에 개선 입성 — 시민이 성벽을 허물고 해자를 메움 | Bk2 ch.IV |
| 1467년 | Ghent | 헨트 시민이 필리프 공 때 빼앗긴 특권·길드 깃발 복구를 요구, 샤를이 모두 수락 | Bk2 ch.IV |
| 1468년 | Ancenis | 루이 11세의 군대가 브르타뉴 쪽 작은 성 둘(Chantocé·Ancenis)을 점령 — 부르고뉴 공의 동맹 지역 | Bk2 ch.V |
| 1468년 | Tongres | 리에주 시민이 툰그레에 주둔한 주교와 움벡쿠르 영주를 기습해 포로로 잡음 (왕의 사주 의혹) | Bk2 ch.VII |
| 1468년 | Peronne | 샤를 공이 리에주 소식에 격노해 페론 성문을 잠그고 루이 11세를 성 안에 붙잡아 둠 | Bk2 ch.VII |
| 1468년 | Peronne | 페론 조약 체결 — 루이 11세가 샤를의 조약 조건을 수락하고 서명 (조항 35개, 리에주 문제 포함) | Bk2 ch.IX (조약문) |
| 1468년 | Liege | 공격 전날 밤, 리에주 수비대 600명이 성벽 틈으로 출격해 외곽 초소를 베고 샤를·루이 11세 숙소 쪽으로 침투 — 두 군주가 거의 죽을 뻔함 | Bk2 ch.XII |
| 1468년 | Liege | 리에주 공략 — 일요일 아침 두 진영이 동시에 진입, 저항 없이 함락 후 약탈·교회 피난민 포로화 | Bk2 ch.XIII |
| 1468년 | Liege | 샤를이 리에주를 불태우라 명령 — 세 곳에 불을 지르고 교회는 보존, 다리 파괴 | Bk2 ch.XIV |
| 1468년 | Polleur | 프랑슈몽 원정 — 겨울, 샤를 군이 마을을 불태우고 철광 시설을 부숨, 피난민 학살·포로 | Bk2 ch.XIV |
| 1469년 | La Rochelle | 루이 11세가 동생 샤를을 기옌 공으로 봉함 (브리·샹파뉴 대신, 페론 조약 약속 뒤집기) — 부르고뉴 공 반발 | Bk2 ch.XV |
| 1470년 | Tours | 루이 11세가 삼부회를 투르에서 소집 — 부르고뉴 공 소환·전쟁 명분 마련 | Bk3 ch.I |
| 1470년 | Ghent | 파리 고등법원 집달리가 헨트에서 샤를 공에게 파리 출석 소환장 전달 — 공은 격분해 집달리를 구금했다 풂 | Bk3 ch.I |
| 1470년 | Hesdin | 샤를 공이 홀란트에서 배로 아르투아에 들어가 에스댕으로 감 — 측근 배반 조사 | Bk3 ch.I |
| 1470년 | St. Quentin | 12월, 프랑스 총사령관(생폴)이 생캉탱에 들어가 주민에게 왕에 대한 충성 서약을 시킴 | Bk3 ch.II |
| 1470년 ~ 1471년 | Amiens | 아미앵 수비대가 왕 편으로 돌아서 왕의 수비대를 받아들임 — 샤를 공은 도시 진입 실패 | Bk3 ch.II |
| 1470년 | Calais | 워릭 백작이 칼레에 들어오려 하자 부총독 웬록 경이 맞이하지 않고 대포를 쏨 | 3.IV |
| 1470년 | Alkmaar | 에드워드 4세가 700~800명만 싣고 도망해 프리슬란트 근처 알크마르 쪽 (원문 Alquemare) 에 닻을 내림 | 3.V |
| 1470년 | The Hague | 부르고뉴 측 그뤼튀즈 경이 에드워드를 영접해 헤이그까지 호송 | 3.V |
| 1470년 | London | 워릭 백작이 런던 탑에서 헨리 6세를 풀어 다시 왕으로 세움 | 3.VI |
| 1470년 | Calais | 칼레에서 부르고뉴와 영국의 동맹을 유지하기로 합의 — 에드워드 대신 헨리를 넣음 | 3.VI |
| 1471년 | Picquigny | 샤를 공이 솜강 위 피키니를 공략 — 수비대 궁수는 다리 완성 전에 도시를 버리고 나감, 성은 2~3일 뒤 항복 | Bk3 ch.III |
| 1471년 | Amiens | 샤를 공이 아미앵 주변에 6주간 야영, 포격으로 도시를 두드림 — 왕은 보베에서 병력 집결 | Bk3 ch.III |
| 1471년 | London | 에드워드 4세가 런던에 입성해 시민의 환호를 받음 (부활절 전 목요일) | 3.VII |
| 1471년 | 부활절 날 워릭 백작과 몽태규 후작이 전사하는 전투 (에드워드 승리) | 3.VII | |
| 1471년 | Amiens | 같은 날 부르고뉴 공이 아미앵 앞에서 전투 소식을 받음 (아미앵 포위 중) | 3.VII |
| 1471년 | 웨일스 공이 이끈 군이 에드워드에게 져 웨일스 공 전사, 서머싯 공은 다음 날 참수 | 3.VII | |
| 1471년 | Arras | 부르고뉴 공이 군을 아라스 근처에 집결시킨 뒤 페론·루아·몽디디에 쪽으로 진군 | 3.VIII |
| 1471년 | Amiens | 루이 11세가 부르고뉴 공에게서 아미앵을 빼앗음 | 4.I |
| 1471년 | London | (부록 ch.XX) 에드워드 4세가 헨리 6세를 런던 탑에 오래 가둔 뒤 죽임 | part_06.txt L1898-1903 (CH.XX 예시) |
| 1471년 | Barnet | (부록 ch.XX) 워릭 백작이 랭커스터 복위를 꾀하다 전투에서 패해 전사 | part_06.txt L1905-1912 (CH.XX 예시) |
| 1472년 | Nesle | 부르고뉴 군이 네슬(베르망두아)을 포위해 함락, 수비병 대부분 처형 | 3.IX |
| 1472년 | La Rochelle | 루이 11세 군이 라로셸을 포위 | 3.IX |
| 1472년 | Le Crotoy | 크로투아 성 조약 — 루이 11세가 아미앵·생캉탱을 돌려주기로 하고 아라스·콩플랑·페론 조약을 재확인 | 3.IX |
| 1472년 | Roye | 부르고뉴 군이 루아를 포위, 다음 날 수비대가 항복하고 도시를 넘김 | 3.X |
| 1472년 | Beauvais | 부르고뉴 공이 보베 공략에 실패하고 포위를 풀고 철수 | 3.X |
| 1472년 | Eu | 부르고뉴 공이 외(Eu)를 점령하고 생발레리를 함께 취함 | 3.X |
| 1474년 | Noyon | 콘스타블(생폴 백작)이 루이 11세와 노이옹 근처에서 만나 왕 편으로 넘어감 | 3.XI–3.XII |
| 1474년 | Neuss | 부르고뉴 공이 쾰른 근처 누스(Nuz)를 포위 — 헤센 방백 등이 수비 | 4.I |
| 1474년 ~ 1475년 | Neuss | 샤를 공 말기의 누스(노이스) 포위 — 그 뒤 세 번 이상 연이은 패전의 시작으로 서술 | part_06.txt L285-287 (CH.IX) |
| 1474년 | (부록 ch.XX) 카스티야 왕 엔리케 사후 딸의 왕위 계승이 막히고 이사벨이 왕위를 차지 | part_06.txt L2004-2015 (CH.XX 예시) | |
| 1475년 | 루이 11세가 작은 성 트롱쿠아(Tronquoy)를 공격해 몇 시간 만에 함락 | 4.III | |
| 1475년 | Montdidier | 몽디디에 수비대가 짐을 싣고 나가 도시를 버림 (루이 11세 측 교섭) | 4.III |
| 1475년 | Corbie | 루이 11세 군이 코르비를 포위해 항복받은 뒤 마을을 약탈·소각 | 4.III |
| 1475년 | Arras | 아라스 시민이 수비대를 출격시켰다가 프랑스 측 부르봉 대제독 군에 패해 다수 포로·전사 | 4.III |
| 1475년 | Neuss | 부르고뉴 공이 누스 포위를 풀고 철수 — 황제와 평화를 맺고 누스는 교황 사절에게 넘김 | 4.IV |
| 1475년 | Calais | 에드워드 4세가 도버에서 배를 타 칼레에 상륙, 병력 승선·상륙에 3주 걸림 | 4.V |
| 1475년 | Calais | 영국 왕 에드워드가 칼레에 상륙, 부르고뉴 공이 칼레로 가서 맞이함 | L17–18 |
| 1475년 | Peronne | 영국 왕과 부르고뉴 공이 페론에 이르나, 공이 성문을 닫아 영국군을 냉대 | L31–33 |
| 1475년 | Compiègne (출발지) | 루이 11세가 시종을 전령 복장으로 변장시켜 영국군 진영에 보냄 (휴전 교섭의 시작) | L168–185 |
| 1475년 | Amiens 근처 마을 | 통행증 발급 뒤 양국 사절이 아미앵 근처 마을에서 휴전 회담 | L224–226 |
| 1475년 | Amiens | 휴전 뒤 영국군 다수가 무장한 채 아미앵 시내에 들어와 프랑스 왕의 술자리 대접을 받음 | L436–439 |
| 1475년 | Picquigny | 피키니 다리의 격자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두 왕이 회견, 9년 휴전 조약을 성서 위에 맹세 | L615–617 · L664–667 |
| 1475년 | Vervins | 베르뱅에서 루이 11세와 부르고뉴 공 샤를 사이 9년 휴전(상업 조약) 체결 | L1004–1009 |
| 1475년 | Mons (Hainault) | 콩스타블(생폴 백작)이 기병 15~20기만 데리고 에노 몽스로 가 총독 에메리 영주 집에 머묾 | L1221–1222 |
| 1475년 | Saint-Quentin | 루이 11세가 기병 700~800기로 기습해 생캉탱을 장악, 주민 일부가 맞이함 | L1231–1235 |
| 1475년 | Nancy | 샤를 공이 로렌 낭시를 정식으로 포위, 수비가 강하게 버팀 | L1292–1293 |
| 1475년 | Peronne | 샤를 공 측이 콩스타블을 페론 성문에서 부르봉 서자와 생피에르 영주에게 인도 | L1340–1342 |
| 1475년 | Paris | 콩스타블 생폴 백작이 파리에서 재판을 받고 유죄 판결, 처형, 재산 몰수 | L1347–1353 |
| 1476년 | Granson | 샤를 공이 그랑송 요새를 포격 끝에 함락시키고, 스위스 수비 700~800명을 전원 살해 | L1556–1558 |
| 1476년 | Granson 근처 산기슭 | 그랑송 산기슭에서 스위스군 기습에 샤를 공 본진이 패배, 진영·대포를 잃음 (첫 패전) | L1575–1577 |
| 1476년 | Milan | 패전 뒤 밀라노 공이 샤를 공과 결별, 루이 11세와 옛 동맹을 다시 맺어 밀라노에서 공포 | L1703–1705 |
| 1476년 | Lyons | 시칠리아 왕 르네가 리옹에 와서 루이 11세와 화해, 샤를 공을 후계자로 삼는 약속은 철회 | L1725–1727 |
| 1476년 | Losanne (Savoy) | 모라 전투 전, 샤를 공이 로잔에 본영을 두고 병력을 다시 모음 | L1811–1813 |
| 1476년 | Morat (Murten) | 모라에서 스위스·독일 연합군이 샤를 공 군을 격파, 로렌 공이 막판에 합류 | L1876–1878 |
| 1476년 | Castle of Rouvre near Dijon | 샤를 공이 사보이아 공비를 강제로 루브르 성(디종 근처)으로 끌고 감 | L1927–1928 |
| 1476년 | Plessis-du-Parc (투르 근처) | 루이 11세가 여동생 사보이아 공비를 플레시-뒤-파르 성문에서 맞이하고, 우호 맹세 뒤 돌려보냄 | L1992–1995 · L2012–2015 |
| 1476년 | La Rivière (부르고뉴 입구) | 모라 패전 뒤 샤를 공이 라 리비에르에서 6주간 칩거하며 병력을 모으지 않음 | L2031–2033 |
| 1476년 | Nancy | 영국 용병장 콜핀 전사 뒤 수비대장 비에르가 항복, 낭시가 로렌 공에게 넘어감 | L2134–2136 |
| 1476년 | Nancy | 샤를 공이 로렌 공과 대치한 뒤 낭시를 다시 포위하기로 결정 | L2142–2145 |
| 1476년 | Nancy (샤를 공 진영) | 낭시 밖 샤를 공 진영에서 연락책 시프롱을 교수형, 캄포바소가 자백 청취를 막음 | L2195–2197 · L2213–2229 |
| 1476년 | Murten/Morat | 모라 전투 소식이 도착 — 화자와 뷔샤주가 처음 듣고 왕에게 전함, 왕이 각자 200마르크 은을 줌 | part_06.txt L346-348 (CH.X) |
| 1477년 | St. Nicholas (낭시 근처) | 로렌 공이 독일 용병을 이끌고 낭시 근처 생니콜라에 진을 침, 프랑스군은 바라에 대기 | L2354–2355 |
| 1477년 | Nancy | 부르고뉴 공 샤를이 낭시 앞 전투에서 패해 전사 (본문: 기습 공격 후 시신 발견) | part_06.txt L167-168 (CH.VIII) |
| 1477년 | Tours | 루이 11세가 부르고뉴 공 사망 소식이 확실하지 않은 채 투르로 측근·장수를 소집 | part_06.txt L382-384 (CH.X) |
| 1477년 | Abbeville | 아브빌 주민이 성문을 열어 토르시 영주를 받아들임 — 부르고뉴 측 수비대 장교 피해 | part_06.txt L438-440 (CH.XI) |
| 1477년 | Arras | 도랑 전 두르랑을 거쳐 아라스에 항복을 요구 — 아라스 쪽은 아르투아가 샤를의 딸 소유라며 거절 | part_06.txt L449-454 (CH.XI) |
| 1477년 | Saint-Quentin | 생캉탱 주민이 스스로 도시를 지켜 왕에게 문을 열어줌 (한·보앵 성도 함께 넘어옴) | part_06.txt L578-581 (CH.XIII) |
| 1477년 | Péronne | 페론 시가 왕에게 항복 — 빌리엄 비셰가 항복을 가져옴 | part_06.txt L588-591 (CH.XIII) |
| 1477년 | Gent | 왕의 이발사 올리비에가 헨트 대면에서 비공개 전언을 고집 — 거절당하고 도망 | part_06.txt L763-764, L776-777 (CH.XIV) |
| 1477년 | Tournai | 올리비에가 모이 측 병력 30~40명을 이끌고 투르네 성문을 열게 해 프랑스 수비대 진입 | part_06.txt L801-816 (CH.XIV) |
| 1477년 | Hesdin | 아라스 요새 보강 후 에스당 포위 — 전 총독 데 코르드가 동행, 수비대가 굴복 | part_06.txt L930-933, L937-939 (CH.XV) |
| 1477년 | Boulogne-sur-Mer | 에스당 다음 불로뉴 포위 — 약 5~6일 뒤 항복 | part_06.txt L937-939 (CH.XV) |
| 1477년 | Arras | 두에에서 아라스로 구원군 출동 — 아라스 안 수비대의 출격으로 대부분 전사 또는 포로 (베르지 영주 포로) | part_06.txt L957-972 (CH.XV) |
| 1477년 | Arras | 아라스 포위 끝에 성 항복 — 조건이 지켜지지 않아 시민 처형, 뒤에 벌금 6만 크라운 | part_06.txt L992-1002 (CH.XV) |
| 1477년 | Arras | 헨트 등 세 신분회 사절이 왕 진영을 찾아 휴전·회담을 요청 — 왕은 편지로 반박 | part_06.txt L1044-1056 (CH.XVI) |
| 1477년 | Gent | 사절단 귀환 후 헨트 시민이 대법관 위그네와 홈베르쿠르를 밤사이 체포 | part_06.txt L1219-1221 (CH.XVII) |
| 1477년 | Gent | 헨트 시민이 대법관 위그네와 홈베르쿠르를 재판 후 시장 광장에서 참수 (공주의 구명 호소 실패) | part_06.txt L1282-1292 (CH.XVII) |
| 1477년 | Dijon | 오렌지 공이 디종으로 교섭 — 디종과 부르고뉴 공국의 다른 도시들이 왕에게 복종 (아소네 등은 버팀) | part_06.txt L1319-1336 (CH.XVII) |
| 1477년 | Tournai | 플랑드르 연합군이 투르네 교외를 불태우다 퇴각 — 겔더르 공 전사 | part_06.txt L1374-1393 (CH.XVI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