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

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 정사 사료. 다루는 해 1341년 ~ 1359년, 사건 175건을 해 순서로 정리했습니다. 원문 라이선스와 출처 포함.

등급정사
시점내부 시점
다루는 해1341년 ~ 1359년
사건 수사건 175건 · 지도에 놓은 138건
저자Nikephoros Gregoras
원제Nicephori Gregorae Byzantina Historia

지역 분포: 서아시아 102 · 남유럽(이탈리아·그리스·이베리아·발칸) 65

사건 목록

해장소사건원문 위치
1341년Constantinople안드로니코스 3세(젊은 황제) 이야기를 끝내고, 아홉 살 된 아들 요하네스가 남은 자리를 말함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643-651
1341년Constantinople남편 장례 뒤 사흘 만에 황후 안나가 궁정으로 돌아옴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799-800
1341년Constantinople총대주교와 주교들이 선황의 유언서(코디칠로스)를 내놓음 — 아내와 자식을 위한 지시가 적혀 있다고 함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802-804
1341년Constantinople아포카우코스와 총대주교가 황후를 따로 찾아가 칸타쿠제노스의 권한을 거두라고 설득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1106-1111
1341년아포카우코스가 세운 성채(에피바타이) — 자기 세력의 근거지로 쓰임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1185-1191
1341년군대가 복음서 위에 황제의 생명을 지키겠다고 맹세 — 칸타쿠제노스 쪽 군사 지지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1254-1256
1341년Constantinople칸타쿠제노스가 황후와 측근 앞에 나서서 연설을 시작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1297-1300
1341년칸타쿠제노스가 트라키아 도시와 지방을 돌며 방어 태세를 점검하고 수비대를 세움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1851-1852
1341년움르(아미르) 함대가 에게해 섬과 해안에서 해마다 무거운 조세를 거둬들임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1890-1904
1341년Smyrna움르의 큰 함대가 스미르나 항에 모여 트라키아와 비잔티온까지 공격할 기세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1960-1961
1341년칸타쿠제노스가 움르 함대의 공격을 최대한 빨리 막으려고 준비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1962-1963
1341년Constantinople황후 안나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칸타쿠제노스가 듣고, 아포카우코스가 다시 음모를 꾸밈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020-2021
1341년아포카우코스가 오래전부터 큰돈을 들여 에피바타이 성채에 재산을 쌓아 둠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218-2220
1341년칸타쿠제노스가 그 성채를 허물고 쌓아 둔 돈을 국고로 옮기며 아포카우코스를 구금하라고 지시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265-2268
1341년Constantinople칸타쿠제노스가 비잔티온을 떠나 트라키아 도시들로 향함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336-2338
1341년Constantinople풀려난 아포카우코스가 비잔티온으로 돌아옴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392-2392
1341년Constantinople총대주교가 교회 자리를 떠나 궁정에 머물며 황후 곁에서 아포카우코스와 함께 움직임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393-2396
1341년Constantinople칸타쿠제노스의 친지와 측근들이 모여 총대주교와 아포카우코스에게 사절을 보내 해를 가하지 말라고 요청 — 이어 군중과 충돌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555-2564
1341년Constantinople칸타쿠제노스의 어머니가 부당하게 감옥에 갇히고 그 집이 헐림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609-2610
1341년로마 세계 전체가 두 파로 갈려 나뉨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861-2862
1341년Constantinople총대주교 쪽이 지방과 도시마다 칸타쿠제노스 지지자들에 대한 파문·금지 서신 다발을 보냄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933-2936
1341년칸타쿠제노스 쪽이 평화를 청하는 사절을 자주 보냄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948-2948
1341년적대 세력이 육지와 바다에서 칸타쿠제노스를 겨냥한 군비를 계속 갖춤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2997-2998
1341년Constantinople칸타쿠제노스의 병사 일부가 비잔티온 시민의 초대를 받고 비잔티온 쪽으로 넘어감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3003-3005
1341년 ~ 1342년Didymoteichon칸타쿠제노스의 병력이 디디모테이콘 작은 읍에 짐승·짐과 함께 갇혀 겨울을 남Bonn II 라틴 대역 Lib.XII, part_01.txt L3007-3008
1341년안드로니코스 3세 죽음 뒤 나라가 내전(tumultus civilis)으로 흔들림 — 어린 황제 시기 혼란part_20.txt L78-82
1342년칸타쿠제노스가 다음 날 세르비아 왕(Cralis Serviae)에게 사절을 보내 비극적 사정을 알리고 동정을 구함XIII.2 (V 앞)
1342년Triballi트리발리인 한 명이 길목에 매복해 칸타쿠제노스 사절들을 잡아 아포카우코스에게 넘기고, 자신은 로마 풍습으로 옮겨 감XIII.2 (V)
1342년Triballi트리발리 지방 총독 리베리우스(칸타쿠제노스와 오랜 친구)에게 칸타쿠제노스가 사람을 보내 오른손을 내밀고 연설하게 함XIII.2 (V)
1342년Triballi리베리우스가 하루 길을 못 가서 칸타쿠제노스를 맞으러 와 악수하고, 며칠 머물게 하여 기운을 북돋음XIII.2 (VI)
1342년Triballi칸타쿠제노스가 아들 마누엘을 리베리우스의 사위로 주겠다고 약속하며, 세르비아 왕에게 가는 길을 열고 화해를 중재해 달라고 청함XIII.2 (VI)
1342년리베리우스가 세르비아 왕에게 보내는 추천 서한을 써 줌. 칸타쿠제노스는 그 추천을 받고 호위 병력과 함께 출발XIII.2 (VII)
1342년Scupi (Scopia, 현 Skopje)칸타쿠제노스가 자기 군사 호위를 받으며 출발 후 15일 만에 스코피 소도시에 도착, 그 성벽 옆을 악시오스 강이 흐름XIII.2 (VII)
1342년Scupi (Scopia, 현 Skopje)스코피에 도착한 군대가 큰 피로를 풀 만한 자리를 골라 머물며 숙영·휴식XIII.2 (VIII)
1343년 ~ 1344년Byzantium비잔티움과 트라키아의 로마 도시들이 곡식 부족으로 굶주림XIII.12 (Bonn 684)
1343년 ~ 1344년Thracia내전 틈을 타 투르크가 아시아에서 배로 트라키아에 건너와 밭을 불태우고 가축을 몰고 사람을 노예로 잡음XIII.12 (Bonn 684)
1343년 ~ 1344년Pontus Euxinus흑해에서 해마다 오던 곡물 수송선이 오지 않음 — 제노바인 카파 식민지가 흑해 입구를 막은 것이 원인XIII.12 (Bonn 684)
1345년Perithorion황제 측 병력이 Perithorion 부근에서 모미틸라스 군을 에워싸 기병·보병을 궤멸시키고, 모미틸라스 본인도 살해됨XIV.9 (추정, 줄 1257–1322)
1345년Constantinople (Byzantium)아포카우코스가 비잔티온 옛 궁 안에서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살해됨XIV.10 (줄 1324–1325)
1345년 ~ 1347년Constantinople어린 황제 앞 공개 논쟁 — 그레고라스가 팔라마스의 신적 본질·효능 구분을 조목조목 반박part_20.txt L42-52
1345년 ~ 1347년팔라마스 쪽 판결 뒤 교회 안 반대파 탄압 — 총대주교가 추방돼 폭력으로 죽고 주교·사제들이 여러 곳으로 흩어짐 (이름 없음, 그레고라스 서술)part_20.txt L120-170
1345년 ~ 1347년Constantinople어린 황제가 그레고라스 편으로 판정했으나 판결을 공개하지 않음 — 칸타쿠제노스가 팔라마스 쪽이라 미룸part_20.txt L2707-2711
1345년Constantinople팔라마스를 두고 종무회의(synodus)가 열림 — 편자 주 기록 (본문에는 회의 명시 없음)part_20.txt L2824-2825 (편자 주)
1346년 ~ 1347년Orestias마테우스가 오레스티아스 성채를 점거하고 도시를 요새화함.part06 줄 28–29 (라틴 대역)
1346년 ~ 1347년Orestias이레네 황후가 아들을 달래려고 몰래 오레스티아스에 먼저 들어갔고, 마테우스는 그 계략을 알고 다음 날 오레스티아스로 와서 어머니에게 인사함.part06 줄 115–117 (라틴 대역)
1346년 ~ 1347년칸타쿠제노스가 그레고라스를 자기 집(수도원 방)으로 불러 화해 — 자리에서 팔라마스 찬양을 두고 논쟁 재개part_20.txt L3796-3842
1347년Constantinople칸타쿠제노스 황제가 안나 쪽 사절을 돌려보냄 — 성채를 힘으로 차지할 수 있으나 그 뜻을 버렸다고 말함XV.8 IX (779)
1347년Constantinople다음 날 칸타쿠제노스 쪽 병사·지휘관들이 몰래 성채를 갑자기 공격 — 낮 무렵 투척 무기와 불로 블라헤르나이 신전 쪽 성문에 불을 지름XV.8 X (779)
1347년Constantinople무장한 무리가 뚫고 들어가 성채의 바다 쪽 부분을 차지하고 주민 재산을 약탈 — 황제가 사람을 보내 공격을 말림XV.8 X (779–780)
1347년Constantinople안나 황후가 밤을 지새운 뒤 아침 회의에서 사절을 보내 화해를 청함 — 용서는 빌지 않고 권한을 요구하다가, 칸타쿠제노스를 공동황제로 받아들이되 자신이 앞선다는 조건으로 물러섬XV.8 XI (780)
1347년Didymoteichon칸타쿠제노스 황제가 아르크투루스가 뜬 뒤 비잔티움을 떠나 디디모테이콘으로 감. 이레네가 가라앉힌 소요를 정리하려는 것.part06 줄 607–608 (라틴 대역)
1347년Byzantium황제가 총대주교 요하네스를 쫓아내고, 비잔티움 궁에 가둬 감시하게 함.part06 줄 609–611 (라틴 대역)
1347년Didymoteichon칸타쿠제노스가 아들 마테우스에게 트라키아 일부(디디모테이콘에서 서쪽 크리스토폴리스 교외까지, 바다에서 크산티아 읍까지)를 맡기고 황제 아래의 권위를 줌.part06 줄 664–668 (라틴 대역)
1347년 ~ 1354년Euboea베네치아 전함 34척이 에우보이아 항구 입구를 막고 제노바 배들을 그물처럼 둘러싸 사로잡음Bonn 43–44 (XXV.17–18)
1347년 ~ 1354년Byzantium베네치아 함대 지휘관이 에우보이아를 떠나 비잔티온으로 돛을 올림, 황제가 그곳에 오기를 기다림Bonn 44–45 (XXV.17–19)
1347년 ~ 1354년Oreum오레오스 항구에서 베네치아 지휘관이 비운 배들을 줄로 매달아 항구에 가라앉혀 적이 빼앗지 못하게 함Bonn 47 (XXV.21–22)
1347년 ~ 1354년Oreum제노바 함대가 오레오스를 에워싸고 공격함, 베네치아 측은 사람을 보내 성을 지킴 (아테네·테바이 라틴인 300 기병 지원 요청)Bonn 48–49 (XXV.21–22)
1347년 ~ 1354년Oreum베네치아 측 정예 약 5천이 야간 매복 뒤 공격해 제노바군을 물리침. 본문은 적지 쪽 전사 500 명Bonn 50–51 (XXV.23–24)
1347년 ~ 1354년Galata베네치아가 갈라타 성채를 육지와 바다에서 막음(본문은 「앞해」 일이라고 함). 황제는 성곽 파괴를 조건으로 철수를 제안했으나 제노바 측이 거절Bonn 76–77 (XXVI.10–19)
1347년 ~ 1354년Corcyra and Zacynthus (plural cities)베네치아 100여 척이 이오니아 바다를 지나 코르키라·자킨토스 등에서 용병을 모집Bonn 77–78 (XXVI.10–19)
1347년 ~ 1354년Tenedos제노바 함대 60척이 키오스에서 출발해 헬레스폰토스 어귀를 거쳐 테네도스에 정박Bonn 78–79 (XXVI.10–19)
1347년 ~ 1354년Perinthus (Heraclea)헤라클레아 주민들이 기습으로 라틴인 선원들을 죽이자 라틴 측이 두 시간 만에 성을 함락, 주민 노예화. 헤라클레아는 완전히 파괴됨Bonn 79–80 (XXVI.12–14)
1347년 ~ 1354년Sozopolis제노바가 전함 10척을 보내 이틀 싸움 끝에 흑해 연안의 부유한 로마 도시 소조폴리스를 함락Bonn 83–84 (XXVI.15–18)
1347년 ~ 1354년Creta베네치아 함대 70척과 카탈로니아 30척이 가을 한가운데 크레타에 온전히 도착, 며칠 머물며 보급Bonn 85–86 (XXVI.15–19)
1347년 ~ 1354년Sestus크레타 출항 뒤 폭풍으로 함대가 흩어져 일부는 에우보이아·키클라데스로 밀리고 다수 침몰. 나머지는 테네도스를 거쳐 헬레스폰토스의 세스토스에 닿음Bonn 86–87 (XXVI.15–19)
1347년 ~ 1354년Therapia (Bosporus)비잔티온 항구 입구 가까이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베네치아와 제노바 해전. 양측이 서로 함선 22척(제노바)·18척(베네치아)을 잃음Bonn 87–88 (XXVI.19–21)
1347년 ~ 1354년Byzantium비잔티온에 베네치아 해군 1만8천 명 이상이 모여 식량 값이 두 배로 뛰고, 베네치아 지휘부가 물자 부족에 몰림Bonn 99 (XXVI.94–96)
1347년 ~ 1354년Raedesti (Raidestos)황제의 사위(콤스의 아들)가 라이데스토스 부근에서 황실 사절단을 습격, 선물을 빼앗고 사절 일부를 죽임Bonn 100–101 (XXVI.33–35)
1347년 ~ 1354년Orestias이레네 황후가 아들들의 충돌을 막으려고 오레스티아스·디뒤모티콘으로 길을 떠남Bonn 97–98 (XXVI.30–31)
1347년 ~ 1354년Byzantium저자 그레고라스가 감금 중 극심한 억압 속에 놓임 (회고 대목)Bonn 121 (XXVII.1–3)
1347년 ~ 1354년Venetia베네치아 함대 지휘관이 평화 조건을 황제에게 맡기고 베네치아로 돌아감, 「곧 돌아오겠다」고 약속Bonn 145 (XXVII.9–14)
1348년Byzantium팔라마스가 디디모테이콘에서 불려와 비잔티움으로 달려와, 교리 논쟁이 시작됨.part06 줄 1613 (라틴 대역)
1348년Didymoteichon칸타쿠제노스가 봄 중순 비잔티움을 떠나 7일 뒤 디디모테이콘에 닿음. 트라키아 병력을 모으고 아미우리우스(우무르)와 아시아의 병력을 불러오려는 것.part06 줄 1912–1915 (라틴 대역)
1348년Smyrna아미우리우스가 아시아에서 보병·기병을 크게 모아, 트라키아·마케도니아로 건너가기 전에 라틴인이 스미르나에 둔 성을 빼앗아 무너뜨리려 함.part06 줄 1915–1918 (라틴 대역)
1348년Smyrna라틴인이 성에서 나와 맞서 싸움. 아미우리우스가 치명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음.part06 줄 1963–1965 (라틴 대역)
1348년하지 직후 여러 곳에서 모인 페르시아인 떼가 아시아에서 트라키아로 건너감.part06 줄 1978–1979 (라틴 대역)
1348년Bizye기병 약 1,200이 비지나에 성 둘레 농지로 고삐를 늦추고 들이쳐 약탈함. 보병은 해 지는 쪽, 로도페 산과 카르키디케 쪽으로 침입.part06 줄 2031–2034 (라틴 대역)
1348년Chalcidice마테우스가 그라티아노폴리에 있다가 병력을 모아 한낮에 페르시아인 보병과 맞붙음. 마테우스가 말에서 떨어졌다가 다른 말을 얻어 싸움에 이기고, 페르시아 보병 떼는 전멸에 가깝게 꺾임.part06 줄 2098–2099, 2204–2205 (라틴 대역)
1348년Orestias칸타쿠제노스가 오레스티아스에서 기병 1,000을 이끌고 빠르게 추격함. 노획물을 나르던 흩어진 무리 가운데 용감히 맞선 300명을 칼로 섬멸하고, 나머지는 흩어져 도망침.part06 줄 2205–2211 (라틴 대역)
1348년Byzantium라틴 갈라타이인이 비잔티움에 전쟁을 걺. 뚜렷한 명분은 없었고, 비잔티움의 해운과 세입이 커질 것을 두려워한 것으로 본문이 풀이함.part06 줄 2312–2313 (라틴 대역)
1348년Byzantium라틴인이 나흘 동안 비잔티움 해안 전체에 불을 지르고, 바다에 있던 배와 끌어 올린 배, 새로 짓던 삼단노선까지 태움.part06 줄 2655–2661 (라틴 대역)
1348년Galata라틴인이 성벽을 바깥으로 밀어 넓히고, 말뚝과 목책·호로 둘러싸 요새화함. 밤낮으로 공사.part06 줄 2743–2750 (라틴 대역)
1348년 ~ 1349년Constantinople라틴인이 큰 배 여러 척에 발판과 장대를 세워 콘스탄티노폴리스 바다 쪽 성벽 위로 올리려 함 — 수비 측이 돌과 화살로 막아 냄XVII.3 p.852–853 · part07 줄 17
1348년Constantinople황제가 시민을 모아 재정 부족과 전 시기 약속 불이행을 질책 — 시민들은 함대 비용을 내기로 약속XVII.4 p.854–856 · part07 줄 197
1349년Constantinople비잔티움 수병들이 라틴 대형 수송선을 공격해 불태움 — 불길이 밤새 바다 위로 치솟음XVII.5 p.859–860 · part07 줄 487
1349년Constantinople라틴 함대가 비잔티움 함대를 에워싸 공격 — 배가 뒤집혀 수많은 병사가 바다에 빠짐XVII.6 p.862–863 · part07 줄 690
1349년Galata라틴 함대장이 빈 비잔티움 배들을 줄로 묶어 끌고 라틴 기지(갈라타)로 돌아옴XVII.6 p.864 · part07 줄 765
1349년Galata갈라타 쪽 성을 치러 온 비잔티움 원군 약 3000명이 무기를 버리고 도주 — 강을 건넌 뒤에야 숨을 돌림XVII.7 p.865–866 · part07 줄 884
1349년Galata제노바 사절이 갈라타에 도착해 빼앗은 땅 반환, 배상 10만 이상, 재발 않겠다는 맹세를 제시 — 비잔티움은 굴욕적인 평화를 받아들임XVII.7 p.867 · part07 줄 946
1350년Constantinople총대주교 이시도로스가 오랜 설사병 끝에 사망XVIII.1 p.871 · part07 줄 1203
1350년Constantinople팔라마 측이 후임 총대주교 자리에 아토스산 수도자 칼리스토스를 불러와 세움XVIII.1 p.871–872 · part07 줄 1212
1350년Constantinople황제와 황후가 그레고라스를 재물·직위로 회유했으나 그레고라스가 거절하며 반대 입장을 밝힘XVIII.1 p.873–874 · part07 줄 1277
1350년Thessalonica칸타쿠제노스가 함대와 함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떠남, 사위 팔라이올로고스를 데리고 테살로니키로 가 그곳 통치자로 세우려 함XVIII.2 p.877 · part07 줄 1545
1350년Galata베네치아 삼단노선 33척이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해 제노바 쪽 갈라타 성을 공격하려 함XVIII.2 p.877 · part07 줄 1546
1350년 ~ 1351년Aulis베네치아 삼단노선이 에우보이아 쪽 아울리스·오레오스 만에 갇힌 제노바 함선 14척 중 10척을 사람과 함께 잡음XVIII.2 p.878 · part07 줄 1618
1351년Constantinople봄, 베네치아 삼단노선 14척이 비잔티움 항구에 도착 — 베네치아·카탈루냐·비잔티움 연합이 흑해 입구에서 제노바 상선을 나포XVIII.3 p.880 · part07 줄 1733
1351년Constantinople칸타쿠제노스가 트라키아 주교 22명만 소집해 공의회를 열려 함XVIII.3 p.883 · part07 줄 1896
1351년Constantinople그레고라스가 공의회 전에 수도복을 받아 입고 궁정 출입을 끊기로 함XVIII.5 p.891–892 · part07 줄 2363
1351년Constantinople공의회 날 정교회 쪽 인사들이 궁에 들어갔으나 궁정 입구에서 기다리게 함 — 팔라마파는 궁 안에서 식사XVIII.6 p.897 · part07 줄 2645
1351년Constantinople칸타쿠제노스가 모호한 맹세를 하고, 그레고라스 쪽 발언이 이어지자 말을 막으며 입을 다물라고 위협XVIII.6 p.899–900 · part07 줄 2840
1351년Constantinople황제 칸타쿠지노스가 칙령으로 그레고라스를 공의회에 소집한 날(5월 27일)줄 328-329
1351년Constantinople황제와 팔라마스가 논쟁을 하루에 끝내려 하자, 그레고라스가 공의회에서 연설하고 황제가 말을 끊음줄 509-510
1351년Constantinople주교 모임에서 황제·총대주교·주교들의 공동 표결로 팔라마스의 본질과 작용 구분 교리가 공표됨. 그레고라스는 신성모독이라 비난줄 2775-2778
1351년Constantinople주교들과 총대주교가 그레고라스 편 사람들에게 일어나 손을 대기 시작함줄 2815-2816
1351년Constantinople황제 칸타쿠제노스 임석 궁중 공의회 첫 회의: 그레고라스가 팔라마스의 타보르 빛 교리를 반박하고, 황제 쪽에서는 궁중에서 황제 뜻에 맞서지 말라는 경고가 나옴part_09 원본 1751~1753줄
1351년Constantinople첫 회의를 해산하면서 사흘 뒤 다시 모이기로 함part_09 원본 1754~1755줄
1351년Constantinople회의 뒤 군중이 팔라마스를 찾아 해치려 하자 팔라마스가 몸을 숨김part_09 원본 1803~1804줄
1351년Constantinople이튿날 아침 팔라마스가 황제에게 가서, 그레고라스 쪽이 도시에서 소동을 부추겼다고 분노를 쏟음part_09 원본 1915~1915줄
1351년Constantinople사흘째 회의 전 팔라마스 쪽이 그레고라스를 돈과 약속으로 회유하려 함part_09 원본 2310~2311줄
1351년Constantinople황제가 회의 중 침실 밖으로 나가 팔라마스·주교들과 몰래 대책을 의논함part_09 원본 2513~2515줄
1351년Constantinople황제가 재산 몰수를 위협하고, 다음 회의에 오는 자가 잡히면 감옥으로 보낸다고 선포함part_09 원본 2774~2776줄
1351년Constantinople그레고라스가 일어나 회의장을 나오고, 일행도 따라 나감(황제는 나가지 못하게 막으라 명령)part_09 원본 2781~2782줄
1351년Constantinople팔라마스가 황제에게 그들을 풀어 주라고 권해, 그레고라스 일행이 물러나게 됨part_09 원본 2787~2787줄
1351년Constantinople공의회 세 번째 회의 끝 — 열 개 항목 중 셋만 검토됐고 그 셋에서 팔라마스가 공개적으로 졌으나 회의는 끝남XXI.2 (Bonn p.1002)
1351년Constantinople밤사이 고위 인사들이 다음 회의를 모의하고 대중 회의를 열어 판결 — 그레고라스 쪽은 말을 봉쇄당함XXI.2 (Bonn p.1003)
1351년Constantinople네 번째 회의 — 그레고라스가 장 4를 읽기 시작하자 팔라마스가 격분해 주교들 사이에 소란XXI.3 (Bonn p.1004)
1351년Constantinople황제·총대주교·주교들이 공동 칙령으로 신적 활동(operatio)은 본질과 구분된다고 선포 — 그레고라스는 이를 신성 모독으로 비판XXI.4 (Bonn p.1010)
1351년Constantinople밤 깊어 횃불을 켠 뒤 총대주교와 주교들이 그레고라스 쪽에 달려들어 손을 댐XXI.4 (Bonn p.1010)
1351년Constantinople주교 두 명이 습격당해 옷이 찢기고 주교 신분 표장을 빼앗김, 수염이 뽑힘XXI.4 (Bonn p.1011)
1351년Constantinople그레고라스의 제자들을 힘으로 떼어 놓고 감옥에 넣음 — 남은 제자는 협박으로 관계를 끊게 함XXI.4 (Bonn p.1012)
1351년Constantinople안티오키아 관할 주교(티레) 한 명이 회의에서 무례하게 쫓겨나 이후 회의와 절연XXI.4 (Bonn p.1012)
1351년Constantinople며칠 뒤 그레고라스를 집에 가둬 말하기·쓰기·듣기를 모두 금함 (무기한 침묵령)XXI.4 (Bonn p.1013)
1351년Constantinople황제·총대주교·주교·사제 전원이 긴 문서(톰스)에 자필 서명 — 찬성은 서명, 반대하던 이들은 말로만 반대하거나 서명만 함, 서명 않으면 처벌 위협XXI.5 (Bonn p.1025)
1351년Constantinople황제가 직접 톰스를 제단 위에 올려 바치는 의식 — 팔라마 쪽이 황제에게 권해 이루어짐 (점쟁이들의 꿈 풀이가 황제를 움직였다고 그레고라스가 주장)XXI.6 (Bonn p.1029)
1351년Constantinople톰스 서명 뒤 며칠 만에 제노바인(갈라타 거주)이 비잔티온 성벽 밖의 저택들을 불질러 전소시킴 — 시민들이 항구 문을 막고 성벽 밖 해안에 해자를 파는 계기XXI.6 (Bonn p.1031)
1351년Constantinople황제 칸타쿠젠노스가 바닷물을 끌어들이는 해자를 파서 비잔티온 바다 쪽 성벽을 둘러싸게 함 — 제노바 공격 대비XXI.6 (Bonn p.1032)
1351년Constantinople황제와 총대주교가 보낸 사신(원로·귀족, 주교·학자들)이 그레고라스 집에 옴 — 새 톰스·새 칙령에 동의하고 팔라마의 글을 함께 제출하라고 요구, 그레고라스는 거부하고 사신들은 빈손으로 돌아감XXII.1 (Bonn p.1038)
1351년Constantinople사신들이 팔라마에게 글(libelli)을 내라 하자 모두 함께 거부 — 팔라마는 어떤 글로도 참회를 적어 주지 않겠다고 함XXII.1 (Bonn p.1043)
1351년Constantinople팔라마가 분노해 황제에게 가서, 그레고라스에게 글을 넘기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말함XXII.2 (Bonn p.1044)
1351년Constantinople새 칙령과 판결문을 몰래 여러 곳으로 보내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레고라스와의 접촉은 귀나 눈으로도 금함XXII.2 (Bonn p.1044)
1351년Constantinople그레고라스의 집 문에 빗장을 더 달고, 앞·뒤·좌우에 감시인을 세우고 이웃을 감시자로 씀XXII.2 (Bonn p.1044–1045)
1351년Constantinople그레고라스의 축일 설교가 팔라마스 파를 격분시킴 — 그들이 설교 전체를 분노의 대상으로 삼음Bonn 1143쪽, XXIV.2 §2 (Latin)
1351년Constantinople팔라마스 파가 그레고라스에게 황제의 칙령을 거스르지 말라고 경고함Bonn 1144쪽, XXIV.2 §III (Latin)
1351년Constantinople그레고라스를 다시 더 엄하게 가둠 — 문에 빗장을 걸고 간수를 더 엄한 자로 바꿈Bonn 1145쪽, XXIV.2 §IV (Latin)
1351년 ~ 1352년Thracia (Thracum urbium regiones)칸타쿠제노스가 튀르크 군과 함께 여름에는 트라키아 지방을 휩쓸고 겨울에는 도시들을 황폐화했다는 증언 대목part_19.txt 줄 474–475
1352년Orestias아들 마타이오스가 열어 둔 성채로 야만 무리를 들여 오레스티아스를 쉽게 함락하고 일부 건물을 불태움part_19.txt 줄 1035
1352년Didymoteichon히르카노스 측 군이 헬레스폰토스를 건너, 팔라이올로고스 편으로 오던 트리발로이 원병을 디뒤모테이콘 근처에서 무장 해제된 틈에 급습해 죽이고 사로잡아 말·전차 약탈품을 아시아로 옮김part_19.txt 줄 1144–1145
1353년Constantinople칸타쿠제노스가 오레스티아스에 있는 사이 팔라이올로고스가 배 18척(단노선·이중노선)과 삼단노선 1척으로 비잔티온 어귀에 나타나 도성을 위협part_19.txt 줄 1354–1355
1353년Constantinople칸타쿠제노스의 아들 마타이오스가 방패 위에 올려져 왕으로 선포됨(로마 궁정)part_19.txt 줄 1400
1353년Sardinia베네치아 함대(카탈루냐와 연합)가 사르데냐 부근 해전에서 제노바 함대를 격파, 제노바 측 40척만 도망part_19.txt 줄 1464
1353년Genua제노바 주민의 분열을 틈타 알프스 쪽 이웃 종족이 무저항 상태의 제노바에 들어가 성벽·요새 일부를 점령part_19.txt 줄 1584–1585
1353년Constantinople칼리스투스 축출 며칠 뒤 헤라클레이아 페린투스 출신 필로테오스 코키노스가 총대주교좌를 얻음part_19.txt 줄 1817
1353년 ~ 1354년Hellespont히르카노스의 아들이 헬레스폰토스를 건너 유럽 쪽 땅에 정착하려 함 — 튀르크의 유럽 이주 시작part_19.txt 줄 1876
1353년 ~ 1355년Antiochia (전언 출발지); 학살 현장은 팔레스타인·시리아 해안 일대아이굽토스·아라비아 지배자가 그리스도인에게 개종 아니면 청년층 학살 칙령을 내려 2만 명 넘게 살해; 팔레스타인에서 시작해 시리아 해안까지 공포 확산part_19.txt 줄 3045–3046
1354년Constantinople밤 지진으로 저자가 갇힌 방이 흔들려 벽 일부와 책들이 무너짐part_19.txt 줄 2464
1354년Chersonesus Thracica지진으로 케르소네소스 여러 성벽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져 사람들이 삼켜짐; 일부 주민은 인근 튀르크에 스스로 항복part_19.txt 줄 2541
1354년Chersonesus Thracica지진 뒤 튀르크 무리가 내륙 케르소네소스를 말이 달릴 만한 땅으로 만들어 약탈하고 도시마다 세금을 부과, 지휘관 배치part_19.txt 줄 2561
1354년Tenedos팔라이올로고스가 테살로니케에서 함대로 출발해 렘노스·사모트라케·임브로스·레스보스를 거쳐 테네도스 항구에 들어가 칸타쿠제노스 측 함대 준비를 확인part_19.txt 줄 2625
1354년Tenedos칸타쿠제노스가 배 11척으로 비잔티온 항구를 떠나 7일 만에 테네도스에 도착, 수비대 출격으로 상륙 공격이 실패하고 물 보급도 막힘part_19.txt 줄 2914–2915
1354년Constantinople겨울 한밤 팔라이올로고스가 테네도스에서 사흘 만에 몰래 도성 안으로 들어옴 — 이중노선 2척·단노선 11척으로 해 뜨는 쪽 항구 통과part_19.txt 줄 3094–3095
1354년Constantinople며칠 뒤 칸타쿠제노스가 궁을 나와 수도사 옷을 입고 아내 에우게니아와 함께 망가나 수도원으로 피함part_19.txt 줄 3146
1354년 ~ 1356년Mytilene마테우스를 레스보스 미틸레네로 옮겨 감시시키기로 함 (감시는 카탈루조 로티모)XXXVI p.503–504
1354년 ~ 1356년Phocaea휘르카노스 아들 일로 요한 6세가 포카이아로 돌아감XXXVI p.504
1354년 ~ 1356년Chalcedon이른 봄, 왕이 칼케돈에서 비티니아 총독 휘르카노스와 만나 아들 문제를 협상XXXVI p.504
1354년 ~ 1356년Nicaea왕이 휘르카노스 아들에게 비티니아 통치권 증표를 넘기라 명령, 아들은 니케아로 가 받음XXXVI p.508
1354년 ~ 1356년Selymbria가을 초, 비지예의 만누엘 아산이 셀림브리아에서 왕을 찾아 청원, 사면받음XXXVI p.510–511
1354년 ~ 1356년Serbia트리발리(세르비아) 군주 크랄레스가 죽음XXXVII p.556–557
1354년 ~ 1356년Acarnania세팔로니아 백작 니케포로스 칸타쿠젠이 아카르나니아·아이톨리아인에게 가서 동맹을 맺음XXXVII p.557
1354년 ~ 1356년Mysi미시 왕 알렉산드로스의 딸 마리아가 젊은 황제 안드로니코스의 약혼녀로 옴XXXVII p.557–558
1354년 ~ 1356년Astacenus sinus초여름, 휘르카노스 아들이 해적에게 잡혀 포카이아 쪽으로 끌려감XXXVII p.558–559
1354년 ~ 1356년Phocaea왕이 트리레메스 함대를 몰고 포카이아 항으로 가 포위, 리디아 군주와 동맹XXXVII p.561–562
1354년 ~ 1356년Phocaea리디아 총독이 왕을 잡으려던 계획이 드러나 왕의 배에 붙잡힘XXXVII p.563
1354년 ~ 1356년Christoupolis (Kavala)한여름, 마테우스 칸타쿠젠 군이 크리스토폴리스 쪽 협곡을 넘다 트리발리에게 패해 마테우스가 포로가 됨XXXVII p.564
1354년 ~ 1356년Abdera왕이 압데라 쪽으로 가 트리발로스에게 사절을 보내 마테우스를 금품을 치르고 넘겨받음XXXVII p.564–565
1354년 ~ 1356년Byzantium왕이 몰래 비잔티온으로 돌아가 왕비를 찾아감XXXVII p.565
1354년 ~ 1356년Tenedos테네도스의 함대가 명령 없이 비잔티온으로 귀환, 왕이 지휘관들을 처벌XXXVII p.566
1359년Thessalonica팔라마스가 병으로 죽음 — 측근들이 테살로니키에서 기적 소문을 퍼뜨림XXXVII p.549–551
—Caphas제노바인이 스키타이(타타르) 수장과 만나 땅을 얻는 허락을 받음XIII.12 (Bonn 685)
—Caphas제노바인이 흑해 북쪽 카파에 식민지를 세움XIII.12 (Bonn 685)
—Caphas카파 제노바인이 처음엔 울타리만 치고 살다가 돌로 벽을 쌓아 땅을 넓힘XIII.12 (Bonn 685)
—Constantinopolis칸타쿠제노스 편이 매복꾼을 세워 그레고라스 쪽을 상대로 책동을 시작함XXXI.8–11 (Bonn 381)
—Constantinopolis팔라마 측이 새벽에 황제 궁정의 교의 회의(synodus dialectica)로 소집됨 — 회의는 그레고라스를 겨냥해 미리 정해져 있었음XXXI (Bonn 390; 쪽머리 OCR '9—?' 판독 불확실)
—Constantinopolis그레고라스가 새벽에 자리를 뜨자 팔라마 측 무리가 뒤를 따라와 그의 말을 비틀고 공개적으로 욕설함XXXI (Bonn 391; 쪽머리 OCR '98—96' 판독 불확실)
—팔라마가 변모(타보르) 축일을 제정해 자기 교설을 방어함 — 그 뒤 그가 눈이 멀었다고 그레고라스가 비난XXXIV.57–61 (Bonn 474; 쪽머리 OCR '577—061' 판독 불확실)
—팔라마 측이 '도적의 책'(volumen praedonium)을 내밀며 맞서자 그레고라스가 반박함XXXIV (Bonn 470–471; 쪽머리 판독 불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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