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가(陸賈) — 사기·한서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한출생 생년 불명사망 몰년 불명기록 연도 3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 「楚人」이며 객으로 고조를 따라 천하를 평정했다고만 나온다

사망 몰년 불명 — 여후·문제 시기까지 살았고 「竟以壽終」(수를 다해 죽음)이라고만 나온다. 연대는 범위(-209~-195) 밖이라 비워 둔다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7년무관객·변사 — 유방의 사자기록
-203년광무객·변사 — 유방의 사자기록
-196년번우(남월)변사 — 한 조정, 남월 사행 뒤 태중대부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7년한객·변사 — 유방의 사자기록
-206~-204년한객·변사 — 유방의 사자불명
-203년한객·변사 — 유방의 사자기록
-202~-197년한변사 — 한 조정, 남월 사행 뒤 태중대부불명
-196년한변사 — 한 조정, 남월 사행 뒤 태중대부기록
-195년한태중대부불명

나온 사건·전투

-207년 · 객·변사 — 유방의 사자

역식기와 함께 진 장수를 이익으로 꾀어 무관을 습격한다.

정사 고조본기: 조고가 2세를 죽이고 사람을 보내 관중을 나눠 갖자 했으나 유방은 속임수로 여기고 장량의 계책에 따라 역생·육가를 보내 진 장수를 이익으로 꾀게 한 뒤 무관을 습격해 깼다. 월표는 8월 항에 무관을 깼다고 적는다.

관련: 무관 입관

출전: 史記 卷008 「使酈生陸賈往說秦將啗以利因襲攻武關破之」 / 史記 卷016 「攻武關破之」

-203년 · 객·변사 — 유방의 사자

한왕의 사자로 항우에게 태공을 돌려 달라고 청했으나 항우가 듣지 않는다.

정사 항우본기: 한은 병력이 강하고 식량이 많은데 항우는 병력이 지치고 식량이 떨어진 때 한이 육가를 보내 태공 송환을 청했으나 항우는 듣지 않았다. 이어 한왕이 후공을 보내 설득해 홍구 화약이 맺어졌다.

출전: 史記 卷007 「漢遣陸賈說項王請太公項王弗聽」 / 史記 卷007 「漢王復使侯公往說項王」

-196년 · 변사 — 한 조정, 남월 사행 뒤 태중대부

한 조정이 안정되자 남월 왕 위타(尉他)에게 인장을 내려 신하로 삼고 태중대부가 된다.

정사 역생육가열전: 고조 때 중국이 막 평정되자 위타가 남월을 평정해 왕이 되었고, 고조가 육가를 보내 인장을 내려 남월왕으로 세우게 했다. 위타는 상투를 틀고 걸터앉아 맞았으나, 육가가 「한이 알면 조상 무덤을 파고 종족을 멸하고 편장에게 10만을 주어 보내면 남월이 왕을 죽이고 항복할 것」이라 일러 위타가 놀라 일어나 사과했다. 위타가 자신과 한 황제를 견줘 묻자 육가는 한 땅이 남월의 수십만과 비교가 안 된다 답했고, 위타는 크게 기뻐해 몇 달을 머물게 하고 천금을 주었다. 육가가 위타를 남월왕에 앉히고 신하로서 한의 약속을 받들게 하고 돌아오자 고조가 크게 기뻐해 태중대부로 삼았다. 연대는 본전에 없다(이 파일에서는 남월열전의 한 11년 -196을 따른 추정이며, 해당 열전 원문은 아직 캐시에 없음).

출전: 史記 卷097 「高祖使陸賈賜尉他印為南越王」 / 史記 卷097 「尉他乃蹶然起坐謝陸生曰居蠻夷中久殊失禮義」 / 史記 卷097 「陸生卒拜尉他為南越王令稱臣奉漢約」 / 史記 卷097 「歸報高祖大悅拜賈為太中大夫」

-196년 · 변사 — 한 조정, 남월 사행 뒤 태중대부

고조가 시서를 업신여기자 말 위에서 얻었다고 말 위에서 다스리느냐고 간해, 진이 천하를 잃은 까닭을 정리한 『신어』 12편을 짓는다.

정사 역생육가열전: 육가가 때때로 시서를 말하자 고제가 「나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는데 시서가 무슨 소용이냐」고 꾸짖었다. 육가는 「말 위에서 얻었다고 말 위에서 다스릴 수 있습니까, 탕·무는 거슬러 얻고 순리로 지켰다」라 답했고, 고제가 부끄러워하며 진이 천하를 잃고 자신이 얻은 까닭과 옛 성패를 써 보라 하자 12편을 지어 한 편 올릴 때마다 칭찬받아 『신어』라 불렀다. 연대는 본전에 없다.

출전: 史記 卷097 「乃公居馬上而得之安事詩書」 / 史記 卷097 「居馬上得之寧可以馬上治之乎」 / 史記 卷097 「凡著十二篇」 / 史記 卷097 「號其書曰新語」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206년 · 함양 입성과 진 멸망

정사 진시황본기·고조본기: 조고가 이세를 죽이고 자영을 진왕으로 세웠으나 자영은 재궁에서 조고를 찔러 죽이고 삼족을 멸했다. 한 원년(월 표기상 10월) 유방은 장량의 계책에 따라 역이기·육가를 보내 진 장수를 이익으로 꾀하고 무관을 습격해 깬 뒤 남전 남쪽에서 의병(疑兵)의 깃발을 늘리고 약탈을 금해 진군을 흔들어 크게 깼다. 유방은 제후보다 먼저 패상에 이르렀고 자영이 흰 말이 끄는 소거에 목에 끈을 걸고 옥새와 부절을 봉해 지도 곁에서 항복했다. 장수들이 자영을 죽이자 했으나 유방은 "항복한 사람을 죽이면 상서롭지 못하다"며 관리에게 맡기고 함양에 들어가 궁궐을 머물려다 번쾌·장량의 간언으로 보물과 창고를 봉하고 패상으로 돌아와 법삼장을 선포했다. 한 달 남짓 뒤 제후군이 이르러 항적이 자영과 진 종실을 죽이고 함양을 도륙하고 궁실을 불태웠다. 원문에 병력은 「數萬人」으로만 있어 수는 null로 둔다. 서기 환산은 자치통감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03년 · 홍구 화약

정사 항우본기: 한 4년 한군은 병력이 많고 식량이 넉넉했으나 항우군은 지치고 식량이 끊겼다. 한이 육가를 보내 태공을 돌려 달라 청했으나 항우가 듣지 않았고, 다시 후공을 보내자 항우가 한과 약정을 맺어 천하를 반으로 나누어 홍구 서쪽을 한, 동쪽을 초로 삼았다. 항우는 한왕의 부모·처자를 돌려보내자 군중이 만세를 불렀다. 한왕은 후공을 평국군에 봉했다. 항우는 약조 후 군을 풀어 동쪽으로 돌아갔다. 한왕이 서쪽으로 돌아가려 하자 장량·진평이 「호랑이를 길러 환을 남기는 일」이라며 추격을 권했고 한왕이 따랐다.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평가 불가군사 지휘 기록이 없다.
무력평가 불가무용 기록이 없어 낮게 둔 추정값이다.
지력84위타를 설득해 신하로 삼고, 『신어』로 진의 멸망과 한의 흥기를 논한 것(역생육가열전).
정치74남월 외교, 후일 여씨 정권에서 진평과 주발을 맺게 한 조언(역생육가열전)으로 정치 영향력이 컸다.
매력77위타가 그의 말을 듣고 몇 달 머물게 하고 천금을 주었다(역생육가열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육가의 이동 경로

한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