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질(胡質)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생년 불명사망 250년기록 연도 1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사망 250년 — 가평 2년 졸(250)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41년번성형주자사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5~240년위돈구령불명
241년위형주자사기록
242~244년위형주자사불명
245~249년위정동장군·도독 청서불명
250년위정동장군불명

나온 사건·전투

205년 · 돈구령

돈구령으로 사촌 누이와 정을 통한 곽정이 남편을 죽인 사건에서 거짓 자백한 아전을 살리고 진범의 자백을 받는다.

정사 호질전: 장제가 별가로서 태조에게 호질을 천거해 태조가 돈구령에 임명했다. 곽정이 사촌 누이와 통하고 남편 정타를 죽인 사건에서 군리 풍량이 증인으로 갇혀 고문을 못 이겨 스스로 죄를 뒤집어썼는데 호질이 부임해 안색과 정황을 살펴 다시 조사하여 모두 자백받았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조조 시기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7 「察其情色,更詳其事,檢驗具服」

241년 · 형주자사

오 대장 주연이 번성을 포위하자 병이 적은 번성에 외원이 필요하다며 가볍게 군을 이끌고 가 성중을 안정시킨다.

정사 호질전: 형주자사·진위장군·관내후가 되었다. 오 대장 주연이 번성을 포위하자 호질이 가볍게 군을 이끌고 달려갔고, 논자들이 적이 성해 가까이할 수 없다 했으나 「번성은 낮고 병이 적으니 외원으로 나아가야 한다. 안 그러면 위태롭다」며 군을 이끌고 포위에 임하니 성중이 안정되었다. 연도는 정시 2년(241) 번성 전투.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7 「樊城卑下,兵少,故當進軍爲之外援」

245년 · 정동장군·도독 청서

정동장군·가절로 청주·서주를 도독하며 농사와 곡식을 늘리고 동정대를 두어 농사와 방어를 겸하고 수로를 넓힌다.

정사 호질전: 정동장군·가절·도독청서제군사가 되어 농사를 넓히고 곡식을 쌓아 해를 넘는 저축을 만들었고 동정대를 두어 농사지으며 지켰다. 여러 군에 수로를 통해 배가 다닐 이로움을 만들고 적을 맞을 방비를 엄하게 해 해변이 무사했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7 「置東征臺,且佃且守」

250년 · 정동장군

가평 2년 죽을 때 집에 남은 재산이 없고 하사받은 옷과 책 상자뿐이었다.

정사 호질전: 성품이 깊이 있고 내찰에 밝아 절개로 남을 단속하지 않았고 있는 곳마다 사람들이 그리워했다. 가평 2년 졸했는데 집에 남은 재산이 없고 하사받은 옷과 책 상자만 있었다. 군사가 보고하자 양릉정후로 추봉했고 시호는 정후, 아들 호위가 이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7 「家無餘財」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평가 불가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무력50정시 연간 오 주연이 번성을 포위하자 가볍게 군을 이끌고 가 외원이 되어 성안을 안정시켰다(호질전).
지력67「번성은 낮고 병이 적으니 외원으로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호질전).
정치76돈구령으로 정부(情夫)와 짜고 남편을 죽인 사건을 정황을 살펴 다시 조사해 자백받았다(호질전).
매력65군공 상으로 받은 것을 모두 무리에 나눠 집에 들인 것이 없었고 죽을 때 남은 재산은 하사받은 옷과 책 상자뿐이었다(호질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호질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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