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출생 기록 없음(패 사람)
사망 -169년 — 효문제 11년(-169) 졸, 시호 무후(絳侯周勃世家: 「孝文帝十一年卒謚為武侯」). 연도는 한 문제 연호 환산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9년 | 패현 | 중연(패공 휘하)→호분령 | 기록 |
| -208년 | 하읍 | 중연(패공 휘하)→호분령 | 기록 |
| -207년 | 남전 | 중연(패공 휘하)→호분령 | 기록 |
| -206년 | 남정 | 위무후·장군(한) | 기록 |
| -205년 | 폐구 | 위무후·장군(한) | 기록 |
| -202년 | 양하 | 위무후·장군(한) | 기록 |
| -200년 | 진양 | 장군→태위(강후) | 기록 |
| -196년 | 마읍 | 장군→태위(강후) | 기록 |
| -195년 | 계(연의 도읍) | 장군→태위(강후)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9~-207년 | 한 | 중연(패공 휘하)→호분령 | 기록 |
| -206~-205년 | 한 | 위무후·장군(한) | 기록 |
| -204~-203년 | 한 | 위무후·장군(한) | 불명 |
| -202년 | 한 | 위무후·장군(한) | 기록 |
| -201년 | 한 | 장군→태위(강후) | 불명 |
| -200년 | 한 | 장군→태위(강후) | 기록 |
| -199~-197년 | 한 | 장군→태위(강후) | 불명 |
| -196~-195년 | 한 | 장군→태위(강후) | 기록 |
패공이 처음 일어날 때 중연으로 따라 호릉·방여를 공격한다.
정사 강후주발세가: 고조가 패공으로 처음 일어났을 때 주발은 중연으로 따라 호릉을 공격하고 방여를 내렸다. 방여가 반란하자 싸워 물리쳤고 풍을 공격했다.
출전: 史記 卷057 「勃以中涓從攻胡陵下方與」
탕 동쪽에서 진군을 깨고 하읍에서 먼저 성에 올라 오대부가 된다.
정사 강후주발세가: 탕 동쪽에서 진군을 쳤고 다시 탕을 깼다. 하읍을 내릴 때 먼저 올라 오대부 작위를 받았다.
출전: 史記 卷057 「下下邑先登賜爵五大夫」
호분령으로 패공을 따라 무관·요관을 깨고 남전에서 진군을 쳐 함양에 이른다.
정사 강후주발세가: 패공이 주발을 호분령에 임명했다. 남양 수 의를 공격했고 무관과 요관을 깨고 남전에서 진군을 깨 함양에 이르러 진을 멸했다.
출전: 史記 卷057 「沛公拜勃為虎賁令」 / 史記 卷057 「破秦軍於藍田至咸陽滅秦」
한왕이 된 뒤 위무후가 되고 한중에 들어가 장군으로 임명된다.
정사 강후주발세가: 항우가 패공을 한왕으로 세운 뒤 한왕이 주발에게 위무후 작위를 내렸다. 한중에 따라 들어가 장군에 임명되었고 돌아와 삼진을 평정했다.
출전: 史記 卷057 「漢王賜勃爵為威武侯」 / 史記 卷057 「從入漢中拜為將軍」
괴리·호치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우고 폐구에서 장함을 포위한다.
정사 강후주발세가: 삼진을 평정하며 괴리·호치를 공격해 으뜸의 공을 세웠고 함양에서 조분·내사 보를 쳤다. 폐구에서 장함을 포위했다.
관련: 장한 폐구 포위와 자결
출전: 史記 卷057 「攻槐裏好畤最」 / 史記 卷057 「圍章邯廢丘」
항적을 추격해 초 땅 사수·동해군을 평정하고, 연왕 장도를 역하에서 깨 열후로 부절을 받는다.
정사 강후주발세가: 오창을 지키며 항적을 쫓았고 항적이 죽자 초 땅 동해군 22현을 평정했다. 고제를 따라 반란한 연왕 장도를 역하에서 깼고 열후가 되어 부절을 나누어 강후라 불렸다.
출전: 史記 卷057 「籍已死因東定楚地」 / 史記 卷057 「賜爵列侯剖符世世勿絕食絳八千一百八十戶號絳侯」
한왕 신을 대 땅에서 쳐 진양을 내리고 평성 아래에서 흉노 기병을 쳐 태위가 된다.
정사 강후주발세가: 장군으로 대에서 반란한 한왕 신을 쳐 곽인을 내렸고 동제에서 신의 군을 깼으며 태원 6성을 항복시켰다. 진양 아래에서 흉노 기병을 깨고 진양을 내렸으며 평성 아래에서도 흉노 기병을 쳤다. 이어 태위로 올랐다.
관련: 평성 백등산 포위
출전: 史記 卷057 「轉攻韓信軍銅鞮破之」 / 史記 卷057 「勃遷為太尉」
진희의 마읍을 도륙하고 영구에서 진희를 베어 안문·운중·대군을 평정한다.
정사 강후주발세가: 진희를 칠 때 마읍을 도륙했다. 진희의 장군 승마치를 베었고 운중·안문을 평정했으며 영구에서 진희를 깨 베고 대군 9현을 평정했다.
관련: 진희 반란
출전: 史記 卷057 「擊陳豨屠馬邑」 / 史記 卷057 「復擊豨靈丘破之斬豨」
연왕 노관이 반란하자 번쾌를 대신해 장수가 되어 계를 함락하고 상곡·우북평 등을 평정한다.
정사 강후주발세가: 연왕 노관이 반란하자 주발이 상국으로서 번쾌를 대신해 장수가 되어 계를 내리고 노관의 대장 저 등을 얻었으며 혼도를 도륙했다. 노관군을 상란·저양에서 깨고 장성까지 쫓아 상곡 12현, 우북평 16현, 요서·요동 29현, 어양 22현을 평정했다.
관련: 운몽 한신 체포
출전: 史記 卷057 「燕王盧綰反勃以相國代樊噲將擊下薊」 / 史記 卷057 「定上谷十二縣」
정사 항우본기·고조본기: 한 5년 고릉에서 한신·팽월이 오지 않아 패한 한왕이 장량의 계책으로 제 땅(진 동쪽~바다)을 한신에, 수양 북쪽~곡성을 팽월에 주기로 하자 두 사람이 군을 이끌고 왔다. 한신은 제에서, 유가는 수춘에서 성보를 도륙하며 오고, 대사마 주은이 초를 배반해 구강군을 이끌고 합류해 해하에서 항우를 포위했다. 한신은 병력 30만을 직접 거느리고 공장군을 왼쪽, 비장군을 오른쪽, 황제를 뒤, 강후(주발)·시장군을 그 뒤에 두었다. 한신이 먼저 싸워 불리해 물러나자 좌우가 풀려나 초군이 불리해졌고 한신이 다시 올라타 해하에서 대파했다. 항우는 병력이 적고 양식이 다한 채 밤에 사방의 초나라 노래를 듣고 놀라 우미인과 이별의 노래를 부른 뒤 8백여 기와 포위를 뚫고 남쪽으로 달아났다. 관영이 5천 기로 추격했다. 한서 고조기는 12월 해하 포위로 적는다.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82 | 한 초기 전투에서 여러 번 선두에 서 「最」를 받았고, 후에 연왕 노관을 치고 여씨를 토벌해 문제를 세웠다(강후주발세가). |
| 무력 | 80 | 성을 오르며 먼저 오르거나 군문을 지켜 전공을 여러 번 얻었으나 개인 무용 서술은 적다(강후주발세가). |
| 지력 | 63 | 「木彊敦厚」하고 글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진평과 모의해 여씨를 주살했다(강후주발세가). |
| 정치 | 67 | 고조가 큰 일을 맡길 만하다 한 인물로, 뒤에 태위·승상을 지냈다(강후주발세가). |
| 매력 | 64 | 고조의 중연 때부터 따랐고 장병이 말달려 공을 세운 비율이 높았다(강후주발세가).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주발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