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207년 — 「年十歲」(조왕이 된 -198)에서 환산한 추정
사망 -194년 — 혜제 원년 12월(-194 또는 -195 말) — 여태후가 부른 뒤 독주에 죽는다. 전문 「趙王已死」(여태후본기). 연도는 통감 혜제 원년 항목 기준이라 범위(-195) 밖이다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0년 | 대 | 대왕 | 기록 |
| -198년 | 한단 | 조왕 | 기록 |
| -195년 | 장안 | 조왕 | 추정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0년 | 한 | 대왕 | 기록 |
| -199년 | 한 | 대왕 | 불명 |
| -198년 | 조 | 조왕 | 기록 |
| -197년 | 조 | 조왕 | 불명 |
| -196년 | 조 | 조왕 | 기록 |
| -195년 | 조 | 조왕 | 추정 |
흉노가 대를 치자 대왕 희가 나라를 버리고 돌아오자 고조가 황자 여의를 대왕으로 세운다.
정사 통감: 흉노가 대를 치자 대왕 희가 나라를 버리고 스스로 돌아와 합양후로 사면되었고, 신묘일에 황자 여의를 대왕으로 세웠다. 한서 고제기도 같은 일을 적는다.
출전: 漢書 卷001上 「辛卯立子如意為代王」
대왕에서 조왕으로 옮겨진다. 나이는 열 살이었고, 고조는 자신이 죽은 뒤 조왕이 온전하지 못할까 걱정해 주창을 조상으로 보낸다.
정사 한서 고제기: 대왕 여의를 옮겨 조왕으로 삼았다. 사기 주창열전: 척희의 아들 여의가 조왕이 되었을 때 열 살이어서 고조는 자신의 사후 안전하지 못할까 걱정했다.
출전: 漢書 卷001上 「徙代王如意為趙王王趙國」 / 史記 卷096 「是後戚姬子如意為趙王年十歲高祖憂即萬歲之後不全也」
고조가 여의를 태자로 바꾸려 하나 대신들이 말리고 유후의 계책으로 그친다.
정사 주창열전: 고제가 태자를 폐하고 척희의 아들 여의를 태자로 세우려 했으나 대신들이 굳게 다퉈 얻지 못했고, 고제는 유후의 계책으로 곧 그쳤다. 유후세가: 조왕 여의가 늘 앞에서 안겨 있어 태자 자리를 대신할 것이 분명하다는 말이 있었다.
출전: 史記 卷096 「及帝欲廢太子而立戚姬子如意為太子大臣固爭之莫能得上以留侯策即止」 / 史記 卷055 「上欲廢太子立戚夫人子趙王如意」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열 살에 조왕이 되어 군 지휘 기록은 없다. |
| 무력 | 평가 불가 | 무력 기록은 없다. |
| 지력 | 평가 불가 | 어린 나이로 기록이 없다. |
| 정치 | 50 | 조상 주창이 대신했다(주창열전). |
| 매력 | 52 | 고조가 "나를 닮았다"며 아꼈다(여태후본기).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유여의(조은왕)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