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기록 없음(13세·20여 세 기록)
사망 232년 — 졸년 전문에 명기 없음 — 태화 6년(232) 병으로 태중대부, 이후 대홍려 2년·태중대부 거쳐 졸. 이 파일은 232년까지만 칸을 둠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8년 | 수춘 | (허소 평·정보 제거 후 유훈에게 군을 맡김) | 추정 |
| 215년 | 한중 | 주부→행군장사·영군 | 기록 |
| 220년 | 낙양 | 시중·관내후 | 기록 |
| 224년 | 광릉 | 시중 | 기록 |
| 228년 | 양평(襄平) | 시중·동정후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96년 | 기타·재야 | (회남 성덕 출신·한 종실 후예·양주 호걸 대치) | 불명 |
| 197년 | 기타·재야 | (허소 평·정보 제거 후 유훈에게 군을 맡김) | 불명 |
| 198년 | 기타·재야 | (허소 평·정보 제거 후 유훈에게 군을 맡김) | 추정 |
| 199년 | 기타·재야 | (허소 평·정보 제거 후 유훈에게 군을 맡김) | 불명 |
| 200~214년 | 위 | 사공창조연 | 불명 |
| 215년 | 위 | 주부→행군장사·영군 | 기록 |
| 216~219년 | 위 | 주부→행군장사·영군 | 불명 |
| 220년 | 위 | 시중·관내후 | 기록 |
| 221~223년 | 위 | 시중·관내후 | 불명 |
| 224년 | 위 | 시중 | 기록 |
| 225~227년 | 위 | 시중 | 불명 |
| 228년 | 위 | 시중·동정후 | 기록 |
| 229~231년 | 위 | 시중·동정후 | 불명 |
| 232년 | 위 | 태중대부 | 불명 |
정보를 직접 쳐 죽이고 그 군을 안정시킨 뒤 유훈에게 맡긴다.
정사 유엽전: 양주 호걸 정보가 백성을 강남으로 끌고 가려 유엽에게 앞장서라 하자 유엽은 연회에서 정보를 직접 쳐 죽이고 군령으로 무리를 제압했다. 무리가 유엽을 추대했으나 한 종실로서 병권을 원하지 않아 부곡을 여강태수 유훈에게 넘겼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4 「曄因自引取佩刀斫殺寶斬其首以令其軍」 / 三國志 卷14 「遂委其部曲與廬江太守劉勛」
장로 정벌 중 한중에서 "이어서 공격해야 한다"고 건의해 장로를 달아나게 하고, 이어 촉을 바로 치자고 권한다.
정사 유엽전: 한중에서 산이 험하고 식량이 부족해 조조가 돌아가려 했으나 유엽이 장로를 칠 수 있다고 판단해 급히 "공격하자"고 건의했고 장로는 달아났다. 유엽은 "유비는 촉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촉인이 의지하지 않으니 이때 압박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했으나 조조는 듣지 않고 군을 돌렸다.
연의: 연의 67회
출전: 三國志 卷14 「不如致攻遂進兵多出弩以射其營魯奔走漢中遂平」 / 三國志 卷14 「曄策魯可克加糧道不繼」
문제가 관우의 원수를 갚으려는 유비의 출병을 예측하라 하자 유엽만 "반드시 출병한다"고 답한다.
정사 유엽전: 황초 원년 문제가 유비가 관우를 위해 오를 칠지 묻자 군신은 모두 안 칠 것이라 했으나 유엽만 "유비는 위무로 스스로 강해지려 하니 반드시 군을 써 보일 것"이라 했고 유비는 과연 출병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4 「蜀雖狹弱而備之謀欲以威武自強勢必用眾以示其有餘」 / 三國志 卷14 「後備果出兵擊吳」
오가 칭번하자 모두 축하했으나 유엽만 "곤란을 틈타 신하를 청하는 것이니 믿기 어렵다"며 기습을 주장한다.
정사 유엽전: 오가 번을 칭하며 사신을 보내자 조신이 모두 축하했으나 유엽은 "오는 내신의 마음이 없은 지 오래다. 궁함을 틈타 습격해야 한다"고 했고, 손권을 왕으로 봉하는 것에도 반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연의: 연의 67회
출전: 三國志 卷14 「因難求臣必難信也」 / 三國志 卷14 「夫一日縱敵數世之患不可不察也」
광릉 사구에 행차한 문제에게 "손권은 직접 오지 않을 것"이라 예측하고 그대로 된다.
정사 유엽전: 황초 5년 문제가 광릉 사구에 행차하자 군신은 손권이 직접 올 것이라 했으나 유엽은 "별장을 시켜 강호를 건널 것이니 병을 갖추고 때를 볼 뿐"이라 했고, 손권은 과연 오지 않아 문제가 군을 돌리며 "경의 헤아림이 옳았다"고 했다.
연의: 연의 67회
출전: 三國志 卷14 「彼謂陛下欲以萬乘之重牽己而超越江湖者在於別將」 / 三國志 卷14 「權果不至帝乃旋師」
공손연이 숙부의 자리를 빼앗자 새로 선 틈을 타 먼저 치자고 건의하나 뒤에 공손연이 반란한다.
정사 유엽전: 요동태수 공손연이 숙부의 지위를 빼앗아 스스로 서자 유엽은 "공손씨는 대대로 요동을 다스려 호이를 제어하기 어려우니 새로 선 이때 불의에 병을 보내 상모하면 군을 수고롭게 하지 않고 평정할 수 있다"고 했으나 뒤에 공손연은 결국 반란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4 「不如因其新立有黨有仇先其不意以兵臨之」 / 三國志 卷14 「後淵竟反」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군 지휘 기록은 없다(유엽전). |
| 무력 | 평가 불가 | 무용 기록은 없으나 20여 세에 정보를 직접 쳐 죽이고 군을 장악했다(유엽전). |
| 지력 | 94 | 장로 토벌 때 "촉이 격문 한 장으로 평정될 때"라 했고 유비의 보복전·오의 칭번의 진의를 모두 맞혔다(유엽전). |
| 정치 | 68 | 조조·문제·명제 3대에 걸쳐 모신 시중·대홍려·태중대부로 정무 자문을 맡았다(유엽전). |
| 매력 | 59 | "위에는 심복이 되고 한에는 지엽"이라 하여 사람을 사귀지 않았다(유엽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유엽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