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 정사 사료. 다루는 해 1341년 ~ 1359년, 사건 175건을 해 순서로 정리했습니다. 원문 라이선스와 출처 포함.
| 등급 | 정사 |
|---|---|
| 시점 | 내부 시점 |
| 다루는 해 | 1341년 ~ 1359년 |
| 사건 수 | 사건 175건 · 지도에 놓은 138건 |
| 저자 | Nikephoros Gregoras |
| 원제 | Nicephori Gregorae Byzantina Historia |
지역 분포: 서아시아 102 · 남유럽(이탈리아·그리스·이베리아·발칸) 65
| 해 | 장소 | 사건 | 원문 위치 |
|---|---|---|---|
| 1341년 | Constantinople | 안드로니코스 3세(젊은 황제) 이야기를 끝내고, 아홉 살 된 아들 요하네스가 남은 자리를 말함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643-651 |
| 1341년 | Constantinople | 남편 장례 뒤 사흘 만에 황후 안나가 궁정으로 돌아옴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799-800 |
| 1341년 | Constantinople | 총대주교와 주교들이 선황의 유언서(코디칠로스)를 내놓음 — 아내와 자식을 위한 지시가 적혀 있다고 함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802-804 |
| 1341년 | Constantinople | 아포카우코스와 총대주교가 황후를 따로 찾아가 칸타쿠제노스의 권한을 거두라고 설득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1106-1111 |
| 1341년 | 아포카우코스가 세운 성채(에피바타이) — 자기 세력의 근거지로 쓰임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1185-1191 | |
| 1341년 | 군대가 복음서 위에 황제의 생명을 지키겠다고 맹세 — 칸타쿠제노스 쪽 군사 지지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1254-1256 | |
| 1341년 | Constantinople | 칸타쿠제노스가 황후와 측근 앞에 나서서 연설을 시작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1297-1300 |
| 1341년 | 칸타쿠제노스가 트라키아 도시와 지방을 돌며 방어 태세를 점검하고 수비대를 세움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1851-1852 | |
| 1341년 | 움르(아미르) 함대가 에게해 섬과 해안에서 해마다 무거운 조세를 거둬들임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1890-1904 | |
| 1341년 | Smyrna | 움르의 큰 함대가 스미르나 항에 모여 트라키아와 비잔티온까지 공격할 기세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1960-1961 |
| 1341년 | 칸타쿠제노스가 움르 함대의 공격을 최대한 빨리 막으려고 준비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1962-1963 | |
| 1341년 | Constantinople | 황후 안나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칸타쿠제노스가 듣고, 아포카우코스가 다시 음모를 꾸밈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020-2021 |
| 1341년 | 아포카우코스가 오래전부터 큰돈을 들여 에피바타이 성채에 재산을 쌓아 둠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218-2220 | |
| 1341년 | 칸타쿠제노스가 그 성채를 허물고 쌓아 둔 돈을 국고로 옮기며 아포카우코스를 구금하라고 지시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265-2268 | |
| 1341년 | Constantinople | 칸타쿠제노스가 비잔티온을 떠나 트라키아 도시들로 향함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336-2338 |
| 1341년 | Constantinople | 풀려난 아포카우코스가 비잔티온으로 돌아옴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392-2392 |
| 1341년 | Constantinople | 총대주교가 교회 자리를 떠나 궁정에 머물며 황후 곁에서 아포카우코스와 함께 움직임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393-2396 |
| 1341년 | Constantinople | 칸타쿠제노스의 친지와 측근들이 모여 총대주교와 아포카우코스에게 사절을 보내 해를 가하지 말라고 요청 — 이어 군중과 충돌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555-2564 |
| 1341년 | Constantinople | 칸타쿠제노스의 어머니가 부당하게 감옥에 갇히고 그 집이 헐림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609-2610 |
| 1341년 | 로마 세계 전체가 두 파로 갈려 나뉨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861-2862 | |
| 1341년 | Constantinople | 총대주교 쪽이 지방과 도시마다 칸타쿠제노스 지지자들에 대한 파문·금지 서신 다발을 보냄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933-2936 |
| 1341년 | 칸타쿠제노스 쪽이 평화를 청하는 사절을 자주 보냄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948-2948 | |
| 1341년 | 적대 세력이 육지와 바다에서 칸타쿠제노스를 겨냥한 군비를 계속 갖춤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997-2998 | |
| 1341년 | Constantinople | 칸타쿠제노스의 병사 일부가 비잔티온 시민의 초대를 받고 비잔티온 쪽으로 넘어감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3003-3005 |
| 1341년 ~ 1342년 | Didymoteichon | 칸타쿠제노스의 병력이 디디모테이콘 작은 읍에 짐승·짐과 함께 갇혀 겨울을 남 | 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3007-3008 |
| 1341년 | 안드로니코스 3세 죽음 뒤 나라가 내전(tumultus civilis)으로 흔들림 — 어린 황제 시기 혼란 | part_20.txt L78-82 | |
| 1342년 | 칸타쿠제노스가 다음 날 세르비아 왕(Cralis Serviae)에게 사절을 보내 비극적 사정을 알리고 동정을 구함 | XIII.2 (V 앞) | |
| 1342년 | Triballi | 트리발리인 한 명이 길목에 매복해 칸타쿠제노스 사절들을 잡아 아포카우코스에게 넘기고, 자신은 로마 풍습으로 옮겨 감 | XIII.2 (V) |
| 1342년 | Triballi | 트리발리 지방 총독 리베리우스(칸타쿠제노스와 오랜 친구)에게 칸타쿠제노스가 사람을 보내 오른손을 내밀고 연설하게 함 | XIII.2 (V) |
| 1342년 | Triballi | 리베리우스가 하루 길을 못 가서 칸타쿠제노스를 맞으러 와 악수하고, 며칠 머물게 하여 기운을 북돋음 | XIII.2 (VI) |
| 1342년 | Triballi | 칸타쿠제노스가 아들 마누엘을 리베리우스의 사위로 주겠다고 약속하며, 세르비아 왕에게 가는 길을 열고 화해를 중재해 달라고 청함 | XIII.2 (VI) |
| 1342년 | 리베리우스가 세르비아 왕에게 보내는 추천 서한을 써 줌. 칸타쿠제노스는 그 추천을 받고 호위 병력과 함께 출발 | XIII.2 (VII) | |
| 1342년 | Scupi (Scopia, 현 Skopje) | 칸타쿠제노스가 자기 군사 호위를 받으며 출발 후 15일 만에 스코피 소도시에 도착, 그 성벽 옆을 악시오스 강이 흐름 | XIII.2 (VII) |
| 1342년 | Scupi (Scopia, 현 Skopje) | 스코피에 도착한 군대가 큰 피로를 풀 만한 자리를 골라 머물며 숙영·휴식 | XIII.2 (VIII) |
| 1343년 ~ 1344년 | Byzantium | 비잔티움과 트라키아의 로마 도시들이 곡식 부족으로 굶주림 | XIII.12 (Bonn 684) |
| 1343년 ~ 1344년 | Thracia | 내전 틈을 타 투르크가 아시아에서 배로 트라키아에 건너와 밭을 불태우고 가축을 몰고 사람을 노예로 잡음 | XIII.12 (Bonn 684) |
| 1343년 ~ 1344년 | Pontus Euxinus | 흑해에서 해마다 오던 곡물 수송선이 오지 않음 — 제노바인 카파 식민지가 흑해 입구를 막은 것이 원인 | XIII.12 (Bonn 684) |
| 1345년 | Perithorion | 황제 측 병력이 Perithorion 부근에서 모미틸라스 군을 에워싸 기병·보병을 궤멸시키고, 모미틸라스 본인도 살해됨 | XIV.9 (추정, 줄 1257–1322) |
| 1345년 | Constantinople (Byzantium) | 아포카우코스가 비잔티온 옛 궁 안에서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살해됨 | XIV.10 (줄 1324–1325) |
| 1345년 ~ 1347년 | Constantinople | 어린 황제 앞 공개 논쟁 — 그레고라스가 팔라마스의 신적 본질·효능 구분을 조목조목 반박 | part_20.txt L42-52 |
| 1345년 ~ 1347년 | 팔라마스 쪽 판결 뒤 교회 안 반대파 탄압 — 총대주교가 추방돼 폭력으로 죽고 주교·사제들이 여러 곳으로 흩어짐 (이름 없음, 그레고라스 서술) | part_20.txt L120-170 | |
| 1345년 ~ 1347년 | Constantinople | 어린 황제가 그레고라스 편으로 판정했으나 판결을 공개하지 않음 — 칸타쿠제노스가 팔라마스 쪽이라 미룸 | part_20.txt L2707-2711 |
| 1345년 | Constantinople | 팔라마스를 두고 종무회의(synodus)가 열림 — 편자 주 기록 (본문에는 회의 명시 없음) | part_20.txt L2824-2825 (편자 주) |
| 1346년 ~ 1347년 | Orestias | 마테우스가 오레스티아스 성채를 점거하고 도시를 요새화함. | part06 줄 28–29 (라틴 대역) |
| 1346년 ~ 1347년 | Orestias | 이레네 황후가 아들을 달래려고 몰래 오레스티아스에 먼저 들어갔고, 마테우스는 그 계략을 알고 다음 날 오레스티아스로 와서 어머니에게 인사함. | part06 줄 115–117 (라틴 대역) |
| 1346년 ~ 1347년 | 칸타쿠제노스가 그레고라스를 자기 집(수도원 방)으로 불러 화해 — 자리에서 팔라마스 찬양을 두고 논쟁 재개 | part_20.txt L3796-3842 | |
| 1347년 | Constantinople | 칸타쿠제노스 황제가 안나 쪽 사절을 돌려보냄 — 성채를 힘으로 차지할 수 있으나 그 뜻을 버렸다고 말함 | XV.8 IX (779) |
| 1347년 | Constantinople | 다음 날 칸타쿠제노스 쪽 병사·지휘관들이 몰래 성채를 갑자기 공격 — 낮 무렵 투척 무기와 불로 블라헤르나이 신전 쪽 성문에 불을 지름 | XV.8 X (779) |
| 1347년 | Constantinople | 무장한 무리가 뚫고 들어가 성채의 바다 쪽 부분을 차지하고 주민 재산을 약탈 — 황제가 사람을 보내 공격을 말림 | XV.8 X (779–780) |
| 1347년 | Constantinople | 안나 황후가 밤을 지새운 뒤 아침 회의에서 사절을 보내 화해를 청함 — 용서는 빌지 않고 권한을 요구하다가, 칸타쿠제노스를 공동황제로 받아들이되 자신이 앞선다는 조건으로 물러섬 | XV.8 XI (780) |
| 1347년 | Didymoteichon | 칸타쿠제노스 황제가 아르크투루스가 뜬 뒤 비잔티움을 떠나 디디모테이콘으로 감. 이레네가 가라앉힌 소요를 정리하려는 것. | part06 줄 607–608 (라틴 대역) |
| 1347년 | Byzantium | 황제가 총대주교 요하네스를 쫓아내고, 비잔티움 궁에 가둬 감시하게 함. | part06 줄 609–611 (라틴 대역) |
| 1347년 | Didymoteichon | 칸타쿠제노스가 아들 마테우스에게 트라키아 일부(디디모테이콘에서 서쪽 크리스토폴리스 교외까지, 바다에서 크산티아 읍까지)를 맡기고 황제 아래의 권위를 줌. | part06 줄 664–668 (라틴 대역) |
| 1347년 ~ 1354년 | Euboea | 베네치아 전함 34척이 에우보이아 항구 입구를 막고 제노바 배들을 그물처럼 둘러싸 사로잡음 | Bonn 43–44 (XXV.17–18) |
| 1347년 ~ 1354년 | Byzantium | 베네치아 함대 지휘관이 에우보이아를 떠나 비잔티온으로 돛을 올림, 황제가 그곳에 오기를 기다림 | Bonn 44–45 (XXV.17–19) |
| 1347년 ~ 1354년 | Oreum | 오레오스 항구에서 베네치아 지휘관이 비운 배들을 줄로 매달아 항구에 가라앉혀 적이 빼앗지 못하게 함 | Bonn 47 (XXV.21–22) |
| 1347년 ~ 1354년 | Oreum | 제노바 함대가 오레오스를 에워싸고 공격함, 베네치아 측은 사람을 보내 성을 지킴 (아테네·테바이 라틴인 300 기병 지원 요청) | Bonn 48–49 (XXV.21–22) |
| 1347년 ~ 1354년 | Oreum | 베네치아 측 정예 약 5천이 야간 매복 뒤 공격해 제노바군을 물리침. 본문은 적지 쪽 전사 500 명 | Bonn 50–51 (XXV.23–24) |
| 1347년 ~ 1354년 | Galata | 베네치아가 갈라타 성채를 육지와 바다에서 막음(본문은 「앞해」 일이라고 함). 황제는 성곽 파괴를 조건으로 철수를 제안했으나 제노바 측이 거절 | Bonn 76–77 (XXVI.10–19) |
| 1347년 ~ 1354년 | Corcyra and Zacynthus (plural cities) | 베네치아 100여 척이 이오니아 바다를 지나 코르키라·자킨토스 등에서 용병을 모집 | Bonn 77–78 (XXVI.10–19) |
| 1347년 ~ 1354년 | Tenedos | 제노바 함대 60척이 키오스에서 출발해 헬레스폰토스 어귀를 거쳐 테네도스에 정박 | Bonn 78–79 (XXVI.10–19) |
| 1347년 ~ 1354년 | Perinthus (Heraclea) | 헤라클레아 주민들이 기습으로 라틴인 선원들을 죽이자 라틴 측이 두 시간 만에 성을 함락, 주민 노예화. 헤라클레아는 완전히 파괴됨 | Bonn 79–80 (XXVI.12–14) |
| 1347년 ~ 1354년 | Sozopolis | 제노바가 전함 10척을 보내 이틀 싸움 끝에 흑해 연안의 부유한 로마 도시 소조폴리스를 함락 | Bonn 83–84 (XXVI.15–18) |
| 1347년 ~ 1354년 | Creta | 베네치아 함대 70척과 카탈로니아 30척이 가을 한가운데 크레타에 온전히 도착, 며칠 머물며 보급 | Bonn 85–86 (XXVI.15–19) |
| 1347년 ~ 1354년 | Sestus | 크레타 출항 뒤 폭풍으로 함대가 흩어져 일부는 에우보이아·키클라데스로 밀리고 다수 침몰. 나머지는 테네도스를 거쳐 헬레스폰토스의 세스토스에 닿음 | Bonn 86–87 (XXVI.15–19) |
| 1347년 ~ 1354년 | Therapia (Bosporus) | 비잔티온 항구 입구 가까이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베네치아와 제노바 해전. 양측이 서로 함선 22척(제노바)·18척(베네치아)을 잃음 | Bonn 87–88 (XXVI.19–21) |
| 1347년 ~ 1354년 | Byzantium | 비잔티온에 베네치아 해군 1만8천 명 이상이 모여 식량 값이 두 배로 뛰고, 베네치아 지휘부가 물자 부족에 몰림 | Bonn 99 (XXVI.94–96) |
| 1347년 ~ 1354년 | Raedesti (Raidestos) | 황제의 사위(콤스의 아들)가 라이데스토스 부근에서 황실 사절단을 습격, 선물을 빼앗고 사절 일부를 죽임 | Bonn 100–101 (XXVI.33–35) |
| 1347년 ~ 1354년 | Orestias | 이레네 황후가 아들들의 충돌을 막으려고 오레스티아스·디뒤모티콘으로 길을 떠남 | Bonn 97–98 (XXVI.30–31) |
| 1347년 ~ 1354년 | Byzantium | 저자 그레고라스가 감금 중 극심한 억압 속에 놓임 (회고 대목) | Bonn 121 (XXVII.1–3) |
| 1347년 ~ 1354년 | Venetia | 베네치아 함대 지휘관이 평화 조건을 황제에게 맡기고 베네치아로 돌아감, 「곧 돌아오겠다」고 약속 | Bonn 145 (XXVII.9–14) |
| 1348년 | Byzantium | 팔라마스가 디디모테이콘에서 불려와 비잔티움으로 달려와, 교리 논쟁이 시작됨. | part06 줄 1613 (라틴 대역) |
| 1348년 | Didymoteichon | 칸타쿠제노스가 봄 중순 비잔티움을 떠나 7일 뒤 디디모테이콘에 닿음. 트라키아 병력을 모으고 아미우리우스(우무르)와 아시아의 병력을 불러오려는 것. | part06 줄 1912–1915 (라틴 대역) |
| 1348년 | Smyrna | 아미우리우스가 아시아에서 보병·기병을 크게 모아, 트라키아·마케도니아로 건너가기 전에 라틴인이 스미르나에 둔 성을 빼앗아 무너뜨리려 함. | part06 줄 1915–1918 (라틴 대역) |
| 1348년 | Smyrna | 라틴인이 성에서 나와 맞서 싸움. 아미우리우스가 치명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음. | part06 줄 1963–1965 (라틴 대역) |
| 1348년 | 하지 직후 여러 곳에서 모인 페르시아인 떼가 아시아에서 트라키아로 건너감. | part06 줄 1978–1979 (라틴 대역) | |
| 1348년 | Bizye | 기병 약 1,200이 비지나에 성 둘레 농지로 고삐를 늦추고 들이쳐 약탈함. 보병은 해 지는 쪽, 로도페 산과 카르키디케 쪽으로 침입. | part06 줄 2031–2034 (라틴 대역) |
| 1348년 | Chalcidice | 마테우스가 그라티아노폴리에 있다가 병력을 모아 한낮에 페르시아인 보병과 맞붙음. 마테우스가 말에서 떨어졌다가 다른 말을 얻어 싸움에 이기고, 페르시아 보병 떼는 전멸에 가깝게 꺾임. | part06 줄 2098–2099, 2204–2205 (라틴 대역) |
| 1348년 | Orestias | 칸타쿠제노스가 오레스티아스에서 기병 1,000을 이끌고 빠르게 추격함. 노획물을 나르던 흩어진 무리 가운데 용감히 맞선 300명을 칼로 섬멸하고, 나머지는 흩어져 도망침. | part06 줄 2205–2211 (라틴 대역) |
| 1348년 | Byzantium | 라틴 갈라타이인이 비잔티움에 전쟁을 걺. 뚜렷한 명분은 없었고, 비잔티움의 해운과 세입이 커질 것을 두려워한 것으로 본문이 풀이함. | part06 줄 2312–2313 (라틴 대역) |
| 1348년 | Byzantium | 라틴인이 나흘 동안 비잔티움 해안 전체에 불을 지르고, 바다에 있던 배와 끌어 올린 배, 새로 짓던 삼단노선까지 태움. | part06 줄 2655–2661 (라틴 대역) |
| 1348년 | Galata | 라틴인이 성벽을 바깥으로 밀어 넓히고, 말뚝과 목책·호로 둘러싸 요새화함. 밤낮으로 공사. | part06 줄 2743–2750 (라틴 대역) |
| 1348년 ~ 1349년 | Constantinople | 라틴인이 큰 배 여러 척에 발판과 장대를 세워 콘스탄티노폴리스 바다 쪽 성벽 위로 올리려 함 — 수비 측이 돌과 화살로 막아 냄 | XVII.3 p.852–853 · part07 줄 17 |
| 1348년 | Constantinople | 황제가 시민을 모아 재정 부족과 전 시기 약속 불이행을 질책 — 시민들은 함대 비용을 내기로 약속 | XVII.4 p.854–856 · part07 줄 197 |
| 1349년 | Constantinople | 비잔티움 수병들이 라틴 대형 수송선을 공격해 불태움 — 불길이 밤새 바다 위로 치솟음 | XVII.5 p.859–860 · part07 줄 487 |
| 1349년 | Constantinople | 라틴 함대가 비잔티움 함대를 에워싸 공격 — 배가 뒤집혀 수많은 병사가 바다에 빠짐 | XVII.6 p.862–863 · part07 줄 690 |
| 1349년 | Galata | 라틴 함대장이 빈 비잔티움 배들을 줄로 묶어 끌고 라틴 기지(갈라타)로 돌아옴 | XVII.6 p.864 · part07 줄 765 |
| 1349년 | Galata | 갈라타 쪽 성을 치러 온 비잔티움 원군 약 3000명이 무기를 버리고 도주 — 강을 건넌 뒤에야 숨을 돌림 | XVII.7 p.865–866 · part07 줄 884 |
| 1349년 | Galata | 제노바 사절이 갈라타에 도착해 빼앗은 땅 반환, 배상 10만 이상, 재발 않겠다는 맹세를 제시 — 비잔티움은 굴욕적인 평화를 받아들임 | XVII.7 p.867 · part07 줄 946 |
| 1350년 | Constantinople | 총대주교 이시도로스가 오랜 설사병 끝에 사망 | XVIII.1 p.871 · part07 줄 1203 |
| 1350년 | Constantinople | 팔라마 측이 후임 총대주교 자리에 아토스산 수도자 칼리스토스를 불러와 세움 | XVIII.1 p.871–872 · part07 줄 1212 |
| 1350년 | Constantinople | 황제와 황후가 그레고라스를 재물·직위로 회유했으나 그레고라스가 거절하며 반대 입장을 밝힘 | XVIII.1 p.873–874 · part07 줄 1277 |
| 1350년 | Thessalonica | 칸타쿠제노스가 함대와 함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떠남, 사위 팔라이올로고스를 데리고 테살로니키로 가 그곳 통치자로 세우려 함 | XVIII.2 p.877 · part07 줄 1545 |
| 1350년 | Galata | 베네치아 삼단노선 33척이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해 제노바 쪽 갈라타 성을 공격하려 함 | XVIII.2 p.877 · part07 줄 1546 |
| 1350년 ~ 1351년 | Aulis | 베네치아 삼단노선이 에우보이아 쪽 아울리스·오레오스 만에 갇힌 제노바 함선 14척 중 10척을 사람과 함께 잡음 | XVIII.2 p.878 · part07 줄 1618 |
| 1351년 | Constantinople | 봄, 베네치아 삼단노선 14척이 비잔티움 항구에 도착 — 베네치아·카탈루냐·비잔티움 연합이 흑해 입구에서 제노바 상선을 나포 | XVIII.3 p.880 · part07 줄 1733 |
| 1351년 | Constantinople | 칸타쿠제노스가 트라키아 주교 22명만 소집해 공의회를 열려 함 | XVIII.3 p.883 · part07 줄 1896 |
| 1351년 | Constantinople | 그레고라스가 공의회 전에 수도복을 받아 입고 궁정 출입을 끊기로 함 | XVIII.5 p.891–892 · part07 줄 2363 |
| 1351년 | Constantinople | 공의회 날 정교회 쪽 인사들이 궁에 들어갔으나 궁정 입구에서 기다리게 함 — 팔라마파는 궁 안에서 식사 | XVIII.6 p.897 · part07 줄 2645 |
| 1351년 | Constantinople | 칸타쿠제노스가 모호한 맹세를 하고, 그레고라스 쪽 발언이 이어지자 말을 막으며 입을 다물라고 위협 | XVIII.6 p.899–900 · part07 줄 2840 |
| 1351년 | Constantinople | 황제 칸타쿠지노스가 칙령으로 그레고라스를 공의회에 소집한 날(5월 27일) | 줄 328-329 |
| 1351년 | Constantinople | 황제와 팔라마스가 논쟁을 하루에 끝내려 하자, 그레고라스가 공의회에서 연설하고 황제가 말을 끊음 | 줄 509-510 |
| 1351년 | Constantinople | 주교 모임에서 황제·총대주교·주교들의 공동 표결로 팔라마스의 본질과 작용 구분 교리가 공표됨. 그레고라스는 신성모독이라 비난 | 줄 2775-2778 |
| 1351년 | Constantinople | 주교들과 총대주교가 그레고라스 편 사람들에게 일어나 손을 대기 시작함 | 줄 2815-2816 |
| 1351년 | Constantinople | 황제 칸타쿠제노스 임석 궁중 공의회 첫 회의: 그레고라스가 팔라마스의 타보르 빛 교리를 반박하고, 황제 쪽에서는 궁중에서 황제 뜻에 맞서지 말라는 경고가 나옴 | part_09 원본 1751~1753줄 |
| 1351년 | Constantinople | 첫 회의를 해산하면서 사흘 뒤 다시 모이기로 함 | part_09 원본 1754~1755줄 |
| 1351년 | Constantinople | 회의 뒤 군중이 팔라마스를 찾아 해치려 하자 팔라마스가 몸을 숨김 | part_09 원본 1803~1804줄 |
| 1351년 | Constantinople | 이튿날 아침 팔라마스가 황제에게 가서, 그레고라스 쪽이 도시에서 소동을 부추겼다고 분노를 쏟음 | part_09 원본 1915~1915줄 |
| 1351년 | Constantinople | 사흘째 회의 전 팔라마스 쪽이 그레고라스를 돈과 약속으로 회유하려 함 | part_09 원본 2310~2311줄 |
| 1351년 | Constantinople | 황제가 회의 중 침실 밖으로 나가 팔라마스·주교들과 몰래 대책을 의논함 | part_09 원본 2513~2515줄 |
| 1351년 | Constantinople | 황제가 재산 몰수를 위협하고, 다음 회의에 오는 자가 잡히면 감옥으로 보낸다고 선포함 | part_09 원본 2774~2776줄 |
| 1351년 | Constantinople | 그레고라스가 일어나 회의장을 나오고, 일행도 따라 나감(황제는 나가지 못하게 막으라 명령) | part_09 원본 2781~2782줄 |
| 1351년 | Constantinople | 팔라마스가 황제에게 그들을 풀어 주라고 권해, 그레고라스 일행이 물러나게 됨 | part_09 원본 2787~2787줄 |
| 1351년 | Constantinople | 공의회 세 번째 회의 끝 — 열 개 항목 중 셋만 검토됐고 그 셋에서 팔라마스가 공개적으로 졌으나 회의는 끝남 | XXI.2 (Bonn p.1002) |
| 1351년 | Constantinople | 밤사이 고위 인사들이 다음 회의를 모의하고 대중 회의를 열어 판결 — 그레고라스 쪽은 말을 봉쇄당함 | XXI.2 (Bonn p.1003) |
| 1351년 | Constantinople | 네 번째 회의 — 그레고라스가 장 4를 읽기 시작하자 팔라마스가 격분해 주교들 사이에 소란 | XXI.3 (Bonn p.1004) |
| 1351년 | Constantinople | 황제·총대주교·주교들이 공동 칙령으로 신적 활동(operatio)은 본질과 구분된다고 선포 — 그레고라스는 이를 신성 모독으로 비판 | XXI.4 (Bonn p.1010) |
| 1351년 | Constantinople | 밤 깊어 횃불을 켠 뒤 총대주교와 주교들이 그레고라스 쪽에 달려들어 손을 댐 | XXI.4 (Bonn p.1010) |
| 1351년 | Constantinople | 주교 두 명이 습격당해 옷이 찢기고 주교 신분 표장을 빼앗김, 수염이 뽑힘 | XXI.4 (Bonn p.1011) |
| 1351년 | Constantinople | 그레고라스의 제자들을 힘으로 떼어 놓고 감옥에 넣음 — 남은 제자는 협박으로 관계를 끊게 함 | XXI.4 (Bonn p.1012) |
| 1351년 | Constantinople | 안티오키아 관할 주교(티레) 한 명이 회의에서 무례하게 쫓겨나 이후 회의와 절연 | XXI.4 (Bonn p.1012) |
| 1351년 | Constantinople | 며칠 뒤 그레고라스를 집에 가둬 말하기·쓰기·듣기를 모두 금함 (무기한 침묵령) | XXI.4 (Bonn p.1013) |
| 1351년 | Constantinople | 황제·총대주교·주교·사제 전원이 긴 문서(톰스)에 자필 서명 — 찬성은 서명, 반대하던 이들은 말로만 반대하거나 서명만 함, 서명 않으면 처벌 위협 | XXI.5 (Bonn p.1025) |
| 1351년 | Constantinople | 황제가 직접 톰스를 제단 위에 올려 바치는 의식 — 팔라마 쪽이 황제에게 권해 이루어짐 (점쟁이들의 꿈 풀이가 황제를 움직였다고 그레고라스가 주장) | XXI.6 (Bonn p.1029) |
| 1351년 | Constantinople | 톰스 서명 뒤 며칠 만에 제노바인(갈라타 거주)이 비잔티온 성벽 밖의 저택들을 불질러 전소시킴 — 시민들이 항구 문을 막고 성벽 밖 해안에 해자를 파는 계기 | XXI.6 (Bonn p.1031) |
| 1351년 | Constantinople | 황제 칸타쿠젠노스가 바닷물을 끌어들이는 해자를 파서 비잔티온 바다 쪽 성벽을 둘러싸게 함 — 제노바 공격 대비 | XXI.6 (Bonn p.1032) |
| 1351년 | Constantinople | 황제와 총대주교가 보낸 사신(원로·귀족, 주교·학자들)이 그레고라스 집에 옴 — 새 톰스·새 칙령에 동의하고 팔라마의 글을 함께 제출하라고 요구, 그레고라스는 거부하고 사신들은 빈손으로 돌아감 | XXII.1 (Bonn p.1038) |
| 1351년 | Constantinople | 사신들이 팔라마에게 글(libelli)을 내라 하자 모두 함께 거부 — 팔라마는 어떤 글로도 참회를 적어 주지 않겠다고 함 | XXII.1 (Bonn p.1043) |
| 1351년 | Constantinople | 팔라마가 분노해 황제에게 가서, 그레고라스에게 글을 넘기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말함 | XXII.2 (Bonn p.1044) |
| 1351년 | Constantinople | 새 칙령과 판결문을 몰래 여러 곳으로 보내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레고라스와의 접촉은 귀나 눈으로도 금함 | XXII.2 (Bonn p.1044) |
| 1351년 | Constantinople | 그레고라스의 집 문에 빗장을 더 달고, 앞·뒤·좌우에 감시인을 세우고 이웃을 감시자로 씀 | XXII.2 (Bonn p.1044–1045) |
| 1351년 | Constantinople | 그레고라스의 축일 설교가 팔라마스 파를 격분시킴 — 그들이 설교 전체를 분노의 대상으로 삼음 | Bonn 1143쪽, XXIV.2 §2 (Latin) |
| 1351년 | Constantinople | 팔라마스 파가 그레고라스에게 황제의 칙령을 거스르지 말라고 경고함 | Bonn 1144쪽, XXIV.2 §III (Latin) |
| 1351년 | Constantinople | 그레고라스를 다시 더 엄하게 가둠 — 문에 빗장을 걸고 간수를 더 엄한 자로 바꿈 | Bonn 1145쪽, XXIV.2 §IV (Latin) |
| 1351년 ~ 1352년 | Thracia (Thracum urbium regiones) | 칸타쿠제노스가 튀르크 군과 함께 여름에는 트라키아 지방을 휩쓸고 겨울에는 도시들을 황폐화했다는 증언 대목 | part_19.txt 줄 474–475 |
| 1352년 | Orestias | 아들 마타이오스가 열어 둔 성채로 야만 무리를 들여 오레스티아스를 쉽게 함락하고 일부 건물을 불태움 | part_19.txt 줄 1035 |
| 1352년 | Didymoteichon | 히르카노스 측 군이 헬레스폰토스를 건너, 팔라이올로고스 편으로 오던 트리발로이 원병을 디뒤모테이콘 근처에서 무장 해제된 틈에 급습해 죽이고 사로잡아 말·전차 약탈품을 아시아로 옮김 | part_19.txt 줄 1144–1145 |
| 1353년 | Constantinople | 칸타쿠제노스가 오레스티아스에 있는 사이 팔라이올로고스가 배 18척(단노선·이중노선)과 삼단노선 1척으로 비잔티온 어귀에 나타나 도성을 위협 | part_19.txt 줄 1354–1355 |
| 1353년 | Constantinople | 칸타쿠제노스의 아들 마타이오스가 방패 위에 올려져 왕으로 선포됨(로마 궁정) | part_19.txt 줄 1400 |
| 1353년 | Sardinia | 베네치아 함대(카탈루냐와 연합)가 사르데냐 부근 해전에서 제노바 함대를 격파, 제노바 측 40척만 도망 | part_19.txt 줄 1464 |
| 1353년 | Genua | 제노바 주민의 분열을 틈타 알프스 쪽 이웃 종족이 무저항 상태의 제노바에 들어가 성벽·요새 일부를 점령 | part_19.txt 줄 1584–1585 |
| 1353년 | Constantinople | 칼리스투스 축출 며칠 뒤 헤라클레이아 페린투스 출신 필로테오스 코키노스가 총대주교좌를 얻음 | part_19.txt 줄 1817 |
| 1353년 ~ 1354년 | Hellespont | 히르카노스의 아들이 헬레스폰토스를 건너 유럽 쪽 땅에 정착하려 함 — 튀르크의 유럽 이주 시작 | part_19.txt 줄 1876 |
| 1353년 ~ 1355년 | Antiochia (전언 출발지); 학살 현장은 팔레스타인·시리아 해안 일대 | 아이굽토스·아라비아 지배자가 그리스도인에게 개종 아니면 청년층 학살 칙령을 내려 2만 명 넘게 살해; 팔레스타인에서 시작해 시리아 해안까지 공포 확산 | part_19.txt 줄 3045–3046 |
| 1354년 | Constantinople | 밤 지진으로 저자가 갇힌 방이 흔들려 벽 일부와 책들이 무너짐 | part_19.txt 줄 2464 |
| 1354년 | Chersonesus Thracica | 지진으로 케르소네소스 여러 성벽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져 사람들이 삼켜짐; 일부 주민은 인근 튀르크에 스스로 항복 | part_19.txt 줄 2541 |
| 1354년 | Chersonesus Thracica | 지진 뒤 튀르크 무리가 내륙 케르소네소스를 말이 달릴 만한 땅으로 만들어 약탈하고 도시마다 세금을 부과, 지휘관 배치 | part_19.txt 줄 2561 |
| 1354년 | Tenedos | 팔라이올로고스가 테살로니케에서 함대로 출발해 렘노스·사모트라케·임브로스·레스보스를 거쳐 테네도스 항구에 들어가 칸타쿠제노스 측 함대 준비를 확인 | part_19.txt 줄 2625 |
| 1354년 | Tenedos | 칸타쿠제노스가 배 11척으로 비잔티온 항구를 떠나 7일 만에 테네도스에 도착, 수비대 출격으로 상륙 공격이 실패하고 물 보급도 막힘 | part_19.txt 줄 2914–2915 |
| 1354년 | Constantinople | 겨울 한밤 팔라이올로고스가 테네도스에서 사흘 만에 몰래 도성 안으로 들어옴 — 이중노선 2척·단노선 11척으로 해 뜨는 쪽 항구 통과 | part_19.txt 줄 3094–3095 |
| 1354년 | Constantinople | 며칠 뒤 칸타쿠제노스가 궁을 나와 수도사 옷을 입고 아내 에우게니아와 함께 망가나 수도원으로 피함 | part_19.txt 줄 3146 |
| 1354년 ~ 1356년 | Mytilene | 마테우스를 레스보스 미틸레네로 옮겨 감시시키기로 함 (감시는 카탈루조 로티모) | XXXVI p.503–504 |
| 1354년 ~ 1356년 | Phocaea | 휘르카노스 아들 일로 요한 6세가 포카이아로 돌아감 | XXXVI p.504 |
| 1354년 ~ 1356년 | Chalcedon | 이른 봄, 왕이 칼케돈에서 비티니아 총독 휘르카노스와 만나 아들 문제를 협상 | XXXVI p.504 |
| 1354년 ~ 1356년 | Nicaea | 왕이 휘르카노스 아들에게 비티니아 통치권 증표를 넘기라 명령, 아들은 니케아로 가 받음 | XXXVI p.508 |
| 1354년 ~ 1356년 | Selymbria | 가을 초, 비지예의 만누엘 아산이 셀림브리아에서 왕을 찾아 청원, 사면받음 | XXXVI p.510–511 |
| 1354년 ~ 1356년 | Serbia | 트리발리(세르비아) 군주 크랄레스가 죽음 | XXXVII p.556–557 |
| 1354년 ~ 1356년 | Acarnania | 세팔로니아 백작 니케포로스 칸타쿠젠이 아카르나니아·아이톨리아인에게 가서 동맹을 맺음 | XXXVII p.557 |
| 1354년 ~ 1356년 | Mysi | 미시 왕 알렉산드로스의 딸 마리아가 젊은 황제 안드로니코스의 약혼녀로 옴 | XXXVII p.557–558 |
| 1354년 ~ 1356년 | Astacenus sinus | 초여름, 휘르카노스 아들이 해적에게 잡혀 포카이아 쪽으로 끌려감 | XXXVII p.558–559 |
| 1354년 ~ 1356년 | Phocaea | 왕이 트리레메스 함대를 몰고 포카이아 항으로 가 포위, 리디아 군주와 동맹 | XXXVII p.561–562 |
| 1354년 ~ 1356년 | Phocaea | 리디아 총독이 왕을 잡으려던 계획이 드러나 왕의 배에 붙잡힘 | XXXVII p.563 |
| 1354년 ~ 1356년 | Christoupolis (Kavala) | 한여름, 마테우스 칸타쿠젠 군이 크리스토폴리스 쪽 협곡을 넘다 트리발리에게 패해 마테우스가 포로가 됨 | XXXVII p.564 |
| 1354년 ~ 1356년 | Abdera | 왕이 압데라 쪽으로 가 트리발로스에게 사절을 보내 마테우스를 금품을 치르고 넘겨받음 | XXXVII p.564–565 |
| 1354년 ~ 1356년 | Byzantium | 왕이 몰래 비잔티온으로 돌아가 왕비를 찾아감 | XXXVII p.565 |
| 1354년 ~ 1356년 | Tenedos | 테네도스의 함대가 명령 없이 비잔티온으로 귀환, 왕이 지휘관들을 처벌 | XXXVII p.566 |
| 1359년 | Thessalonica | 팔라마스가 병으로 죽음 — 측근들이 테살로니키에서 기적 소문을 퍼뜨림 | XXXVII p.549–551 |
| — | Caphas | 제노바인이 스키타이(타타르) 수장과 만나 땅을 얻는 허락을 받음 | XIII.12 (Bonn 685) |
| — | Caphas | 제노바인이 흑해 북쪽 카파에 식민지를 세움 | XIII.12 (Bonn 685) |
| — | Caphas | 카파 제노바인이 처음엔 울타리만 치고 살다가 돌로 벽을 쌓아 땅을 넓힘 | XIII.12 (Bonn 685) |
| — | Constantinopolis | 칸타쿠제노스 편이 매복꾼을 세워 그레고라스 쪽을 상대로 책동을 시작함 | XXXI.8–11 (Bonn 381) |
| — | Constantinopolis | 팔라마 측이 새벽에 황제 궁정의 교의 회의(synodus dialectica)로 소집됨 — 회의는 그레고라스를 겨냥해 미리 정해져 있었음 | XXXI (Bonn 390; 쪽머리 OCR '9—?' 판독 불확실) |
| — | Constantinopolis | 그레고라스가 새벽에 자리를 뜨자 팔라마 측 무리가 뒤를 따라와 그의 말을 비틀고 공개적으로 욕설함 | XXXI (Bonn 391; 쪽머리 OCR '98—96' 판독 불확실) |
| — | 팔라마가 변모(타보르) 축일을 제정해 자기 교설을 방어함 — 그 뒤 그가 눈이 멀었다고 그레고라스가 비난 | XXXIV.57–61 (Bonn 474; 쪽머리 OCR '577—061' 판독 불확실) | |
| — | 팔라마 측이 '도적의 책'(volumen praedonium)을 내밀며 맞서자 그레고라스가 반박함 | XXXIV (Bonn 470–471; 쪽머리 판독 불확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