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중국 · 좌표: 37.850, 112.550 · 사건 46건
| 해 | 사료 | 내용 |
|---|---|---|
| 기원전 403년 | 자치통감 | 삼가(조·한·위)가 지백이 있는 진양성을 물로 둘러 수공함 — 성이 잠기지 않은 곳이 3판(版)뿐 |
| 307년 | 진서(晉書) 제기 | 幷州 여러 군이 劉元海에게 함락되나 刺史 劉琨은 晉陽을 홀로 지킴 |
| 312년 | 자치통감 | 漢 鎭北將軍 靳沖·平北將軍 卜珝이 并州를 침범, 辛未 晉陽을 포위 |
| 393년 | 자치통감 | 11월 燕主 垂가 中山의 보기 7만을 내어 丹楊王 纘·張崇을 井陘으로 보내 西燕 武鄕公 友의 晉陽을 공격하게 하고, 征東將軍 平規는 段平을 공격하게 함 |
| 396년 | 북사(北史) 본기 | 陽曲에 이어 晉陽을 내려다보자 後燕 并州牧 慕容農이 성을 버리고 달아나 并州가 평정됨 |
| 530년 | 북사(北史) 본기 | 爾朱兆가 낙양을 습격해 孝莊帝를 晉陽으로 옮김 |
| 530년 | 위서(魏書) 제기 | 효장제를 진양(晉陽)으로 끌고 가 삼급불사에서 죽임(24세) |
| 532년 | 북제서(北齊書) 제기 | 爾朱兆 토벌 길에 晉陽이 사방이 막힌 요충이라 하여 大丞相府를 세우고 정착함 (이후 晉陽이 東魏·北齊의 군사 중심) |
| 532년 | 북사(北史) 본기 | 爾朱兆를 북벌한 뒤 晉陽이 사방이 막힌 요충이라 하여 대승상부를 세우고 정착 |
| 532년 | 위서(魏書) 제기 | 高歡이 무향에 이르자 爾朱兆는 진양을 약탈하고 수용으로 달아나 병주 평정 |
| 547년 | 북제서(北齊書) 제기 | 정월 병오일 高歡이 晉陽에서 52세로 죽음, 喪을 숨김 (이후 侯景이 반란) |
| 547년 | 북사(北史) 본기 | 高歡이 晉陽에서 52세로 죽음(발상은 6월) |
| 547년 | 위서(魏書) 제기 | 高歡 진양에서 사망(비밀로 부침) |
| 549년 | 북제서(北齊書) 제기 | 高澄 피살 후 高洋이 晉陽으로 가 친히 정사를 총괄, 관대한 정치를 폄 |
| 550년 | 북제서(北齊書) 제기 | 9월 경오일 황제가 晉陽으로 가 산릉에 인사 (이후 해마다 鄴·晉陽을 오감) |
| 550년 | 북제서(北齊書) 제기 | 병인일 高洋이 직접 군을 이끌고 성 동쪽에 나가 주둔 — 宇文泰가 군용이 엄정함을 보고 「高歡不死矣」라 탄식하며 철수 |
| 559년 | 북제서(北齊書) 제기 | 10월 갑오일 高洋이 晉陽宮 德陽堂에서 갑자기 죽음 (31세) |
| 559년 | 북제서(北齊書) 제기 | 10월 계묘일 太子 高殷이 晉陽 宣德殿에서 즉위(廢帝), 대사면 |
| 559년 | 북사(北史) 본기 | 文宣帝가 晉陽宮 德陽堂에서 31세로 급서 |
| 560년 | 북제서(北齊書) 제기 | 8월 임오일 高演이 晉陽 宣德殿에서 즉위(孝昭帝), 乾明을 皇建으로 개원 (廢帝는 濟南王으로 강등) |
| 560년 | 북사(北史) 본기 | 高演(孝昭帝)이 晉陽 宣德殿에서 즉위 |
| 561년 | 북제서(北齊書) 제기 | 11월 高演이 晉陽宮에서 27세로 죽고, 長廣王 高湛을 불러 즉위하게 하라는 조서를 남김 |
| 561년 | 북제서(北齊書) 제기 | 11월 계축일 高湛이 晉陽 南宮에서 즉위(武成帝), 皇建二年을 大寧으로 고침 |
| 561년 | 북사(北史) 본기 | 孝昭帝가 晉陽宮에서 27세로 붕어, 長廣王 高湛을 불러 잇게 함 |
| 563년 | 북제서(北齊書) 제기 | 12월 周將 楊忠이 突厥 阿史那木汗 등 20여만과 恒州에서 3路로 쳐들어옴 — 己未 周軍이 幷州(晉陽)를 압박, 達奚武는 東雍·晉州로 감 |
| 563년 | 북사(北史) 본기 | 北周 楊忠이 突厥 10여만과 세 길로 쳐들어와 并州를 압박 |
| 564년 | 북제서(北齊書) 제기 | 정월 초하루 周軍이 晉陽 성 아래에서 진을 쳐 성 서쪽에서 싸웠으나 周軍과 突厥이 대패, 段韶가 새외까지 추격 |
| 564년 | 북제서(北齊書) 제기 | 12월 정사일 황제가 晉陽에서 남쪽으로 친정에 나섬 (洛陽 구원) |
| 564년 | 북사(北史) 본기 | 晉陽성 서쪽에서 싸워 北周·突厥군을 대파하고 段韶가 변경까지 추격 |
| 564년 | 주서(周書) 제기 | 楊忠이 齊 長城을 깨고 晉陽까지 이르렀다가 돌아옴 |
| 565년 | 북제서(北齊書) 제기 | 4월 병자일 太史의 천문 경고에 따라 皇太子에게 傳位, 武成帝는 太上皇帝가 됨 (후주 즉위, 天統元年) |
| 576년 | 북제서(北齊書) 제기 | 12월 계축일 晉陽에 들어와 겁에 질려 北朔州·突厥으로 달아날 궁리, 高延宗·高孝珩을 남겨 晉陽을 지키게 함. 정사일 隆化로 개원하고 밤에 五龍門을 베고 나가 鄴으로 향함 |
| 576년 | 북제서(北齊書) 제기 | 12월 무오일 安德王 高延宗이 대신들의 의논으로 晉陽에서 황제 자리에 올라 德昌으로 개원 — 신유일 周軍과 싸워 대패, 사로잡힘 |
| 576년 | 북사(北史) 본기 | 安德王 高延宗이 晉陽에서 즉위해 싸웠으나 周軍에 대패해 사로잡힘 |
| 576년 | 북사(北史) 본기 | 무제가 晉陽에서 밤낮 싸운 끝에 高延宗을 사로잡아 并州가 평정됨 |
| 576년 | 주서(周書) 제기 | 幷州에서 高延宗이 4만으로 맞서 첫 교전에서 周軍이 高延宗에게 크게 패해 武帝가 간신히 빠져나왔으나 이튿날 다시 싸워 高延宗을 사로잡고 幷州 평정 |
| 577년 | 주서(周書) 제기 | 東壽陽 토인 5천이 幷州성을 습격했으나 宇文神舉가 격파 |
| 590년 | 수서(隋書) 제기 | 并州에 행차 |
| 604년 | 북사(北史) 본기 | 并州總管 漢王 楊諒이 거병하자 楊素가 평정 |
| 604년 | 수서(隋書) 제기 | 并州총관 漢王 楊諒이 거병해 반란, 楊素가 평정 |
| 607년 | 수서(隋書) 제기 | 河北 십여 郡 장정을 동원해 太行山을 뚫어 并州까지 馳道를 통하게 함 |
| 607년 | 수서(隋書) 제기 | 太原에 이르러 晉陽宮 조영을 명함 |
| 908년 | 자치통감 | 晉王 李克用이 죽고 아들 李存勖이 뒤를 이어 하동절도사·晉王이 됨 |
| 908년 | 자치통감 | 晉王 존욱이 숙부 李克寧의 모반을 알고 연회에서 克寧·存顥을 붙잡아 죽임 |
| 914년 | 자치통감 | 晉王이 劉仁恭 부자를 포로로 끌고 개선, 태묘에 바침 |
| 954년 | 자치통감 | 周 世宗이 晉陽 성 아래에 이르러 깃발이 성을 사십 리 둘러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