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65년경(추정) — 생년 불명(165년경 추정).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17년 — 사망 연도 불명 — 최염 사후(216) 모함으로 면직된 뒤 집에서 졸(모개전). 217년경으로 추정.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4년 | 업 | 동조연(최염과 함께 선거) | 추정 |
| 205년 | 업 | 동조연(최염과 함께 선거) | 추정 |
| 206년 | 업 | 동조연(최염과 함께 선거) | 추정 |
| 207년 | 업 | 동조연(최염과 함께 선거) | 추정 |
| 213년 | 업 | 상서복야(위국 초건) — 선거 담당 | 기록 |
| 214년 | 업 | 상서복야 | 추정 |
| 215년 | 업 | 상서복야 | 추정 |
| 216년 | 업 | 상서복야 → 투옥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92~195년 | 위 | 치중종사 → 막부 공조 | 불명 |
| 196~203년 | 위 | 막부 공조 | 불명 |
| 204~207년 | 위 | 동조연(최염과 함께 선거) | 추정 |
| 208~212년 | 위 | 동조연 → 우군사 | 불명 |
| 213년 | 위 | 상서복야(위국 초건) — 선거 담당 | 기록 |
| 214~215년 | 위 | 상서복야 | 추정 |
| 216년 | 위 | 상서복야 → 투옥 | 기록 |
| 217년 | 위 | 서인(면직) → 졸 | 불명 |
조조가 연주를 다스릴 때 치중종사로 불려가 '천자를 받들어 불신을 호령하고 경작을 닦아 군자를 쌓으라'고 건의한다. 연도는 본문에 없어 조조가 연주에 임한 192년경으로 추정.
정사 모개전: 조조가 연주에 임하자 모개를 치중종사로 불렀다. 모개는 '지금 천하가 분붕하고 국주가 옮겨 다니고 백성이 업을 잃어 군량 저축이 없다. 원소·유표는 사민이 많으나 원대한 계책이 없다. 군사는 의로우면 이기고 지위는 재물로 지키니 천자를 받들어 불신을 호령하고 경작을 닦아 군자를 쌓으면 패왕의 업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조조가 받아들이고 막부 공조로 옮겼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본 「夫兵義者勝守位以财宜奉天子以令不臣脩耕植畜軍资如此則霸王之業可成也太祖敬納其言转幕府功曹」
위국 초건 때 상서복야가 되어 다시 선거를 맡고, 조조가 조식을 아껴 후계가 정해지지 않은 때 '적서를 가리지 못해 멸망한 원소의 예를 보라'며 은밀히 간한다. 조조가 훗날 '나라의 사직, 나의 주창'이라 칭한다. 위국 건립은 213년.
정사 모개전: 위국이 처음 세워지자 모개는 상서복야가 되어 다시 선거를 맡았다. 태자가 정해지지 않고 임치후 조식이 총애를 받자 모개가 '근자에 원소가 적서를 가리지 못해 종가를 멸하고 나라를 잃었으니 폐립은 큰 일이라 들을 것이 아니다'라고 은밀히 간했다. 뒤에 군료 모임에서 모개가 옷을 갈아입으러 일어나자 조조가 눈짓하며 '이는 옛적의 나라의 사직이요 나의 주창이다'라 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본 「魏國初建爲尚書僕射復典选舉時太子未定而臨菑侯植有寵玠密諫曰近者袁紹以嫡庶不分覆宗灭國废立大事非所宜聞」
최염이 죽은 뒤 속으로 불만을 품다 '검은 얼굴 새겨진 반역자의 처자가 관노비가 되어 하늘이 비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모함받아 투옥되고, 환계·화흡의 구원으로 면직되어 집에서 졸한다. 연도는 최염 사후(216) 직후로 추정.
정사 모개전: 최염이 죽자 모개는 속으로 불쾌했다. 뒤에 모개가 '검은 얼굴의 반역자를 보니 처자가 관노비가 되었다,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는 까닭이 이것'이라 했다는 고발이 있어 조조가 크게 노해 모개를 하옥했다. 대리 종요가 모개를 문초했으나 모개는 모함이라 반박했다. 환계·화흡이 구원을 말해 모개는 면직되어 집에서 죽었고, 조조가 관기·전백을 내리고 아들 모기를 낭중으로 삼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본 「時桓階和洽进言救玠玠遂免黜卒于家」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군 지휘 기록 없음. |
| 무력 | 평가 불가 | 무용 기록 없음. |
| 지력 | 75 | '천자를 받들어 불신을 호령하고, 경작을 닦아 군자를 쌓으라'고 조조에게 건의했다(모개전). |
| 정치 | 80 | 동조연·상서복야로 최염과 함께 인사를 맡아 청렴한 선비만 올렸고 천하가 염절로 스스로 힘쓰게 했다(모개전). |
| 매력 | 70 | 후계 문제에서 '적서를 가리지 못해 멸망한 원소의 예'를 들어 조식 편들기에 반대했다. 조조가 '나라의 사직(國之司直)'이라 칭했다(모개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모개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