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傅嘏)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209년사망 255년기록 연도 15해

생몰

출생 209년 — 정원 2년(255) 사망 때 나이 47세(時年四十七)에서 환산한 값.

사망 255년 — 정원 2년(255), 사마사가 죽은 뒤 사마소와 낙양으로 돌아온 해에 죽음. 시호 원후(부하전).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40년낙양상서랑 → 황문시랑(조상 집권기 파면)기록
241년낙양상서랑 → 황문시랑(조상 집권기 파면)기록
242년낙양상서랑 → 황문시랑(조상 집권기 파면)기록
243년낙양상서랑 → 황문시랑(조상 집권기 파면)기록
244년낙양상서랑 → 황문시랑(조상 집권기 파면)기록
245년낙양상서랑 → 황문시랑(조상 집권기 파면)기록
246년낙양상서랑 → 황문시랑(조상 집권기 파면)기록
247년낙양상서랑 → 황문시랑(조상 집권기 파면)기록
248년낙양상서랑 → 황문시랑(조상 집권기 파면)기록
249년낙양하남윤 → 상서기록
250년낙양하남윤 → 상서기록
251년낙양하남윤 → 상서기록
252년낙양상서(오 정벌 논의)기록
253년낙양상서(오 정벌 논의)기록
255년낙양상서복야 대리 → 사망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9~229년위(북지 니양 출신, 약관에 이름이 남, 연대 불명)불명
230~239년위사공 진군의 연(掾)불명
240~248년위상서랑 → 황문시랑(조상 집권기 파면)기록
249~251년위하남윤 → 상서기록
252~253년위상서(오 정벌 논의)기록
254년위상서불명
255년위상서복야 대리 → 사망기록

나온 사건·전투

252년 · 상서(오 정벌 논의)

손권이 죽고 제갈각이 정권을 잡자 오 정벌책을 묻는 조서에 '대전둔이 낫다, 강을 건너 정면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답한다.

정사 부하전: 오 정벌론에서 삼정의 계책이 갈렸을 때 부하는 '손권이 죽고 제갈각에게 탁고했으니 벼슬 뼈대가 흔들려 있다. 그러나 배로 곧장 강을 건너거나 사로 병진하는 것은 모두 적을 잡는 평범한 계책일 뿐이니 군을 내어 대전둔하는 것이 가장 낫다'고 답했다. 연도는 손권 사망(252)에 맞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1 「惟進軍大佃,最差完牢」

253년 · 상서(오 정벌 논의) · 대승

제갈각이 동관에서 이긴 뒤 청·서주를 노린다고 소문내자, 바다를 건너 올 리 없고 오는 곳은 회남 신성일 것이라 판단하고, 제갈각은 신성을 공격하다 지고 돌아간다.

정사 부하전: 제갈각이 동관 승리 후 청·서주로 간다고 소문내자 조정이 대비하려 했다. 부하는 '제갈각이 근본을 비우고 바다로 올 리 없다'며 수군 소장 몇 명으로 청·서주를 흔드는 척하고 실제로는 회남을 칠 것이라 보았다. 제갈각은 과연 신성을 공략하다 지고 돌아갔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1 「恪不過遣偏率小將素習水軍者,乘海泝淮,示動青、徐」

255년 · 상서복야 대리 → 사망 · 승진

관구검·문흠이 반란하자 사마사의 직접 출진을 권해 동쪽으로 따라가고, 사마사가 죽자 사마소와 낙양으로 돌아가 사마소가 보정하게 한다.

정사 부하전: 정원 2년 봄 관구검·문흠이 반란하자 태위 사마부를 보내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부하와 왕숙만이 사마사의 직접 출진을 권했다. 사마사가 출진했고 부하는 상서복야 대리로 따라가 반란 진압에 계책을 보탰다. 사마사가 죽자 부하는 사마소와 곧바로 낙양으로 돌아가 사마소가 보정하게 했다.

연의: 연의 108회 — 연의 108회가 부하의 건의와 사마사 사망 후의 정국을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21 「惟嘏及王肅勸之。景王遂行」 / 三國志 卷21 「嘏與司馬文王徑還洛陽,文王遂以輔政」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50군 지휘 기록은 없다. 관구검 반란 때 사마사 출진에 수행해 진압에 계책을 보탰다(부하전).
무력평가 불가무력 기록이 없다.
지력88오 정벌론에서 진군 대전둔이 낫다고 판단했고, 제갈각이 청·서주를 노린다는 소문에 실제로는 신성으로 갈 것이라 예측해 맞혔다(부하전).
정치78정시 초 상서랑·황문시랑을 지내고 조상 집권기 파면, 조상 주살 뒤 하남윤·상서로 복귀했다(부하전).
매력59종회에게 '뜻이 크고 그릇이 작아 공을 세우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하안의 아첨을 경계하는 말로 조상 집권 세력과 불화했다(부하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부하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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