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출생 연도 기록 없음.
사망 -204년 — 한 3년(기원전 204) 5월 형양에서 한왕으로 위장하다 항우에게 불태워져 죽음 — 「項王燒殺紀信」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4년 | 형양 | 한 장군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9~-205년 | 기타 | (역할 기록 없음) | 불명 |
| -204년 | 한 | 한 장군 | 기록 |
형양이 포위되자 한왕 수레를 타고 황옥·좌독 차림으로 "한왕이 항복한다"고 속여 초군을 성 동쪽으로 끌어내고, 한왕은 서문으로 빠져나간다. 항우는 기신을 불태워 죽인다.
정사 항우본기: 한 장군 기신이 한왕에게 "왕을 위해 초를 속이겠다"고 청했다. 한왕이 밤에 여자 2천 명을 동문으로 내보내자 기신이 황옥차를 타고 좌독을 세워 "성중 식량이 떨어져 한왕이 항복한다"고 외쳤고 초군이 만세를 불렀다. 그사이 한왕은 수십 기와 서문으로 나가 성고로 달아났다. 항왕이 기신을 불태워 죽였다.
관련: 형양·성고 공방
출전: 史記 卷007 「漢將紀信說漢王曰事已急矣請為王誑楚為王王可以閒出」 / 史記 卷007 「紀信乘黃屋車傅左纛曰城中食盡漢王降」 / 史記 卷007 「漢王亦與數十騎從城西門出走成皋」 / 史記 卷007 「項王燒殺紀信」
정사 항우본기: 항우는 함곡관을 깨고 희수 서쪽에 이르렀다. 패공의 좌사마 조무상이 패공이 관중에서 왕이 되려 한다고 고하자 항우가 격분해 다음 날 패공 군을 치려 했다. 당시 항우의 군은 40만으로 신풍 홍문에, 패공의 군은 10만으로 패상에 있었다(두 군영 거리 40리). 항백이 밤에 장량을 구하려 달려와 패공에게 알리고, 패공은 다음 날 백여 기를 이끌고 홍문에 와 사과했다. 연회에서 범증이 옥결을 세 번 들어 신호하고 항장이 칼춤을 췄으나 항백이 막았고, 번쾌가 방패를 들고 뛰어들어 항우를 꾸짖었다. 패공은 변소를 핑계로 빠져나와 번쾌·하후영·근강·기신과 걸어서 여산 아래 지양 샛길로 패상으로 돌아갔다. 전투는 일어나지 않은 정치적 위기였다.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장군이라 불렸으나 지휘 기록은 없다(항우본기). |
| 무력 | 평가 불가 | 싸운 기록이 없다. |
| 지력 | 54 | 스스로 "초를 속이면 한왕이 틈으로 나갈 수 있다"는 계책을 냈다(항우본기). |
| 정치 | 평가 불가 | 정치 기록이 없다. |
| 매력 | 64 | 한왕 대신 죽음을 택한 충절로 알려졌다(항우본기).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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