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휴(曹休)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생년 불명사망 228년기록 연도 4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기록 없음(10여 세에 부친상)

사망 228년 — 태화 2년(228) — 석정 패전 후 등창으로 졸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17년장안중령군추정
218년하변중령군기록
219년장안중령군추정
222년역양정동장군·양주자사기록
227년환성대사마·도독양주기록
228년석정대사마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196년기타·재야(소년기 오 지방으로 피난)불명
197~214년위호표기 숙위불명
215~216년위기도위·참군불명
217년위중령군추정
218년위중령군기록
219년위중령군추정
220~221년위영군장군→진남장군불명
222년위정동장군·양주자사기록
223~225년위정동장군·양주자사불명
226년위정동대장군불명
227년위대사마·도독양주기록
228년위대사마기록

나온 사건·전투

218년 · 중령군 · 대승

하변에서 오란을 먼저 치자고 건의해 조홍과 오란을 깨뜨리고 장비를 물러가게 한다.

정사 조휴전: 유비가 하변의 오란과 고산의 장비로 조홍군 뒤를 끊으려 하자 조휴가 "장비가 소리만 키우니 매복하지 못한다. 오란을 먼저 치면 장비는 달아날 것"이라 했고 조홍이 따라 오란을 대파했다.

연의: 연의 69회

출전: 三國志 卷09 「宜及其未集促擊兰兰破則飛自走矣」 / 三國志 卷09 「進兵擊兰大破之飛果走」

222년 · 정동장군·양주자사

손권이 보낸 군을 역양에서 격파하고 오강의 영채를 불태운다.

정사 조휴전: 손권이 역양에 주둔하자 조휴가 가서 격파하고, 따로 병사를 강 건너 보내 무호 진영 수천 호를 불태웠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9 「孫權遣將屯歷陽休到擊破之」 / 三國志 卷09 「燒賊芜湖營數千家」

222년 · 정동장군·양주자사

문제의 오 정벌에서 정동대장군으로 장료 등을 이끌고 동포에서 여범을 깬다.

정사 조휴전: 문제가 손권을 정벌할 때 조휴를 정동대장군으로 삼아 황월을 주고 장료 등 20여 군을 감독하게 했고, 동포에서 여범 등을 깨뜨리자 양주목이 되었다.

연의: 연의 85회

출전: 三國志 卷09 「擊權大將吕範等於洞浦破之」 / 三國志 卷09 「拜揚州牧」

227년 · 대사마·도독양주

명제 때 환에 주둔한 오 장수 심덕을 격파해 목을 베고 한종 등이 항복하게 한다.

정사 조휴전: 명제가 즉위한 뒤 오장 심덕이 환에 주둔하자 조휴가 격파해 심덕의 목을 베었고 한종·적단 등이 잇따라 항복했다.

연의: 연의 96회

출전: 三國志 卷09 「吴將审德屯皖休擊破之斬德首」

228년 · 대사마 · 패전

석정에서 거짓 항복에 속아 깊이 들어갔다가 패해 달아나고, 얼마 뒤 등창으로 죽는다.

정사 조휴전: 태화 2년 조휴가 심양으로 향하다 오장 주방의 거짓 항복에 속아 깊이 들어갔다 패하고 석정에 물러나 머물렀는데 군이 밤에 놀라 갑옷·치중을 많이 버렸다. 사죄 상서를 올린 뒤 등창이 터져 죽었다. 시호 장후.

연의: 연의 96회

출전: 三國志 卷09 「賊將僞降休深入戰不利退還宿石亭」 / 三國志 卷09 「軍夜惊士卒亂棄甲兵輜重甚多」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80오 장군 여범을 동포에서, 심덕을 환성에서 격파했으나 석정 전투에서 속아 크게 패했다(조휴전).
무력78한중 평정 뒤 하변 전투에서 장비의 고산 견제를 간파해 오란을 대파했다(조휴전).
지력67"적이 소리만 키우는 것은 매복할 줄 모르는 것"이라며 오란을 먼저 치자고 건의했다(조휴전).
정치54양주 도독 직위를 오래 맡았고 정사 기록은 군사 중심이다(조휴전).
매력61조조가 "우리 집안의 천리구"라 불렀다(조휴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조휴의 이동 경로

위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