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븐 바투타: 기록 사료. 다루는 해 1325년 ~ 1348년, 사건 100건을 해 순서로 정리했습니다. 원문 라이선스와 출처 포함.
| 등급 | 기록 |
|---|---|
| 시점 | 외부 시점 |
| 다루는 해 | 1325년 ~ 1348년 |
| 사건 수 | 사건 100건 · 지도에 놓은 72건 |
| 저자 | Ibn Battuta |
| 원제 | Voyages d'Ibn Batoutah, t. III (Defrémery–Sanguinetti) |
지역 분포: 남아시아 69 · 중앙아시아 21 · 서아시아 5
| 해 | 장소 | 사건 | 원문 위치 |
|---|---|---|---|
| 1325년 | Delhi | 번역자 연표: 725년 라비 1월(1325년 2~3월)에 무함마드가 즉위함 | Avertissement p.xx (번역자 연표) |
| 1326년 ~ 1327년 | Daulatabad (Diouguir) | 번역자 연표: 무함마드가 디우기르(다울라타바드)로 가서 델리 대신 이곳을 수도로 삼을 뜻을 품음 | Avertissement p.xx (번역자 연표; 본문 p.314 참조) |
| 1327년 | Delhi | 저자의 비판: 술탄은 델리의 모든 주민을 집에서 쫓아내 이주시켰다 — 가장 무거운 비난 중 하나 | III p.314-316 (연표는 727년에 비정) |
| 1327년 | Multan | 번역자 연표: 물탄 총독 멜리크 베흐람 아비아(카슐루 칸)가 반란 | Avertissement p.xx (본문 p.322-323 참조) |
| 1327년 | Delhi | 번역자 연표: 차가타이 칸 타르마시린이 인도로 침입해 델리 성문까지 와, 무함마드는 평화를 샀으나 이 두려움 때문에 3년간 델리에 묶임 | Avertissement p.xx (번역자 연표) |
| 1332년 ~ 1333년 | Seratchouk (Saraichik) | 사라이를 떠나 10일을 걸어 세라추크(「작은 사라이」)에 닿음. 큰 강(우랄/야이크)에 배다리가 놓여 있고, 여기서 수레 끄는 말을 팔고(한 마리 은 4디나르 이하) 낙타를 빌려 수레를 끌게 함 | III p.1 |
| 1332년 ~ 1333년 | Köneürgenç (Kharezm) | 세라추크를 떠나 하루 두 번(오전 10시경·해질녘) 두 시간씩만 멈추는 빠른 걸음으로 30일 사막을 건너 호라즘에 도착. 물은 이틀~사흘 간격의 우물·빗물뿐 | III p.2-3 |
| 1332년 ~ 1333년 | Köneürgenç (Kharezm) | 호라즘 총독(우즈베크 칸의 에미르) 쿠틀루두무르를 알현. 에미르는 통풍으로 발을 싸매고 앉아 칸·카툰·콘스탄티노플에 대해 물었고, 구운 닭·두루미·석류 등 잔치 상을 냄 | III p.10-11 |
| 1332년 ~ 1333년 | Köneürgenç (Kharezm) | 에미르가 여행자에게 은 1000디르함(금 약 300디나르)을 내리라 명함 — 잔치를 열어 500을 쓰느니 통째로 주는 편이 낫다는 카디의 말을 따른 것. 이 돈으로 검은 말을 은 35디나르에 삼 | III p.12-13 |
| 1332년 ~ 1333년 | Köneürgenç (Kharezm) | 에미르의 아내 토라벡 카툰이 자기가 세운 수도원에서 학자·도시 유지를 모아 잔치를 열고 담비 모피와 좋은 말을 선물 | III p.14 |
| 1332년 ~ 1333년 | Beruniy (Kath) | 호라즘에서 부하라로 가는 18일 사막길을 떠나 4일 만에 도중의 유일한 거주지 알카트(Kath)에 도착. 얼어붙은 연못 옆에 묵음 | III p.19-20 |
| 1332년 ~ 1333년 | Wabkeneh | 알카트에서 물 없는 길로 6일을 가 부하라에서 하루 거리의 와브케네(Wabkeneh)에 도착. 포도를 이듬해까지 보관하고 알루(자두)를 말려 인도·중국에 내다 팖 | III p.21 |
| 1332년 ~ 1333년 | Bukhara | 하루 종일 정원·운하 사이를 걸어 부하라에 도착. 칭기즈칸이 파괴해 모스크·학교·시장이 대부분 폐허이고, 주민은 편파와 거짓으로 평판이 나빠 증언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적음 | III p.22 |
| 1332년 ~ 1333년 | Bukhara | 부하라 교외 「승리의 거처」(Fetli Abad)의 사이프 앗딘 바카르지 수도원에 묵음. 원장이 잔치를 열어 쿠란 낭송·터키·페르시아 노래를 들려줌 | III p.27-28 |
| 1332년 ~ 1333년 | Bukhara | 하디스 학자 부하리의 묘를 참배. 부하라 학자들 묘비에 이름과 저서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 비문 사본을 뒷날 인도 해상에서 약탈당해 잃었다고 적음 | III p.28 |
| 1332년 ~ 1333년 | Qarshi (Nakhcheb) | 부하라를 떠나 술탄 타르마시린의 진영으로 가는 길에 나흐셰브(Nakhcheb)를 지나 성 밖 총독의 집에 묵음 | III p.28-29 |
| 1332년 ~ 1333년 | 술탄 타르마시린의 진영 (ordou) | 낙셰브에서 같은 날 저녁 술탄의 진영에 도착. 사냥 나간 술탄 대신 부관 에미르 타크보가를 만나 모스크 옆 천막(khargah)을 배정받음 | III p.29-30 |
| 1332년 ~ 1333년 | 술탄 타르마시린의 진영 (ordou) | 데리고 온 임신한 여자 노예가 그날 밤 진영 천막에서 출산. 아들이라 들었으나 이레 뒤 딸임이 드러남. 저자는 이 딸이 인도 도착 두 달 뒤 죽는다고 미리 적음 | III p.30 |
| 1333년 | 술탄 타르마시린의 진영 (ordou) | 진영에서 며칠을 지낸 어느 날 새벽 기도 뒤 모스크에서 술탄 알라 앗딘 타르마시린을 만남. 술탄은 터키말로 안부를 묻고, 저자를 천막으로 불러 메카·메디나·예루살렘·다마스쿠스·이집트·두 이라크에 대해 물음 | III p.33-35 |
| 1333년 | 술탄 타르마시린의 진영 (ordou) | 술탄 곁에서 54일을 머문 뒤 떠나려 할 때 은 700디나르와 담비 모피 한 벌(100디나르), 말 두 마리와 낙타 두 마리를 받음. 술탄이 직접 모피를 입혀 줌 | III p.38-39 |
| 1333년 | Samarkand | 타르마시린과 작별하고 사마르칸드로 감. 축융공(Foulons) 강 가에 물레방아·관개 정원이 있으나 궁궐과 도시 상당 부분이 파괴되어 있고, 성벽도 성문도 없음. 주민은 외국인에게 우호적이어서 부하라인보다 낫다고 적음 | III p.51-52 |
| 1333년 | Termez | 사마르칸드에서 네세프를 거쳐 테르메즈에 도착. 아지잔 셰이크의 수도원에 묵음 | III p.56-57 |
| 1333년 | Termez | 테르메즈의 카디 키암 앗딘을 만남 — 인도행 허가를 구하러 가는 길이었고, 뒤에 물탄에서 형제들과 함께 저자와 같이 인도로 가게 됨 | III p.57-58 |
| 1333년 | Balkh | 옥서스(제이훈)를 건너 호라산에 들어서 하루 반 동안 사막과 모래땅을 걸어 폐허가 된 발흐에 도착. 단단한 건물이 아직 번창한 도시 같으나 사람이 살지 않음 | III p.58 |
| 1333년 | Herat | 발흐를 떠나 쿠히스탄 산지 7일을 걸어 헤라트에 도착. 호라산의 큰 도시 넷 가운데 번창하는 둘(헤라트·니샤푸르)의 하나로 소개 | III p.63-64 |
| 1333년 | Torbat-e Jam (Djam) | 헤라트에서 잠(Djam)으로 감. 뽕나무와 비단이 많은 중간 규모의 아름다운 도시이고, 시하브 앗딘 아흐마드 잠이 세웠다고 전하는 곳으로 수도원이 있음 | III p.75 |
| 1333년 | Mashhad (Mechhed Arridha) | 잠에서 투스(Thous)를 거쳐 이맘 알리 리다의 묘(Mechhed Arridha)에 감. 은판·은 램프로 꾸민 돔 맞은편에 하룬 앗라시드의 묘도 있음 | III p.77-79 |
| 1333년 | Sarakhs | 마슈하드에서 사라크스(셰이크 로크만 사라크시의 고향)에 감 | III p.79 |
| 1333년 | Torbat-e Heydarieh (Zaveh) | 사라크스에서 자베(셰이크 쿠트브 앗딘 하이다르의 고향, 쇠고리를 몸에 거는 하이다리 탁발승 교단)로 감 | III p.79-80 |
| 1333년 | Nishapur | 자베를 떠나 호라산 4대 도시의 하나인 니샤푸르에 도착. 「작은 다마스쿠스」로 불리고, 시장 한가운데 모스크가 네 학교에 닿아 있음. 비단·벨벳을 짜 인도로 수출. 셰이크 쿠트브 앗딘의 수도원에 묵음 | III p.80-81 |
| 1333년 | Bestham | 니샤푸르에서 베스탐(성인 아부 야지드 알베스타미의 고향)으로 감. 그의 묘가 있고, 그의 수도원에 묵음 | III p.82 |
| 1333년 | Kunduz | 힌두쿠시 눈이 두려워 쿤두즈(Kondous) 근처에서 약 40일을 머무르며 낙타·말을 살찌움. 에미르 보론타이의 엄한 재판 덕에 안전하여 말이 사라져도 타르타르가 돌려줌 | III p.82-84 |
| 1333년 | Anderab | 「인도인을 죽이는」 힌두쿠시를 더위가 오기를 기다려, 밤 끝 무렵 넘기 시작해 다음 날 저녁까지 쉬지 않고 가며 낙타 앞에 펠트를 깖. 넘고 난 뒤 옛 도시터 안데랍(Ander)에 도착 | III p.84-85 |
| 1333년 | Parwan (Charikar 근사) | 펜지 히르(옛 도시터)와 페샤이 산 위의 350살이라는 셰이크 아타 아울리아를 거쳐 페르반에 가서 에미르 보론타이를 만남. 그는 가즈나 관리들에게 저자를 후대하라는 편지를 써 줌 | III p.86-88 |
| 1333년 | Ghazni | 차르크를 지나 가즈나에 도착. 술탄 마흐무드의 수도로 대부분 황폐하고 겨울엔 주민이 칸다하르로 옮겨 감. 성채 아래 강가 마을에서 에미르 메르덱 아가의 대접을 받음 | III p.88-89 |
| 1333년 | Kabul | 가즈나에서 카불로 감. 옛 큰 도시가 지금은 아프간 부족이 사는 마을이며 이들은 산악 강도로 이름남 | III p.89-90 |
| 1333년 | Kermach 요새 | 카불에서 두 산 사이 케르마흐 요새를 지날 때 산비탈의 아프간 강도떼와 싸워 화살을 쏴 쫓아냄. 낙타 때문에 대열에서 떨어졌다가 저녁 기도 뒤 합류, 차크 나가르 역에서 밤을 보냄 | III p.90-91 |
| 1333년 | 인더스(Sind·Pendj-ab) 강변 | 튀르크 땅 마지막 거주지 차크 나가르를 떠나 15일의 큰 사막에 들어섬. 비 온 뒤인 7월 초에만 지나다닐 수 있고 독풍(아삼움)이 불어 시신이 썩음. 호다반드 자데 일행이 앞서 갔고 낙타·말이 많이 죽었으나 무사히 펜지 압(인더스)에 도착 | III p.91-92 |
| 1333년 | 인더스(Sind·Pendj-ab) 강변 | 인더스(펜지 압, 「다섯 강」) 강가에 이르러 그날 밤 734년 무하람 초승달을 봄(1333년 9월 12일). 여기서부터 무함마드 샤 술탄의 영토가 시작되고, 소식 기록관이 도착을 물탄 총독에게 알림 | III p.92-94 |
| 1333년 | 인더스(Sind·Pendj-ab) 강변 | 소식 기록관들이 저자 일행의 도착을 물탄 총독 쿠트브 알물크에게 보고하고, 이 보고는 우편(바리드)으로 델리 술탄에게도 전달됨. 신드 총독은 노예 출신 세르티즈로 시웨시탄에 있었음 | III p.94 |
| 1333년 | 인더스(Sind·Pendj-ab) 강변 | 인더스를 건넌 뒤 갈대밭에서 코뿔소(karkaddan)가 나타나 기병 한 명의 말을 뿔로 받아 쓰러뜨리고 도망. 같은 여행 중 한 번 더, 뒤에 술탄과 함께 사냥에서 한 번 더 봄 | III p.100-101 |
| 1333년 | Djenany | 인더스를 건너 이틀을 걸어 강변의 크고 아름다운 도시 제나니에 도착. 사미라 부족이 사는 곳이고 우아한 시장이 있음 | III p.101 |
| 1333년 | Sehwan | 시웨시탄(Sehwan)에 한여름 더위 속에 들어감. 일행은 알몸에 젖은 천을 두르고 지냈음. 설교자 집안이 간직한 칼리프 오마르 이븐 압둘아지즈의 임명장을 봄 | III p.103-105 |
| 1333년 | Sehwan | 힌두 라탄이 신드 장관이 되자 불만을 품은 에미르들이 그를 죽이고 델리 국고 12락을 차지, 우나르를 왕으로 세움. 물탄의 세르티즈가 진압하러 와 시웨시탄을 포위, 40일 만에 항복시킨 뒤 약속을 어기고 처형·효수 | III p.105-108 |
| 1333년 | Sehwan | 전투 뒤 시웨시탄의 큰 학교에 묵었으나 옥상에서 자다가 성벽에 걸린 가죽 박제와 머리 무더기가 보여 잠을 이루지 못해 떠남 | III p.108 |
| 1333년 | Lahari (Larri Bender) | 헤라트 출신 카디 알라 알물크(라하리 총독)의 선단 15척과 함께 인더스를 내려가 5일 만에 바닷가의 라하리에 도착. 군악 선단과 정해진 식사·야경 규칙을 자세히 적음 | III p.109-113 |
| 1333년 | Tarna 평원 | 라하리 밖 7마일 타르나 평원에서 사람·짐승·곡식 모양으로 굳은 돌 무더기와 인도 문자 비문이 있는 폐허를 봄. 죄 지은 도시 주민이 돌로 변했다는 전설을 들음 | III p.113-114 |
| 1333년 | Sukkur (Bacar) | 라하리에서 닷새 머문 뒤 아름다운 도시 바카르(Bacar)로 감. 인더스에서 낸 운하가 도시를 가르고 카슐루 칸이 지은 수도원이 있음 | III p.114-115 |
| 1333년 | Uch (Oudjah) | 바카르에서 인더스 강변의 우치(Oudjah)로 감. 용감하고 너그러운 에미르 잘랄 앗딘 알키지와 친교를 맺었고, 셰이크 쿠트브 앗딘 하이데르에게서 탁발승의 옷을 받음(뒤에 해상에서 약탈당함) | III p.115-116 |
| 1333년 | Multan | 우치에서 신드의 수도 물탄에 도착. 10마일 앞 호스레브 아바드 강을 배로 건너며 짐 검사를 받으려는데, 총독의 관리가 와서 검사를 면해 줌 | III p.116-118 |
| 1333년 | Multan | 물탄 총독 쿠트브 알물크가 일어나 손을 잡고 곁에 앉힘. 저자는 노예·말·건포도·아몬드를 바침. 총독은 궁수·기병 지원자 시험을 구경시키고 성 밖 수도원 집에 묵게 함 | III p.118-120 |
| 1334년 | Multan | 물탄 도착 두 달 뒤 술탄이 보낸 시종장 샴스 앗딘 알부헨지와 경찰대장이 도착. 술탄은 델리로 오려는 외국인에게 주려고 명예의 옷과 노자를 보내고, 호라산에서 오는 사람은 정착하려는 자만 받으라 명함 | III p.121-122 |
| 1334년 | Multan | 저자는 술탄 곁에 눌러앉으러 왔다고 밝혀 카디와 공증인이 작성한 서약서에 일행과 함께 서명(일부 동료는 거부) | III p.122 |
| 1334년 | Multan | 물탄에서 델리까지 사람 사는 땅 40일 길. 시종장이 먼저 밤에 가 역마다 요리사 약 20명으로 식사를 준비해 호다반드 자데 일행을 접대. 모두 별도 천막에서 묵음 | III p.122-125 |
| 1334년 | Abohar | 물탄을 떠나 처음 들어간 본격 인도 도시 아부헤르(Abouher). 작지만 강과 나무가 있는 곳이고 네베크(열매가 오배자만큼 크고 단 나무)가 있음 | III p.125 |
| 1334년 | Abohar | 아부헤르에서 정오쯤 22기로 뒤처져 출발했다가 평원에서 힌두 반도 80여 명(보병 80·기병 2)에게 공격당함. 기병 1명과 보병 약 12명을 죽이고 화살 두 대를 맞았으나 무사. 인도에서 처음 치른 전투 | III p.134 |
| 1334년 | Abu Baqhar 성 | 죽인 자들의 머리를 아부 바크하르 성으로 가져가 밤중에 성벽에 매닮 | III p.135 |
| 1334년 | Pakpattan (Ajodhan) | 이틀 뒤 파리드 앗딘의 작은 도시 아조데헨(Ajodhan)에 도착. 술탄의 스승이던 광기 어린 셰이크에게 알렉산드리아 셰이크의 인사를 전했고, 아들 알렘 앗딘이 아버지를 보게 해 줌. 설탕을 선물받음 | III p.135-136 |
| 1334년 | Pakpattan (Ajodhan) | 셰이크를 만나고 오는 길에 힌두 남자의 화장터에서 아내가 남편 시신을 껴안은 채 함께 타 죽는 것을 동료들에게서 전해 들음. 이후 인도에서 이런 순장을 거듭 봄 | III p.136-137 |
| 1334년 | Amdjery | 뒤에 힌두가 많은 암드제리에서 무슬림 에미르가 반도를 치다 힌두 7명이 죽자 그 아내 셋이 사흘 잔치 뒤 말을 타고 숲 연못가로 가 불에 뛰어듦. 저자는 광경에 말에서 떨어질 뻔함 | III p.137-141 |
| 1334년 | Sirsa (Sarsati) | 아조데헨에서 나흘 걸어 쌀이 풍부한 큰 도시 사르사티(Sarsati)에 도착. 쌀은 델리로 수출 | III p.142 |
| 1334년 | Hansi | 사르사티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구가 많은 도시의 하나 한시에 감. 튼튼한 성벽을 두른 이곳은 델리 대카디 카말 앗딘 형제들의 고향 | III p.143 |
| 1334년 | Mas'ud Abad | 한시에서 이틀 걸려 델리 10마일 앞 마스우드 아바드에서 사흘을 머묾. 술탄은 델리에서 10일 거리의 카나우지에 가 있었고, 재상 호자 지한이 마중 나온 관리들을 보냄 | III p.143-145 |
| 1334년 | Kannauj | 이 무렵 술탄 무함마드 샤는 델리에서 열흘 걸음 거리의 카나우지 지방에 나가 있었고, 델리에는 어머니 알마크둠 지한과 재상 호자 지한만 있었음 | III p.144-145 |
| 1334년 | Delhi | 마스우드 아바드에서 팔렘 마을 곁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이튿날 인도의 수도 델리에 도착. 세계에 비길 데 없는 성벽을 가진, 동방 이슬람권 최대 도시로 소개 | III p.145-146 |
| 1334년 | Delhi | 술탄이 없는 델리에서 일행은 궁의 첫째·둘째·셋째 문을 차례로 지나 들어감 | III p.374-376 |
| 1334년 | Delhi | 술탄의 어머니 알마크둠 지한(「세계의 여주인」)의 궁에서 환대를 받음. 그녀는 가장 덕 있는 여인의 하나로 수도원을 많이 세웠다고 적음 | III p.376-379 |
| 1334년 | Delhi | 델리 도착 한 달 반 뒤 돌이 안 된 딸이 죽음 (앞서 p.30에서 태어난 딸로 보임). 장례 의식을 자세히 적음 | III p.381-383 |
| 1334년 | Delhi | 델리 체류 중 술탄이 해마다 5000디나르 수입의 마을 몇 개를 지급하라 명함. 재상과 평의회 사람들도 선물을 보냄 | III p.388 |
| 1334년 | Delhi | 술탄이 없는 사이 맞은 단식 종료 축제(샤우왈 1일)에 설교자가 코끼리를 타고 나가는 행렬을 구경. 술탄은 아직 델리로 돌아오지 않았음 | III p.390 |
| 1334년 | Tilbat 성 | 샤우왈 4일 술탄이 델리 7마일 밖 틸바트 성에 도착하자 재상의 명으로 외국인 일행이 마중 나가 술탄을 만남 | III p.391 |
| 1334년 | Delhi | 술탄 도착 이틀 뒤 금요일 외국인 일행이 대전각 문에 가서 술탄을 알현하고 은혜와 관직을 받음 | III p.396-402 |
| 1334년 ~ 1341년 | Delhi | 저자가 델리 판관(카디)에 임명됨. 얼마 뒤 알현실에서 술탄이 두 번째로 은 선물을 내리기로 하나 지급이 늦어짐 | III p.402-406 |
| 1334년 ~ 1341년 | Delhi | 술탄의 사냥 행차에 지체 없이 따라나섬. 사냥 중 술탄이 이집트 술탄도 낙타를 타느냐고 묻자 마흐리 낙타 이야기를 하고 낙타를 바치게 됨 | III p.414-422 |
| 1334년 ~ 1341년 | Delhi | 술탄이 낙타 한 마리를 받고 기뻐해 저자는 과자와 두 마리를 더 바침 — 사냥 중 술탄이 이집트 왕이 낙타를 타느냐고 물은 일에서 시작 | III p.421 |
| 1335년 ~ 1336년 | Balkh | 인도에 온 지 두 해 뒤 들은 소식: 타르타르 귀족들이 사촌 부준(Bouzoun)을 왕으로 세워 타르마시린을 폐위(칭기즈칸의 율법서를 어겼다는 이유). 타르마시린은 15기만 데리고 가즈나로 도망치려다 발흐에서 조카 얀키의 부하에게 붙잡혀 감금됨 | III p.39-43 |
| 1337년 ~ 1338년 | Karachil 산 (히말라야) | 번역자 연표: 무함마드가 누이의 아들 호스레우 멜리크가 이끄는 기병 10만을 카라칠(히말라야) 산지로 보냈다가 참패 — 본문은 이 산이 델리에서 10일 거리, 석 달 길이로 길다고 적음 | Avertissement p.xx; III p.325-327 |
| 1338년 ~ 1339년 | Ma'bar 지방 | 술탄이 마바르 지방 총독으로 임명한 샤리프 잘랄 앗딘 아흐산 샤가 반란을 일으킴 | III p.328 |
| 1340년 ~ 1341년 | Delhi | 주마다 1월 9일 술탄이 델리를 떠나 마바르 지방의 반란자를 치러 감. 저자는 그전에 이미 델리에 남으라는 명을 받음 | III p.427 |
| 1340년 ~ 1341년 | Amroha | 재상이 수도원용 곡식 중 1만 말을 이미 내주고 나머지는 하자르 암루하에서 받으라는 지급 증서를 줌. 저자는 곡식을 받으러 암루하로 감 | III p.436 |
| 1340년 ~ 1341년 | 술탄이 마바르로 가다 틸링에서 군에 전염병이 돌자 다우라타바드로 돌아갔다가 갠지스 강가에 병영을 짓게 하고 머묾. 저자는 이 병영의 술탄에게 감 | III p.443 | |
| 1340년 ~ 1341년 | Delhi | 저자가 델리 밖 동굴의 셰이크 시하브 앗딘(알자므의 아들)을 찾아간 것이 술탄의 분노를 샀고, 처벌을 받을 뻔했으나 하느님이 구해 주었다고 적음 전승 | III p.444 |
| 1340년 ~ 1341년 | 술탄이 모든 영토에서 상품 관세를 없애고 자선세(십일조)와 이름 붙은 세 하나만 거두도록 명함 | III p.288 | |
| 1341년 | Sehwan | 술탄이 시웨시탄 지방에 있다는 말에 수도승 차림으로 찾아가 직책 복귀 권유를 거절하고 히자즈로 여행하게 해 달라고 청해 허락받음. 왕 바시르의 이름을 딴 수도원에 들어감(742년 주마다 2월 말) | III p.446-447 |
| 1341년 ~ 1342년 | 수도원에서 40일을 보낸 뒤 술탄이 안장 얹은 말, 남녀 노예, 옷과 경비를 보내 저자를 중국 사절로 보내려 함 — 저자가 이를 받아들임 (이 3권의 끝) | III p.448 | |
| 1341년 ~ 1342년 | Delhi | 인도·신드에 가뭄이 들어 밀 한 말(mann, 되)이 금 6닢이 되자 술탄이 곡식을 나누어 주라 명함. 델리가 큰 기근 속에 있었다고 번역자 연표가 적음 | III p.290; 연표 742년 |
| 1341년 ~ 1342년 | Warangal | 술탄이 틸링 땅에 이르렀을 때 군대에 전염병이 번짐 (번역자 연표: 와랑갈에서 10일 머물다 본인도 병이 들어 다우라타바드로 돌아감) | III p.334 |
| 1341년 ~ 1342년 | Daulatabad (Diouguir) | 다우라타바드로 돌아오는 길에 술탄이 앓자 죽었다는 헛소문이 퍼져 후헨지 왕이 도망치는 사건으로 이어짐 | III p.335 |
| 1341년 ~ 1342년 | 기근이 여러 지방에 퍼지자 술탄이 군대와 함께 델리에서 10일 거리 갠지스 강가에 진을 침. 오데 총독 아인 알물크가 반란을 일으킴 | III p.341 | |
| 1341년 ~ 1342년 | Multan | 물탄 지방에서 샤 아프간이 술탄에게 반기를 들어 그곳 에미르를 죽이고 술탄 자리를 노림 | III p.362 |
| 1345년 ~ 1346년 | Khambhat (Cambaie) | 캄바이 근처에서 카디 잘랄 앗딘이 아프간 무리와 반란을 일으킴 (술탄이 구자라트로 가는 계기) | III p.363-365 |
| 1345년 ~ 1346년 | Khambhat (Cambaie) | 델리 황제가 캄바이와 다울라타바드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직접 군을 이끌고 출정, 먼저 캄바이부터 치기로 함 | III p.366 |
| 1345년 ~ 1346년 | Daulatabad (Diouguir) | 반란자들이 다우라타바드 성채에 들어가 이스마일 아프간을 왕으로 추대, 술탄이 도시를 포위함. 포위가 3개월 가까이 이어졌으나 구자라트에서 새 반란이 터져 군 일부를 남기고 떠남 | Avertissement p.xxiv; III p.368-369 |
| 1347년 | Herat | 칼릴은 마와라안나흐르를 모두 얻고 세력이 커지자 후원자인 헤라트 왕 후사인에게 반기를 들었으나 군대가 따르지 않아 패해 사로잡힘. 후사인은 목숨을 살려 궁에 두고 노예와 연금을 줌. 저자가 747년 말(1347년 4월) 인도를 나올 때 이 상태였음 | III p.51 |
| 1347년 ~ 1348년 | Herat | 시아 세력 사르바다르(「라피다」)가 투스·사라크스·잠을 차지하고 헤라트를 노리자, 후사인이 헤라트·시므난 주민 12만을 이끌고 부샹 평원에서 맞섬. 처음엔 팽팽하다가 라피다군이 밀려 술탄 마수드는 도망, 칼리프 하산은 전사 | III p.66-69 |
| — | Bukhara | 여행 중 들은 칭기즈칸 이야기: 호라즘 왕 잘랄 앗딘과 맞붙어 마와라안나흐르를 점령하고 부하라·사마르칸드·테르메즈를 파괴, 강을 건너 발흐·바미안을 쳤다. 이어 바그다드의 칼리프도 학살했다는 서술 | III p.22-26 |
| — | Multan | 신드에서 자칭 타르마시린이 나타나자 물탄의 세르티즈가 천막을 세워 정중히 맞았고, 델리 왕의 의사가 다리의 흉터로 본인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델리 왕은 사기꾼으로 몰아 인도·신드에서 추방 | III p.44-47 |
| — | 폭정을 일삼던 부준을 칼릴이 헤라트 왕 후사인의 군대와 함께 쳤고, 부준의 군대가 칼릴 편으로 넘어가 부준은 사슬에 묶여 넘겨져 활시위 줄로 교살됨 | III p.47-48 | |
| — | Taraz (Tharaz) | 칼릴이 알말릭에서 사흘 거리, 타라즈 근처에서 타르타르와 맞붙음. 호다반드 자데가 무슬림 2만을 이끌고 돌격해 타르타르를 격파 | III p.49 |
| — | Herat | 헤라트의 법학자 니잠 앗딘이 취한 튀르크 에미르를 처벌하고 포로가 된 무슬림 여자를 빼내자, 에미르 토무랄티가 헤라트 말을 약탈하고 니잠 앗딘을 넘기라 요구. 셰이크가 데려갔다가 토무랄티가 철퇴로 머리를 쳐 죽임 | III p.70-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