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韓暨)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생년 불명사망 238년기록 연도 1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사망 238년 — 경초 2년 4월 졸(238)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26년낙양태상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8~212년위승상 사조속불명
213~225년위감야알자→사금도위불명
226년위태상기록
227~237년위태상불명
238년위태상(퇴임)불명

나온 사건·전투

208년 · 승상 사조속

조조가 형주를 평정하자 불려 승상 사조속이 되고 뒤에 악릉태수·감야알자가 된다.

정사 한기전: 노양산에 숨어 있을 때 산민이 도적질하려 하자 집 재산으로 소와 술을 대 우두머리를 청해 안위를 설명하니 산민이 교화되었다. 형주목 유표가 예로 불렀으나 달아났다가 두려워 응해 의성장이 되었다. 태조가 형주를 평정하자 승상 사조속에 임명되었고 후에 악릉태수, 감야알자.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4 「太祖平荊州,辟為丞相士曹屬」

213년 · 감야알자→사금도위

대장간의 마배(馬排)를 흐르는 물로 돌리는 수배로 바꿔 이익을 세 배로 한다.

정사 한기전: 예전 대장간에서는 풀무로 한 번 석을 달굴 때 말 100필이 쓰였고 인배(人排)로 바꾸어도 힘이 더 들었다. 한기가 흐르는 물을 이용해 수배를 만들어 이익이 이전의 세 배가 되었고 재직 7년에 기구가 충실해졌다. 제서로 칭찬받아 사금도위가 되어 반이 구경에 버금갔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4 「曁乃因長流為水排,計其利益,三倍於前」

226년 · 태상

황초 7년 태상이 되고 업의 4묘 신주를 낙양으로 모셔 오자고 상주해 낙양에 종묘를 세운다.

정사 한기전: 황초 7년 태상이 되었고 남향정후로 올랐다. 새 도읍 낙양의 제도가 갖춰지지 않았고 종묘 신주가 업에 있었는데 한기가 업의 4묘 신주를 맞아 낙양에 묘를 세우자고 상주해 사시 제사를 올리게 하고 음사를 폐지했다. 재관 8년 만에 병으로 물러났다. 연도는 황초 7년(226).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4 「曁奏請迎鄴四廟神主,建立洛陽廟」

238년 · 태상(퇴임)

경초 2년 4월 졸하고 시호 공후를 받는다.

정사 한기전: 경초 2년 봄 조서를 받았고 여름 4월 졸했다. 유언으로 평상복으로 염하고 흙무덤으로 장사하게 했으며 시호는 공후, 아들 한조가 이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4 「夏四月薨」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평가 불가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무력50아버지를 모함한 호족 진무를 사사로이 자객을 모아 추격해 목을 베어 제사 지냈다(한기전).
지력69말 100필이 필요하던 대장간 풀무를 흐르는 물로 돌리는 수배(水排)를 만들어 이익이 이전의 세 배가 되었다(한기전).
정치74낙양이 새 도읍으로 제도가 안 갖춰졌을 때 업의 4묘 신주를 낙양으로 모셔 오자고 상주하고 음사를 폐했다(한기전).
매력70산적이 될 뻔한 산민을 집 재산으로 소와 술을 대 우두머리에게 안위를 설명해 교화했다(한기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한기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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