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출생 연도 기록 없음(세가는 「少時」만 적음)
사망 -178년 — 효문제 2년(-178) — 승상으로 죽고 헌후의 시호. 전문 「孝文帝二年丞相陳平卒」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8년 | 임제 | 위왕 구 태복 | 기록 |
| -205년 | 수무 | 도위·참승·호군(초에서 이탈) | 기록 |
| -204년 | 형양 | 호군중위 | 기록 |
| -201년 | 진 | 호군중위 | 기록 |
| -200년 | 평성 | 호군중위 | 기록 |
| -195년 | 장안 | 낭중령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9년 | 기타 | 재야(양무 호유향 출신) | 불명 |
| -208년 | 위 | 위왕 구 태복 | 기록 |
| -207년 | 초 | 항우 군 소속(경) | 기록 |
| -206년 | 초 | 항우 군 소속(경) | 불명 |
| -205년 | 한 | 도위·참승·호군(초에서 이탈) | 기록 |
| -204~-200년 | 한 | 호군중위 | 기록 |
| -199~-197년 | 한 | 호군중위 | 불명 |
| -196년 | 한 | 호군중위 | 기록 |
| -195년 | 한 | 낭중령 | 기록 |
임제에서 위왕 구를 섬겨 태복이 되나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참소를 받아 떠난다.
정사 진평세가: 진승이 일어나 위왕 구가 서자, 진평은 형에게 하직하고 젊은이들을 따라 임제에서 위왕 구를 섬겨 태복이 되었다. 위왕에게 간했으나 듣지 않았고 어떤 이가 참소하자 달아났다.
출전: 史記 卷056 「從少年往事魏王咎於臨濟」 / 史記 卷056 「魏王以爲太僕」 / 史記 卷056 「陳平亡去」
하상에 이른 항우에게 귀의해 진을 깨는 군에 따라 들어가 경(卿)의 작위를 받는다.
정사 진평세가: 한참 뒤 항우가 땅을 공략해 하상에 이르자 진평이 가서 귀의했고, 진을 깨러 들어가는 데 따라가 경의 작위를 받았다. 원문은 연도를 적지 않는다.
출전: 史記 卷056 「項羽略地至河上陳平往歸之」 / 史記 卷056 「從入破秦賜平爵卿」
은왕을 쳐 항복시켜 신무군에 봉해졌으나 한이 은을 평정하자 항우의 분노가 두려워 금과 인을 돌려보내고 도망한다.
정사 진평세가: 항우가 팽성에서 왕이 되고 한왕이 삼진을 평정하자 은왕이 초에 반했다. 항우가 진평을 신무군으로 삼아 은왕을 쳐 항복시키게 했고 항한이 도위 벼슬을 내렸다. 그 뒤 한왕이 은을 공격해 떨어뜨리자 항우가 은을 평정한 장수들을 죽이려 했고, 진평은 두려워 금과 인을 봉해 돌려보내고 혼자 도망했다.
출전: 史記 卷056 「項羽乃以平爲信武君」 / 史記 卷056 「擊降殷王而還」 / 史記 卷056 「乃封其金與印」
수무에서 한왕에게 귀순해 도위·참승·호군을 맡고, 팽성 패전 뒤 광무에 주둔한다.
정사 진평세가: 진평이 수무에 이르러 한에 항복하고 위무지의 소개로 한왕을 만났다. 한왕이 말을 듣고 기뻐해 도위로 삼아 참승시키고 호군을 맡겼다. 동쪽으로 항우를 치러 갔다가 팽성에서 패했고, 형양에 이르러 진평을 아장으로 삼아 한왕 신에게 속하게 해 광무에 주둔했다.
출전: 史記 卷056 「平遂至修武降漢」 / 史記 卷056 「是日乃拜平爲都尉使爲參乘典護軍」 / 史記 卷056 「以平爲亞將屬於韓王信軍廣武」
주발·관영 등의 참소를 받으나 위무지와 한왕 앞에서 해명해 호군중위로 제장을 감독한다.
정사 진평세가: 강후와 관영 등이 진평을 형수와 사통하고 금을 받는 반복난신이라 참소했다. 한왕이 위무지를 꾸짖자 위무지는 능력과 품행을 구분해 답했다. 진평도 "신은 알몸으로 왔으니 금이 아니면 쓸 것이 없다"며 해명했다. 한왕이 사과하고 호군중위로 삼아 제장을 모두 감독하게 했다.
관련: 형양·성고 공방
출전: 史記 卷056 「平雖美丈夫如冠玉耳」 / 史記 卷056 「拜爲護軍中尉盡護諸將」
형양이 포위되자 금 4만 근으로 반간계를 써서 항우와 범증을 갈라놓고, 밤에 여자 2천 명을 동문으로 내보내는 사이 한왕과 서문으로 탈출한다.
정사 진평세가: 초가 감용도를 끊고 한왕을 형양성에 포위하자 진평은 항우의 골경지신 아부·종리매·용저·주은 몇 사람을 이간하라고 권했고, 한왕은 황금 4만 근을 주고 마음대로 쓰게 했다. 항우가 아부를 크게 의심하니 아부가 노해 떠나다 팽성에 이르기 전 죽었다. 진평은 밤에 여자 2천 명을 동문으로 내보냈고, 초가 그쪽을 치는 사이 한왕과 서문으로 빠져나갔다.
관련: 형양·성고 공방
출전: 史記 卷056 「乃出黃金四萬斤與陳平恣所爲」 / 史記 卷056 「項王果大疑亞父」 / 史記 卷056 「陳平乃夜出女子二千人滎陽城東門」 / 史記 卷056 「陳平乃與漢王從城西門夜出去」
한신이 제왕을 자청하자 한왕이 화내는 것을 발을 밟아 막고, 장량과 함께 한신을 제왕으로 세우게 한다. 호유향에 봉해진다.
정사 진평세가: 회음후가 제를 깨고 스스로 제왕이 되려 하자 한왕이 크게 노해 꾸짖었고 진평이 한왕의 발을 밟았다. 한왕이 깨달아 제의 사자를 후대하고 장량을 보내 한신을 제왕으로 세웠다. 진평은 호유향에 봉해졌다.
출전: 史記 卷056 「淮陰侯破齊自立爲齊王」 / 史記 卷056 「陳平躡漢王」 / 史記 卷056 「封平以戸牖鄕」
호군중위로 연왕 장도 토벌에 따른다.
정사 진평세가: 진평은 늘 호군중위로 연왕 장도를 평정하는 데 따랐다.
출전: 史記 卷056 「常以護軍中尉從定燕王臧荼」
초왕 한신을 잡으려 천자가 운몽에 거짓 순행하고 진에서 제후를 모으는 계책을 올려 한신을 사로잡는다. 호유후에 봉해진다.
정사 진평세가: 한 6년 어떤 이가 초왕 한신의 모반을 고하자 장수들은 쳐서 묻자고 했다. 진평은 힘으로 맞서면 위태롭다며 운몽에 거짓 놀러 가 진에서 제후를 모으면 한신이 교외에서 맞이할 것이니 힘센 사람 하나로 잡을 수 있다고 했다. 고제가 따라 한신을 묶고 "네가 모반한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어 진평과 부절을 쪼개 호유후로 봉했다.
관련: 운몽 한신 체포
출전: 史記 卷056 「陛下弟出僞遊」 / 史記 卷056 「會諸侯於陳」 / 史記 卷056 「高帝豫具武士見信至即執縛之」 / 史記 卷056 「爲戸牖侯」
대 땅의 한왕 신을 치러 따라갔다가 평성에서 흉노에 7일간 포위되자 기이한 계책으로 포위를 풀고, 곡역후로 옮겨 봉해진다.
정사 진평세가: 진평은 호군중위로 대에서 한왕 신을 치는 데 따랐다. 평성에서 흉노에 포위되어 7일 동안 먹지 못했으나 고제가 진평의 기이한 계책을 써 선우의 알씨를 통해 포위가 풀렸다. 그 계책은 비밀이라 세상이 듣지 못했다. 곡역을 지나던 고제가 이를 크게 여겨 진평을 곡역후로 바꿔 봉했다.
관련: 평성 백등산 포위
출전: 史記 卷056 「卒至平城爲匈奴所圍七日不得食」 / 史記 卷056 「高帝用陳平奇計使單于閼氏圍以得開」 / 史記 卷056 「更以陳平爲曲逆侯」
진희와 경포 토벌에 호군중위로 따르며 여섯 번 기이한 계책을 올려 여섯 번 봉읍이 늘어난다.
정사 진평세가: 그 뒤 늘 호군중위로 진희와 경포를 치는 데 따랐다. 모두 여섯 번 기이한 계책을 내어 그때마다 봉읍이 늘어 여섯 번 더해졌다. 계책은 비밀이라 세상이 알지 못했다.
출전: 史記 卷056 「其後常以護軍中尉從攻陳豨及黥布」 / 史記 卷056 「凡六出奇計輒益邑凡六益封」
고제가 번쾌를 죽이라 한 명령을 주발과 함께 받으나 번쾌를 가두어 장안으로 보내고, 고제의 죽음을 듣자 서둘러 궁에 돌아가 여태후 곁에 머문다.
정사 진평세가: 연왕 노관이 반하자 번쾌가 장수로 갔고, 번쾌를 헐뜯는 이가 있어 고제가 노해 진평의 계책으로 주발을 불러 진평이 가서 번쾌의 머리를 베라 했다. 진평과 주발은 번쾌가 외척이라 죽이면 후회할 것이라 보고 가두어 장안으로 보냈다. 진평은 가던 중 고제의 죽음을 듣고 여태후와 여수의 참소가 두려워 먼저 달려가 궁에서 곡하고 청해 숙위에 들었고 낭중령이 되어 효혜를 가르쳤다.
출전: 史記 卷056 「用陳平謀而召絳侯周勃受詔牀下」 / 史記 卷056 「寧囚而致上上自誅之」 / 史記 卷056 「平行聞高帝崩」 / 史記 卷056 「太后乃以爲郎中令」
정사 항우본기: 한 4년 한군은 병력이 많고 식량이 넉넉했으나 항우군은 지치고 식량이 끊겼다. 한이 육가를 보내 태공을 돌려 달라 청했으나 항우가 듣지 않았고, 다시 후공을 보내자 항우가 한과 약정을 맺어 천하를 반으로 나누어 홍구 서쪽을 한, 동쪽을 초로 삼았다. 항우는 한왕의 부모·처자를 돌려보내자 군중이 만세를 불렀다. 한왕은 후공을 평국군에 봉했다. 항우는 약조 후 군을 풀어 동쪽으로 돌아갔다. 한왕이 서쪽으로 돌아가려 하자 장량·진평이 「호랑이를 길러 환을 남기는 일」이라며 추격을 권했고 한왕이 따랐다.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호군중위로 제장을 감독했으나 직접 병력을 이끈 기록은 없다(진평세가). |
| 무력 | 22 | 무력 기록은 없다. 도망길에 배에서 알몸으로 일해 죽음을 피한 일화뿐이다. |
| 지력 | 96 | 반간계, 한신 체포 계책, 평성 포위 해결 등 여섯 번 기이한 계책을 올렸다(진평세가). |
| 정치 | 85 | 한 승상이 되어 여씨 정권을 넘기고 문제를 세우는 데 본모(本謀)였다고 한다(진평세가). |
| 매력 | 60 | 여러 주군을 섬겼으나 번번이 의심을 샀고 한왕에게 믿음을 얻었다(진평세가).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진평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