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요미즈데라(清水寺) 화재, 본당·아미타당·누문·무대 등 전소 (「태평기」 巻第二十七 225 天下妖怪事付清水寺炎上事)
시조 가와라 田楽 가설 관람석 붕괴, 사상자 다수 (「태평기」 巻第二十七 226 田楽事付長講見物事)
고 모로나오 대군이 쇼군 어소를 포위. 직의가 우에스기·하타케야마 유배를 대가로 양보 (「태평기」 巻第二十七 229 御所囲事)
하타케야마 나오무네 할복. 우에스기 시게노부는 칼을 든 채 시간을 끌다 하인들에게 잡혀 죽음 (「태평기」 巻第二十七 233 上杉畠山流罪死刑事)
고 모로나오·모로야스가 장군 저택을 포위해 우에스기 이즈노카미·하타케야마 오쿠라쇼유를 쫓아내 유배지에서 사형 (「태평기」 巻第二十八 235)
아시카가 요시아키라(義詮)가 가마쿠라에서 상경해 정무를 집행. 실권은 고 모로나오 (「태평기」 巻第二十八 235)
아시카가 타다후유(直冬)가 빈고를 떠나 가와지리 히고노카미 유키토시 집에 머묾 (「태평기」 巻第二十八 236)
서아시아 (2)
비잔티움 수병들이 라틴 대형 수송선을 공격해 불태움 — 불길이 밤새 바다 위로 치솟음 (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 XVII.5 p.859–860 · part07 줄 487)
라틴 함대가 비잔티움 함대를 에워싸 공격 — 배가 뒤집혀 수많은 병사가 바다에 빠짐 (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 XVII.6 p.862–863 · part07 줄 690)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7)
야지가 잠나 가바에서 라노 사르키를 몰아내고 라노로 가 부누에서 2년 다스린 뒤 쿠르로 옮김 (「카노 연대기」 Palmer 1908, Kano Chronicle §XI Yaji, p.70)
멜레에서 온 웅가라와(Wongarawa) 이슬람 학자 약 40명이 야지에게 기도 시각을 지키게 하고, 구르다무스를 이맘으로 삼음 (「카노 연대기」 Palmer 1908, Kano Chronicle §XI Yaji, p.70)
신목 아래 동쪽을 향해 모스크를 짓고 하루 다섯 번 기도함 (「카노 연대기」 Palmer 1908, Kano Chronicle §XI Yaji, p.70)
야지가 웅가라와 학자들과 함께 산톨로로 진군해 두지 부근에 진을 치고 아침부터 밤까지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음 (「카노 연대기」 Palmer 1908, Kano Chronicle §XI Yaji, p.71)
이튿날 총공격에서 그워지가 적장 함바리를 찔러 죽이고 말을 타고 산톨로에 들어가 도시를 함락, 야지는 여자·어린이 외 주민을 모두 죽이게 하고 7일 머문 뒤 성벽과 신목을 부수고 카노로 돌아옴 (「카노 연대기」 Palmer 1908, Kano Chronicle §XI Yaji, p.72)
이듬해 야지가 워르지와 전쟁을 하고 한동안 머무름; 이 무렵 비리에서 판다까지 이교 부족이 모두 복속 (「카노 연대기」 Palmer 1908, Kano Chronicle §XI Yaji, p.72)
크와라라파만 따르지 않아 야지가 그 나라로 가자 주민이 타가라 바위산으로 도망, 7개월 진을 쳤고 끝내 노예 100명을 바침; 야지는 여기서 죽었다고도 전함 (「카노 연대기」 Palmer 1908, Kano Chronicle §XI Yaji, p.72)
남유럽(이탈리아·그리스·이베리아·발칸) (3)
라틴 함대장이 빈 비잔티움 배들을 줄로 묶어 끌고 라틴 기지(갈라타)로 돌아옴 (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 XVII.6 p.864 · part07 줄 765)
갈라타 쪽 성을 치러 온 비잔티움 원군 약 3000명이 무기를 버리고 도주 — 강을 건넌 뒤에야 숨을 돌림 (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 XVII.7 p.865–866 · part07 줄 884)
제노바 사절이 갈라타에 도착해 빼앗은 땅 반환, 배상 10만 이상, 재발 않겠다는 맹세를 제시 — 비잔티움은 굴욕적인 평화를 받아들임 (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 XVII.7 p.867 · part07 줄 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