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유(孫瑜)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오출생 177년사망 215년기록 연도 0해

생몰

출생 177년 — 건안 20년(215) 졸 향년 39세로 역산

사망 215년 — 건안 20년 졸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13년유수구분위장군추정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203년기타·재야(손정의 둘째 아들)불명
204~212년오수원장군불명
213년오분위장군추정
214~215년오분위장군불명

나온 사건·전투

204년 · 수원장군

건안 9년 단양태수를 겸해 따르는 무리가 만여 명에 이른다.

정사 손유전: 공의교위로 처음 병력을 거느렸다. 건안 9년 단양태수를 겸했고 무리가 따라 만여 명에 이르러 수원장군을 더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1 「領丹楊太守,為眾所附」

206년 · 수원장군

건안 11년 주유와 함께 마·보 두 둔을 쳐 깬다.

정사 손유전: 건안 11년 주유와 함께 마둔·보둔을 쳐 깼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1 「與周瑜共討麻、保二屯,破之」

213년 · 분위장군

조조의 유수 침공에 손권이 맞싸우려 하자 신중하라고 간했으나 따르지 않아 성과가 없다.

정사 손유전: 손권이 조공을 유수에서 막을 때 손권이 교전하려 하자 손유가 신중하라고 권했으나 손권이 따르지 않아 군이 과연 공이 없었다. 분위장군으로 올라 군을 그대로 겸했고 율양에서 우저로 옮겨 주둔했다. 연도는 건안 18년 유수 전투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1 「瑜說權持重」

215년 · 분위장군

건안 20년 39세로 죽는다. 학문을 좋아해 군중에서도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정사 손유전: 군영에서도 『분전(墳典)』을 즐겨 읽어 낭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제음인 마보를 후대해 두 부의 장리 자제 수백 명을 가르치게 하고 학관을 세웠다. 건안 20년 39세로 졸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1 「年三十九」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평가 불가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무력평가 불가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지력63유수에서 손권에게 신중론을 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전쟁에서 성과가 없었다(손유전).
정치66단양태수로서 1만여 무리가 따랐고, 학관을 세워 군영에서도 책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손유전).
매력77빈객과 장수가 강서 사람이 많았는데 마음을 비우고 어루만져 환심을 얻었다(손유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손유의 이동 경로

오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