둑카스 「역사」

둑카스 「역사」: 정사 사료. 다루는 해 1347년 ~ 1455년, 사건 100건을 해 순서로 정리했습니다. 원문 라이선스와 출처 포함.

등급정사
시점내부 시점
다루는 해1347년 ~ 1455년
사건 수사건 100건 · 지도에 놓은 77건
저자Doukas (Michael Doukas)
원제Ducae Michaelis Nepotis Historia Byzantina

지역 분포: 서아시아 68 · 남유럽(이탈리아·그리스·이베리아·발칸) 32

사건 목록

해장소사건원문 위치
1347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칸타쿠제노스 군이 도시에 들어서고 궁에 갇힌 안나 황후와 어린 황제가 항복함. 칸타쿠제노스는 투르크 군에 선물을 주어 돌려보내고 사위 오르한에게 감사함10 (Bonn p.38)
1347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요한 5세와 칸타쿠제노스의 딸 헬레나의 혼례, 블라케르나이 성모 성당에서 대관. 칸타쿠제노스도 공동황제로 즉위, 아들 마태오스는 전제군주로 선포됨10 (Bonn p.38-39)
1350년 ~ 1357년Chersonesus오르한의 아들 술레이만이 람프사코스에서 해협을 건너 케르소네소스를 약탈. 마태오스 칸타쿠제노스가 헥사밀리온 부근에서 맞아 싸워 투르크 다수를 죽임10 (Bonn p.39)
1354년Tenedos이탈리아·독일에서 2년 지낸 요한이 테네도스에 닿아 제노바인 프란체스코 가텔루조와 협약: 제위를 되찾으면 누이 마리아를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 (Ducas의 연대 순서는 실제와 어긋날 수 있음)11 (Bonn p.40)
1354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밤에 호데게트리아 문 앞에서 기름 항아리를 깨뜨려 소음을 내는 꾀로 문지기를 유인, 무장 500이 삼단노선에서 나와 성에 침입. 새벽에 요한 파라이올로고스 만세를 외치며 시민이 모임11 (Bonn p.40-42)
1354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칸타쿠제노스가 제위를 내려놓고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 생활을 함 (아토스 산)11 (Bonn p.43)
1355년Mytilene요한이 매제 가텔루조에게 누이를 시집보내며 지참금으로 레스보스 섬을 줌. 가텔루조가 미틸레네에 자리 잡아 후손이 대대로 다스림12 (Bonn p.45)
1362년오르한이 죽고 아들 무라드가 군주 자리를 이음11 (Bonn p.43)
1369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칸타쿠제노스가 정사를 홀로 맡는 가운데, 향락에 빠진 사위 요한 5세를 책망하자 요한이 삼단노선 두 척으로 이탈리아로 떠남10 (Bonn p.39-40)
1373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무라드의 아들 쿤투제스와 요한의 아들 안드로니코스가 아버지를 몰아낼 음모를 꾸밈. 무라드가 쿤투제스의 눈을 멀게 하고 안드로니코스도 같게 하라고 요구12 (Bonn p.43-44)
1373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요한이 안드로니코스와 어린 손자 요한의 눈을 멀게 하고, 마누엘을 공동황제로, 테오도로스를 라케다이몬 군주로 세움. 안드로니코스는 아네마스 탑에 가둠12 (Bonn p.44)
1376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탑에서 탈출한 안드로니코스가 갈라타 제노바인의 도움으로 아버지와 전투를 벌인 끝에 도시에 들어가 황제로 선포되고 아버지와 형제들을 같은 탑에 가둠12 (Bonn p.44-45)
1390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바예지드가 조공과 요한의 아들 한 명을 100명 병사와 함께 보내라고 요구. 마누엘이 파견되어 바예지드 밑에서 복무. 바예지드는 곡물 반입을 막고 함대 60척으로 키오스를 불태움13 (Bonn p.47)
1390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요한이 황금문 방비를 쌓아 올림. 옛 성당(모든 성인·40인 순교자·성 모키오스)의 석재를 헐어 가져다 씀13 (Bonn p.47-48)
1391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바예지드가 황금문 방비를 허물라 명하고 어기면 프루사에 있는 마누엘의 눈을 멀게 하겠다고 위협. 통풍으로 누운 요한이 방비를 허물었으나 곧 죽음13 (Bonn p.48-49)
1391년Prusa아버지의 죽음을 들은 마누엘이 밤에 프루사에서 도망쳐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 즉위. 바예지드는 분노하여 도시 안에 이슬람 재판관(카디)을 두라는 등 부당한 요구를 보냄13 (Bonn p.49)
1394년 ~ 1396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바예지드가 도시를 봉쇄: 사방에 군사 1만 이상을 두어 반출입을 막자 도시에 기근이 닥치고, 시민은 땔감이 없어 높은 집을 헐어 불을 땜13 (Bonn p.50)
1395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마누엘이 교황과 프랑스·헝가리 왕에게 도시가 포위되어 굶주린다고 알리고 도움을 청함. 도움이 없으면 신앙의 적에게 넘어간다고 경고13 (Bonn p.50)
1396년Nicopolis플랑드르 백작·영국·프랑스·이탈리아 군이 헝가리의 지그문트와 합류, 니코폴리스에서 다뉴브 건너편으로 도하하여 바예지드와 대결을 준비13 (Bonn p.51)
1396년Nicopolis플랑드르 기병의 첫 돌격은 성공했으나 근위병 1만의 매복에 프랑크·헝가리군이 포위·패주. 부르고뉴 공(플랑드르 백작)과 많은 귀족이 포로가 되어 프루사로 보내졌다가 몸값으로 풀려남13 (Bonn p.52)
1399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바예지드가 도시를 요구하고 안드로니코스의 아들 요한(셀림브리아)을 앞세워 마누엘 퇴위를 압박. 시민 소요 속에 마누엘이 요한을 도시에 들이기로 하고 아내·자녀와 삼단노선으로 도시를 떠남14 (Bonn p.54-55)
1399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요한 7세가 입성하여 제위에 올라 바예지드의 조건대로 도시에 투르크 재판관을 두고 셀림브리아를 바예지드에게 넘김15 (Bonn p.56)
1400년Methone마누엘이 아내와 어린 아들들을 모도니(메토네)에 남기고 큰 배로 베네치아에 닿아 밀라노·제노바·피렌체·페라라·프랑스·독일을 돌며 제후들의 환대와 선물을 받음. 돌아와 메토네에서 가족과 조용히 지냄14 (Bonn p.56)
1400년Prusa프루사의 바예지드 앞에 티무르의 사절이 와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라 요구하자, 바예지드는 사절의 수염을 면도칼로 밀어 모욕하고 돌려보냄15 (Bonn p.58)
1400년Sebastia바예지드가 카파도키아의 큰 도시 세바스티아를 점령하고 아르메니아 대(大)쪽 국경을 넘어 아르신가를 손에 넣음15 (Bonn p.58)
1400년Sebastia티무르가 세바스티아를 갱도로 성벽 밑을 파서 무너뜨림. 시민을 결박해 구덩이에 산 채로 묻음15 (Bonn p.59-60)
1400년Damascus티무르가 포이니케·다마스쿠스까지 가서 모든 것을 불태우고 약탈, 많은 포로를 끌고 감15 (Bonn p.61)
1401년Halepum다마스쿠스 다음에 알레포를 무너뜨리고 많은 장인을 페르시아로 옮김. 이후 아랍인을 위협하고 사마르칸드로 돌아감15 (Bonn p.61)
1402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봄, 해가 쌍둥이자리를 지날 때 서쪽 하늘에 밝은 혜성이 나타나 가을 분점까지 이어짐. 두카스는 전쟁의 징조로 서술16 (Bonn p.63)
1402년Ancyra바예지드가 앙키라 인근 평원에 진을 쳤으나 사흘 사냥에 나간 사이 티무르가 물가 진지를 선점. 물이 없어 병사 5000이 갈증으로 죽음16 (Bonn p.62-63)
1402년Ancyra앙카라 전투: 티무르 군이 평원을 둥글게 에워싸 포위, 바예지드 측 속주 병력이 잇따라 티무르 쪽으로 넘어감16 (Bonn p.65-66)
1402년Ancyra세르비아의 스테파노스 라자레비치가 창기병 5000으로 돌파해 탈출구를 열고 바예지드에게 도망을 권했으나 거절당함. 스테파노스는 바예지드의 장남 무슬림과 함께 빠져나가 프루사로 감16 (Bonn p.66-67)
1402년Ancyra바예지드가 포로로 잡혀 티무르 앞에 끌려옴. 티무르는 아들과 체스를 두며 태연한 척함16 (Bonn p.68-69)
1402년Ancyra바예지드의 셋째 아들 메흐메트가 땅굴을 파서 아버지를 빼내려 했으나 새벽에 경비가 발견해 실패. 환관장 호치아페루지스는 참수당하고 바예지드는 쇠사슬로 결박됨16 (Bonn p.70-71)
1402년Prusa티무르가 코티아이온을 거쳐 프루사에 들어가 보물 창고를 비우고 바예지드의 아내·후궁과 라자르의 딸을 찾아냄17 (Bonn p.72)
1402년Smyrna티무르가 스미르나의 로도스 기사단 성채를 항구 입구에 돌을 쌓아 막아 공격. 성이 함락되자 피난한 그리스도교도 1000여 명을 끌어내 모두 죽이고 머리로 탑을 쌓음17 (Bonn p.72-75)
1402년Smyrna스미르나에서 머리와 돌을 한 줄씩 번갈아 쌓은 탑을 세움 (Ducas는 소름 끼치는 구경거리라 적음)17 (Bonn p.75)
1403년Ephesus티무르가 에페소스에서 30일 머물며 주변 주민을 모아 고문하여 금은을 빼앗은 뒤 카리아의 밀라사로 감. 혹한으로 짐승과 새가 얼어 죽음17 (Bonn p.76)
1403년프리기아 살루타리아(투르크어 카라사르)에서 바예지드가 고난 끝에 죽음. 독을 스스로 마셨다고 말하는 이가 많음. 유해는 프루사의 생전 무덤에 묻힘17 (Bonn p.77)
1403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마누엘이 비잔티온으로 돌아와 조카에게서 정권을 되찾음. 바예지드의 장남 무슬림(술레이만)이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와 마누엘의 발 앞에 엎드려 아들이 되겠다고 서약18 (Bonn p.78)
1403년Thessalonica술레이만이 테살로니케·스트리몬 일대 도시·펠로폰네소스 등을 돌려주기로 약속. 데메트리오스 레온타리오스가 테살로니케에 들어가 요한을 테살리아 전체의 황제로 선포18 (Bonn p.79)
1404년Ephesus스미르나의 지방관 카라수파시의 아들 키네이테스가 에페소스를 몇 날 포위해 차지하고 술레이만에게 서신을 보내 충성을 표함18 (Bonn p.80-81)
1405년Ephesus카리아의 만타키아스가 아틴의 아들 호무르와 함께 6000으로 에페소스를 공격, 도시가 이틀 만에 잿더미가 됨. 키네이테스의 아버지는 성채에서 가을까지 버티다 항복18 (Bonn p.81-82)
1405년Ephesus마말로스 탑에 갇혔던 키네이테스의 아버지와 일행이 연회로 경비를 취하게 한 뒤 밧줄로 탈출, 키네이테스가 보낸 쌍단노선으로 스미르나로 돌아감. 겨울에 키네이테스가 에페소스를 약탈18 (Bonn p.82-83)
1405년Ephesus술레이만이 프루사·로파디온·페르가몬을 거쳐 에페소스로 진군. 카라만 3만·카르미안 1만·키네이테스 5천이 맞섬. 키네이테스가 몰래 진영을 빠져나가 목에 올가미를 걸고 술레이만에게 나아가 용서를 빎. 술레이만은 4개월간 에페소스에서 향락으로 시간을 보냄18 (Bonn p.84-86)
1409년Sinope아틴·메흐메트와 앙키라에 있던 모세스(무사)가 시노페의 스펜티아르에게 도망쳐 그의 도움으로 왈라키아로 건너감19 (Bonn p.88)
1409년Valachia모세스가 왈라키아 보이보다 미르체아를 찾아 신분을 밝히자 자유롭게 오가도록 허락받음. 다뉴브 변경 총독들이 술레이만에게 경고19 (Bonn p.88)
1410년Lampsacus제노바 귀족 살라그루조가 술레이만의 명으로 람프사코스에 갈리폴리 맞은편 큰 탑을 쌓고, 술레이만이 후히 보상. 술레이만은 갈리폴리에서 술과 향락에 빠짐19 (Bonn p.88-89)
1411년Adrianopolis모세스가 이스트로스 일대 투르크를 모아 트라키아·테살리아·일리리쿰의 군주로 선포됨. 술레이만이 보낸 군대를 쳐부수고 소피아 성문까지 추격19 (Bonn p.89)
1411년Adrianopolis뒤늦게 정신 차린 술레이만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가던 도중 소수 기병만 남고 추종자들이 모세스에게 넘어감. 한 마을에서 형제 5명의 궁수에게 말에서 떨어져 목이 잘림. 모세스가 아드리아노폴리스 시민의 환영을 받고 서방 군주로 선포19 (Bonn p.90)
1411년Adrianopolis모세스가 술레이만을 죽인 마을을 주민 전체와 함께 오두막에 가두고 불태움19 (Bonn p.90-91)
1411년Servia모세스가 세르비아를 쳐서 성 셋을 함락해 주민을 학살하고 시체 위에서 연회를 엶19 (Bonn p.92)
1411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모세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성 기계를 마련하고 테살로니케를 공격, 마누엘이 옮겨 놓은 주민이 떠난 도시들을 불태움19 (Bonn p.92-93)
1412년Scutarium마누엘이 프루사의 메흐메트에게 스쿠타리온으로 오라 청해 삼단노선으로 데려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3일 환대. 메흐메트가 모세스와 싸워 두 번 지고 도시로 피신19 (Bonn p.94-95)
1413년메흐메트가 군을 둘로 나눠 한 갈래는 흑해로, 한 갈래는 아드리아노폴리스로 보냄. 모세스 군이 메흐메트 편으로 넘어가고 모세스는 습지에서 오른팔이 잘려 죽음. 시신은 프루사에 묻힘19 (Bonn p.95-96)
1413년Ephesus모세스와 메흐메트가 싸우는 사이 키네이테스가 트라키아에서 도망쳐 소아시아로 돌아와 에페소스를 차지하고 술레이만이 둔 수비대장을 목 베어 소아시아 전역을 장악19 (Bonn p.97)
1413년Adrianopolis메흐메트가 마누엘의 사절을 환대, 협약대로 흑해 연안 성채와 테살리아·프로폰티스 인근 도시를 돌려주고 "아버지 마누엘이 하시는 대로 따르겠다"고 답함20 (Bonn p.97)
1414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메흐메트의 아들 무라드는 이후 아마시아로. 한편 마누엘이 아들 요한에게 러시아 공주를 신부로 맞이하고 안나로 개명, 3년 뒤 역병으로 안나 죽음20 (Bonn p.98)
1414년Cyme메흐메트가 소아시아로 건너가 페르가몬·키메(퀴메)·카가지크 성채·님파이온을 차례로 평정21 (Bonn p.103-104)
1414년Prusa카라만이 메흐메트가 트라키아에 간 사이 프루사를 약탈하고 바예지드의 유골을 무덤에서 파내 불태움. 메흐메트가 되돌아가 응징21 (Bonn p.103)
1415년Peloponnesus마누엘이 수도 항을 떠나 펠로폰네소스에 가 아카이아 공을 복종시키고 나바라 용병 일파를 굴복시킴. 아들 테오도로스를 펠로폰네소스 전체의 군주로 남겨두고 귀환, 갈리폴리에서 메흐메트와 만남20 (Bonn p.102)
1415년Smyrna메흐메트가 스미르나를 포위: 10일간 공격하자 키네이테스의 어머니와 아내가 용서를 빌러 나와 도시를 넘김. 인근 섬의 군주와 로도스 기사단장이 메흐메트를 찾아 축하21 (Bonn p.105-106)
1415년Smyrna로도스 기사단장이 항구 어귀에 지으려던 탑을 투르크군이 밤에 허물자, 기사단장이 항의. 메흐메트는 카리아·리키아 경계에 원하는 만큼 땅을 주겠다고 허락21 (Bonn p.106-108)
1415년카리아에 성 베드로 성채(페트로니온)를 세움. 만타키아스의 방해는 실패33 [표기 오류: 21장 이어짐] (Bonn p.115-116)
1416년Callipolis낙소스 공작을 벌하려 투르크 함대 30척이 안드로스·파로스·멜로스 약탈. 베네치아 함대가 갈리폴리 항구 앞에서 투르크 함대를 격파, 제독 지알리 베그를 난도질21 (Bonn p.109-110)
1416년Tenedos승리한 베네치아군이 테네도스에서 투르크 포로를 모두 죽이고, 돈 받고 노 젓던 그리스도교도는 섬 전역의 교수대에 매닮21 (Bonn p.110)
1416년Stylarius스틸라리온 산에서 재산 공유를 설교한 Mustafa(거짓 아바스)의 추종자가 길목을 지켜 술레이만의 후임 총독 수스만의 아들과 군대 전멸시킴21 (Bonn p.112-113)
1416년Ephesus12세 무라드가 바예지드 파샤와 토벌 나서 스틸라리오이를 깨뜨림. 거짓 아바스를 낙타에 십자가 모양으로 매달아 에페소스를 돌게 함. 이후 소아시아의 은둔 수도자 투르크를 처형21 (Bonn p.114-115)
1417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볼모로 있던 바예지드의 아들이 요한 황제와 함께 공부하다 역병 중 세례를 청해 요한 황제가 대부가 됨. 이튿날 죽어 스투디오스 수도원에 안치20 (Bonn p.99)
1417년Iconium메흐메트가 카라만의 코니아를 점령하고 카라만은 시리아 산지로 도주했다가 항복, 영지를 돌려받고 서약21 (Bonn p.116-117)
1420년Thessalonica메흐메트의 동생 무스타파와 키네이테스가 테살로니케 부근에서 패해 도시로 피신, 데메트리오스 레온타리오스가 맞아 위로함22 (Bonn p.118)
1420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메흐메트가 무스타파 인도를 요구하나 마누엘은 거부하고, 두 사람을 감옥에서 내보내지 않겠다고 맹세. 무스타파는 렘노스로 보내져 연 30만 아스프로스 생활비를 메흐메트가 대기로 합의22 (Bonn p.119-121)
1421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마누엘이 사절을 이탈리아에 보내 몬페라토 후작의 딸을 요한에, 말라테스타 백작의 딸을 테오도로스에게 맞이함. 요한·테오도로스 혼례 거행20 (Bonn p.99-100)
1421년Adrianopolis사냥 중 멧돼지에 놀라 낙마한 메흐메트가 반신불수가 되고 이튿날 간질로 말을 잃고 밤에 숨짐. Ducas: 수많은 선대와 달리 독살·교살을 면한 유일한 술탄22 (Bonn p.123-124)
1421년Adrianopolis파샤들이 메흐메트의 죽음을 40일 숨기고 의사 둘에게 병세를 말하게 함. 내장을 파내 묻고 시신에 향유를 발라 침대에 눕혀 놓음22 (Bonn p.128)
1421년Prusa프루사에서 무라드를 황제로 선포. 바예지드 파샤가 무라드의 이름으로 연설하고 시신을 프루사의 생전 무덤에 안치23 (Bonn p.130-131)
1421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마누엘이 무라드에게 사절을 보내 유언대로 어린 두 왕자를 인도하라 요구하자 파샤는 이슬람 아이를 그리스도교도 손에서 키울 수 없다며 거부. 마누엘은 무스타파를 풀어줄 구상23 (Bonn p.132)
1421년Tenedos마누엘이 레온타리오스에게 삼단노선 10척을 주고 렘노스의 무스타파와 키네이테스를 데려가 케르소네소스에 내리고 트라키아의 군주로 세우라고 함. 두 사람은 비잔틴 황제의 뜻을 어기지 않기로 서약23-24 (Bonn p.134, 139)
1421년Callipolis무스타파 일행이 갈리폴리를 공격: 키네이테스가 상륙해 수비대를 몰아냄. 무스타파가 시민에게 연설하고 성채 일부가 투항, 갈리폴리 일대 주민이 환호24 (Bonn p.140-142)
1421년Adrianopolis아드리아노폴리스 인근 늪지 평원에서 대치: 바예지드 파샤의 군이 좌우익에서 무스타파 편으로 넘어가 파샤는 홀로 남음. 키네이테스가 파샤를 참수24 (Bonn p.144-151)
1421년Callipolis무스타파가 갈리폴리를 비잔틴에 넘기라는 협약을 깨고 거부: 이슬람교도를 이교도에게 넘길 수 없다. 레온타리오스는 성을 내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감24 (Bonn p.152-155)
1421년Phocaea포카이아 총독 조반니 아도르노가 무라드에게 배로 해협을 건너게 해주겠다고 제안, 무라드가 프루사에서 만나자고 답함. 포카이아의 명반(백반) 광산 사정도 적힘25 (Bonn p.164-165)
1422년Lopadium무라드가 프루사에서 로파디온으로 야간 진군해 다리를 선점하고 끊음. 무스타파는 갈리폴리에서 해협을 건너와 늪가에 진을 침25 (Bonn p.168)
1422년Lopadium두 군이 늪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자 무라드의 신하들이 키네이테스의 동생 함자를 불러 형을 배신시키면 아틴의 영지를 주겠다고 회유26 (Bonn p.168-169)
1426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요한이 몬페라토 출신 황후를 외모 탓에 멀리하자 황후가 갈라타의 제노바인과 짜고 탈출, 배로 이탈리아로 떠나 친정에서 수도원 생활20 (Bonn p.100-102)
1444년Varna[색인] 무라드가 유럽으로 건너와 바르나에서 헝가리 왕 라디슬라오스가 전사하고 그리스도교군이 크게 패함32 (색인 요약)
1446년Peloponnesus[색인] 무라드가 펠로폰네소스를 침공32 (색인 요약)
1448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색인] 요한 황제가 죽고 전제군주 콘스탄티노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와 황제 자리에 오름33 (색인 요약)
1451년Adrianopolis[색인] 무라드가 아들 메흐메트의 혼례를 치른 뒤 곧 죽음. 메흐메트 2세가 아드리아노폴리스에 와 황제로 선포되고, 동생을 교살하게 함33 (색인 요약)
1452년Bosporus[색인] 메흐메트가 보스포로스 좁은 목에 성채를 쌓자 비잔틴이 사절로 항의하나 메흐메트는 오만하게 답하고 협박. 콘스탄티노폴리스 인근 들판 약탈, 전쟁 선포34 (색인 요약)
1452년Bosporus[색인] 보스포로스를 지나던 베네치아 선박이 격침되고 선장과 승선자가 메흐메트 명령으로 잔혹하게 처형35 (색인 요약)
1452년Adrianopolis[색인] 포 주조공이 거대한 청동포를 만들고 아드리아노폴리스에서 시험35 (색인 요약)
1452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색인] 콘스탄티노스가 교황에게 원조를 청하고 교회 합동을 완수. 이시도로스 추기경이 교황 사절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와 성소피아에서 합동 예배36 (색인 요약)
1453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색인] 메흐메트가 거대한 청동포를 콘스탄티노폴리스 근처로 옮기게 하고, 투르크군이 흑해 연안 도시를 점령, 셀림브리아를 빼고 프로폰티스 연안 소도시를 차지37 (색인 요약)
1453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색인] 성이 함락: 성이 뚫리자 유스티니아니는 부하를 철수시키고 갈라타 사람과 배 몇 척이 도망. 투르크가 시민을 포로로 끌고 가고, 대공(노타라스)이 사로잡혀 감시당함40 (색인 요약)
1453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색인] 메흐메트가 도시에 입성해 성소피아로 가서 이맘에게 기도를 올리게 함. 콘스탄티노스 황제의 머리를 알아본 뒤 아우구스테이온 기둥에 매닮41 (색인 요약)
1453년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색인] 메흐메트가 노타라스를 위로하고 귀족 이름을 적게 함. 노타라스 아내를 찾아 위로하나 연회에 막내아들을 보내라 하자 거부, 메흐메트가 아들을 죽이게 하고 노타라스도 참수. 귀족은 몸값을 치른 뒤 모두 살해41 (색인 요약)
1453년Galata[색인] 메흐메트가 갈라타에 입성해 성벽 일부를 허물고, 성소피아를 모스크로 바꾸고 아드리아노폴리스로 돌아감. 노타라스 아내 죽음42 (색인 요약)
1454년Smedrovum[색인] 메흐메트가 세르비아에 공물을 부과하고 군주 게오르기오스에게 세르비아에서 떠나라 명령. 스메데레보 공격은 실패43 (색인 요약)
1455년Chius[색인 아닌 본문 장 머리] 이른 봄 메흐메트가 대함대를 키오스 침공에 보냄 (이후 서술 읽지 못함)45 (Bonn 장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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