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기록 없음(양주 경력)
사망 193년 — 초평 4년(193) 이후 — 원소에게 피살. 전문은 연도를 직접 명기하지 않고 초평 4년 조목 뒤에 이어 적음. 이 파일은 193년으로 닫음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2년 | 계교 | 선등(원소군 선봉) | 추정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90~191년 | 원소·원씨 | (원소 휘하) | 불명 |
| 192년 | 원소·원씨 | 선등(원소군 선봉) | 추정 |
| 193년 | 원소·원씨 | (원소 휘하·교만으로 숙청) | 불명 |
계교 남쪽 20리에서 원소가 8백 선등과 강노 천 장을 앞세워 공손찬의 기병 방진을 격파한다.
정사 배송지 주 ― 英雄記: 원소가 계교 남쪽 20리에서 공손찬과 싸울 때 국의에게 병 8백으로 선등하게 하고 강노 천 장으로 받치게 했다. 국의의 병이 방패 아래 엎드려 움직이지 않다가 수십 보에서 일제히 일어나 돌격해 공손찬이 임명한 기주자사 엄강 등 갑수 천여 급을 베었고, 계교까지 추격해 다시 쳐 공손찬 영채의 아문을 뽑았다.
연의: 연의 7회
관련: 계교 전투
출전: 三國志 卷06 주(英雄記) 「紹令麴義以八百兵爲先登彊弩千張夾承之」 / 三國志 卷06 주(英雄記) 「義兵皆伏楯下不動未至數十步乃同時俱起」
공을 믿고 교만해져 원소에게 살해된다.
정사 배송지 주 ― 英雄記: 국의는 뒤에 공을 믿고 교만하고 방자해져 원소가 그를 죽였다. 전문은 초평 4년 조목에 이어 적는다.
연의: 연의 7회
출전: 三國志 卷06 주(英雄記) 「麴義後恃功而驕恣紹乃殺之」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80 | 계교 전투에서 선등 8백과 강노 천 장으로 공손찬 기병을 대파했다(배송지 주 ― 英雄記, 원소전). |
| 무력 | 82 | 8백 병이 방패 아래 엎드려 있다 수십 보 앞에서 일제히 일어나 돌격해 공손찬이 임명한 기주자사 엄강을 베었다(배송지 주 ― 英雄記). |
| 지력 | 65 | 양주에 오래 있어 강족과의 싸움에 익숙했다(배송지 주 ― 英雄記). |
| 정치 | 평가 불가 | 정치 기록은 없다. |
| 매력 | 37 | 공을 믿고 교만해져 원소에게 죽었다(배송지 주 ― 英雄記).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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