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기록 없음(남양 출신)
사망 223년 — 졸년 전문에 명기 없음 — 후주 때 대장추로 졸. 이 파일은 후주 즉위(223)까지만 칸을 둠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14년 | 성도 | 학사(호잠·맹광·내민과 구문 담당) | 추정 |
| 215년 | 성도 | 학사(호잠·맹광·내민과 구문 담당) | 추정 |
| 216년 | 성도 | 학사(호잠·맹광·내민과 구문 담당) | 추정 |
| 217년 | 성도 | 학사(호잠·맹광·내민과 구문 담당) | 추정 |
| 218년 | 성도 | 학사(호잠·맹광·내민과 구문 담당) | 추정 |
| 219년 | 성도 | 학사(호잠·맹광·내민과 구문 담당) | 추정 |
| 220년 | 성도 | 학사(호잠·맹광·내민과 구문 담당) | 추정 |
| 221년 | 성도 | 학사(호잠·맹광·내민과 구문 담당) | 추정 |
| 222년 | 성도 | 학사(호잠·맹광·내민과 구문 담당) | 기록 |
| 223년 | 성도 | 대장추 | 추정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14~221년 | 촉한 | 학사(호잠·맹광·내민과 구문 담당) | 추정 |
| 222년 | 촉한 | 학사(호잠·맹광·내민과 구문 담당) | 기록 |
| 223년 | 촉한 | 대장추 | 추정 |
선주가 촉을 평정하자 호잠과 함께 학사가 되어 맹광·내민 등과 옛 문서와 제도를 맡는다.
정사 허자전: 선주가 촉을 평정하자 허자와 호잠은 학사가 되어 맹광·내민 등과 옛 문서를 맡았고, 일이 초창기여서 의논이 많아 서로 헐뜯는 일이 잦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2 「先主定蜀承喪亂歷紀學業衰廢乃鳩合典籍沙汰眾學」 / 三國志 卷42 「慈潛更相剋伐」
선주가 허자와 호잠의 다툼을 광대에게 흉내 내게 해 연회에서 일깨운다.
정사 허자전: 선주가 이를 딱하게 여겨 군료 대회에서 광대를 시켜 두 사람의 모습을 흉내 내 다투는 모양을 본뜨게 했고, 처음 말로 다투다가 칼과 몽둥이로 끝나는 모양으로 일깨웠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2 「先主愍其若斯羣僚大會使倡家假為二子之容效其訟鬩之狀」
후주 시대에 점차 대장추에 오르고 죽는다.
정사 허자전: 호잠이 먼저 죽고 허자는 후주 때 점차 승진해 대장추에 이르러 졸했으며 아들 허훈이 업을 이어 박사가 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2 「潛先沒慈後主世稍遷至大長秋卒」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군사 기록은 없다(허자전). |
| 무력 | 평가 불가 | 무용 기록은 없다. |
| 지력 | 69 | 정현 학을 이은 학자로 역·상서·삼례·모시·논어를 다스렸다(허자전). |
| 정치 | 50 | 선주가 촉을 평정한 뒤 학사로서 제도·구문을 맡았다(허자전). |
| 매력 | 50 | 호잠과 서로 헐뜯어 선주가 광대를 시켜 두 사람의 다툼을 흉내 내게 하여 일깨운 일화가 있다(허자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허자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