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찬(公孫瓚)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기타·재야출생 생년 불명사망 199년기록 연도 8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에 나이 기록 없음).

사망 199년 — 건안 4년(199) 역경(易京)이 함락되자 처자를 죽이고 자살(공손찬전).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187년계탁령 → 기도위(장순 토벌)추정
188년계탁령 → 기도위(장순 토벌)추정
189년계중랑장 → 분무장군·계후기록
190년계중랑장 → 분무장군·계후기록
191년계교분무장군(반하·계교 전투)기록
192년계교분무장군(반하·계교 전투)기록
193년계전장군·역후(유우를 죽임)기록
194년계전장군·역후(유우를 죽임)기록
195년계전장군·역후(유우를 죽임)기록
196년이경(역경에서 웅거)추정
197년이경(역경에서 웅거)추정
198년이경(역경에서 웅거)추정
199년이경(역경 농성 끝에 자살)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186년기타·재야(요서 영지 출신 군리·요동속국장사 등 연대 불명)불명
187~188년기타·재야탁령 → 기도위(장순 토벌)추정
189~190년기타·재야중랑장 → 분무장군·계후기록
191~192년기타·재야분무장군(반하·계교 전투)기록
193~195년기타·재야전장군·역후(유우를 죽임)기록
196~198년기타·재야(역경에서 웅거)추정
199년기타·재야(역경 농성 끝에 자살)기록

나온 사건·전투

187년 · 탁령 → 기도위(장순 토벌) · 승진

장순이 오환과 일으킨 반란을 계(薊) 일대에서 추격해 기도위로 오른다.

정사 공손찬전: 어양의 장순이 요서 오환을 꾀어 반란하자 공손찬이 거느린 군으로 장순 등을 쫓아 공을 세웠다. 연도는 정사에 없어 후한서·자치통감의 중평 4~5년 서술에 맞춘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8 「追討純等有功,遷騎都尉」

190년 · 중랑장 → 분무장군·계후 · 승진

동탁이 낙양에 이르자 분무장군에 올라 계후에 봉해진다.

정사 공손찬전: 동탁이 낙양에 오자 유우를 대사마로, 공손찬을 분무장군으로 올리고 계후에 봉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8 「瓚奮武將軍,封薊侯」

191년 · 분무장군(반하·계교 전투)

아우 월이 원소 편 주앙에게 죽자 반하에 군을 내어 원소에게 보복하려 한다. 원소는 발해태수 인수를 넘겨 달랜다.

정사 공손찬전: 원술이 보낸 손견과 원소가 보낸 주앙이 양성에서 다투었고 공손월이 화살에 맞아 죽었다. 공손찬이 '화가 원소에서 일어났다' 하고 반하로 출군했다.

연의: 연의 7회 — 연의 7회는 반하 전투를 문추·국의와 얽어 길게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08 「遂出軍屯磐河,將以報紹」

192년 · 분무장군(반하·계교 전투) · 대패

계교(界橋)에서 원소의 선봉 국의에게 크게 패해 발해로 물러나 계로 돌아간다.

정사 공손찬전: 원소가 광천에서 국의를 앞세워 싸웠고 공손찬 쪽 엄강이 사로잡혔다. 공손찬은 발해로 달아났다가 범과 함께 계로 돌아갔다.

연의: 연의 7회 — 연의 7회는 같은 싸움을 문추·조운 등장과 함께 극화한다.

관련: 계교 전투

출전: 三國志 卷08 「紹軍廣川,令將麴義先登與瓚戰,生禽綱」 / 三國志 卷08 「瓚軍敗走勃海,與範俱還薊」

193년 · 전장군·역후(유우를 죽임) · 승진

계에서 유우를 사로잡고 조정 사신 단훈을 협박해 처형한다. 이로 인해 유우 휘하 장수들의 반격을 받는다.

정사 공손찬전: 유우가 공손찬을 습격했다 패해 거용으로 달아났으나 공손찬이 거용을 쳐 유우를 사로잡아 계로 돌아왔다. 공손찬이 유우를 반역으로 모함하고 단훈을 협박해 유우를 참했다. 연도는 자치통감 초평 4년 서술에 맞춘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8 「瓚誣虞欲稱尊號,脅訓斬虞」

198년 · (역경에서 웅거)

역경에 십중 참호와 누각을 쌓고 곡식 300만 섬을 쌓아 원소의 포위에 맞선다.

정사 공손찬전: 역경으로 돌아가 해자 열 겹을 두르고 중앙 누각 높이를 10장으로 쌓아 곡식 300만 섬을 쌓았다. 연도는 자치통감 건안 3년 서술.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8 「為圍塹十重,於塹裡築京」 / 三國志 卷08 「積穀三百萬斛」

199년 · (역경 농성 끝에 자살) · 대패

구원군을 불러 안팎으로 협공하려다 편지가 원소 쪽에 걸려 크게 패하고, 지하도로 중경이 무너지자 처자를 죽이고 자살한다.

정사 공손찬전: 건안 4년 원소가 군을 모두 보내 포위했고, 공손찬은 기약한 횃불 신호를 가짜로 올린 원소 군의 매복에 걸렸다. 지하도로 누각이 무너지자 처자를 죽이고 자살했다.

연의: 연의 28회 — 연의는 공손찬의 최후를 따로 그리지 않고 28회에서 조운이 지나가듯 말하는 정도로만 언급한다.

관련: 역경 전투

출전: 三國志 卷08 「紹侯者得其書,如期舉火」 / 三國志 卷08 「瓚自知必敗,盡殺其妻子,乃自殺」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190년 · 호뢰관 전투

정사 정사에는 호뢰관에서 연합군과 동탁군이 싸운 기록이 없다. 무제기는 원소 등이 산동에서 일어났으나 동탁의 병세가 강해 먼저 진군하는 자가 없었다고 적는다. 화웅을 벤 것은 연의에서 관우(온주참화웅)로 그려지나 정사에서는 손견이 양인에서 화웅을 벤다. 삼영전여포도 정사에 없다.

연의: 연의 5~6회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77유우가 문 직할병 외 둔병을 해산한 뒤에도 보병과 기병 1만을 거느리고 우북평에 주둔했다(공손찬전). 적은 병력으로 오환·선비와 5~6년 싸웠으나 사주가 약탈당했다.
무력89선비 수백 기를 만나 창 양쪽에 칼날을 단 창으로 홀로 달려 나가 수십 명을 죽이고 상하게 했다(공손찬전).
지력55역경에 십중 해자와 누각을 쌓고 곡식 300만 섬을 쌓아 '백 개의 누각은 공격하지 않는다'며 웅크렸으나 소모전에 말렸다(공손찬전). 진수 평: 보루에 갇혀 멸망을 기다렸다.
정치50유우를 모함해 죽이고 유우의 부하들에게 반격당했다. 허물은 기억하고 선행은 잊으며 해치는 일이 많았다(공손찬전).
매력50재질과 풍채가 있어 군 태수가 사위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유우 이후 민심을 잃었다(공손찬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공손찬의 이동 경로

기타·재야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