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2년의 세계 — 그해 일어난 일
이 해에 사료가 적은 사건 16건을 지역별로 모았습니다.
그해 일어난 일
중국 (2)
- 문종이 상도에서 붕어, 황후가 유언으로 명종의 아들에게 전위하게 함 (원사(元史) 본기 元史 卷37 寧宗 1332年 8月)
- 영종(寧宗)이 대명전에서 즉위해 대사면 (원사(元史) 본기 元史 卷37 寧宗 1332年 10月)
한반도 (1)
- 조적 등이 밤에 왕궁을 습격했으나 위사가 쏘아 죽이고 시체를 순군 남교 아래 버림 (고려사 世家 卷36 忠惠 二年)
중앙아시아 (9)
- 세라추크를 떠나 하루 두 번(오전 10시경·해질녘) 두 시간씩만 멈추는 빠른 걸음으로 30일 사막을 건너 호라즘에 도착. 물은 이틀~사흘 간격의 우물·빗물뿐 (이븐 바투타 III p.2-3)
- 호라즘 총독(우즈베크 칸의 에미르) 쿠틀루두무르를 알현. 에미르는 통풍으로 발을 싸매고 앉아 칸·카툰·콘스탄티노플에 대해 물었고, 구운 닭·두루미·석류 등 잔치 상을 냄 (이븐 바투타 III p.10-11)
- 에미르가 여행자에게 은 1000디르함(금 약 300디나르)을 내리라 명함 — 잔치를 열어 500을 쓰느니 통째로 주는 편이 낫다는 카디의 말을 따른 것. 이 돈으로 검은 말을 은 35디나르에 삼 (이븐 바투타 III p.12-13)
- 에미르의 아내 토라벡 카툰이 자기가 세운 수도원에서 학자·도시 유지를 모아 잔치를 열고 담비 모피와 좋은 말을 선물 (이븐 바투타 III p.14)
- 호라즘에서 부하라로 가는 18일 사막길을 떠나 4일 만에 도중의 유일한 거주지 알카트(Kath)에 도착. 얼어붙은 연못 옆에 묵음 (이븐 바투타 III p.19-20)
- 하루 종일 정원·운하 사이를 걸어 부하라에 도착. 칭기즈칸이 파괴해 모스크·학교·시장이 대부분 폐허이고, 주민은 편파와 거짓으로 평판이 나빠 증언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적음 (이븐 바투타 III p.22)
- 부하라 교외 「승리의 거처」(Fetli Abad)의 사이프 앗딘 바카르지 수도원에 묵음. 원장이 잔치를 열어 쿠란 낭송·터키·페르시아 노래를 들려줌 (이븐 바투타 III p.27-28)
- 하디스 학자 부하리의 묘를 참배. 부하라 학자들 묘비에 이름과 저서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 비문 사본을 뒷날 인도 해상에서 약탈당해 잃었다고 적음 (이븐 바투타 III p.28)
- 부하라를 떠나 술탄 타르마시린의 진영으로 가는 길에 나흐셰브(Nakhcheb)를 지나 성 밖 총독의 집에 묵음 (이븐 바투타 III p.28-29)
남아시아 (4)
- 사라이를 떠나 10일을 걸어 세라추크(「작은 사라이」)에 닿음. 큰 강(우랄/야이크)에 배다리가 놓여 있고, 여기서 수레 끄는 말을 팔고(한 마리 은 4디나르 이하) 낙타를 빌려 수레를 끌게 함 (이븐 바투타 III p.1)
- 알카트에서 물 없는 길로 6일을 가 부하라에서 하루 거리의 와브케네(Wabkeneh)에 도착. 포도를 이듬해까지 보관하고 알루(자두)를 말려 인도·중국에 내다 팖 (이븐 바투타 III p.21)
- 낙셰브에서 같은 날 저녁 술탄의 진영에 도착. 사냥 나간 술탄 대신 부관 에미르 타크보가를 만나 모스크 옆 천막(khargah)을 배정받음 (이븐 바투타 III p.29-30)
- 데리고 온 임신한 여자 노예가 그날 밤 진영 천막에서 출산. 아들이라 들었으나 이레 뒤 딸임이 드러남. 저자는 이 딸이 인도 도착 두 달 뒤 죽는다고 미리 적음 (이븐 바투타 III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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