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70년경(추정) — 생년 불명. 「年八十二薨」과 사망 추정(252)에서 170년경으로 둠(계산용 가정값·표시는 '추정')
사망 252년 — 사망 연도 불명. 정시 초 위위·태중대부를 지내고 82세에 사망, 252년은 계산용 가정값(표시는 '추정')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20년 | 완 | 언릉후 조창의 상·남양태수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90년 | 기타·재야 | (어양 옹노 출신, 연대 불명) | 불명 |
| 191~197년 | 기타·재야 | 공손찬 막하→유비를 따랐다 귀향·동주령 | 불명 |
| 198~204년 | 기타·재야 | 공손찬 패망 후 선우보 장사(연대 불명) | 불명 |
| 205~217년 | 위 | 승상군모연→영음·낭릉령→익양태수 | 불명 |
| 218~219년 | 위 | 언릉후 조창의 상·남양태수 | 불명 |
| 220년 | 위 | 언릉후 조창의 상·남양태수 | 기록 |
| 221~229년 | 위 | 호오환교위(문제 초~9년) | 불명 |
| 230~239년 | 위 | 여남태수·전이장군→독청주군사 | 불명 |
| 240~251년 | 위 | 호흉노중랑장·병주자사→위위→태중대부 | 불명 |
| 252년 | 위 | (태중대부, 사망) | 불명 |
공손찬이 무너진 뒤 선우보에게 조씨에게 귀순하라고 권하고, 조조에게 불려 승상군모연이 된다.
정사 전예전: 공손찬이 패하고 선우보가 국인의 추대로 태수 일을 맡자 전예가 "끝내 천하를 정할 이는 조씨"라며 귀순을 권했고 선우보가 따랐다. 조조가 전예를 승상군모연으로 불렀다. 연도는 본문에 없어 선우보 귀순기(205년경)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6 본 「終能定天下者必曹氏也宜速歸命無後禍期」
언릉후 조창이 대군을 칠 때 상으로 따라가 이북에서 매복을 당하자 수레를 돌려 원진을 짜 오랑캐를 깨뜨린다.
정사 전예전: 언릉후 조창이 대군을 정벌하면서 전예를 상으로 삼았다. 역북에서 호가 매복해 치자 군이 혼란했으나 전예가 지형을 이용해 수레를 돌려 원진을 짜고 활을 가득 당긴 채 의병으로 틈을 막았다. 호가 흩어지자 추격해 크게 깼다. 조창의 대군 정벌은 건안 23년(218).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6 본 「豫因地形回車結圜陣弓弩持滿於內疑兵塞其隙」
남양태수로 산속에서 도적질하던 후음의 잔당 5백여 명을 풀어 주어 도적을 해산시킨다.
정사 전예전: 남양태수가 되어, 앞 태수가 표주해 모두 사형으로 보고한 후음의 잔당 5백여 명을 모두 만나 달래고 족쇄를 풀어 보냈다. 죄수들이 머리를 조아려 힘쓰기를 원했고 무리가 하루아침에 흩어졌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조조 재세기(219~220)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6 본 「豫悉見諸繫囚慰喻開其自新之路一時破械遣之」
오환교위로 소리 쪽 호를 구하러 나갔다가 마성에서 열 겹 포위를 당하자 사마를 통해 속임 계책으로 벗어나 호를 크게 깬다.
정사 전예전: 소리가 맹약을 어기고 말 1천 필을 관에 바치자 비능이 쳤고 소리가 전예에게 구원을 청했다. 전예가 정병을 이끌고 깊이 들어가자 호가 추격해 마성에서 열 겹으로 포위했다. 전예가 사마에게 깃발을 세우고 북을 울려 남문으로 나가게 해 호를 끌어내고, 정병과 함께 북문으로 나가 양쪽에서 쳐 20여 리를 추격해 죽였다. 연도는 본문에 없어 호오환교위 재임기(221~229) 가운데 값 223년으로 둠.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6 본 「追豫到馬城圍之十重」
오와 공손연이 손잡자 성산에서 오 군선이 돌아오는 길을 막고 지켜 폭풍으로 부서진 배의 군사를 사로잡는다.
정사 전예전: 태화 말 공손연이 요동에서 반란하자 청주제군사를 맡아 토벌에 나섰으나 오가 연과 결맹하자 군을 파하라는 조서를 받았다. 전예는 오 배가 늦가을 돌풍을 만나 반드시 성산으로 올 것이라 보고 산도와 요해에 군을 배치했다. 오 배가 과연 악풍을 만나 산에 부딪혀 침몰했고 전예가 그 군사를 모두 잡았다. 연도는 태화 말(233년경)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6 본 「豫度賊船垂還歲晚風急必畏漂浪東隨無岸當赴成山」
정사 공손찬전: 공손찬은 원소에게 거듭 패해 역경으로 물러나 십중 참호를 파고 높이 5~6장 성루 위에 열 장짜리 중앙 누를 지어 곡식 300만 곡을 쌓고 버텼다. 아들이 장연의 구원군과 불을 올려 신호하기로 했으나 원소가 이를 가로채 같은 불을 놓아 공손찬을 끌어내 쳤다. 원소는 땅굴을 파 누를 무너뜨리며 중앙 누까지 이르렀고, 공손찬은 처자를 죽이고 자살했다.
연의: 연의 21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80 | 호오환교위로 9년간 선비를 갈라 다스렸고 마성에서 열 겹 포위를 뚫었다(전예전). |
| 무력 | 62 | 백여 기로 오환왕 골진의 부락에 들어가 베었다(전예전). |
| 지력 | 81 | 성산에서 오 군선이 돌아올 길을 읽어 매복해 크게 깼다. 신성 구원 건의에서도 적의 의도를 맞혔다(전예전). |
| 정치 | 63 | 남양태수로서 포로 오백여 명을 풀어 도적을 해산시켰다(전예전). |
| 매력 | 70 | 청렴해 상으로 받은 것을 장병에게 나누고 호인의 사사로운 선물은 모두 관에 넣었다(전예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전예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