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47년 — 가후전 「年七十七」(223년 졸)에서 역산
사망 223년 — 황초 4년(223) 전후 — 77세로 졸. 시호 숙후. 전문은 「年七十七薨」(연도 직접 명기 없음)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2년 | 장안 | (이각·곽사를 따라 장안에서 활동) | 기록 |
| 196년 | 장안 | 광록대부·선의장군 | 추정 |
| 197년 | 화음 | (단외에 의탁→장수에게) | 추정 |
| 198년 | 완 | 장수 휘하 모사 | 기록 |
| 199년 | 완 | 장수 휘하 모사 | 추정 |
| 200년 | 완 | 집금오·도정후 | 기록 |
| 211년 | 동관 | 태중대부 | 기록 |
| 218년 | 업 | 태중대부 | 기록 |
| 222년 | 낙양 | 태위·위수향후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88년 | 후한 조정 | (무위 출신·효렴·낭) | 불명 |
| 189~191년 | 후한 조정 | 태위연→평진도위→토로교위 | 불명 |
| 192년 | 기타·재야 | (이각·곽사를 따라 장안에서 활동) | 기록 |
| 193~195년 | 기타·재야 | (이각·곽사를 따라 장안에서 활동) | 불명 |
| 196년 | 기타·재야 | 광록대부·선의장군 | 추정 |
| 197년 | 기타·재야 | (단외에 의탁→장수에게) | 추정 |
| 198년 | 기타·재야 | 장수 휘하 모사 | 기록 |
| 199년 | 기타·재야 | 장수 휘하 모사 | 추정 |
| 200년 | 위 | 집금오·도정후 | 기록 |
| 201~207년 | 위 | 참사공군사 | 불명 |
| 208~210년 | 위 | 태중대부 | 불명 |
| 211년 | 위 | 태중대부 | 기록 |
| 212~217년 | 위 | 태중대부 | 불명 |
| 218년 | 위 | 태중대부 | 기록 |
| 219년 | 위 | 태중대부 | 불명 |
| 220~221년 | 위 | 태위·위수향후 | 불명 |
| 222년 | 위 | 태위·위수향후 | 기록 |
| 223년 | 위 | 태위 | 불명 |
동탁이 죽자 흩어지려는 이각·곽사에게 장안을 공격해 동탁의 원수를 갚자고 권한다.
정사 가후전: 동탁이 패하고 우보도 죽어 장졸이 흩어지려 하자 가후가 "장안에서 양주 사람을 모두 베자는 논의가 있다. 군을 거느려 서쪽으로 가 장안을 쳐야 한다"고 권했고 이각이 따랐다.
연의: 연의 10회
관련: 장안 공방(이각·곽사)
출전: 三國志 卷10 「不如率衆而西所在收兵以攻長安爲董公報仇」
조조군이 퇴각하자 추격하면 패하나 곧바로 다시 추격하면 이긴다고 장수에게 말하고 그대로 맞힌다.
정사 가후전: 조조가 물러나자 장수가 추격하려 했으나 가후가 "追必敗"라 했고 장수가 패하자 가후는 "서둘러 다시 쫓으면 반드시 이긴다"고 해 과연 이겼다. 가후는 "조조가 직접 뒤를 끊었고 나라 안에 변고가 생겨 급히 물러난 것"이라 설명했다.
연의: 연의 16회
출전: 三國志 卷10 「追必敗」 / 三國志 卷10 「促更追之更戰必勝」
관도 직전 원소가 보낸 초청을 거절하고 장수에게 조조에게 귀의하도록 설득한다.
정사 가후전: 원소가 장수를 초청하며 가후에게도 서신을 보내자 가후가 장수 자리에서 원소의 사자에게 "형제도 용납하지 못하면서 천하 국사를 용납하겠느냐"고 말했고 장수에게 조조에게 갈 세 가지 까닭을 대 귀의를 권했다.
연의: 연의 16회
관련: 관도 전투
출전: 三國志 卷10 「歸謝袁本初兄弟不能相容而能容天下國士乎」 / 三國志 卷10 「夫曹公奉天子以令天下」
관도에서 군량이 다해 고민하는 조조에게 "기회를 잡아 결단하면 된다"고 권한다.
정사 가후전: 원소가 관도에서 조조를 포위하자 조조가 계책을 묻자 가후가 "공은 밝음·용맹·인재 등용·결단에서 원소를 이기는데도 반년째 못 끝낸 것은 만전만 생각하기 때문이니 때를 잡아 결단하면 곧 정해질 것"이라 했다.
연의: 연의 30회
관련: 관도 전투
출전: 三國志 卷10 「有此四勝而半年不定者但顧萬全故也」
위남에서 마초·한수가 땅을 떼 화해하고 인질을 요구하자 거짓으로 허락하고 이간하자고 건의한다.
정사 가후전: 위남에서 마초 등이 땅을 떼 화해하자고 요구하자 가후가 거짓으로 허락하라고 했고, 다시 계책을 묻자 "이간할 뿐"이라 했으며 조조가 그대로 따라 한수·마초를 깼다.
연의: 연의 59회
출전: 三國志 卷10 「離之而已」 / 三國志 卷10 「卒破遂超詡本謀也」
조비와 조식이 후계를 다툴 때 조비에게 "덕을 높이고 자식의 도리를 어기지 말라"고 일러 주고 조조에게는 "원소·유표 부자를 생각했다"고 답한다.
정사 가후전: 조비가 자신을 지킬 방법을 묻자 가후가 "덕과 도량을 넓히고 소박한 선비의 일을 하며 아들의 도리를 어기지 마라"고 했고, 조조가 좌우를 물리고 묻자 한참 묵묵하다 "원본초·유경승 부자를 생각했다"고 답해 조조가 크게 웃고 태자가 정해졌다.
연의: 연의 32회
출전: 三國志 卷10 「願將軍恢崇德度躬素士之業」 / 三國志 卷10 「思袁本初劉景升父子也」
문제가 오·촉 중 먼저 칠 곳을 묻자 문덕으로 변화를 기다리라 하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강릉 전투에서 사졸이 많이 죽는다.
정사 가후전: 문제가 오·촉 중 무엇을 먼저 칠지 묻자 가후는 "유비는 웅재, 제갈량은 치국에 능하고 손권은 허실을 알며 육손은 병세를 안다. 먼저 문을 닦고 뒤에 무를 써야 한다"고 답했으나 문제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뒤에 강릉 전투로 사졸이 많이 죽었다.
연의: 연의 14회
출전: 三國志 卷10 「臣以爲當今宜先文後武」 / 三國志 卷10 「後興江陵之役士卒多死」
정사 무제기·장수전: 197년 정월 조조가 완에 이르자 장수가 항복했다가 곧 뉘우쳐 다시 반란했다. 장수전은 조조가 장제의 아내를 들이자 장수가 한을 품고 습격했다고 적는다. 조조는 싸움에 졌고 유시에 맞았으며 장자 조앙과 조카 조안민이 죽었다. 전위가 문을 지키며 버텨 조조가 가벼운 기병으로 빠져나갔고 전위도 전사했다. 연의 16회는 장수 숙모 추씨와의 관계, 가후의 계책으로 그린다.
연의: 연의 16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8 | 이각·곽사에게 장안 공격을 권해 동탁 사후 세력을 잇게 했고 이후 장수·조조·조비를 차례로 보좌했다(가후전). |
| 무력 | 평가 불가 | 무용 기록은 없다. |
| 지력 | 98 | 조조가 장수군을 추격하는 정황을 읽고 "추격하면 패하고 다시 쫓으면 이긴다"고 예측해 두 번 맞혔다(가후전). |
| 정치 | 70 | 조비의 태자 지위를 위한 처세를 일러 주고 조조에게 "원소·유표 부자를 생각했다"고 답했다(가후전). |
| 매력 | 55 | 문을 닫고 사교를 끊어 혼사도 높은 집과 맺지 않았으나 천하에서 지모를 논할 때 가후를 먼저 꼽았다(가후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가후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