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절요: 정사 사료. 다루는 해 918년 ~ 1392년, 사건 98건을 해 순서로 정리했습니다. 원문 라이선스와 출처 포함.
| 등급 | 정사 |
|---|---|
| 시점 | 내부 시점 |
| 다루는 해 | 918년 ~ 1392년 |
| 사건 수 | 사건 98건 · 지도에 놓은 91건 |
| 저자 | 金宗瑞 等 |
| 원제 | 高麗史節要 |
지역 분포: 한반도 86 · 중국 10 · 일본 2
| 해 | 장소 | 사건 | 원문 위치 |
|---|---|---|---|
| 918년 | 鐵原 | 왕건이 포정전에서 즉위해 국호를 고려, 연호를 천수로 정함 | 권1 太祖神聖大王 元年 |
| 919년 | 開城 | 송악 남쪽에 도읍을 정하고 송악군을 개주로 올려 시장·방리·오부·육위를 둠 | 권1 太祖神聖大王 二年 |
| 925년 | 寧安 | 거란이 발해 도성 홀한성을 포위해 멸망시키고 동단국으로 고침. 발해 세자 대광현 등 수만 호가 고려로 귀순 | 권1 太祖神聖大王 八年 |
| 927년 | 慶州 | 견훤이 신라 왕도에 갑자기 쳐들어가 약탈하고 왕궁에 들어앉음. 신라 왕은 포석정에서 놀다 남쪽 이궁으로 달아남 | 권1 太祖神聖大王 十年 |
| 927년 | 大邱 | 왕건이 정예 기병 5천으로 견훤을 공산 동수에서 맞아 크게 싸웠으나 불리. 신숭겸·김락이 전사하고 왕은 겨우 몸만 빠져나옴 | 권1 太祖神聖大王 十年 |
| 934년 | 洪城 | 왕이 직접 운주를 정벌. 견훤이 갑사 5천을 보내 화친을 청했으나 유금필이 기병으로 돌격해 3천여 급을 베고, 웅진 이북 30여 성이 항복 | 권1 太祖神聖大王 十七年 |
| 935년 | 金堤 | 견훤의 맏아들 신검이 아버지를 금산 불우에 가두고 아우 금강을 죽임 | 권1 太祖神聖大王 十八年 |
| 935년 | 開城 | 신라왕 김부가 백관을 이끌고 개경에 들어옴. 왕건이 교외에서 맞아 유화궁에 머물게 하고 맏딸 낙랑공주를 시집보냄 | 권1 太祖神聖大王 十八年 |
| 936년 | 善山 | 936년 9월 왕이 3군을 이끌고 일선에 이르자 신검이 일리천을 사이에 두고 진을 침. 후백제와의 마지막 결전 | 권1 太祖神聖大王 十九年 |
| 945년 | 江華 | 왕규의 반역을 알아챈 혜종이 서경 대광 왕식렴과 대비해 왕규를 갑곶으로 쫓아냈다가 사람을 보내 베고 일당 300여 명을 처형 | 권2 惠宗義恭大王 二年 |
| 947년 | 開城 | 거란이 침공하려 한다는 최광윤의 편지를 받고 군사 30만을 뽑아 광군이라 하고 광군사를 둠 | 권2 定宗文明大王 二年 |
| 958년 | 開城 | 광종이 한림학사 쌍기에게 과거를 맡겨 시부송·시무책으로 진사를 뽑고 위봉루에서 방을 붙임. 처음 과거를 둠 | 권2 光宗大成大王 九年 |
| 984년 | 형관어사 이겸의에게 압록강 기슭에 관성을 쌓게 했으나 여진이 막고 이겸의를 사로잡음. 군이 무너져 돌아온 자가 3분의 1 | 권2 成宗文懿大王 三年 | |
| 993년 | 安州 | 993년 10월 박양유·서희·최량을 상·중·하군사로 북계에 보냄. 성종이 서경을 거쳐 안북부까지 갔을 때 거란 소손녕이 봉산군을 공격해 선봉군사 윤서안 등을 사로잡았다는 소식을 들음 | 권2 成宗文懿大王 十二年 |
| 1010년 | 義州 | 거란 임금이 통주성 밖 농민을 사로잡아 비단옷과 화살 편지를 주어 흥화진으로 보내 항복을 권하고 강조를 잡아 보내라고 요구 | 권3 顯宗元文大王 元年 |
| 1010년 | 安州 | 거란군이 청수강에 이르자 안북도호부사 박섬이 성을 버리고 달아나 주민이 흩어짐 | 권3 顯宗元文大王 元年 |
| 1010년 | 平壤 | 거란군이 서경을 포위하고 거란 임금은 성 서쪽 절에 주둔. 서경 부유수 원종석 등은 항복 표문을 쓰고, 장수 대도수는 성을 나와 거란에 항복 | 권3 顯宗元文大王 元年 |
| 1018년 | 義州 | 1018년 거란 소손녕이 10만을 일컬으며 쳐들어오자 강감찬을 상원수로 20만 8천여 명을 영주에 주둔시킴. 흥화진에서 기병 1만 2천을 숨기고 쇠가죽으로 냇물을 막았다 터뜨려 크게 격파, 이어 자주 내구산에서 민첩이, 마탄에서 조원이 격파 | 권3 顯宗元文大王 九年 |
| 1019년 | 龜城 | 1019년 2월 거란군이 귀주를 지나자 강감찬이 동쪽 들에서 맞아 싸워, 비바람이 북쪽으로 불어 크게 격파. 석천을 건너 반령까지 쫓아 살아 돌아간 자는 수천에 불과 | 권3 顯宗元文大王 十年 |
| 1052년 | 三陟 | 동여진 고지문 등이 바다로 와 삼척현 임원수를 공격. 수장 하주려가 나가 싸웠고 안변도호판관 김숭정의 나팔 소리에 적이 놀라 흩어져 10여 급을 벰 | 권4 文宗仁孝大王 六年 |
| 1080년 | 定州 | 동번의 난에 문정을 판행영병마로 삼아 보기병 3만이 정주에 주둔. 밤에 3군이 나뉘어 적 소굴을 쳐 392급 참수, 우두머리 39명 생포 | 권5 文宗 三十四年 |
| 1086년 | 開城 | 송에서 돌아온 의천이 예성강에 이르자 왕이 태후를 모시고 마중. 불경 1천 권을 바치고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두어 요·송·일본에서 책 4천 권을 구해 간행 | 권6 宣宗思孝大王 三年 |
| 1096년 | 漢陽 | 위위승동정 김위제가 도선기를 들어 삼각산 남쪽 목멱양에 남경 도성을 세우고 때맞춰 순행하자고 상서 | 권6 肅宗明孝大王 元年 |
| 1104년 | 定州 | 임간이 정주성 밖에서 여진과 싸워 패해 죽은 자가 태반. 척준경이 적장 1명을 베고 포로 2명을 되찾음 | 권7 肅宗 九年 |
| 1107년 | 開城 | 예종이 여진 정벌에 앞서 순천관 남문에 나가 군사를 사열하고 은·포·술·음식을 내림 | 권7 睿宗文孝大王 二年 |
| 1107년 | 윤관이 지계를 나누고 영주(950칸)·웅주(992칸)·복주(774칸)·길주(670칸)에 성곽을 쌓음 | 권7 睿宗文孝大王 二年 | |
| 1108년 | 1108년 여진군 수만이 웅주성을 포위. 최홍정이 4문을 열고 나가 크게 이겨 80급을 베고 병거 50량을 얻고, 척준경은 성을 빠져나가 구원군을 이끌고 옴 | 권7 睿宗文孝大王 三年 | |
| 1109년 | 여진이 길주성을 포위하고 6책을 세워 공격. 이관진이 하룻밤에 겹성을 쌓아 버팀. 구원 가던 오연총은 매복에 크게 패함 | 권7 睿宗文孝大王 四年 | |
| 1109년 | 開城 | 1109년 예종이 군신을 모아 여진에게 9성을 돌려줄지 의논. 처음 들은 것과 달리 길이 모두 통하고 성이 서로 멀어 지키기 어렵다는 논의 | 권7 睿宗文孝大王 四年 |
| 1117년 | 開城 | 1117년 금 황제 아골타가 사신 아지 등 5명을 보내 「형 금국 황제가 아우 고려 국왕에게」라며 화친·형제 결맹을 청하고 말 1필을 보냄. 대신들은 화친 불가를 극언 | 권8 睿宗 十二年 |
| 1126년 | 義州 | 1126년 금에 사신을 보내, 보주성 땅을 고려 소속으로 허락한 것에 사례하는 표문을 올림 | 권9 仁宗恭孝大王 四年 |
| 1128년 | 平壤 | 1128년 묘청·백수한·정지상이 서경에 왕기가 있으니 옮겨 상경으로 삼자 하고 인종의 서경 행차를 추진 | 권9 仁宗恭孝大王 六年 |
| 1131년 | 平壤 | 1131년 이중부를 보내 서경 임원궁성을 쌓고 궁중에 팔성당을 두어 묘청의 설을 따름 | 권9 仁宗恭孝大王 九年 |
| 1135년 | 平壤 | 1135년 묘청·유참과 조광 등이 서경에서 반란. 유수 등을 가두고 국호 대위, 연호 천개를 세우고 군을 천견충의군이라 하며 길목을 끊음 | 권10 仁宗 十三年 |
| 1135년 | 平壤 | 서경 반군이 마탄 자포를 건너 관군 후군을 급습. 승려 관선 등의 반격으로 관군이 크게 이겨 300여 급을 벰 | 권10 仁宗 十三年 |
| 1136년 | 平壤 | 1136년 조광 등이 관군의 토산에 맞서 성안에 겹성을 쌓으려 하자, 윤언이·지석숭이 출병 2년이니 몰래 쳐서 겹성을 부수자고 청했으나 김부식은 듣지 않음. 윤언이의 고집으로 결국 군을 3도로 나눠 공격 | 권10 仁宗 十四年 |
| 1136년 | 平壤 | 1136년 서경이 평정되자 인종이 사면 조서를 내림 | 권10 仁宗 十四年 |
| 1173년 | 慶州 | 1173년 경주 사람들이 순석·인준 일파를 쳐 죽이고 이의민 등을 성에 들였다. 의종을 객사에 가두고, 10월 경신삭에 끌고 나와 곤원사 북쪽 연못가로 데려가 술을 올림 | 권12 明宗光孝大王 三年 |
| 1174년 | 平壤 | 1174년 서경유수 조위총이 정중부·이의방 토벌을 내걸고 동북 양계 성에 격문. 절령 이북 40여 성이 호응했으나 연주만 현담윤 부자가 고수 | 권12 明宗光孝大王 四年 |
| 1175년 | 平壤 | 1175년 6월 후군총관 두경승이 흙을 쌓고 대포로 연주를 함락. 서북 제성이 복속하자 군을 옮겨 서경 공격. 윤인첨은 서경 동북에 토산을 쌓고 오래 포위하자 건의 | 권12 明宗光孝大王 五年 |
| 1176년 | 平壤 | 1176년 윤인첨이 서경 통양문, 두경승이 대동문을 공격해 성이 크게 무너짐. 조위총을 사로잡아 베고 그 머리를 개경에 보내 효시 | 권12 明宗光孝大王 六年 |
| 1179년 | 開城 | 1179년 9월 장군 경대승이 허승과 모의해 정중부와 사위 송유인을 죽임 | 권12 明宗光孝大王 九年 |
| 1196년 | 開城 | 1196년 4월 장군 최충헌이 동생 충수와 함께 이의민을 죽임. 왕이 보제사에 행차한 때 | 권13 明宗 二十六年 |
| 1202년 | 慶州 | 1202년 경상도안찰사 지자심이 경주가 항복을 청한다고 하자 최충헌이 노해 김척후 등을 중·좌·우도 병마사로 보내 토벌. 적은 운문산·울진 초적을 모아 정국병마를 자칭 | 권14 神宗靖孝大王 五年 |
| 1204년 | 慶州 | 1204년 동경 사람이 신라 부흥을 말하며 반란을 꾀했다 하여 동경유수를 지경주사로 낮추고, 안동을 대도호부로 올림 | 권14 神宗靖孝大王 七年 |
| 1218년 | 江東 | 1218년 12월 몽골 원수 합진·찰랄 1만과 동진 완안자연 2만이 거란을 친다며 화·맹·순·덕 4성을 깨고 강동성으로 직행. 큰 눈에 군량이 끊김 | 권15 高宗 五年 |
| 1219년 | 江東 | 1219년 정월 강동성의 거란군이 항복. 합진·찰랄이 조충·김취려와 형제 맹약을 맺음 | 권15 高宗 六年 |
| 1222년 | 義州 | 1222년 한순·다지의 잔당이 동진군을 끌고 정주에 들어와 의주까지 침범. 방수장군 수연이 패했고 인주 방수장군이 성밖에서 습격해 200여 급을 벰 | 권15 高宗 九年 |
| 1231년 | 龜城 | 1231년 몽골군이 귀주성 성곽 200여 칸을 부수고 항복한 성의 병사를 앞세워 포 28기로 공격. 주민이 결사항전해 크게 이김 | 권16 高宗 十八年 |
| 1231년 | 龜城 | 몽골군이 대포차로 다시 귀주를 공격하자 박서가 포차로 맞서 쏨. 살리타의 항복 권유를 거부하고, 운제 공격은 대우포로 부숨 | 권16 高宗 十八年 |
| 1232년 | 江華 | 1232년 최우가 재추를 모아 강화 천도를 논의. 유승단은 반대하고, 밤에 별초 지유 김세충이 문을 밀고 들어와 최우를 따짐 | 권16 高宗 十九年 |
| 1232년 | 龍仁 | 1232년 몽골 살리타가 처인성을 공격하다가 성안에 피신해 있던 승려 김윤후가 쏜 화살에 죽음 | 권16 高宗 十九年 |
| 1233년 | 平壤 | 1233년 서경 사람 필현보·홍복원 등이 선유사 정의·박록전을 죽이고 성을 들어 반란. 최우가 가병 3천과 민희를 보내 토벌해 필현보는 허리 베기, 홍복원은 몽골로 달아남. 남은 백성은 섬으로 옮겨 서경은 폐허가 됨 | 권16 高宗 二十年 |
| 1236년 | 安城 | 1236년 몽골군이 죽주에서 항복을 요구. 성안 병사가 쳐서 쫓았고, 몽골군이 포·불로 15일 공격했으나 끝내 못 깨고 물러남. 방호별감 송문주가 계책을 예측 | 권16 高宗 二十三年 |
| 1251년 | 江華 | 1251년 정월 왕이 제포궁에서 몽골 사신 홍고이를 대접. 사신은 북쪽이 이미 파괴돼 옛 서울로 돌아갈 수 없으니 강에 의지해 지키라 하고 돌아가 보고하겠다 함 | 권17 高宗 三十八年 |
| 1253년 | 鐵原 | 1253년 몽골군이 동주산성을 함락. 방호별감 백돈명이 정병 600으로 맞섰으나 병졸이 싸우지 않고 달아나 돈명·부사·판관·현령이 죽고 부녀·아이를 사로잡음 | 권17 高宗 四十年 |
| 1258년 | 江華 | 1258년 3월 유경·김인준 등이 최의를 죽임. 최의가 어리고 어두워 현사를 예우하지 않고 흉년에도 창고를 열지 않아 인심을 잃은 끝 | 권17 高宗 四十五年 |
| 1269년 | 江華 | 1269년 임연이 삼별초·육번도방을 구정에 모아 재추에게 거사를 말함. 이장용은 물러나겠다 하고 유천우는 세자가 돌아온 뒤로 미루자 함 | 권18 元宗順孝大王 十年 |
| 1269년 | 平壤 | 1269년 최탄이 서경유수 최년·판관 유찬, 용주·영주·철주·선주 수령을 죽이고 나머지 성의 관리는 모두 적에게 넘어감. 몽골에 투항 | 권18 元宗順孝大王 十年 |
| 1270년 | 江華 | 1270년 6월 장군 배중손과 야별초 지유 노영희 등이 「오랑캐 군사가 쳐들어와 사람을 죽인다」며 사람들을 구정에 모으고, 금강고 병기를 풀어 성을 지킴. 삼별초가 개경 환도에 맞선 봉기 | 권18 元宗順孝大王 十一年 |
| 1271년 | 密陽 | 1271년 밀성군 사람 방보·계년 등이 진도에 호응해 부사 이이를 죽이고 청도 감무를 죽임. 안찰사 이오 등이 진압 | 권19 元宗 十二年 |
| 1273년 | 濟州 | 1273년 김방경과 흔도 등 연합군이 함덕포로 탐라에 상륙. 바위틈에 숨은 적을 쳐 외성을 넘어 들어가 화살로 불을 놓아 삼별초가 크게 무너짐 | 권19 元宗 十四年 |
| 1274년 | 馬山 | 1274년 10월 도독사 김방경 등 고려군 8천과 몽한군 2만 5천, 전함 900여 척이 합포를 떠나 일본 정벌에 나섬 | 권19 元宗 十五年 |
| 1274년 | 壹岐 | 11일 만에 일기도에 닿자 왜병이 해안에 진을 치고, 박지량·조변이 쫓아 왜가 항복을 청함 | 권19 元宗 十五年 |
| 1281년 | 馬山 | 1281년 5월 흔도·홍다구와 김방경·박구·김주정 등이 수군으로 일본 정벌에 나섬 | 권20 忠烈王 七年 |
| 1291년 | 原州 | 1291년 하단이 원주에 주둔. 기병 50이 치악성에 와 소·말을 약탈하자 원충갑이 보졸 6명으로 쫓아 말 8필을 빼앗음 | 권21 忠烈王 十七年 |
| 1318년 | 濟州 | 1318년 제주 백성 사용·김성이 무리를 모아 반란해 성주 왕자를 쫓아냄. 송영이 안무하러 가자 적이 두목 2명을 베고 항복 | 권24 忠肅王 五年 |
| 1339년 | 開城 | 1339년 전왕이 방을 붙여 조적 등이 활과 칼을 차고 사람을 모아 반란을 꾀했다고 알리고 귀순하는 관원은 용서한다 함. 조적 일파는 궁문 밖에 수레를 연이어 막음 | 권25 忠肅王 八年 |
| 1352년 | 開城 | 1352년 조일신이 난을 일으켜 안팎에 호령. 왕이 이인복과 의논해 행성에서 김첨수로 일신을 붙잡아 베게 함 | 권26 恭愍王 元年 |
| 1354년 | 高郵 | 1354년 원 태사 탈탈이 고우성을 공격. 고려 원정군을 포함한 2만 3천이 선봉이었으나 함락 직전 탈탈이 참소로 유배. 고려군은 육합성 함락·회안로 이동, 이권 등 6명 전사 | 권26 恭愍王 三年 |
| 1356년 | 永興 | 1356년 동북면병마사 유인우가 등주에 머무름(쌍성에서 200여 리). 쌍성총관 조소생에 맞선 조돈이 내응을 약속, 하룻밤에 200리를 달려 유인우 진영에 와 쌍성 수복에 협력 | 권26 恭愍王 五年 |
| 1360년 | 平澤 | 1360년 5월 왜구가 전라도 회미·옥구, 양광도 평택·아주·신평 등을 침입해 용성 등 10여 현을 불태움. 개경 계엄, 유탁을 경기병마도통사로 삼음 | 권27 恭愍王 九年 |
| 1360년 | 白岳 | 1360년 남경(한양) 천도를 위해 이안을 보내 성궐을 고치게 해 백성이 괴로워했으나 태묘 점이 불길해 중지. 임진현 북 백악에 새 도읍 공사 추진 | 권27 恭愍王 九年 |
| 1361년 | 朔州 | 1361년 홍두적 위평장 반성·사유·관선생·주원수 등 10여 만이 압록강을 건너 삭주를 침입 | 권27 恭愍王 十年 |
| 1361년 | 開城 | 1361년 홍건적이 절령 책을 깨 안우 등이 무너지자 왕이 공주·태후를 모시고 남쪽으로 피난하려 함. 개경 부녀·노약자부터 내보냄 | 권27 恭愍王 十年 |
| 1361년 | 安東 | 1361년 12월 왕이 복주에 이르자 정세운이 홍적을 쓸고 경성을 회복하겠다며 총병관이 됨 | 권27 恭愍王 十年 |
| 1362년 | 開城 | 1362년 안우·이방실·최영 등 20만이 동교 천수사 앞에 진을 치고 정세운이 독려. 태조가 휘하 2천으로 선봉에서 대파해 적 괴수 사유·관선생을 베고 10여만을 참수, 원 황제 옥새를 얻어 경성 수복 | 권27 恭愍王 十一年 |
| 1362년 | 洪原 | 1362년 7월 나하추가 수만으로 홍원 달단동에 주둔. 태조가 덕산동 원평에서 선봉을 쫓고 함관령·차유령을 넘어 크게 쳐 갑옷·병기를 버리게 함 | 권27 恭愍王 十一年 |
| 1363년 | 開城 | 1363년 윤3월 김수·조련 등 50여 명이 행궁 흥왕사를 급습, 환관을 죽이고 왕은 대비전 밀실에 숨음. 환관 안도적이 왕인 척 누워 죽고 홍언박 등 살해 | 권27 恭愍王 十二年 |
| 1364년 | 義州 | 1364년 정월 최유가 원군 1만으로 덕흥군을 받들고 압록강을 건너 의주를 포위. 안우경이 일곱 번 싸워 물리쳤으나 도병마사 홍선이 잡히고 고려군이 패해 안주로 물러남. 최영을 도순위사로 급파 | 권28 恭愍王 十三年 |
| 1364년 | 咸興 | 1364년 여진 삼선·삼개 등이 함주를 함락, 수장 전이도·이희가 군을 버리고 달아남. 이성계는 서북 구원에 가 있었음 | 권28 恭愍王 十三年 |
| 1370년 | 1370년 이성계가 기병 5천·보병 1만으로 황초령·설한령을 넘어 압록강을 건넘. 동녕부 동지 이오로첩목아는 우라산성에 들어가 막으려 했으나 이성계가 이르자 갑옷을 벗고 절하며 3백여 호와 귀순 | 권29 恭愍王 十九年 | |
| 1370년 | 遼陽 | 1370년 11월 의주에서 부교로 압록강을 건너 나장탑에 이르러 7일치 군량만 들고, 기병 3천으로 요성을 급습 | 권29 恭愍王 十九年 |
| 1374년 | 馬山 | 1374년 왜선 350척이 합포에 침입해 군영과 병선을 불태우고 군사 50여 명이 죽음. 도순문사 김횡을 처형 | 권29 恭愍王 二十三年 |
| 1375년 | 金海 | 1375년 왜가 김해부에서 민가를 약탈하고 관청을 불태움. 조민수가 싸워 패하고 대구현에서도 패했으나 황산강을 거슬러 밀성을 노리던 왜를 쳐 수십 급을 벰 | 권30 辛禑 1年 |
| 1377년 | 江華 | 1377년 판개성부사 나세가 강화에서 왜를 치겠다 청해 이원계 등과 파견. 최영이 승천부에 있자 왜가 강화를 버리고 수안·통진·동성 등으로 물러나 약탈 | 권30 辛禑 3年 |
| 1378년 | 豐德 | 1378년 왜선이 승천부에 들어와 개경을 치겠다고 외쳐 계엄. 최영이 해풍군에 주둔하고 이성계가 정예기병으로 합세해 크게 격파 | 권30 辛禑 4年 |
| 1380년 | 群山 | 1380년 왜선 500척이 진포 입구에 들어와 굵은 줄로 배를 이어 놓고 상륙해 약탈. 나세·심덕부·최무선이 최무선이 만든 화포로 적선을 불태움 | 권31 辛禑 6年 |
| 1380년 | 南原 | 1380년 이성계가 남원에 이르고 배극렴이 마중. 진을 치지 않고 운봉을 넘어 황산 서북 정산봉에 올라 길목 험지를 살핌, 적이 곧 돌출하자 맞섬(황산 싸움) | 권31 辛禑 6年 |
| 1382년 | 義州 | 1382년 요동 호발도가 군사 1천으로 압록강을 몰래 건너 의주를 습격, 상만호 장려 집을 포위. 부만호 최원지가 쫓아 20여 급을 벰 | 권31 辛禑 8年 |
| 1383년 | 南海 | 1383년 해도원수 정지가 전함 47척으로 목포에서 출항, 왜선 120척과 남해 관음포·박두양에서 싸워 17척을 불태우고 대파 | 권32 辛禑 9年 |
| 1385년 | 咸興 | 1385년 왜선 150척이 함주·홍원·북청 등을 침입해 사람을 거의 다 죽이거나 잡아감. 심덕부 등이 홍원 대문령 북에서 패하고 이성계가 가서 치겠다 청해 함주에서 부서를 정함 | 권32 辛禑 11年 |
| 1388년 | 平壤 | 1388년 우왕이 평양에서 압록강 부교를 놓게 하고 최영을 팔도도통사, 조민수를 좌군도통사로 삼는 등 요동 정벌 군을 편성(우군 이성계) | 권33 辛禑 14年 |
| 1388년 | 開城 | 1388년 6월 이성계가 황룡기를 세우고 선죽교를 지나 남산에 오르자 최영 휘하 안소가 먼저 점거했으나 깃발을 보고 무너짐. 최영은 화원으로 달아나 쫓김 | 권33 辛禑 14年 |
| 1389년 | 對馬 | 1389년 경상도원수 박위가 병선 100척으로 대마도를 쳐 왜선 300척과 가옥을 거의 다 불태우고 붙잡힌 백성 100여 명을 데려옴 | 권34 恭讓王 元年 |
| 1389년 | 開城 | 1389년 공양왕이 효사관에 가서 우·창을 처형한 일을 태조에게 고함 | 권34 恭讓王 元年 |
| 1392년 | 開城 | 1392년 정몽주가 이성계 병중에 조준·정도전·남은 등을 탄핵하게 하자 이방원이 조영규 등을 보내 길에서 몽주를 쳐 죽임 | 권35 恭讓王 四年 |
| 1392년 | 開城 | 1392년 백관이 국새를 왕대비 안씨 전에 받들어 두고 섭정하게 함(절요의 마지막 기사) | 권35 恭讓王 四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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