둑카스 「역사」: 정사 사료. 다루는 해 1347년 ~ 1455년, 사건 100건을 해 순서로 정리했습니다. 원문 라이선스와 출처 포함.
| 등급 | 정사 |
|---|---|
| 시점 | 내부 시점 |
| 다루는 해 | 1347년 ~ 1455년 |
| 사건 수 | 사건 100건 · 지도에 놓은 77건 |
| 저자 | Doukas (Michael Doukas) |
| 원제 | Ducae Michaelis Nepotis Historia Byzantina |
지역 분포: 서아시아 68 · 남유럽(이탈리아·그리스·이베리아·발칸) 32
| 해 | 장소 | 사건 | 원문 위치 |
|---|---|---|---|
| 1347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칸타쿠제노스 군이 도시에 들어서고 궁에 갇힌 안나 황후와 어린 황제가 항복함. 칸타쿠제노스는 투르크 군에 선물을 주어 돌려보내고 사위 오르한에게 감사함 | 10 (Bonn p.38) |
| 1347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요한 5세와 칸타쿠제노스의 딸 헬레나의 혼례, 블라케르나이 성모 성당에서 대관. 칸타쿠제노스도 공동황제로 즉위, 아들 마태오스는 전제군주로 선포됨 | 10 (Bonn p.38-39) |
| 1350년 ~ 1357년 | Chersonesus | 오르한의 아들 술레이만이 람프사코스에서 해협을 건너 케르소네소스를 약탈. 마태오스 칸타쿠제노스가 헥사밀리온 부근에서 맞아 싸워 투르크 다수를 죽임 | 10 (Bonn p.39) |
| 1354년 | Tenedos | 이탈리아·독일에서 2년 지낸 요한이 테네도스에 닿아 제노바인 프란체스코 가텔루조와 협약: 제위를 되찾으면 누이 마리아를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 (Ducas의 연대 순서는 실제와 어긋날 수 있음) | 11 (Bonn p.40) |
| 1354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밤에 호데게트리아 문 앞에서 기름 항아리를 깨뜨려 소음을 내는 꾀로 문지기를 유인, 무장 500이 삼단노선에서 나와 성에 침입. 새벽에 요한 파라이올로고스 만세를 외치며 시민이 모임 | 11 (Bonn p.40-42) |
| 1354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칸타쿠제노스가 제위를 내려놓고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 생활을 함 (아토스 산) | 11 (Bonn p.43) |
| 1355년 | Mytilene | 요한이 매제 가텔루조에게 누이를 시집보내며 지참금으로 레스보스 섬을 줌. 가텔루조가 미틸레네에 자리 잡아 후손이 대대로 다스림 | 12 (Bonn p.45) |
| 1362년 | 오르한이 죽고 아들 무라드가 군주 자리를 이음 | 11 (Bonn p.43) | |
| 1369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칸타쿠제노스가 정사를 홀로 맡는 가운데, 향락에 빠진 사위 요한 5세를 책망하자 요한이 삼단노선 두 척으로 이탈리아로 떠남 | 10 (Bonn p.39-40) |
| 1373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무라드의 아들 쿤투제스와 요한의 아들 안드로니코스가 아버지를 몰아낼 음모를 꾸밈. 무라드가 쿤투제스의 눈을 멀게 하고 안드로니코스도 같게 하라고 요구 | 12 (Bonn p.43-44) |
| 1373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요한이 안드로니코스와 어린 손자 요한의 눈을 멀게 하고, 마누엘을 공동황제로, 테오도로스를 라케다이몬 군주로 세움. 안드로니코스는 아네마스 탑에 가둠 | 12 (Bonn p.44) |
| 1376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탑에서 탈출한 안드로니코스가 갈라타 제노바인의 도움으로 아버지와 전투를 벌인 끝에 도시에 들어가 황제로 선포되고 아버지와 형제들을 같은 탑에 가둠 | 12 (Bonn p.44-45) |
| 1390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바예지드가 조공과 요한의 아들 한 명을 100명 병사와 함께 보내라고 요구. 마누엘이 파견되어 바예지드 밑에서 복무. 바예지드는 곡물 반입을 막고 함대 60척으로 키오스를 불태움 | 13 (Bonn p.47) |
| 1390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요한이 황금문 방비를 쌓아 올림. 옛 성당(모든 성인·40인 순교자·성 모키오스)의 석재를 헐어 가져다 씀 | 13 (Bonn p.47-48) |
| 1391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바예지드가 황금문 방비를 허물라 명하고 어기면 프루사에 있는 마누엘의 눈을 멀게 하겠다고 위협. 통풍으로 누운 요한이 방비를 허물었으나 곧 죽음 | 13 (Bonn p.48-49) |
| 1391년 | Prusa | 아버지의 죽음을 들은 마누엘이 밤에 프루사에서 도망쳐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 즉위. 바예지드는 분노하여 도시 안에 이슬람 재판관(카디)을 두라는 등 부당한 요구를 보냄 | 13 (Bonn p.49) |
| 1394년 ~ 1396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바예지드가 도시를 봉쇄: 사방에 군사 1만 이상을 두어 반출입을 막자 도시에 기근이 닥치고, 시민은 땔감이 없어 높은 집을 헐어 불을 땜 | 13 (Bonn p.50) |
| 1395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마누엘이 교황과 프랑스·헝가리 왕에게 도시가 포위되어 굶주린다고 알리고 도움을 청함. 도움이 없으면 신앙의 적에게 넘어간다고 경고 | 13 (Bonn p.50) |
| 1396년 | Nicopolis | 플랑드르 백작·영국·프랑스·이탈리아 군이 헝가리의 지그문트와 합류, 니코폴리스에서 다뉴브 건너편으로 도하하여 바예지드와 대결을 준비 | 13 (Bonn p.51) |
| 1396년 | Nicopolis | 플랑드르 기병의 첫 돌격은 성공했으나 근위병 1만의 매복에 프랑크·헝가리군이 포위·패주. 부르고뉴 공(플랑드르 백작)과 많은 귀족이 포로가 되어 프루사로 보내졌다가 몸값으로 풀려남 | 13 (Bonn p.52) |
| 1399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바예지드가 도시를 요구하고 안드로니코스의 아들 요한(셀림브리아)을 앞세워 마누엘 퇴위를 압박. 시민 소요 속에 마누엘이 요한을 도시에 들이기로 하고 아내·자녀와 삼단노선으로 도시를 떠남 | 14 (Bonn p.54-55) |
| 1399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요한 7세가 입성하여 제위에 올라 바예지드의 조건대로 도시에 투르크 재판관을 두고 셀림브리아를 바예지드에게 넘김 | 15 (Bonn p.56) |
| 1400년 | Methone | 마누엘이 아내와 어린 아들들을 모도니(메토네)에 남기고 큰 배로 베네치아에 닿아 밀라노·제노바·피렌체·페라라·프랑스·독일을 돌며 제후들의 환대와 선물을 받음. 돌아와 메토네에서 가족과 조용히 지냄 | 14 (Bonn p.56) |
| 1400년 | Prusa | 프루사의 바예지드 앞에 티무르의 사절이 와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라 요구하자, 바예지드는 사절의 수염을 면도칼로 밀어 모욕하고 돌려보냄 | 15 (Bonn p.58) |
| 1400년 | Sebastia | 바예지드가 카파도키아의 큰 도시 세바스티아를 점령하고 아르메니아 대(大)쪽 국경을 넘어 아르신가를 손에 넣음 | 15 (Bonn p.58) |
| 1400년 | Sebastia | 티무르가 세바스티아를 갱도로 성벽 밑을 파서 무너뜨림. 시민을 결박해 구덩이에 산 채로 묻음 | 15 (Bonn p.59-60) |
| 1400년 | Damascus | 티무르가 포이니케·다마스쿠스까지 가서 모든 것을 불태우고 약탈, 많은 포로를 끌고 감 | 15 (Bonn p.61) |
| 1401년 | Halepum | 다마스쿠스 다음에 알레포를 무너뜨리고 많은 장인을 페르시아로 옮김. 이후 아랍인을 위협하고 사마르칸드로 돌아감 | 15 (Bonn p.61) |
| 1402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봄, 해가 쌍둥이자리를 지날 때 서쪽 하늘에 밝은 혜성이 나타나 가을 분점까지 이어짐. 두카스는 전쟁의 징조로 서술 | 16 (Bonn p.63) |
| 1402년 | Ancyra | 바예지드가 앙키라 인근 평원에 진을 쳤으나 사흘 사냥에 나간 사이 티무르가 물가 진지를 선점. 물이 없어 병사 5000이 갈증으로 죽음 | 16 (Bonn p.62-63) |
| 1402년 | Ancyra | 앙카라 전투: 티무르 군이 평원을 둥글게 에워싸 포위, 바예지드 측 속주 병력이 잇따라 티무르 쪽으로 넘어감 | 16 (Bonn p.65-66) |
| 1402년 | Ancyra | 세르비아의 스테파노스 라자레비치가 창기병 5000으로 돌파해 탈출구를 열고 바예지드에게 도망을 권했으나 거절당함. 스테파노스는 바예지드의 장남 무슬림과 함께 빠져나가 프루사로 감 | 16 (Bonn p.66-67) |
| 1402년 | Ancyra | 바예지드가 포로로 잡혀 티무르 앞에 끌려옴. 티무르는 아들과 체스를 두며 태연한 척함 | 16 (Bonn p.68-69) |
| 1402년 | Ancyra | 바예지드의 셋째 아들 메흐메트가 땅굴을 파서 아버지를 빼내려 했으나 새벽에 경비가 발견해 실패. 환관장 호치아페루지스는 참수당하고 바예지드는 쇠사슬로 결박됨 | 16 (Bonn p.70-71) |
| 1402년 | Prusa | 티무르가 코티아이온을 거쳐 프루사에 들어가 보물 창고를 비우고 바예지드의 아내·후궁과 라자르의 딸을 찾아냄 | 17 (Bonn p.72) |
| 1402년 | Smyrna | 티무르가 스미르나의 로도스 기사단 성채를 항구 입구에 돌을 쌓아 막아 공격. 성이 함락되자 피난한 그리스도교도 1000여 명을 끌어내 모두 죽이고 머리로 탑을 쌓음 | 17 (Bonn p.72-75) |
| 1402년 | Smyrna | 스미르나에서 머리와 돌을 한 줄씩 번갈아 쌓은 탑을 세움 (Ducas는 소름 끼치는 구경거리라 적음) | 17 (Bonn p.75) |
| 1403년 | Ephesus | 티무르가 에페소스에서 30일 머물며 주변 주민을 모아 고문하여 금은을 빼앗은 뒤 카리아의 밀라사로 감. 혹한으로 짐승과 새가 얼어 죽음 | 17 (Bonn p.76) |
| 1403년 | 프리기아 살루타리아(투르크어 카라사르)에서 바예지드가 고난 끝에 죽음. 독을 스스로 마셨다고 말하는 이가 많음. 유해는 프루사의 생전 무덤에 묻힘 | 17 (Bonn p.77) | |
| 1403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마누엘이 비잔티온으로 돌아와 조카에게서 정권을 되찾음. 바예지드의 장남 무슬림(술레이만)이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와 마누엘의 발 앞에 엎드려 아들이 되겠다고 서약 | 18 (Bonn p.78) |
| 1403년 | Thessalonica | 술레이만이 테살로니케·스트리몬 일대 도시·펠로폰네소스 등을 돌려주기로 약속. 데메트리오스 레온타리오스가 테살로니케에 들어가 요한을 테살리아 전체의 황제로 선포 | 18 (Bonn p.79) |
| 1404년 | Ephesus | 스미르나의 지방관 카라수파시의 아들 키네이테스가 에페소스를 몇 날 포위해 차지하고 술레이만에게 서신을 보내 충성을 표함 | 18 (Bonn p.80-81) |
| 1405년 | Ephesus | 카리아의 만타키아스가 아틴의 아들 호무르와 함께 6000으로 에페소스를 공격, 도시가 이틀 만에 잿더미가 됨. 키네이테스의 아버지는 성채에서 가을까지 버티다 항복 | 18 (Bonn p.81-82) |
| 1405년 | Ephesus | 마말로스 탑에 갇혔던 키네이테스의 아버지와 일행이 연회로 경비를 취하게 한 뒤 밧줄로 탈출, 키네이테스가 보낸 쌍단노선으로 스미르나로 돌아감. 겨울에 키네이테스가 에페소스를 약탈 | 18 (Bonn p.82-83) |
| 1405년 | Ephesus | 술레이만이 프루사·로파디온·페르가몬을 거쳐 에페소스로 진군. 카라만 3만·카르미안 1만·키네이테스 5천이 맞섬. 키네이테스가 몰래 진영을 빠져나가 목에 올가미를 걸고 술레이만에게 나아가 용서를 빎. 술레이만은 4개월간 에페소스에서 향락으로 시간을 보냄 | 18 (Bonn p.84-86) |
| 1409년 | Sinope | 아틴·메흐메트와 앙키라에 있던 모세스(무사)가 시노페의 스펜티아르에게 도망쳐 그의 도움으로 왈라키아로 건너감 | 19 (Bonn p.88) |
| 1409년 | Valachia | 모세스가 왈라키아 보이보다 미르체아를 찾아 신분을 밝히자 자유롭게 오가도록 허락받음. 다뉴브 변경 총독들이 술레이만에게 경고 | 19 (Bonn p.88) |
| 1410년 | Lampsacus | 제노바 귀족 살라그루조가 술레이만의 명으로 람프사코스에 갈리폴리 맞은편 큰 탑을 쌓고, 술레이만이 후히 보상. 술레이만은 갈리폴리에서 술과 향락에 빠짐 | 19 (Bonn p.88-89) |
| 1411년 | Adrianopolis | 모세스가 이스트로스 일대 투르크를 모아 트라키아·테살리아·일리리쿰의 군주로 선포됨. 술레이만이 보낸 군대를 쳐부수고 소피아 성문까지 추격 | 19 (Bonn p.89) |
| 1411년 | Adrianopolis | 뒤늦게 정신 차린 술레이만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가던 도중 소수 기병만 남고 추종자들이 모세스에게 넘어감. 한 마을에서 형제 5명의 궁수에게 말에서 떨어져 목이 잘림. 모세스가 아드리아노폴리스 시민의 환영을 받고 서방 군주로 선포 | 19 (Bonn p.90) |
| 1411년 | Adrianopolis | 모세스가 술레이만을 죽인 마을을 주민 전체와 함께 오두막에 가두고 불태움 | 19 (Bonn p.90-91) |
| 1411년 | Servia | 모세스가 세르비아를 쳐서 성 셋을 함락해 주민을 학살하고 시체 위에서 연회를 엶 | 19 (Bonn p.92) |
| 1411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모세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성 기계를 마련하고 테살로니케를 공격, 마누엘이 옮겨 놓은 주민이 떠난 도시들을 불태움 | 19 (Bonn p.92-93) |
| 1412년 | Scutarium | 마누엘이 프루사의 메흐메트에게 스쿠타리온으로 오라 청해 삼단노선으로 데려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3일 환대. 메흐메트가 모세스와 싸워 두 번 지고 도시로 피신 | 19 (Bonn p.94-95) |
| 1413년 | 메흐메트가 군을 둘로 나눠 한 갈래는 흑해로, 한 갈래는 아드리아노폴리스로 보냄. 모세스 군이 메흐메트 편으로 넘어가고 모세스는 습지에서 오른팔이 잘려 죽음. 시신은 프루사에 묻힘 | 19 (Bonn p.95-96) | |
| 1413년 | Ephesus | 모세스와 메흐메트가 싸우는 사이 키네이테스가 트라키아에서 도망쳐 소아시아로 돌아와 에페소스를 차지하고 술레이만이 둔 수비대장을 목 베어 소아시아 전역을 장악 | 19 (Bonn p.97) |
| 1413년 | Adrianopolis | 메흐메트가 마누엘의 사절을 환대, 협약대로 흑해 연안 성채와 테살리아·프로폰티스 인근 도시를 돌려주고 "아버지 마누엘이 하시는 대로 따르겠다"고 답함 | 20 (Bonn p.97) |
| 1414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메흐메트의 아들 무라드는 이후 아마시아로. 한편 마누엘이 아들 요한에게 러시아 공주를 신부로 맞이하고 안나로 개명, 3년 뒤 역병으로 안나 죽음 | 20 (Bonn p.98) |
| 1414년 | Cyme | 메흐메트가 소아시아로 건너가 페르가몬·키메(퀴메)·카가지크 성채·님파이온을 차례로 평정 | 21 (Bonn p.103-104) |
| 1414년 | Prusa | 카라만이 메흐메트가 트라키아에 간 사이 프루사를 약탈하고 바예지드의 유골을 무덤에서 파내 불태움. 메흐메트가 되돌아가 응징 | 21 (Bonn p.103) |
| 1415년 | Peloponnesus | 마누엘이 수도 항을 떠나 펠로폰네소스에 가 아카이아 공을 복종시키고 나바라 용병 일파를 굴복시킴. 아들 테오도로스를 펠로폰네소스 전체의 군주로 남겨두고 귀환, 갈리폴리에서 메흐메트와 만남 | 20 (Bonn p.102) |
| 1415년 | Smyrna | 메흐메트가 스미르나를 포위: 10일간 공격하자 키네이테스의 어머니와 아내가 용서를 빌러 나와 도시를 넘김. 인근 섬의 군주와 로도스 기사단장이 메흐메트를 찾아 축하 | 21 (Bonn p.105-106) |
| 1415년 | Smyrna | 로도스 기사단장이 항구 어귀에 지으려던 탑을 투르크군이 밤에 허물자, 기사단장이 항의. 메흐메트는 카리아·리키아 경계에 원하는 만큼 땅을 주겠다고 허락 | 21 (Bonn p.106-108) |
| 1415년 | 카리아에 성 베드로 성채(페트로니온)를 세움. 만타키아스의 방해는 실패 | 33 [표기 오류: 21장 이어짐] (Bonn p.115-116) | |
| 1416년 | Callipolis | 낙소스 공작을 벌하려 투르크 함대 30척이 안드로스·파로스·멜로스 약탈. 베네치아 함대가 갈리폴리 항구 앞에서 투르크 함대를 격파, 제독 지알리 베그를 난도질 | 21 (Bonn p.109-110) |
| 1416년 | Tenedos | 승리한 베네치아군이 테네도스에서 투르크 포로를 모두 죽이고, 돈 받고 노 젓던 그리스도교도는 섬 전역의 교수대에 매닮 | 21 (Bonn p.110) |
| 1416년 | Stylarius | 스틸라리온 산에서 재산 공유를 설교한 Mustafa(거짓 아바스)의 추종자가 길목을 지켜 술레이만의 후임 총독 수스만의 아들과 군대 전멸시킴 | 21 (Bonn p.112-113) |
| 1416년 | Ephesus | 12세 무라드가 바예지드 파샤와 토벌 나서 스틸라리오이를 깨뜨림. 거짓 아바스를 낙타에 십자가 모양으로 매달아 에페소스를 돌게 함. 이후 소아시아의 은둔 수도자 투르크를 처형 | 21 (Bonn p.114-115) |
| 1417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볼모로 있던 바예지드의 아들이 요한 황제와 함께 공부하다 역병 중 세례를 청해 요한 황제가 대부가 됨. 이튿날 죽어 스투디오스 수도원에 안치 | 20 (Bonn p.99) |
| 1417년 | Iconium | 메흐메트가 카라만의 코니아를 점령하고 카라만은 시리아 산지로 도주했다가 항복, 영지를 돌려받고 서약 | 21 (Bonn p.116-117) |
| 1420년 | Thessalonica | 메흐메트의 동생 무스타파와 키네이테스가 테살로니케 부근에서 패해 도시로 피신, 데메트리오스 레온타리오스가 맞아 위로함 | 22 (Bonn p.118) |
| 1420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메흐메트가 무스타파 인도를 요구하나 마누엘은 거부하고, 두 사람을 감옥에서 내보내지 않겠다고 맹세. 무스타파는 렘노스로 보내져 연 30만 아스프로스 생활비를 메흐메트가 대기로 합의 | 22 (Bonn p.119-121) |
| 1421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마누엘이 사절을 이탈리아에 보내 몬페라토 후작의 딸을 요한에, 말라테스타 백작의 딸을 테오도로스에게 맞이함. 요한·테오도로스 혼례 거행 | 20 (Bonn p.99-100) |
| 1421년 | Adrianopolis | 사냥 중 멧돼지에 놀라 낙마한 메흐메트가 반신불수가 되고 이튿날 간질로 말을 잃고 밤에 숨짐. Ducas: 수많은 선대와 달리 독살·교살을 면한 유일한 술탄 | 22 (Bonn p.123-124) |
| 1421년 | Adrianopolis | 파샤들이 메흐메트의 죽음을 40일 숨기고 의사 둘에게 병세를 말하게 함. 내장을 파내 묻고 시신에 향유를 발라 침대에 눕혀 놓음 | 22 (Bonn p.128) |
| 1421년 | Prusa | 프루사에서 무라드를 황제로 선포. 바예지드 파샤가 무라드의 이름으로 연설하고 시신을 프루사의 생전 무덤에 안치 | 23 (Bonn p.130-131) |
| 1421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마누엘이 무라드에게 사절을 보내 유언대로 어린 두 왕자를 인도하라 요구하자 파샤는 이슬람 아이를 그리스도교도 손에서 키울 수 없다며 거부. 마누엘은 무스타파를 풀어줄 구상 | 23 (Bonn p.132) |
| 1421년 | Tenedos | 마누엘이 레온타리오스에게 삼단노선 10척을 주고 렘노스의 무스타파와 키네이테스를 데려가 케르소네소스에 내리고 트라키아의 군주로 세우라고 함. 두 사람은 비잔틴 황제의 뜻을 어기지 않기로 서약 | 23-24 (Bonn p.134, 139) |
| 1421년 | Callipolis | 무스타파 일행이 갈리폴리를 공격: 키네이테스가 상륙해 수비대를 몰아냄. 무스타파가 시민에게 연설하고 성채 일부가 투항, 갈리폴리 일대 주민이 환호 | 24 (Bonn p.140-142) |
| 1421년 | Adrianopolis | 아드리아노폴리스 인근 늪지 평원에서 대치: 바예지드 파샤의 군이 좌우익에서 무스타파 편으로 넘어가 파샤는 홀로 남음. 키네이테스가 파샤를 참수 | 24 (Bonn p.144-151) |
| 1421년 | Callipolis | 무스타파가 갈리폴리를 비잔틴에 넘기라는 협약을 깨고 거부: 이슬람교도를 이교도에게 넘길 수 없다. 레온타리오스는 성을 내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감 | 24 (Bonn p.152-155) |
| 1421년 | Phocaea | 포카이아 총독 조반니 아도르노가 무라드에게 배로 해협을 건너게 해주겠다고 제안, 무라드가 프루사에서 만나자고 답함. 포카이아의 명반(백반) 광산 사정도 적힘 | 25 (Bonn p.164-165) |
| 1422년 | Lopadium | 무라드가 프루사에서 로파디온으로 야간 진군해 다리를 선점하고 끊음. 무스타파는 갈리폴리에서 해협을 건너와 늪가에 진을 침 | 25 (Bonn p.168) |
| 1422년 | Lopadium | 두 군이 늪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자 무라드의 신하들이 키네이테스의 동생 함자를 불러 형을 배신시키면 아틴의 영지를 주겠다고 회유 | 26 (Bonn p.168-169) |
| 1426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요한이 몬페라토 출신 황후를 외모 탓에 멀리하자 황후가 갈라타의 제노바인과 짜고 탈출, 배로 이탈리아로 떠나 친정에서 수도원 생활 | 20 (Bonn p.100-102) |
| 1444년 | Varna | [색인] 무라드가 유럽으로 건너와 바르나에서 헝가리 왕 라디슬라오스가 전사하고 그리스도교군이 크게 패함 | 32 (색인 요약) |
| 1446년 | Peloponnesus | [색인] 무라드가 펠로폰네소스를 침공 | 32 (색인 요약) |
| 1448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색인] 요한 황제가 죽고 전제군주 콘스탄티노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와 황제 자리에 오름 | 33 (색인 요약) |
| 1451년 | Adrianopolis | [색인] 무라드가 아들 메흐메트의 혼례를 치른 뒤 곧 죽음. 메흐메트 2세가 아드리아노폴리스에 와 황제로 선포되고, 동생을 교살하게 함 | 33 (색인 요약) |
| 1452년 | Bosporus | [색인] 메흐메트가 보스포로스 좁은 목에 성채를 쌓자 비잔틴이 사절로 항의하나 메흐메트는 오만하게 답하고 협박. 콘스탄티노폴리스 인근 들판 약탈, 전쟁 선포 | 34 (색인 요약) |
| 1452년 | Bosporus | [색인] 보스포로스를 지나던 베네치아 선박이 격침되고 선장과 승선자가 메흐메트 명령으로 잔혹하게 처형 | 35 (색인 요약) |
| 1452년 | Adrianopolis | [색인] 포 주조공이 거대한 청동포를 만들고 아드리아노폴리스에서 시험 | 35 (색인 요약) |
| 1452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색인] 콘스탄티노스가 교황에게 원조를 청하고 교회 합동을 완수. 이시도로스 추기경이 교황 사절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와 성소피아에서 합동 예배 | 36 (색인 요약) |
| 1453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색인] 메흐메트가 거대한 청동포를 콘스탄티노폴리스 근처로 옮기게 하고, 투르크군이 흑해 연안 도시를 점령, 셀림브리아를 빼고 프로폰티스 연안 소도시를 차지 | 37 (색인 요약) |
| 1453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색인] 성이 함락: 성이 뚫리자 유스티니아니는 부하를 철수시키고 갈라타 사람과 배 몇 척이 도망. 투르크가 시민을 포로로 끌고 가고, 대공(노타라스)이 사로잡혀 감시당함 | 40 (색인 요약) |
| 1453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색인] 메흐메트가 도시에 입성해 성소피아로 가서 이맘에게 기도를 올리게 함. 콘스탄티노스 황제의 머리를 알아본 뒤 아우구스테이온 기둥에 매닮 | 41 (색인 요약) |
| 1453년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 Cpolis | [색인] 메흐메트가 노타라스를 위로하고 귀족 이름을 적게 함. 노타라스 아내를 찾아 위로하나 연회에 막내아들을 보내라 하자 거부, 메흐메트가 아들을 죽이게 하고 노타라스도 참수. 귀족은 몸값을 치른 뒤 모두 살해 | 41 (색인 요약) |
| 1453년 | Galata | [색인] 메흐메트가 갈라타에 입성해 성벽 일부를 허물고, 성소피아를 모스크로 바꾸고 아드리아노폴리스로 돌아감. 노타라스 아내 죽음 | 42 (색인 요약) |
| 1454년 | Smedrovum | [색인] 메흐메트가 세르비아에 공물을 부과하고 군주 게오르기오스에게 세르비아에서 떠나라 명령. 스메데레보 공격은 실패 | 43 (색인 요약) |
| 1455년 | Chius | [색인 아닌 본문 장 머리] 이른 봄 메흐메트가 대함대를 키오스 침공에 보냄 (이후 서술 읽지 못함) | 45 (Bonn 장 머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