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 「표류기」: 기록 사료. 다루는 해 1653년 ~ 1666년, 사건 60건을 해 순서로 정리했습니다. 원문 라이선스와 출처 포함.
| 등급 | 기록 |
|---|---|
| 시점 | 외부 시점 |
| 다루는 해 | 1653년 ~ 1666년 |
| 사건 수 | 사건 60건 · 지도에 놓은 48건 |
| 저자 | Hendrik Hamel (B. Hoetink 편, 1920) |
| 원제 | Verhaal van het vergaan van het jacht de Sperwer (Journael 1653-1666) |
지역 분포: 한반도 38 · 중국 14 · 일본 7 · 동남아시아 1
| 해 | 장소 | 사건 | 원문 위치 |
|---|---|---|---|
| 1653년 | Batavia | 스페르베르호가 1653년 6월 18일 바타비아 정박지에서 출범. 타이완(포르모사) 총독 자리를 이어받을 코르넬리스 카에사르를 태우고 타이완으로 향함. | Journaal, 서두; pg11467.txt r.1317 |
| 1653년 | Taijouan | 7월 16일 타이완(Taijouan) 정박지에 도착. 카에사르가 상륙하고 짐을 내린 뒤, 총독과 평의회가 배를 다시 일본으로 보내기로 정함. | Journaal, 서두; pg11467.txt r.1322 |
| 1653년 | Taijouan | 7월 30일 일본(나가사키)행 짐을 싣고 타이완 정박지를 떠남. | Journaal, 서두; pg11467.txt r.1327 |
| 1653년 | cust van China | 7월 말 포르모사 해안 쪽에서 폭풍. 8월 1일 새벽 중국 해안 가까운 작은 섬 뒤에 닻을 내리고, 중국인들이 무장하고 해안을 오가는 것을 봄. 8월 2일 잠잠한 틈에 닻을 올려 벗어남. | Journaal, 1653-07-31~08-02; pg11467.txt r.1334 |
| 1653년 | Quelpaert (Jeju Island) | 8월 15일 밤 폭풍 속에서 육지를 보고 닻을 끊었으나 버티지 못하고 암초에 부딪혀 배가 순식간에 산산조각 남(표제의 난파일은 8월 16일). 선원들이 해안으로 밀려 올라옴. | Journaal, 1653-08-15/16; pg11467.txt r.1404 |
| 1653년 | Quelpaert (Jeju Island) | 8월 16일 아침 해안을 뒤져 모인 생존자는 36명. 64명 가운데 28명이 죽음. 선장 레이니르 에흐버르츠도 시신으로 발견되어 묻음. | Journaal, 1653-08-16; pg11467.txt r.1418 |
| 1653년 | Quelpaert (Jeju Island) | 8월 18일 기병·보병 1천~2천 명이 와서 진을 치고, 서기(하멜)·수석 항해사·갑판장·소년 등 책임자를 목에 쇠사슬(방울)을 걸어 끌어내 엎드리게 함. 일본 나가사키로 가려 한다고 손짓했으나 말이 통하지 않음. | Journaal, 1653-08-18; pg11467.txt r.1459 |
| 1653년 | Daejeong (Tadjang) | 8월 21일 말과 해먹으로 호송되어 출발, 저녁에 작은 읍 「Tadjang」에서 묵음. 하루 약 4마일 이동. | Journaal, 1653-08-21; pg11467.txt r.1521 |
| 1653년 | Jeju (Moggan) | 8월 22일 섬 총독(목사) 소재지 「Moggan」에 이르러 수천 무장 군사 앞에서 서기 등이 총독 앞에 엎드려 심문받음. 일본으로 가겠다고만 대답. 이후 왕의 삼촌이 유배되어 죽은 집에 갇힘. | Journaal, 1653-08-22; pg11467.txt r.1538 |
| 1653년 | Jeju (Moggan) | 10월 29일 총독이 부른 자리에서 붉은 수염의 조선 옷 입은 사람이 네덜란드 말로 말을 걸어옴: 1626년 호란디아호로 온 얀 얀서 벨테브레(드 라이프 출신). 1627년 오우어르케르크호로 일본에 가다 표착. 왕이 일본행을 번번이 거절했다고 전함. | Journaal, 1653-10-29; pg11467.txt r.1594 |
| 1653년 | Jeju (Moggan) | 12월 초 총독 임기(3년)가 끝나 신임 총독이 옴. 옛 총독은 떠나기 전 겨울옷과 신발을 지어 줌. 신임은 부식을 끊고 쌀과 소금만 줌. | Journaal, 1653-12; pg11467.txt r.1633 |
| 1654년 | Jeju (Moggan) | 4월 말 여섯 명이 배를 훔쳐 달아나려 했으나 담을 넘던 중 개 짖는 소리에 파수가 알아채 무산. | Journaal, 1654-04; pg11467.txt r.1674 |
| 1654년 | Jeju (Moggan) | 5월 초 조타수와 다섯 명이 해안의 빈 배를 타고 달아나다 돛대가 두 번 바다로 넘어져(한 번은 부러짐) 해안으로 떠밀림. 붙잡혀 목에 널판을 쓰고 각각 25대의 곤장을 맞고 한 달가량 누워 지냄. | Journaal, 1654-05; pg11467.txt r.1697 |
| 1654년 | Jeju (Moggan) | 5월 말 왕의 회신이 와서 서울로 올라오라는 명이 내림(감옥에서 풀려남). | Journaal, 1654-05; pg11467.txt r.1740 |
| 1654년 | Jeju (Moggan) | 6~7일 뒤 네 척의 배에 나누어 태워 두 다리와 한 손을 차꼬에 묶은 채 출항. 이틀 역풍으로 못 가 풀려 다시 옛 감옥으로 돌아갔다가, 4~5일 뒤 순풍에 다시 출발. | Journaal, 1654-06; pg11467.txt r.1743 |
| 1654년 | Haenam (Heijnam) | 배에서 내려 말을 받아 다음 날 「Heijnam」(해남, 각주 227)에 도착, 흩어져 상륙한 36명이 모두 다시 모임. | Journaal, 1654-06; pg11467.txt r.1756 |
| 1654년 | Ieham | 해남 다음 날 저녁 「Ieham」에서 묵던 밤, 총포수 파울루스 얀서 콜(푸르메런트 출신)이 죽음. 읍 사또 지시로 일행 앞에서 묻음. | Journaal, 1654-06; pg11467.txt r.1761 |
| 1654년 | Naju (Naedjoo) | 이어 말을 타고 가 저녁에 「Naedjoo」(나주, 각주 229)에 묵음. | Journaal, 1654-06; pg11467.txt r.1764 |
| 1654년 | Jeonju (Chentio) | 「Chentio」(전주, 각주 234) 도착. 옛날 왕궁이 있던 곳이라 하며 지금은 전라도 도지사가 거처, 전국에 이름난 큰 장사 도시. 이곳이 있는 도를 「Thiellado」(전라도)라 부름. | Journaal, 1654-06; pg11467.txt r.1773 |
| 1654년 | Gongju (Congtio) | 「Congtio」(공주, 각주 241) 도착. 충청도 도지사가 관아를 두는 곳. 이튿날 큰 강을 건너 경기도(본문 「Senggado」)에 들어감. | Journaal, 1654-06; pg11467.txt r.1783 |
| 1654년 | Seoul (Sior) | 큰 강(한강, 각주 243)을 건너 성곽 큰 도시 「Sior」(서울, 각주 244)에 도착. 왕의 거처. 해남에서 약 70~75마일, 대체로 북쪽(약간 서쪽)으로 이동. 도착 뒤 2~3일 한 집에 있다가 서울에 사는 중국인들 사이에 흩어 배치됨. | Journaal, 1654-06~07; pg11467.txt r.1790 |
| 1654년 | Seoul (Sior) | 왕(효종) 앞에 불려가 벨테브레 통역으로 사정을 아뢰고 일본으로 보내 달라 청했으나, 외국인을 내보내는 것은 이 나라의 법이 아니니 여기서 평생 살라는 답. 춤과 노래를 시켜 보고 무명 두 필씩을 내림. | Journaal, 1654-06~07; pg11467.txt r.1806 |
| 1654년 | Seoul (Sior) | 이튿날 훈련대장(veltoverste)이 왕이 일행을 호위병(lijffschutten)으로 삼았다고 통보. 한 사람당 쌀 월 70캐티, 이름·나이를 새긴 나무 신표와 총·화약·탄환을 받고, 초하루·보름에 왕 앞에 문안. 중국인 한 명과 벨테브레가 감독으로 붙음. | Journaal, 1654-06~07; pg11467.txt r.1814 |
| 1654년 | Namhansanseong (Namman Sangsiang) | 8월 청 사신(Tartar)이 조공을 받으러 오자 왕이 일행을 서울에서 6~7마일 떨어진 높은 산 위 큰 산성 「Namman Sangsiang」으로 보내 사신이 서울에 있는 동안 지키게 함. 9월 2~3일 사신이 떠날 때까지 머묾. | Journaal, 1654-08~09; pg11467.txt r.1850 |
| 1654년 | Seoul (Sior) | 11월 말 강이 얼어 말 2~300마리가 줄지어 건넘. 12월 훈련대장의 건의로 배의 가죽을 받아 팔고, 서너 명이 모아 8~9냥 하는 작은 집을 사서 겨울을 남. | Journaal, 1654-12; pg11467.txt r.1874 |
| 1655년 | Seoul (Sior) | 3월 청 사신이 돌아가는 날, 수석 항해사 헨드릭 얀서(암스테르담 출신)와 총포수 헨드릭 얀서 보스(하를럼 출신)가 숲에서 사신 행렬을 가로막고 말머리를 잡음. 네덜란드 옷차림으로 사신에게 호소하려 한 것. | Journaal, 1655-03; pg11467.txt r.1889 |
| 1655년 | Seoul (Sior) | 왕과 대신들이 사신에게 돈을 주어 무마했으나, 두 사람은 감옥에 갇혔다가 얼마 뒤 죽음(병사인지 처형인지 일행은 끝내 알지 못함). | Journaal, 1655; pg11467.txt r.1914 |
| 1655년 | uijterste Z: houck van 't land | 6월 사신이 다시 올 때가 되어, 제주에 배가 또 표착했다는 구실로 일행 가운데 셋(보조원·갑판장·선원)을 서울에서 남쪽으로 보냄. 8월 편지로 이들이 나라 남쪽 끝 요새에서 엄중히 감시받는다고 알려 옴. | Journaal, 1655-06~08; pg11467.txt r.1924 |
| 1656년 | Seoul (Sior) | 1656년 초 대신들이 일행을 없애자고 사흘 회의. 훈련대장은 몰래 죽이느니 우리 한 명을 저들 둘과 같은 무기로 죽을 때까지 싸우게 하자고 했다고 은밀히 전해짐. 왕·왕의 형제·훈련대장 등은 처형에 반대했고, 왕과 왕의 형제가 여러 사람의 소란을 막아 목숨을 건짐. | Journaal, 1656-01; pg11467.txt r.1965 |
| 1656년 | Seoul (Sior) | 대신들의 성화로 일행은 전라도(Thiellado)로 유배, 왕이 자기 수입에서 월 쌀 50파운드를 대 줌. | Journaal, 1656; pg11467.txt r.1969 |
| 1656년 | Seoul (Sior) | 3월 초 말을 타고 서울을 떠남. 벨테브레는 강가에서 배웅하고 돌아갔으며 그 뒤 소식을 듣지 못함. 지나온 읍에서 먹을 것과 말을 대어 줌. | Journaal, 1656-03; pg11467.txt r.1973 |
| 1656년 | Duijtsiang (Thella Penig) | 큰 읍 「Duijtsiang」(전라 병영, Thella Peng)에 도착. 병마절도사(peingse, 각주 264) 거처. 왕의 편지와 함께 인계되고, 서울에서 앞서 보낸 셋도 사흘 뒤 합류해 33명이 됨. 시골집 하나를 받아 함께 삶. | Journaal, 1656-03; pg11467.txt r.1983 |
| 1657년 | Duijtsiang (Thella Penig) | 1657년 2월 부임한 가혹한 신임 사또가 일행에게 땔감 해 오게 함. 9월 심장마비로 죽어 일행과 그 백성이 기뻐함. | Journaal, 1657; pg11467.txt r.2018 |
| 1657년 | Duijtsiang (Thella Penig) | 11월 새 사또가 쌀 배급 외에는 상관하지 않음. 옷이 해져 일행은 구걸로 연명하기로 하고 허가를 얻어 교대로 3~4일씩 농가와 절을 돌며 구걸. 이렇게 겨울을 남. | Journaal, 1657-11; pg11467.txt r.2029 |
| 1658년 | Duijtsiang (Thella Penig) | 1658년 일행 사이에 열병이 돌아 이 병을 몹시 꺼리는 조선인들이 접근을 막음. 사또는 환자 곁을 지키고 서울과 일본 상관 근처에 가지 말라고 단속. | Journaal, 1658; pg11467.txt r.2052 |
| 1659년 | Seoul (Sior) | 왕(효종)이 죽고 청의 승인으로 아들(현종)이 왕위에 오름. 일행은 이어 절을 돌며 구걸. 하멜은 달을 4월이라 썼으나 조선 쪽 기록(효종 10년 5월 4일=1659-06-23)과 달이 다름. | Journaal, 1659; pg11467.txt r.2058 |
| 1660년 ~ 1662년 | Coree | 1660~1662년 가뭄과 흉년으로 굶어 죽은 사람이 수천에 이름. 도적이 길을 막고 왕이 길목마다 파수를 세워 길가 시신을 묻게 함. 많은 읍과 마을이 약탈당하고 창고가 털림. | Journaal, 1660-1662; pg11467.txt r.2074 |
| 1663년 | Duijtsiang (Thella Penig) | 흉년이 3년째 이어져 병영 사또가 더는 쌀을 줄 수 없다고 감사에게 알림. 왕의 몫이라 다른 읍으로 옮기려면 왕의 허가가 필요. | Journaal, 1663; pg11467.txt r.2750 |
| 1663년 | Duijtsiang (Thella Penig) | 2월 말 22명이 된 일행을 세 읍으로 나누라는 명이 내림: 「Saijsingh」 12명, 「Sunischien」 5명, 「Namman」 5명. 집·세간·텃밭을 마련해 둔 곳을 떠나 슬퍼함. | Journaal, 1663-02; pg11467.txt r.2755 |
| 1663년 | Suncheon (Sunischien) | 3월 병영을 떠나 나흘째 「Sunischien」(순천, 각주 327)에 도착, 5명을 남겨 둠. | Journaal, 1663-03; pg11467.txt r.2772 |
| 1663년 | Namwon (Namman) | 「Namman」(남원, 각주 328)으로는 5명이 배치됨(이동 서술은 없음). | Journaal, 1663-02/03; pg11467.txt r.2757 |
| 1663년 | Yeosu (Saijsingh) | 순천을 떠난 이튿날 아침 9시경 「Saijsingh」에 도착, 12명이 전라도 수사(admirael)에게 인계됨. 집과 약간의 세간을 받고 쌀 배급도 전과 같이 받음. 선선한 사또는 이틀 뒤 떠나고 가혹한 신임이 부임. | Journaal, 1663-03; pg11467.txt r.2776 |
| 1663년 | Yeosu (Saijsingh) | 신임 사또는 일행을 여름 땡볕이든 겨울 눈비든 아침부터 저녁까지 앞에 세우고 화살을 주워 오게 하는 등 부림. 사또 부임 뒤 일행은 교대로 15~30일씩 구걸 외출을 허락받음. | Journaal, 1663; pg11467.txt r.2783 |
| 1664년 | Yeosu (Saijsingh) | 1664년 초 사또가 임기를 마치고 도 병마사로 올라가며 신임이 부임. 신임은 일행의 모든 부역을 없애고 한 달 두 번 점호와 교대 집 지키기만 하게 함. 일본으로 가지 그러느냐 하는 말에 배도 길도 없다 답. | Journaal, 1664-01; pg11467.txt r.2806 |
| 1664년 ~ 1665년 | Yeosu (Saijsingh) | 연말에 꼬리 달린 별이 먼저 하나(동남쪽, 두 달 보임) 이어 하나(서남쪽) 보임. 조정이 놀라 바닷가 항구와 전선을 정비하고 병사를 훈련, 밤에 불을 켜지 못하게 함. 일행에게 유럽에서는 어떻게 보느냐 묻기에 하늘이 내리는 벌의 징조(전쟁·흉년·역병)라 함. | Journaal, 1664-12; pg11467.txt r.2835 |
| 1665년 | Yeosu (Saijsingh) | 1665년 배를 구하려 했으나 번번이 방해로 무산. 작은 배 한 척으로 식량을 구하러 섬들을 오가며 탈출 기회를 엿봄. 다른 두 읍의 동료들도 사또들이 바뀔 때마다 고생. | Journaal, 1665; pg11467.txt r.2857 |
| 1666년 | Yeosu (Saijsingh) | 1666년 초 선한 사또가 영전해 떠나고 새 사또가 부임. 얼마 뒤 훈련 중 포수의 부주의로 화약상자에 불이 붙어 병선 앞부분이 날아가고 다섯 명이 죽음. 사또는 숨기려다 밀고되어 정강이 90대와 종신 유배. | Journaal, 1666; pg11467.txt r.2897 |
| 1666년 | Yeosu (Saijsingh) | 7월 새 사또가 하루 100길의 짚 새끼를 꼬라 요구. 앞으로 노예가 될 것이라 보고 탈출을 결심, 구걸로 모은 돈으로 배를 두세 배 값에 사기로 함. | Journaal, 1666-07; pg11467.txt r.2927 |
| 1666년 | Yeosu (Saijsingh) | 이웃 조선인에게 먹을 것과 돈을 주고 섬에 양털 구걸하러 갈 배라 속여 어부의 배를 사게 함. 판 사람이 눈치채고 물러나려 했으나 값을 두 배로 치러 달램. 돛·닻·밧줄·노를 갖추고 다음 상현달 무렵 떠날 준비. | Journaal, 1666-07~08; pg11467.txt r.2933 |
| 1666년 | Suncheon (Sunischien) | 순천의 동료 둘(외과 보조 마테우스 에이보컨, 코르넬리스 디르크스)에게 계획을 알리자 곧 합류하겠다고 함. 항해에 밝은 얀 피터르서는 남원(Namman)에 가 있어 사람을 보내 4일 만에 불러옴(왕복 약 50마일). | Journaal, 1666-08~09; pg11467.txt r.2953 |
| 1666년 | Namwon (Namman) | 얀 피터르서는 남원의 다른 동료들에게 가 있어, 15마일 더 먼 그곳으로 사람을 보내 불러옴. | Journaal, 1666-08; pg11467.txt r.2957 |
| 1666년 | Yeosu (Saijsingh) | 9월 4일 밤 달이 질 무렵 짐(쌀·물·솥)을 지고 성벽을 넘어 배에 타 섬에서 물을 보충한 뒤 읍과 병선들을 지나 출항. 새벽에 지나친 배가 불렀으나 대답하지 않음. | Journaal, 1666-09-04; pg11467.txt r.2969 |
| 1666년 | zee | 9월 5일 해 뜰 무렵 바람이 멎자 추격자가 돛을 알아볼까 봐 돛을 내리고 기다림. 낮에 서풍이 일자 돛을 올려 남동으로 향하고, 저녁에 조선의 남쪽 끝 곶을 뒤로하고 추격 걱정에서 벗어남. | Journaal, 1666-09-05; pg11467.txt r.2984 |
| 1666년 | Hirado (near Firando) | 9월 6일 아침 일본 첫 섬들에 이르고, 저녁에 일본인이 일러 준 대로 「Firando」(히라도) 가까이에 이름. 일본에 가 본 사람이 없고 조선인의 길 안내도 정확하지 않아 나가사키 가는 길을 몰라, 작은 섬 위쪽으로 나가려다 그날 밤 육지 서쪽에 닿음. | Journaal, 1666-09-06; pg11467.txt r.2988 |
| 1666년 | Goto Islands | 9월 8일 일본 섬(고토) 만에 닻을 내렸다가 무장한 일본 배에 따라잡힘. 네덜란드 왕자기를 올리고 「Hollando Nangasakij」라 외치자 돛을 내리라 손짓하여 따름. 마을 앞에 묶이고 파수를 받음. 고토 사람이 나가사키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함. | Journaal, 1666-09-08; pg11467.txt r.3026 |
| 1666년 | Goto Islands | 9월 9~11일 정박하며 식량·물·땔감을 받고, 12일 나가사키 항해용 물자를 받아 낮에 닻을 올려 저녁에 섬 안쪽 마을 앞에 정박. | Journaal, 1666-09-12; pg11467.txt r.3062 |
| 1666년 | Nagasaki | 9월 13일 해뜰 때 출발, 큰 배 둘과 작은 배 둘의 호송을 받아 한밤중에 나가사키 정박지에 닻을 내림. 네덜란드 배 다섯 척이 정박해 있었음. | Journaal, 1666-09-13; pg11467.txt r.3072 |
| 1666년 | Nagasaki (Dejima) | 9월 14일 상륙해 통역들의 환영·심문, 나가사키 부교 앞 심문을 받은 뒤 데지마로 가 상관장 빌럼 폴허르 등의 환대를 받고 옷을 갈아입음. 표류 13년 28일의 감옥살이에서 풀려난 것을 하느님께 감사하고, 남은 8명의 구출을 빎. | Journaal, 1666-09-14; pg11467.txt r.3087 |
| 1666년 | Nagasaki (Dejima) | 10월 폴허르 상관장이 섬을 떠나고 23일 배 일곱 척이 출항. 하멜 일행은 바타비아로 가리라 기대했으나 나가사키 부교에게 1년간 억류됨. | Journaal, 1666-10; pg11467.txt r.3101 |
| 1666년 | Nagasaki (Dejima) | 10월 25일 통역들이 데려가 부교가 앞서 한 질문을 한 사람씩 다시 물음. 답변은 이어지는 문답록(Vragen bijden gouverneur)에 실림. | Journaal, 1666-10-25; pg11467.txt r.3105 |