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7년의 세계 — 그해 일어난 일
이 해에 사료가 적은 사건 19건을 지역별로 모았습니다.
그해 일어난 일
한반도 (2)
- 박혁거세가 13세에 즉위해 거서간을 칭하고 국호를 서나벌이라 함 (삼국사기 卷01 始祖赫居世居西干 即位條) 전승
- 혁거세가 열세 살에 임금이 되고 알영을 왕후로 삼아 나라 이름을 서라벌이라 함 (삼국유사 紀異第一 新羅始祖赫居世王) 전승
서아시아 (2)
서유럽(프랑스·브리튼·저지대·독일) (15)
- 벨가이 연합 소식에 카이사르가 2개 군단을 새로 징집해 페디우스를 먼저 보내고, 사료 확보 후 약 15일 만에 벨가이 영역에 도달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2.2)
- 가장 가까운 벨가이인 레미족이 이키우스·안테브로기우스를 사절로 보내 항복하고 인질·곡식을 약속하며 벨가이의 병력을 알림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2.3)
- 벨가이가 진군 도중 레미족 도시 비브락스를 맹공 — 하루를 겨우 버텼고 이키우스가 카이사르에게 구원 요청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2.6)
- 벨가이가 늪 건너편에서 대치하다 엔강 도하를 시도, 카이사르가 기병·경보병으로 다리를 건너 도하하는 적을 쳐서 크게 격파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2.9)
- 벨가이가 한밤 중 무질서하게 철수하자 카이사르가 매복을 경계하다 새벽에 기병·군단으로 후위를 쳐 대량 살상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2.11)
- 수에시오네스의 노비오두눔을 강습으로 못 떨구고 포위 장비를 준비하자, 갈바 왕의 두 아들 등을 인질로 받고 항복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2.12)
- 벨로바키의 도시 브라투스판티움 앞 5마일에서 노인들이 탄원하고, 디비티아쿠스의 중재로 인질 600명을 받고 용서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2.13)
- 암비아니족이 지체 없이 항복하고, 인접한 네르비이족이 상인 출입도 술도 금하는 강한 부족임을 카이사르가 전해 들음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2.15)
- 3일 행군 후 포로에게서 네르비이·아트레바테스·베로만두이가 상브르강 건너편에 모였다는 정보를 얻고, 강변 진영 설치 중 급습받은 대규모 전투(9·10군단이 아트레바테스를 강으로 몰아냄, 라비에누스의 도착으로 전세 역전)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2.16–2.23)
- 네르비이가 사실상 절멸 — 원로 600명이 3명으로, 병력 6만이 약 5백으로 줄었다고 사절이 밝히며 항복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2.28)
그 밖의 사건은 지도에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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