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출생 기록 없음(고조의 미천할 때의 정처, 여공의 딸)
사망 -180년 — 고후 8년 7월(-180) 졸(여태후본기 후반). 이 범위(-209~-195)에는 들지 않는다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9년 | 패현 | 패공의 정처→한 왕후→황후 | 추정 |
| -208년 | 패현 | 패공의 정처→한 왕후→황후 | 추정 |
| -207년 | 패현 | 패공의 정처→한 왕후→황후 | 추정 |
| -206년 | 패현 | 패공의 정처→한 왕후→황후 | 기록 |
| -205년 | 패현 | 패공의 정처→한 왕후→황후 | 기록 |
| -199년 | 장안 | 패공의 정처→한 왕후→황후 | 추정 |
| -198년 | 장안 | 패공의 정처→한 왕후→황후 | 추정 |
| -197년 | 장안 | 패공의 정처→한 왕후→황후 | 추정 |
| -196년 | 장안 | 패공의 정처→한 왕후→황후 | 기록 |
| -195년 | 장락궁 | 패공의 정처→한 왕후→황후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9~-207년 | 한 | 패공의 정처→한 왕후→황후 | 추정 |
| -206~-205년 | 한 | 패공의 정처→한 왕후→황후 | 기록 |
| -204~-200년 | 한 | 패공의 정처→한 왕후→황후 | 불명 |
| -199~-197년 | 한 | 패공의 정처→한 왕후→황후 | 추정 |
| -196~-195년 | 한 | 패공의 정처→한 왕후→황후 | 기록 |
한왕이 사람을 보내 패에서 태공·여후를 맞이하려 하나 초가 양하에서 막아 오지 못한다.
정사 고조본기: 8월 한왕이 설구·왕흡을 무관으로 내보내 남양의 왕릉 병력과 함께 패에서 태공·여후를 맞이하게 했으나 초가 양하에서 막아 나아가지 못했다.
출전: 史記 卷008 「以迎太公呂后於沛」
팽성 패전 뒤 항우가 패에서 한왕의 부모와 처자를 데려가 인질로 군중에 둔다.
정사 고조본기: 팽성에서 한왕이 크게 지자 항우는 한왕의 부모·처자를 패에서 데려와 군중에 두어 인질로 삼았다. 항우본기에는 태공·여후가 한왕을 찾다가 초군을 만났다고 한다.
관련: 팽성 전투
출전: 史記 卷008 「乃取漢王父母妻子於沛置之軍中以為質」 / 史記 卷007 「審食其從太公呂后閒行求漢王反遇楚軍」
한신을 장안에서 소하의 계로 주살한다.
정사 소상국세가: 회음후가 관중에서 반란을 꾀했을 때 여후가 소하의 계를 써서 회음후를 주살했다.
관련: 운몽 한신 체포
출전: 史記 卷053 「淮陰侯謀反關中呂后用蕭何計誅淮陰侯」
낙양으로 가던 길에 팽월을 만나 하소연을 듣고, 고조에게 유배 대신 죽이도록 권한다.
정사 팽월열전: 여후가 장안에서 낙양으로 가다 팽월을 만났고, 팽월이 죄가 없다고 울며 호소하자 함께 낙양으로 갔다. 여후가 고조에게 「팽왕은 장사이니 촉으로 옮기면 후환을 남기는 것이니 죽이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관련: 팽월 주살
출전: 史記 卷090 「呂后白上曰彭王壯士今徙之蜀此自遺患不如遂誅之」
고조가 태자를 바꾸려 하자 장량의 계로 상산사호를 불러 태자를 지킨다.
정사 유후세가: 여후는 건성후 여택을 시켜 유후에게 계책을 구했고, 태자의 서신으로 사호를 맞이하게 했다. 사호가 태자를 곁에서 모시게 되자 고조는 태자를 바꿀 수 없다고 알았다.
출전: 史記 卷055 「呂后乃使建成侯呂澤劫留侯」 / 史記 卷055 「呂后真而主矣」
고조가 죽자 심이기와 함께 4일간 발상하지 않고 장수들을 주살할 것을 의논한다.
정사 고조본기: 고조가 장락궁에서 죽은 뒤 4일 동안 발상하지 않았고, 여후가 심이기와 장수들이 신하 노릇을 하는 것을 이상히 여겨 모두 멸하지 않으면 천하가 불안하다고 의논했다. 역 장군이 이를 듣고 심이기를 만나 말려 발상했다.
출전: 史記 卷008 「四日不發喪」 / 史記 卷008 「呂后與審食其謀曰」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0 | 전장에 서지 않았다. 군은 오라비 여택·여석지 등이 맡았다(여태후본기). |
| 무력 | 평가 불가 | 무력 기록 없음. |
| 지력 | 81 | 한신 주살에서 소하의 계를 쓰고, 팽월을 유배 대신 죽이도록 권해 고조를 설득했다(회음후열전·팽월열전). |
| 정치 | 85 | 고조 생전부터 「佐高祖定天下所誅大臣多呂后力」이라 평가된다(여태후본기). 태자 폐위 시도를 장량의 계로 막았다(유후세가). |
| 매력 | 64 | 고조가 폐하려던 태자의 자리를 지키려 상산사호를 움직였다(유후세가). 척부인 등에 대한 처사는 잔혹하다는 서술이 따로 있다(여태후본기).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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